김춘수의 꽃과 여우를 읽었다. 한국어보다는 일본어가 익숙하고 능숙한 세대, 의 시인. 목에서 손이 나온다라는 표현이 눈에 밟힌다. 도스토예프스키, 혹은 일본어.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감과 김수영에 대한 대타의식으로 나아간 점은 흥미롭다. 일종의 도피일 터인데, 만석꾼 집안의 장남이라고 표나게 강조하는 것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김춘수의 시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있지 않지만, 그의 시론과 시의 연계성은 흥미롭다. 시를 쓰고 이에 대해 해명 내지는 변명을 왜이리 되풀이 하는 것일까. 이 '자전 소설'이라는 꽃과 여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위 '무의미 시'에 대해 이것은 이러한 의도와 치밀한 계획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을 은연중 드러낸다. 

시라는 텍스트가, 시론과 자전소설이라는 텍스트들과 함께 짜여져서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층위들을 구분해야 할까, 구분하지 말아야 할까. 어떻게 짜여져서 의미를 발생시키게 되는 지점이 오히려 관심이 간다. 의미 발생의 순간이랄까. 빼곡히 주석 달린 황무지는 주석이 텍스트 내적으로 있으면서 시-텍스트와 구분된다면, 김춘수의 시와 시론은 개별 텍스트면서 연동된다. 김춘수에 대해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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