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직업 : 소설가, 시나리오작가
출생일 : 1964년
천명관 에 대해 궁금한 것들
출 생 지 : 경기 용인
집필작품
영화 : 총잡이 (1995년), 북경반점 (1999년)
수상경력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단편 당선 [프랭크와 나]
저서
고래 (2004, 문학동네)

<숨> 영화평 ④ 공간의 축소, 시간의 탐색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시간>에 이은 ‘시간 3부작’
천명관

다시,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일찍이 기지촌과 매음굴, 군대와 절 등 한국사회의 주변부를 거침없이 내달리며 온갖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김기덕의 발걸음은 이제 물 한가운데 고립된 <섬>을 건너 <빈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급기야 그의 영화적 공간은 서너평 남짓한 좁은 감방 안으로 축소된다.

10년 전 가을, 단풍 든 설악산에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연은 사형수 장진을 찾아가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시간을 연장해주는 대신 자신의 행복했던 시간을 되돌려받고자 한다. 그들의 과거와 미래가 이렇게 엇갈리는 바, 그들은 좁은 면회실 안에서 처절하고 절박하게 욕망과 기억의 무화된 시간들을 복원해내고자 애쓴다. 이렇게 확장된 시간은 그동안 김기덕이 꾸준히 공간을 축소하고 지워내는 가운데 발견한 새로운 길의 모습이다. 따라서 그의 열네 번째 영화 <숨>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그리고 바로 전작인 <시간>과 더불어 ‘시간 3부작’으로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김기덕 감독은 이미 스스로 괴물이 돼버린 충무로 거대자본의 음울하고 무자비한 욕망과 그를 규정하고 정리해서 가두고, 길들이고 거세해서 기어이 살해하려는 지식인의 불타는 복수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전인미답의 길을 향해 점점 더 멀리 길을 내고 있다. 그는 이제 언론의 문화면을 뒤덮고 있는, 쉽고 착하며 안심할 만한 수많은 사이비 예술가들과는 정반대편에서 우리가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낯설고 불편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투사하며, 매번 의미있는 텍스트를 생산해내는(단 한편의 예외도 없이!) 충무로의 유일한 감독이다. 따라서 그의 영화에 동의하든 안 하든 그동안 그가 보여준 열네편의 고행은 제작비 100억원대와 관객 1천만 시대에 만나는 낯선 진경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확장하는 대신 공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은 살인적인 저예산의 압박을 극복해내기 위한 그만의 고육지책인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필름에 담긴 정태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는 그 모든 과정 진술까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들어 그의 영화에서 한국사회가 점점 더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충무로영화’ 딱지를 떼버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한국사회가 지워지는 것과 동시에 창녀와 건달, 노숙자와 혼혈아 등 그의 영화 속 자아들 혹은 형제자매들까지도 함께 사라져 이젠 그의 영화를 ‘한국영화’로 규정할 근거조차 더욱 미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 <숨>에선 그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한국어가 아예 불가능한 중국 배우와 연극 무대처럼 비현실적인 공간, 그리고 거의 한 배우의 개런티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작비의 출처까지….

언제나 이 사회의 하위 주체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언제부턴가 그 하위 주체의 최전선이 되어버린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사회변혁에 대한 전망의 결여라는 원죄로 인해 한국의 좌파 지식인에게도 끝끝내 외면받았던 그의 외롭고 고단한 순례는 기독교적 구원과 죄의식 문제에 가닿음으로써 서구영화계로부터 어느 정도 위로를 얻었지만 그가 점점 더 한국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혹 한국사회의 주변부적 삶을 다루면서 야기된 잔혹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그가 이제 지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한낱 우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 뒤에서 등장인물을 훔쳐보고 키득거리고 조종하고 금지하고 허용함으로써 그 자신이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음험한 보안과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음험한 시선으로 다시금 우리에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세계를 펼쳐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그는 지친 것이 아니라 지혜를 얻은 것이며,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게 아니라 시간의 탐색과 더불어 진정 새로운 길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미 구상을 끝마쳤을, 그의 열다섯 번째 영화를 즐거운 심정으로 기다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글) 천명관

①노래, 무용, 연극과 동침 `문학이 바람나다`

[TV리포트   2006-10-31 16:09:28] 
[현장중계] 제 7회 문학나눔콘서트 ‘소설읽기의 방식’

문학이 텍스트를 박차고 나왔다. 노래, 무용, 연극 등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한 작품에 독자들은 열광했고, 작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와 사이버문학광장(http://www.munjang.or.kr)이 주관하는 문학나눔콘서트, 제 7회 ‘소설읽기의 방식’은 소리와 몸짓이 한데 어우러진 자리였다.

20일 저녁 7시 대학로 SH클럽.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 5인방(고은주, 박민규, 정이현, 천명, 한강)과 250여명의 독자가 벌인 흥겨운 ‘난장(亂場)’에 당신을 초대한다.

`꽃분홍 셔츠` 박민규가 열창한 블루스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나른하고 편안한 노래로 포문을 연 행사는, 사회를 맡은 소설가 고은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객석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철제 계단에까지 걸터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로 향했다.

첫 번째 공연은 소설가 박민규와 연극배우 박상종의 합동 낭독.

박민규는 레이스 달린 꽃분홍색 셔츠를 입고, 트레이드마크인 고글을 끼고 나타났다. 최신작 <핑퐁>(창비. 2006) 표지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듯한 모습이었다. 낭독작 역시 <핑퐁>.

핑, 퐁, 핑, 퐁. 탁구공이 오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박상종이 낭독을 시작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전철을 탑니다. 누구나 집을 나서면 전철을 타는 법이지만 저는 좀 다릅니다. 저는 내리지 않습니다.”

`으으음...`

중량감 있는 목소리가 잠식한 실내를 박민규의 낮은 허밍이 비집고 들어왔다.

`라라라...`

뜻을 알 수 없는 흥얼거림은 이내 책 속 문장을 가사로 한 노래로 바뀌었다.

“당신은 오늘 학교로 간다~” “당신은 오늘 출근을 한다~”

술 취한 아저씨의 고성방가처럼 거칠고 째진 목소리, 박자와 음정 모두 제멋대로였지만, 노래를 부르는 박민규도 듣는 독자도 모두 심취했다.

뜨거운 박수갈채와 함께 공연이 끝나고, 박민규는 “도중에 고글에 김이 서려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며 “중간부터는 책 속 내용이 아닌 생각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고 시인했다. 작가의 솔직한 고백에 독자는 웃음과 박수로 화답했다.

박상종은 “박민규가 이렇게 블루스를 잘 부를지 몰랐다”며 “가수 프로모션을 준비해야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무용, 인형극, 에니메이션...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한 소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작가는 한강이었다.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 2002)을 낭독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단정하고 정갈했다. 앞선 무대로 들뜬 분위기가 차분히 정리되었다.

낭독이 끝나고 암전, 작품을 토대로 안무한 무용 공연(무용가 김세용, 김준희)이 이어졌다.

음악이 없이 무용가의 몸사위로만 시작된 공연. 바닥을 스치는 옷자락 소리만이 유일한 효과음이었다. 실루엣만이 간신히 보이는 어두운 조명이 보는 이의 가슴을 옥죄게 만들었다.

공연을 지켜본 한강은 감정이 복받쳐 오른 듯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차가움 속에 숨겨진 뜨거운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 무용이 이를 그대로 표현해냈다”며 “사람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데에 가슴이 뻐근해 온다”고 감상을 밝혔다.



사회를 맡은 소설가 고은주도 행사에 직접 참여했다. 한강의 낭독이 ‘정적’이었다면 고은주의 낭독은 ‘극적’. 작가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은 글이나 목소리나 매한가지인 듯했다.

그녀가 읽은 <칵테일 슈가>(문이당. 2004)는 인형극(예술무대 산)으로 재구성됐다. 마네킹과 혼연일체 돼,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에 작가와 독자 모두 숨을 죽였다.



경쾌하고 발랄한 발걸음으로 등장한 정이현은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06)를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책 속 일러스트를 토대로 만든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배경으로 흘러나왔다.

정이현은 “관객의 한사람으로서 앉아서 지켜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나도 무용이나 연극을 할 걸 그랬다”고 아쉬움을 표하다가, “그러게, 회의할 때 나오셨어야죠”라는 사회자의 핀잔을 받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 직접 연기한, 작가 천명관



천명관은 가장 적극적으로 공연에 동참한 작가였다. 그는 단편 ‘유쾌한 하녀 말리사’를 각색한 연극(연극배우 이영숙, 이상옥)에 직접 배우로 출연했다.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공연 전 짧게 내용을 설명하는 작가를 두고, 사회자는 ‘친철한 명관씨’라 칭했다.

(무대는 독일. 남자 주인공은 작가. 취재차 다녀온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테이블에 놓인 부인의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그가 편지를 읽으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시작은 순탄치 못했다. 미처 마이크를 준비하지 못한 여배우로 인해, 공연은 잠시 맥이 끊겼다. 불평을 늘어놓는 이는 없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에 도리어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격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천명관이 무대에 재등장했다. 그의 연기는 시종일관 어설펐다. 와인을 마시다가 놀라서 멈칫하는 장면에선 실소가 새어나왔고, 남자 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비극적 결말에서도 관객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공연 후, 천명관은 “새벽 염불만 없으면 중노릇도 할 만하다고, 대사만 없으면 연기도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에 도전했다”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배우가 살아있는 호흡이 불어넣은 덕에 앙상한 작품이 살아난 것 같다는 감회도 덧붙였다.

준비된 공연이 모두 끝나고, 콘서트는 이미 예정시간 1시간 반을 훌쩍 넘겼지만 객석엔 미동조차 없었다. 독자들은 이어질 ‘관객과의 대화’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②활자 뛰쳐나온 문학...독자-작가 `짙은 교감`

[TV리포트   2006-10-31 16:09:29] 
[현장중계] 제 7회 문학나눔콘서트 ‘소설읽기의 방식’

제 7회 문학나눔콘서트는 시간이 지날 수록 열기를 더해갔다. 이메일을 통해 사전 접수된 독자의 질문을 건네는 시간. 콘서트가 예상시간을 초과한 관계로 한 작가 당 하나의 질문이 주어졌다.

첫 번째 질문을 받은 작가는 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의 캐릭터는 어떻게 떠올렸냐는 물음에, 그녀는 “5년 전에 발표한 책인데 아직까지 소설을 내지 않고 있다. 직무태만이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소설을 쓸 때는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인물의 성격을 떠올려요. 작품에서 거식증과 폭식증을 오가는 주인공 L도 손가락을 이용해 구역질을 하면 위산에 부식돼 손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설정한 캐릭터입니다.”

데뷔작 <고래>(문학동네. 2004)로 단번에 주목받은 작가 천명. 독자는 그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단숨에 풀어낸 게 아니지, 이야기보따리가 남아있는지, ‘애정 어린’ 걱정을 전해왔다.

천명관은 “사실 저도 걱정이 된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이어 “가까운 이야기는 왠지 불편해서 쓰지 않고, 주로 멀리 있는 이야기를 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배경이) 독일까지 가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아직 쓸 게 많다”고 독자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정이현의 <삼풍백화점>(현대문학. 2005)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는 독자는 작가에게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물어왔다.

“작품보단 인물에 애착이 더 많이 가요. 소설을 발표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녀석들 어디서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죠.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가 특히 생각이 많이 나네요.”

감회에 젖은 듯 잠시 생각에 잠긴 작가는 곧 “다음 장편도 서서히 준비 중”이라며 “‘달.콤’이 지금 이곳에 대한 이야기여서, 다음엔 시간과 공간을 조금 멀리 잡아보면 어떨까 궁리하고 있다”가 집필 계획을 밝혔다.

“사람이 심심해지면 별의별 생각이 다 하게 돼요”

박민규는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는 작가다. 현란한 옷차림 때문만은 아니다.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우물우물 말을 뱉지 못하고 삼키는 화법도 독특하다.

“심심해지려고 많이 노력해요... 어렸을 때도 멍하니 잘 있었어요. 먼 산도 많이 보고... 사람이 심심해지면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되더라구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박민규는 이같이 답했다. 흐느적흐느적 몸을 꼬며 어색해하는 그에게 특별히 한 가지 질문이 더 날아들었다.

<핑퐁>을 읽으며, 소설이 아닌 시라고 느꼈다는 독자는 시를 쓸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그렇게 봐주셨다니 고맙다고 입을 뗀 박민규는 “혼자 몰래 시를 쓰고 있지만 발표할 계획은 없다”며 “소설은 인간이 ‘앉아서’ 쓰는 거지만 시는 순전히 ‘받아서’ 쓰는 것이다. 나는 아직 어림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죽고 난 후 뜬금없이 시집을 발표할지도 모른다는 마무리로 여운을 남기며, 박민규 시집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관객과의 대화까지, 무려 2시간 30분이 넘게 진행된 공연은 한강의 노래로 드디어(?) 막을 내렸다. 가늘게 떨리는 소박하고 정직한 목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공연 내내 열기로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도 서서히 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콘서트 후 싸인회를 진행 중인 작가와 몇몇 독자를 만나봤다.

직접 작품 속 배우로 분한 소설가 천명관은 “연기가 너무 어렵고, 연기자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다분히 연극적 요소가 있는 소설이라며, 언젠가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기나긴 싸인 행렬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사회자 고은주는 “늘 사회를 볼 때면 공연하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드디어 소원을 성취했다”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칵테일 슈가>를 재구성한 인형극에 대해서는 “독자가 만든 ‘입체적’인 독후감을 본 느낌이었다. 감동이 오래 지속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이 세 번째 낭독 무대였다고 밝힌 정이현은 “사실 이전까지는 낭독 문화가 존재하는지조차 잘 몰랐다”며 “작가는 독자와 이렇게 코앞에서 마주할 기회가 많이 없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있다면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 발표 때마다 낭독회를 갖는 작가 김영하의 심정이 이해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민규는 작가들이 뒷풀이 장소로 이동한 마지막까지 팬들의 사인공세에 시달렸다.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지만 이에 대한 감흥은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무덤덤한 반응이었지만, 독자 하나하나의 이름을 묻고 사진촬영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만으로 그 답은 대신한 듯 했다.



대학생 신호연(21)씨는 “독특한 발상의 소유자 박민규, 여린 감성으로 글을 쓰는 작가 한강이 특히 궁금했다”며 “혼자서 그려오던 모습과 실제가 너무나 흡사해 신기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문학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라고 밝힌 공대생 윤성일(24)씨는 “공연에 등장한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았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며 “문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텍스트를 뛰쳐나온 문학, 집필실에서 벗어난 작가. 그들이 느낀 해방감과 자유로움은 공연에서 그대로 표출된 듯 하다. 싸인회까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 텅 빈 공연장엔 작가와 독자가 뿜어낸 ‘열기’만이 남아 있었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인터뷰 | 문예계간지「문학동네」신인상·소설상 연속 수상한 千明寬
『세상엔「高卒의 인생」이 있고「大卒의 인생」이 있습니다』
박인숙  前 헤럴드경제 문화부 기자 (iceinsook@hotmail.com
「문학」이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볕 좋은 봄날, 문단을 발칵 뒤집으며 등장한 소설가 천명관(41)씨를 만났다. 천명관씨는 2003년 문예계간지의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겨울,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그런데 그저 얌전한 등단과 수상이 아니었다. 문단은 천명관씨의 작품이 내용과 형식 등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천씨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출판되자 독자들은 술렁거렸고, 문단은 당황했다.
 
  「문학」이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이질감을 던져 주었다.
 
  『쓰지 마세요, 이런 건. 써 봐야 이해 못해요. 세상엔 「고졸 인생」이 있고 「대졸 인생」이 있습니다』
 
  「고졸 인생」이란 모든 곳에서 나설 수 없는 것이라 말하는 천명관씨가 대졸자와 첫 대화를 나눠 본 때는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내 인생을 망친 건 고등학교 선생」이라고 무라카미 류가 말했지만, 고등학생 시절은 천씨 인생의 제일 어두운 시기였다. 군대 제대 후 그가 취직 서류 준비 시에 우연히 알게 된 그의 고교 석차는 58명 중 58등.
 
  1964년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활발하고 이야기 잘하고 똘망똘망했던 경기도 토박이 소년 천명관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괴롭고 답답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방위 신분으로 군 생활을 할 여건이 되었던 그는 오히려 서둘러 군대에 가려고 공군에 자원했다. 제대 후 이틀 만에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천명관씨는 골프상 점원으로 3년을 보낸다. 이후 또 3년을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신망을 쌓았다. 군대 제대 후 보험회사 소장이 꿈이었을 당시 천씨는 소위 「잘나갔다」.
 
  『하루라도 놀아 본 적이 없어요』
 
  천씨는 생활이 절박해서 하루라도 일을 그만두면 안 되기 때문에 하루도 놀아 본 적이 없다.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조용히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를 만들던 군대 동료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며칠 후 천씨는 앓게 된다. 그리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모아 둔 돈으로 3년을 살 수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 싶었다. 당시 천씨는,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의 동기란, 영화를 만드는 군대 동기와 잠시 마주쳤던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천명관씨의 영화 인생이 시작되는데, 눈뜨고 잘 때까지 영화를 보았다. 하루에 여덟 편 가량 닥치는 대로 보았다.
 
  천씨가 종종 접한 동료의 영화 사무실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였고, 모든 면에서 이질적이었다. 천씨는 기꺼이 그 속으로 뛰어든다. 영화사에 발을 들여 세무서에 오가고, 의료보험조합에 오가고, 방문차량을 주차해 주던 천씨는 자꾸만 머릿속에 이야기가 떠올랐다 . 그래서 시나리오를 「막」 썼다.
 
 
  『소설 써 보면 어때?』
 
  영화감독이 주인공인 첫 시나리오 「베드신을 둘러싼 108가지 유형의 골치 아픈 일들」에 대한 주변인들의 호응에 힘입어 처음으로 「나도 창작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어 본다. 지금은 싸이더스의 영화 제작자인 차승재 대표로부터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시나리오 각색을 제안받았을 때를 천씨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건 다른 인생이거든요 . 나에게도 이런 일을 할 기회가 있다니 싶었어요』라고 기억한다.
 
  그 작업 이후 천씨는 주어지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기획하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화사를 대상으로 판매한다. 주도권을 자신이 갖도록 작업을 하는 통에, 그의 작품은 영화 전문지에 「시나리오 최초의 인센티브 계약」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때, 「총잡이」, 「로드쇼」, 「가문의 영광」 초고 등의 작품이 나왔다.
 
  그는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영화판에서도 「고졸 인생」은 고단했다. 최근에서야 대형 영화사에서 제작에 들어간 「자객 열전」은 그의 5년 전 작품. 천씨는 이 작품을 「내 인생을 어둡게 만든 시나리오」라고 정의한다. 5년 전, 이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지 못한 이후부터 천씨는 오랫동안 돈을 벌지 못하고 혹독한 인생을 살았다. 철저한 소외를 겪어 가며 존재 증명을 못하는 어두운 시간이 오래오래 흐르면서 서른아홉 살이 된다.
 
  천씨는 영화판에서 실패했다고 여기고 심한 좌절을 겪는다. 모아 둔 비디오테이프는 물론이고 텔레비전도 내다 버렸다. 남들이 「지금은 영상시대다」 할 때, 「내 인생에 영상은 끝이다」라며 좌절로 마흔을 맞게 되는 순간을 직시했다. 『소설을 써 보면 어때?』라는 동생의 스치는 한 마디에 그는 소설 작업을 시도한다. 극심한 좌절의 바닥을 탁 치고 다시 창작인생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이 2004년 문학동네 신인 문학상 수상작인 단편소설 「프랭크와 나」이다.
 
 
  「고래」
 
  천명관씨의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장편소설 「고래」는 아주 오랜만에 문단을 들썩이 며 흔든 작품이다. 이 소설은 국밥집 노파, 금복, 춘희로 이어지는 여인 삼대의 매혹적인 이야기이다. 문학평론가의 평을 빌려 소설 「고래」를 짐작해 보자.
 
  <이 소설에 한없이 매혹되면서도 이 소설의 기원을, 그리고 매혹의 근거를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우선 당황했다. 이 소설은 달랐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소설이 진행되면 될수록, 소설의 밀도가 더해 가면 갈수록 이 당혹감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좋은 소설의 조건이라고 설정한 모든 요소들이 거의 없었다. 이야기에 빨려 갈수록 당황했고,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그 이야기 속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 이런 이율배반의 감정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극에 달했다,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였다. 오랜 기간 공들여 쌓아 온 기준을 지키려면 이 감동을 부정해야 했다. 이런 매혹적인 소설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준을 유지하자니 불안했다>(문학평론가 류보선)
 
  「고래」는 「소설은 무엇인가?」에서부터 「문학은 무엇이어야 마땅한가」에 대해 토론하게 했다. 문예진흥원은 올해 1분기 「우수문학도서」에 고래를 선정하기도 했다.
 
  「고래」는 또 , 최근에 단행본 최고가인 1억 원에 영상화 계약을 체결했다. 단편소설이 텔레비전 드라마화될 때 대략 수백만 원 정도를 받고, 시나리오가 1천만 원을 오가는 현실에 비교하면, 1억 원 계약 체결이라는 의미는 단행본 최고가 기록, 그 이상이다. 마술적인 기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읽게 되는 「고래」에 대해 문단은 「마르케스풍」이라고 빗대기도 한다. 천명관씨의 단편들은 제각각 전혀 다른 문체를 가지고 있다. 특히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에게 헌정한다는 부제가 붙은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는 다분히 사실적이고 간결한 미국적 문체이다.
 
  『문체는 소설의 스타일입니다. 우연적이고도 다행스럽게 제 안에는 아주 많은 스타일이 있어요』
 
  이 말을 할 때, 내내 겸연쩍은 듯 인터뷰하던 천씨의 목소리가 가장 힘차고 분명했다.
 
  『저는 어느 나라 사람이 보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고래」에서는 고어 느낌을 살리기 위해 비일상적 단어를 많이 썼지만, 말의 뉘앙스보다 이야기를 중시합니다 . 이야기는 연극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영화로 轉移(전이)되듯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살아남는 것 같아요』
 
  자연스레 어느 소설가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존 업다이크를 좋아했어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가는 잡스런 인간이구나 싶었지요. 인생이란 살아야 할 대상이지,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대상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심리묘사나 세밀한 대사를 징그러울 정도로 소소하게 따지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소설가는 징그러운 존재구나 하고 생각했었지요』
 
각종 광고가 붙어 있는 전봇대 옆에서 생각에 잠긴 천명관씨. 이번엔 또 무슨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걸까.

  천명관씨의 소설은 부담없이 술술 읽히면서도 바탕에는 크고 널찍한 저력이 받치고 있다. 그래서 크게 한 번 웃어 대기만 하면 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는,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하는 어이없는 환호성을 지르게 하고, 상황 전개에 기가 막혀서 웃다가도 오래전에 잊어버린 뭉클함과 서러움이 이내 그 웃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다채롭게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저 하나의 재밌는 이야기로만 치부되지 않는 근거가 무엇일까.
 
  『남에게 관심이 많아요. 어떤 상황이든지 그 누군가의 이면의 사연이 느껴져서 저는 사람을 진짜로 미워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측은지심」인 것 같습니다. 그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인 것 같아요. 사람에게 화낼 일은 없지요. 시스템에 화낼 일은 있지만』
 
  그러고 보니, 「고래」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자기만의 역사가 구구절절 다 소개된다.
 
  「고래」에 대해 작가는 『지난 세기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지난 세기를 거칠게 보는 방식이기도 하지요. 개인에게 있어서 근대는 「실향」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복이 산골마을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해요』 하며 떠나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실했던 일상과의 결별로 영화를 만나고,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대답 없던 영화를 뒤로 떠밀고 소설을 만난 천명관씨 자신이 이야기가 되려면, 이제 그는 어디를, 어디로 떠나며 그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시킬까.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가 천명관

글 ㅣ 고영직, 사진 ㅣ 박원우

‘천구라’가 떴다. 대형 이야기꾼 기근에 시달려온 한국 문단에 장편소설 『고래』를 들고 돌연 출현한 소설가 천명관은 이야기와 소설, 제도와 비제도, 문학과 영화라는 견고한 구별짓기에 파열구를 내며 2005년 문학계의 문제적 현상으로 떠올랐다. 용인, 수원, 안양, 고양 등지를 유전하며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데뷔한 천명관은 『고래』를 통해 ‘우주적 공갈’의 입심을 보여주고 있다.

천명관의 『고래』는 단숨에 읽히는 이야기의 매력이 있다. 45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인데도 책장에서 손을 떼지 못하도록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책장에 독자를 유혹하는 페르몬 냄새라도 뿌려놓은 듯, 어느 순간 ‘평대’라는 인간의 원초적 정념의 세계가 지배하는 욕망의 투기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특유의 입심으로 낯선 유형의 소설을 쓰는 새로운 이야기꾼이 탄생한 것일까.
“과연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중략)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위의 진술은 천명관의 『고래』라는 작품이 지향하는 글쓰기의 속성을 잘 요약한다. 작가는 이런 진술을 수차례에 걸쳐 반복 진술한다. 자신의 발화 지점이 ‘이야기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천명관이라는 작가의 소설관 또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라는 개념에 기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소설이란 정보 전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예전에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사람 취재를 많이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란 결코 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됐어요. 물론 취재 과정에서 특정한 사람에게 매혹되곤 했지만, 지나놓고 보면 매혹의 실체란 게 지극히 평범했다고 봐요. 역사에 대한 관점 역시 같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사실fact을 모두 제거해버리고 나면 오히려 다른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탓일까. 작가는 『고래』를 쓰면서 거의 취재에 의존하지 않았다. 아니, 취재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취재라고 해야 10여 년 전 서울 근교의 어느 벽돌공장을 잠깐 취재했던 게 고작일 뿐이라고 한다. 소위 지식과 정보를 가공하는 식의 팩션faction (fact+fiction)적 글쓰기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취재’에 몰입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작가는 정보화와 지식화라는 이름으로 묶이지 않고 우리네 삶의 밑바닥에 침전된 어떤 이면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고래』에서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는데, 단적인 사례가 ‘교양’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편중된 관심으로 나타난 바 있다. 왜냐하면 “문학을 교양으로 보려는 시각은 그릇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령 『고래』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 벽돌 기술자인 ‘文’ 정도가 교양인(?) 축에 속한다고 해야 할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국밥집 노파→금희→춘희’로 이어지는 여인 3대의 인생유전 중에서 특정 인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니까 천명관은 에피소드의 단순 나열에 가까운 배치를 통해 특정 인물에 치우치지 않는 의미의 ‘등가성等價性’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천명관의 소설『고래』에 등장하는 ‘춘희’라는 인물의 삶터 공간은 벽돌공장이다. 소설 속 공간과 흡사한 안양의 삼덕제지 공장터를 찾았다. 벽돌공장은 아니지만 폐허로 변한 공장터는 마치 ‘춘희’가 없는 빈 공장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소설에 관한 작가의 이러한 독특한 견해는 제도권 밖에서 오랫동안 아웃사이더로서의 이력을 쌓아온 것과도 무관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제도권에 대한 허기도 있기는 하겠지만, 오히려 제도권 바깥에서의 포만감을 더 즐겼다”며 쾌활한 웃음을 지었다. 작가는 나아가 “제도권 안을 긍휼히 여긴 측면조차 있었다”고 덧붙였다. 소설가 은희경이 심사평에서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는 작가”라고 한 대목은 바로 이러한 작가의 기질을 염두에 둔 평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저는 근대소설의 견고한 틀이 견딜 수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보면서 정말 감탄했어요. 한 컷 한 컷 정지된 일종의 ‘정사진’의 방식을 구사한소설인데, 저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방식입니다. 저는 장정일의 소설, 영화, 만화, 무협지, 전설과 괴담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사실의 진술로 시작하는 미국 작가의 소설들에서 문학 수업을 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래』는 시간이 가미된 일종의 ‘동영상’적 글쓰기였다는 것이다. 『고래』에서도 이런 시도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춘희가 폐허가 된 벽돌공장으로 돌아오는 첫 장면이 바로 정지화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천명관은 영화판에서 오랫동안 시나리오작가로서 활동을 했다. 10대 후반에서 군 제대 후 무렵까지 천명관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 ‘어두웠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수원유신고 시절에는 57명 중 ‘57등’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은 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어요.” 문학 작품을 접한 계기는 군대 시절이었다. 군대 도서실에서 김지하의 『애린』, 고은의 시집 등을 탐독했다고 한다. 글쓰기를 할 때 특히 영향을 받은 작가는 『가프』를 쓴 미국작가 존 어빙이었다.
“미국 소설은 거의 사실의 진술로 시작됩니다. 사실의 진술 때문에 그런지 어느 기자가 제 작품을 ‘무목적적 서사’라고도 하고, 어떤 독자는 다 읽은 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작품을 보세요? 이야기와 해설을 덧붙이는 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런 정태적 진술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상황을 유예시키는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천명관은 그런 작가였다. 지식과 관념에 의존하는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부글부글 들끓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점 때문에 천명관의 소설은 ‘예외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단이 이 21세기에 출현한 새로운 이야기꾼에 거는 기대는 그래서 결코 적지 않다.선배작가인 김훈은 사석에서 “정말 네가 썼단 말이지? 진짜 썼단 말이지?”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은 이유도 작가의 이런 ‘투지’를 높이 샀기 때문은 아닐까?


벽돌보다는 도자기가 더 예쁘지 않느냐고 해서할 수 없이 춘희를 도자기 굽는 주인공으로 바꿔야 했던 대대적인 윤색작업, 다시 이름이 춘희가 뭐냐고 해서 마지못해 주인공의 이름을 애니로 바꿔야 했던 대대적인 수정작업,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직업이 씨팔, 가오 상하게 트럭 운전사가 뭐냐고 해서 어쩔 수 없이다시 재벌 2세 사업가로 바꾼 대대적인 밤샘 작업. 그렇게 해서 결정된 사십팔 킬로그램의 가난한 도예과 여대생과 재벌 2세의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슬픈 로맨스. 시청률과 대중성의 법칙. 이미 예정된 드라마의 대히트와 대중들의 무의미한 눈물…





작가는 당분간 몇 편의 단편소설을 써볼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허구에 허구를 보태는 식의 글쓰기는지양하려고 한다. 계간지 봄호에 쓴 소설은 미국 마피아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한국 소설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번역투’를 사용해서 작품을 한 편 써봤습니다.” 세상의 지배질서로부터 배제되고 억압되어 주변화된 것들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인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펼쳐 보이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그러나 천명관 식 글쓰기에 대한 반론도 없지는 않다. 가령 “그렇게 장군은 사람들의 잠을 빼앗아갔고 세상은 더욱 피곤해졌다”(220쪽) 같은 표현을 보라. 여기서 보듯이 ‘문장의 향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런 일각의 우려에 대해 작가는 “우리 소설은 시에 가깝습니다. 문장에 치중하는 것은 시의 세계라고 봅니다. 소설 문장은 적확하고 간결하면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문장이라야 한다고 봐요.” 향후 씌어지는 단편에 주목할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단 한 권의 데뷔작으로 문단의 화제를 모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1980년대 중반에 발표된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 정도가 기억될 따름이다. 그렇다면 천명관의 『고래』라는 작품은 글쓰기의 새로운 행갈이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천명관 식의 글쓰기가 향후 자명한 현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문단에 천명관이라는 작가로 인해 문학이 더욱 활력을 얻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 여러분, 이야기는 계속된다.”

고영직|문학평론가. 1968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992년 『한길문학』을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주요 평론으로 「‘자발적 가난’의 한 경로」와 「한국문학과 베트남전쟁」 등이 있다. 현재 본지 전문위원이다  

박원우|신구전문대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교원그룹 출판사진팀에서 근무했다. 1999년부터 문화예술 전문지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두 차례의 기획전에 참가하였다. 현재 자유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천명관, 문학동네[2004]

중편소설] 시간의 비행《문장 웹진/ 2005년 8월》

천명관의 『고래』에 나타난 마술적 사실주의 -초자연적 요소의 재현방식과 기능을 중심으로- (El realismo magico en La Ballena, de Chun, Myeong-Kwan: en torno al modo y La funcion de Los elementos sobrenaturales)
전용갑 (스페인어문학, Vol.36 No.-, [2005]) [KCI 등재]

호모 나랜스, 실재, 서사 :임철우, 조경란, 천명관의 새로운 소설 : 「백년여관」, 임철우 [저]… <書評> /이정석 [평] 2005 文藝中央. 제30권 통권109호 (2005 봄), pp.410-423 랜덤하우스중앙 805 ㅁ321ㅈ

상상력과 허풍의 미래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와 조하형 장편소설 『키메라의 아침』에 대하여 /서영채 2005 문학동네. 제12권 1호 통권 제42호 (2005. 봄), pp.348-366 문학동네 811 ㅁ326        
 
4  서사의 위기와 소설의 계몽 :한국소설의 미성숙, 혹은 천명관의 『고래』를 읽기 위한 전제들 /김영찬 2005 문화예술. 통권307호 (2005. 2), pp.62-68 한국문화예술진흥원 811.05 ㅁ321ㅎ      
 
5  미친, 새로운 몽상 혹은 열린, 소설의 문법 :천명관의 『고래』와 조하영의 『키메라의 아침』 /황도경 2005 오늘의문예비평. 통권 제58호 (2005 가을), pp.70-88 세종출판사 811.4 ㅇ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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