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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2-3. 정치권력과 지식인 下

 
2007 대통령 선거전이 서서히 달궈지고 있는 요즘 지식인들의 줄서기도 한창이다.
 


지난 달 27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진영의 정동양 한국교원대 기술교육학과 교수(왼쪽)와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정교수는 대운하 옹호를 하다 한 방청객으로부터 “3년전에는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받자 “당시엔 깊이 있게 검토해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문화방송 제공 

정치학을 전공하는 서울 한 사립대의 ㄱ교수는 최근 같은 대학 출신 선후배 교수, 주변 교수들로부터 정치 참여 동향을 자주 듣게 된다. 그에 따르면 이 학교 ㄴ·ㄷ교수 등은 교수 회식 때면 “나는 이번에는 꼭 누구 대선기획단에 들어갈테다”라며 공공연하게 말한다고 한다. 이미 “비선 조직에 몸담고 있다”는 교수도 여럿이다. “나보다 훨씬 못한 녀석들이 정치 한답시고 이름 날리는 거 그냥 못 보는 게 교수들이야.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도 못했고, 빽 써서 교수 된 데다 교수 되고 나서 연구도 게을리한 애들이 어느날 정치권에 이름을 떡 하니 올려놓는 거야. 그 꼴을 못 보는 거지.” 그러니 이 참에 나도 한번 나서보자고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ㄱ교수는 정치권에 줄대는 교수들의 행태의 본질을 ‘명예욕’으로 규정했다. 그는 “교수들이 정치에 무슨 전문성을 보여주겠느냐”면서 “전문성을 가장한 정치판 가담 행위”라고 지적했다.

국립대 어느 교수의 월·수·금 수업 중 금요일은 ‘자율 학습’이다. 그는 금요일 여의도를 오가며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기필코 대통령시켜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던 서울 사립대의 어느 교수. 그는 ‘이명박 대세론’이 일자 MB캠프로 선회했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대선 로또 5년장’이 섰다”는 말이 나들고 있다. 한 교수는 “될 만한 후보 캠프에 줄만 잘 서면 차기 정권에서 중요한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것을 몇 차례 대선을 거듭하며 학습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식인의 정치 참여가 정치인을 통해 자기의 철학과 신념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지난달 27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의 경우를 보자. 이날 주제는 이명박 전 시장이 공약으로 내건 한반도 대운하였다. 정동양 한국교원대 교수(기술교육학), 유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가 찬성쪽 패널로, 홍종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와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이 반대쪽 패널로 나왔다. 팽팽하게 진행되던 이날 토론의 균형은 시민 패널의 질문 하나로 깨졌다. 주부 김정애씨는 정교수에게 이렇게 따졌다. “2004년 건교부 주최 전문가 회의에서 ‘서울에서 배를 타고 소백산맥을 넘어 부산까지 가려면 1주일에서 열흘까지 걸린다며 경부운하를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강하게 비판하셨던데 지난 11일 심포지엄에서는 운항시간이 24시간이라고 바꿨다. 3년 사이에 같은 사안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느냐.” 정교수의 답변은 “오래돼 잘 기억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문이 계속됐다. 그러자 그는 “당시엔 깊이 있게 검토해보지 못한 것이었고,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명했다.

곽승준 고려대 교수. 환경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새만금생명학회의 창립멤버다. 정부의 지속가능개발위원회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새만금공사를 강행하자 학자적 소신을 지킨다며 위원회를 탈퇴했다. 그런 곽교수는 지금 이명박 전 시장 캠프 환경특보다. 그는 지난 3월 라디오 프로에 나가 “한반도 대운하 주위에 산업단지, 유락시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부가가치 창출도 고려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새만금공사를 강행한 정부 논리와 비슷했다.

지식인들도 야당에만 몰리고, 인기없는 여권에는 ‘지식인 가뭄’이다. 한자릿수 지지율을 보이는 여권 주자들에게는 교수들이 모이지 않는다. 유력 주자에게 몰리는 현상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여권 한 주자의 핵심 참모는 “후보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몇몇 소신형·이념형 교수들만 참여하고 있다. 우리 후보랑 맞을 것 같아 영입을 타진해보면 대부분 사양한다”고 말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권 전체나 지지율이 바닥인 게 제일 크다”며 “이념·소신이 맞아서 저쪽(한나라당) 캠프에 가는 분들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세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특집 설문에서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설문 대상 74명 중 68명이 답변을 해왔다. 주관식 답변을 유형화해 크게 분류하면 ‘찬성(긍정)’이 49명(66.2%)으로 ‘반대(부정)’ 11명(14.9%)보다 훨씬 많았다. 찬성(긍정) 중 정치 참여의 조건과 전제를 내건 ‘조건부 찬성(긍정)’ 24명(32.4%), ‘인간은 정치적 동물’ ‘참정권’ 차원의 원론적 찬성(긍정)이 12명(16.2%)으로 절반가량(36명·48.6%)이었다. 조건부·원론적 찬성(긍정)의 의견을 낸 지식인들도 정치 참여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어느 교수는 “교수들의 지위가 과대 평가되었다. 사회가 필요 이상으로 교수에게 많은 권위를 떠안겼다”“정부에 참여할 때 4급 서기관이나 5급 사무관 정도의 자리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에서 지식인 정치 참여가 문제되는 이유는 ‘비정치적 경로와 수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정치인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 시대 이래 지식인이 ‘사대부-선비-권력 진출’의 틀을 은연중 답습하려는 경향을 지적했다. 유명 지식인일수록 정치 참여 때 ‘공천’이 확실시되는 것이 바로 그런 전통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사례로는 서울대 총장이라는 후광 효과로 정치권의 꽃가마를 기대했던 정운찬 전 총장이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은 정치 참여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식인의 정치 참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는 넓은 범위에서 볼 때 정치에 대한 지식인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처럼 하나의 좋은 전통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문제는 정부나 정당에 참여하는 이른바 좁은 의미의 정치 참여의 경우 지식과 권력과 거래하는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지식인들의 행태가 그 부정적인 양상의 한 전형”이라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지식인에게 넓은 의미의 현실 참여는 불가피하며 비판적 참여조차 이미 정치를 뜻한다”면서 “그러나 최근 의원 공천을 위해, 또는 정부 고위직을 위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고병권 수유+너머 대표는 지식인들의 정부 위원회 참여를 주목했다. “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도덕적 판단을 떠나서 하나의 현상이다. 과거에도 통치 계급의 이해에 복무하거나 혁명에 참여하는 형태로 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있었고, 앞으로도 지식의 중요성이 증대될수록 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싫든 좋든 증대될 것이다.” 그는 “다만 지난 20년간 김영삼 정부 이후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제도 정치권에 참여했는데 진보 인사들이 권력에 다가갈수록 진보 운동이 쇠퇴하는 ‘역설’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참여가 아니라 변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참여 지식인들은 스스로 대중의 시선을 잃어버리고 통치자의 시각에서 사회발전 방안을 고민하게 된다. 사회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하던 ‘투쟁위원회’에서, 갈등의 중재자인 양 행세하는 ‘수습위원회’, 나아가 국가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자기 과제로 삼는 ‘발전위원회’로 변신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장기 휴직계-〉낙하산 식 정계·공직 진출-〉대학 복직’에 대해 하종문 한신대 교수는 “정치 참여의 뜻이 있는 사람은 ‘사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참여의 범위와 내용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제도 정당’ 참여 여부를 두고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이제는 바깥에서 한가로운 평론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념에 맞는 정당에 적극 참여해 일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정치에 참여)할 수야 있지만, 자신의 철학과 원칙을 따르면서 하는 게 좋을 듯하다”며 “예컨대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의 좌파 지식인이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적 정권에 들어가서 일한다는 것은, 그 지식인 신념의 진솔성을 의심케 한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최근 민노당 노회찬 후보 지지 뜻을 밝혔고, 정태인 교수도 민노당 심상정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식인의 현실 참여가 곧 제도 정치권에의 접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도 “운동 정치 참여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정부나 국회에 참여하는 것은 지식인이 허명이나 지위, 지식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 정치를 정의한다면, 그런 정치 참여는 지식을 삶과 결부시키려는 점에서 좋다”고 말했다. (김종목·손제민·장관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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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노무현의 ‘위원회 정부’와 지식인


노무현 정부를 위원회 정부라고도 한다. 정권마다 필요시 위원회를 두는 것이 상례였으나 노무현 정부는 그 숫자와 권한 부여에 있어서 이전의 정부와 구별된다. 이런 이유로 노무현 정부가 위원회 정부라는 말이 나왔다.
 

  김병준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 

대통령이 공무원 조직을 활용하기보다는 위원회를 따로 두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개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함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 공무원의 간섭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노무현 정부는 기득권 공무원의 현상 유지 습성을 잘 간파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이들과의 동거형 개혁을 원하지 않았다. 결과는 대통령과 늘 직접 대면하는 위원회의 창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동북아시대위원회는 대표적인 정권 차원의 개혁 위원회라 할 수 있다. 한편, 노정권은 청와대 참모에 의한 개혁도 빠뜨리지 않았다. 청와대 정책기획실, 청와대 비서실장, 홍보수석실, 시민참여수석실 등을 활용한 정치적 개혁도 추진하였다. 정치적 개혁에 치중한 나머지 교육문화관련 수석과 같은 자리도 두지 않았다. 노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우리당은 정권의 신 인맥이 되어 구태의연한 민주당을 제치고 새로운 정치 지원 세력이 되었다.

이로써 개혁의 분담 체계가 완벽하게 정비된 듯하였다. 청와대는 정치 개혁의 눈과 부리의 역할을, 대통령 직속 위원회와 열린우리당은 개혁의 양 날개 역할을, 기존 행정조직은 개혁의 성과를 뽑아내는 기능적 발톱의 역할을 하게끔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기존 행정 조직도 그냥 두지 않았다. 장·차관급은 물론이거니와 준공공기관의 장, 감사, 이사, 대학 등 교육기관에까지도 코드와 낙하산 인사를 통해 장악하였다. 개혁이란 명분으로 한국의 권력 기득권 상부 구조를 청소하는 수준의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다. 비록 하향식 개혁 구상이지만 노정권 나름대로는 상당한 공을 들인 구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이다’라는 구호는 코드 인사에는 통하지 않는 경구가 되었다.

실제로 노무현의 코드 인사는 참여정부 개혁 추진의 몸통을 구성하는 것이었기에, 노정권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획이었다. 코드 인사의 핵심은 이른바 ‘진보그룹’에 속하면서 정권창출에 기여한 지식인을 동원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기준에 해당하는 지식인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경력을 쌓은 지식인조차 배척되었으며, ‘노무현 지지의 의리를 지킨’ 진보적 지식인이 새 판을 주도해야 한다는 폐쇄적 나눠먹기식 인사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그동안 소외된 비주류 정치지식인이 대통령위원회 및 각종 정부 기관의 장으로 앉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노정권의 개혁 정책에 아첨을 일삼는 아마추어 정치지식인의 시행착오적 정책 남발이었다. 대표적인 실책으로는 민생 경제 파탄, 청년 실업, 전국적 부동산 투기 조장을 들 수 있다. 또한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들여 수백개에 달하는 개혁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러한 혼란은 종국적으로는 노대통령의 경륜 부족과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대통령에게는 측근 지식인을 믿어주는 우직함이 있었을지 몰라도, 세계화 시대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폭넓게 쓰는 도량과 노련함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그 나물에 그 밥’ 식 인사를 고집스럽게 계속하고 있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른바 정치권을 어슬렁거리는 지식인의 습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신문이나 방송에 출연해서 이념적 논쟁을 일삼는 정치지식인들이 얼마나 ‘자기 판매’에 능숙한 사람들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정치지식인에게 좌파 성향이니 우파 성향이니 하는 것은 어쩌면 겉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은 것인데 말이다. 그들 지식인은 진보로 해달라면 진보로 코드를 맞출 것이며, 보수로 해달라면 보수로 코드를 맞출 것이다. 그동안 변방을 떠돌며 권력에 굶주린 비주류 정치지식인들에게 노무현 정부는 한판 놀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 셈이다.

그들에게는 진보나 보수라는 코드, 좌파나 우파라는 코드보다는 청와대가 원하는 코드가 무엇이며, 무엇이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면밀한 계산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라크 파병, 한·미 FTA와 같은 우파적 정책에도 청와대의 코드에 맞추어 처신을 이리 저리 바꾸면서 제 자리를 지키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장관이 되라면 장관이 되고, 장관 사직하고 선거에 나가라면 나가고, 선거에 지면 다시 공직에 돌아가고, 위에서 지시하면 정치적 충성자를 공무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그들의 코드였다. 대통령보다 앞서서 정권 홍보의 ‘괴벨스’와 같은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치지식인의 코드는 정말로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권력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코드 외에는 진보라는 코드도 보수라는 코드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이러한 구성은 마치 수호지에 나오는 송강의 ‘양산박’을 연상시킨다. 세상을 바꾸어 한 자리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양산박 협객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정치지식인들은 외관상으로는 어느 정부 못지않게 화려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고 비교적 젊은 연령대의 교수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분야를 나누어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고유성과 정통성을 유지 계승하기 위한 작업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 중 몇 사람은 ‘위원회 정권’으로 불리는 노무현 정권에서 주로 비상근 위원장에 부임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정부위원회에서 참여정부의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위치를 갖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지식인들은 정권의 행동대원 역할 정도는 매우 적극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과거 정권 지식인의 주된 역할-소극적인 정권의 하수인-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서투르고 조급했다. 그들은 정권 창출과 초기 개혁 청사진 마련에 기여하였으나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일등 공신급 정치지식인들은 제 풀에 지쳐 돌아간 반면, 삼등 공신 반열에도 못 드는 정치지식인들은 감지덕지하며 여전히 공직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노대통령은 자기의 인맥을 3기로 나누어 분류하였다고 한다. 인맥에도 기수와 ‘짠밥’(서열)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노무현 인맥이 기수와 짠밥에 따라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노무현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경륜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 지식인은 코드, 충성심, 활용가능성이라는 여과장치를 통해 등장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권의 나팔수가 되든지 기능적으로 봉사하든지 해야 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치가는 언제나 지식인을 필요로 하고, 지식인은 정치인을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극히 적은 사례를 제외하고는 지식인이 나서서 정치를 성공으로 이끈 적은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정치지식인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도 노무현의 지식인은 아직도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국민과 비평가를 원망하고 싶겠지만 말이다.

한국에 키신저나 그린스펀 같은 학자출신 정치인이 당장 나타나기는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시행착오를 피하고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소 보수적이지만 경험과 학식이 대내외적으로 검증된 학자를 등용하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라는 점에서, 노무현의 지식인 기용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외형적 학벌이나 학력 앞에 무릎을 꿇자는 얘기가 아니다. 지식인 사회, 전문가 사회에서의 인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치인의 지식인 선택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저명교수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술 이론서가 아닌 교과서를 써서 유명세를 탄 사람들이거나, 방송 출연에 열중하고,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학술적 식견이 탁월한 사람이 정책을 잘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학문적 식견도 없이, 정치적 주장만 일삼는 저급 학자들이 더 잘한다는 보장은 더욱 없지 않은가.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정책 실패를 그들 학자의 실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실책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제대로 된 정치와 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이다. 어차피 정치지식인들이야 어떤 정권에서든 권력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바칠 수밖에 없는 신세가 아닌가. (전영평|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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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靑코드 맞춘 실패한 참여”
 
개혁을 표방하며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지식인이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충성과 출세 코드로 일관하거나 책사로 기능함으로써 결국 지식인의 노무현 정부 참여는 실패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영평 대구대 교수는 20일 경향신문 특별기획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기고에서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지식인들을 “충성심 코드만 있는 ‘정치 지식인’”으로 규정했다.

전교수는 “(이들에게는) 진보나 보수라는 코드, 좌파나 우파라는 코드보다는 청와대가 원하는 코드가 무엇이며, 무엇이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면밀한 계산이 중요했다”며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우파적 정책에도 청와대의 코드에 맞추어 처신을 이리 저리 바꾸면서 제 자리를 지키는 수완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전교수는 김병준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국민대 교수)에 대해 “외관상으로는 지식인 교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 및 책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교수는 “지방분권 프로젝트는 그가 일본에 머물렀을 때 체험한 일본 지방자치를 본뜬 것”이라며 “지방의 열악한 정치적 상황은 무시한 채 도식적으로 분권을 끼워맞춘 지식인 참여의 대표적 실패 사례”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도 김병준 위원장에 대해 “전형적인 정치가”라면서 “교수 시절 열린우리당·재정경제부와 잘 지내려는 사람 정도였다”고 밝혔다. 정교수는 김위원장의 역할이 삼성과 재경부의 영향을 받아 내부에서 개혁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교수는 “2004년 말쯤 청와대에서 조윤제 경제보좌관 후임을 추천하라고 해서 개혁적인 이동걸 박사(전 금융감독위 부위원장)를 추천했더니, 김위원장이 삼성과 재경부가 극렬하게 반대한다며 한·미 FTA의 주역이 된 정문수씨로 뒤집었다”고 말했다.

정교수는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에 대해서는 “공무원보다 더 공무원다웠던, 덕분에 행정가로서 일정 부분 성공한” ‘행정가형 지식인’으로 분류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서는 “본인 스스로 시장주의와 경쟁 체제에 대해 입장을 선회하려고 노력했다”고 평했다.

재벌해체·사회복지정책 강화 등을 주장하다 장관이 된 뒤 각종 노사분규에 대해 직권중재 결정을 내리며 노동운동과 대립했던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에 대해서는 “내가 청와대에서 쫓겨나기 전부터 실망했다”고 말했다. 평소의 진보·개혁적 소신을 뒤집었다는 지적이다.

정교수는 개혁적 소신을 유지하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이동걸 박사, 유종일 교수(전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의 조기퇴진 배경에 대해 삼성생명 상장 및 개혁정책을 둘러싸고 청와대 386 및 관료들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진보·개혁적 지식인들의 노무현 정부 참여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이정우 교수는 ‘사회투자형 국가를 지향한다’는 등의 ‘사민주의적’ 발언을 해오신 분”이라며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사회 투자를 거의 늘리지 않고, 이라크 침략을 방조했는데도 어떻게 해서 3년이나 같이 갔는지 의아하다”고 비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은 “최근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지식인들의 행태는 지식과 권력을 거래하는 부정적 양상의 한 전형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종목·손제민·장관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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