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프 르 봉(이상돈 옮김), 󰡔군중심리󰡕, 간디서원, 2005. (원저 1895 영문번역 1896)

3. 군중의 분류와 유형

3.1 군중의 분류

A. 이질적 군중 -익명의 군중(거리의 군중) -책임감이 없음

-비익명의 군중(배심원, 의회) -개별적 행동할 때와는 다른 책임감

B. 동질적 군중 -파벌(정파, 종파)

-사회적 직위(군사직, 성직, 노동직)

-계급(중산계급, 농민계급)

3.1.1 이질적 군중: 질이 다른 군중은 한뜻으로 뭉치기 어렵다.

르봉은 ‘민족성’이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민족마다 유전적인 정신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이나 사고의 양식까지도 달라지고, 이는 국적이 다른 사람(국적=민족성 nationality)들이 서로 비슷한 비율로 동일한 군중 속에 섞여 있을 때 잘 나타난다고 한다. 즉 민족성은 군중의 기질에 절대적 영향을 준다. 프랑스인인 르봉은 특히 ‘라틴민족’에 대해서 엥글로색슨 족과 대비하면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라틴민족은 중앙집권화를 추구하고 독재에 기우는 경향이 있고, 반면에 엥글로섹슨(영국이나 미국)의 군중은 전혀 국가에 기대하지 않으며 개인적 창의성을 중시한다. 평등 vs 자유

그는 ‘군중’은 다른 집단 또는 ‘견실한 집단정신’과 구분하면서 민족이 군중의 무분별한 파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야만 상태에서 빠져 나오려면 견실한 집단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중이란 타자, 야만, 어린이, 동물이다.)

3.2 범죄적인 군중이라고 불리는 군중

군중은 흥분상태를 지나 완전히 자동적인 무의식 상태에 빠져들고 오직 암시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암시에 따라 영웅적이 될 수도 있고, 범죄적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군중은 암시와 잔인성, 변화에 민감하고 선악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과장되어 나타나고 어떤 형태의 도덕성을 표방한다.

그에 따르면 파리꼬뮌 때에도 꼬뮌 가담자들에 의해서 학살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다. 파리 꼬뮌 연구서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맑스 ‘파리내전’에 따르면 파리꼬뮌은 놀랄정도로 침착하고 평화로웠다. 파리 꼬뮌에 대한 최갑수 선생의 해제를 인용해 보자. 맑스와 르 봉의 차이, 또는 르 봉의 '거짓 인식‘에 대한 논파.

󰡔내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일종의 ‘문화 혁명’을 예시하는 대목이다. 직접 맑스의 말을 들어보자. “꼬뮌이 빠리에서 이루었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 시체 공시장에는 더 이상 시체가 없었으며, 야간 도둑도 없었고, 절도도 거의 없었다. 실제로 1848년 2월의 날들 이래로 빠리의 거리는 처음으로 안전했는데, 그것도 어떤 종류의 경찰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 그들[진정한 빠리의 여성들]은 고대의 여성들처럼 영웅적이고 고결하고 헌신적이었다. 일하고 생각하고 투쟁하고 피를 흘리는 빠리는-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느라고, 식인귀들이 자신의 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자신의 역사적 창의성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는 단지 ‘빠리 꼬뮌’에 바치는 헌사만은 아니리라. 실제 목격자들은 꼬뮌기의 빠리가 어려운 조건 하에서도 하나의 거대한 활력과 부산거림 그리고 즐거움의 도가니였음을 웅변해 주고 있다. (192)

사실상 인민이 조직되고 집단적으로 행동할 때만이 민주 정치는 가능하다는 교훈을 󰡔내전󰡕은 주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국가 관료제에 의해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그리하여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권을 상실하고 기껏해야 국가 행위의 수동적 존재로 전락해 버린 현대의 대중에게 ‘빠리 꼬뮌’은 “생산자의 정치적 지배”가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194) (최갑수, 「빠리 꼬뮌,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민주주의」, 맑스(안효상 옮김), 󰡔프랑스 내전󰡕, 박종철출판사, 2003)

밑줄로 발제자가 강조한 부분은, 르봉과 맑스-최갑수(맑스주의 사학자)의 시선차를 보여준다. 르 봉의 관찰/분석 중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표면적이고, 편견에 가득차고, 관념적인 사유는 분명 논파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떻게? 분명 우리는 파시즘을 목도했고 논란이 되고 있는 자발적 동의 하에 작동하는 ‘대중독재’ 개념으로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인민/군중의 혁명적 에너지(둘 모두 동의한다 ‘어떤 혁명’적 에너지이냐는 물론 다르지만)는 (맑스)레닌/르봉에 의해 각기 다르게 영토화되면서, 결국 당/엘리트-의회에 의해 지도되어야 할 것으로 제시된다. 레닌도 르 봉도 공식적으로는 모두 부정되는 간접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절대성을 확신하는 시기(역사의 종언?)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이는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인가? (국문학도, 영문학도의 입장에서) 우리는 르 봉과 그가 제기한 역사적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식민지의 ‘회색지대’에 순사 시험을 보고자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들. <민중>의 혁명성. 아니 <PT>의 혁명성. 물론 이는 프랑스혁명, 파리꼬뮌, 러시아혁명 외에도, 조선에서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1920년대부터 40년까지의 노동현장에서 파업횟수 등. 결국 식민지 조선에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는 생산력 발전 미비 또는 조선공산당 내지는 코민테른의 무기력함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최서해에서 시작하여 <인간문제>, <황혼>, <고향> 등에서 보이는 pt, 기층민중에 대한 믿음은 현실인식에 있어서 이념의 우위로 인한 ‘왜곡’ 혹은 이 믿음이 야기할 ‘피그말리온’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야누스적 얼굴을 가진 ‘대중’이라는 존재에 대해 브라운운동을 하는 불규칙적인 흐름을 갖는 존재라는 언명은 솔직하고 정확하지만 어찌보면 또 무력한 현상 인정이다. 현상 인정에서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아님 인민/군중/대중이라는 존재들이 운동하는 ‘시민사회’라는 공간 속에서의 헤게모니 투쟁? 헤게모니 투쟁의 일환으로서 ‘인민/군중/대중’ 연구-정의하기? 등등...

3.3 신분집단의 심리

동질적인 신분집단 군중의 대표적 예는 배심원들로 이들 또한 무의식적 관념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으며, 논증에 좌우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르 봉은 판사의 판결보다는 배심원 제도가 낮다고 하며, 배심원은 만인에 대해 절대로 평등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특수한 사정을 일일이 배려할 수 없는 그런 경직성(판사가 범할 수 있는 오류)를 유일하게 완화시킨다고 한다. 피고가 배심원들 앞에 불려왔을 때는 이미 몇 사람의 사법관, 예심판사, 검사, 기소조정재판소에 의해 유죄가 인정된 다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당시 제도와 지금 남한 제도의 차이)

3.4 선거군중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합리적 사고의 가능성을 약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있고 쉽게 흥분하고 쉽게 믿으며 단순한 특성을 나타낸다. 결정에 있어 군중 지도자의 영향을 쉽게 받으며 단언, 반복, 위엄, 감염 등 영향력이 작용한다. 군중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 스스로 생각해낸 의견을 내놓는 법이 없다. 문명이라는 것은 우수한 소수 지식인들이 창조하는 것으로, 이들이 피라미드의 정상을 차지하며 밑으로 내려갈수록 지식수준이 낮아지는 국민대중이 위치한다.

이러한 선거군중의 특성을 지적하고 르봉은 직업 정치가를 위한 팁을 준다. 후보자의 인쇄된 공약은 경쟁자로부터 반격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나친 과장은 근물이지만 말로 하는 공약은 남발해도 무방하다. 가능한 한 막연한 의미의 새로운 표어, 다양한 열망에 부합되는 용어를 발견하는 후보야말로 틀림없이 성공한다.

르봉은 이러한 보통선거의 ‘도그마’에 대해 이는 지난날 기독교의 도그마가 가졌던 힘과 마찬가지라고 하며, 똑같은 자세로 대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르봉에 따르면 유식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제한 선거도 의미없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 구성되든 집단은 지적 열등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회문제에 관한 한 모두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인간이란 실제로 평등하게 무지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군중의 선거권이 제한되어 있든 보편화되어 있든, 어떤 제도에서 실시되든, 어느 국가에서 실시되든, 투표의 결과는 동일하며 이는 무의식적 열망과 민족적 욕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집중제가 대안?) 당선자들의 평균적인 관점은 민족적 특성을 나타내며 시간이 흘러 세대가 달라진다 해도 현저하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주로 민족정신에 의해 지배되고, 이 민족정신은 전승된 잔재의 총체적 특질이다.

3.5 의견이 단순한 의회군중

의회제도는 인간이 많이 모이면 적을 때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더 현명하고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심리학적으로는 오류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인정되는 이념을 반영한다. 군중의 특징은 의회군중에게서도 나타난다. 지적으로 단순하고 쉽게 흥분하고 암시에 민감하고 감정을 과장하며 소수 지도자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군중을 이루는 인간은 리더가 없으면 행동할 수가 없고 따라서 의회의 결의는 대체로 소수의 의견만을 대표한다. 군중이 리더에게 복종하는 것은 지도자의 위엄 때문이다. 그런데 르봉에 따르면 이 지도자는 여론을 앞지르는 법은 거의 없으며 지도자가 하는 일이란 대개 여론을 따르고 여론의 모든 오류까지 정책으로 채택하는 것이다. (결국 닭이냐 달걀이냐! 아니면 닭이나 달걀이나 등가)

‘다행히도’ 의회는 어떤 순간에만 군중이 되고, 의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대부분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개성을 보유하고 있다. 또 법률의 입안자는 조용히 연구하여 준비하는 전문가들이며, 표결에 붙여지는 법률안은 개인이 만드는 것이지 의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군중이 만들어낸 작업물은 어떤 것이든 고립된 개인이 만든 것보다 뒤지게 마련이다. 운연상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기는 하지만 의회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해 낸 최고의 통치형태이며 특히 개인적 폭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기도 하다.

지성은 사물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가를 보여주고 설명과 이해를 넓히려 들기 때문에 지식인은 관대하고 우유부단하게 되며 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강력하고 열렬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군중들은 정력적이고 확신에 창있는 사람이라야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라고 믿게 된다.

문명이 시작될 때는 다양한 인종이 우연한 기회로 합류하다가, 환경이 닮아가게 되고 종족들이 계속 섞이고 공동생활이 필요하게 되면서 이들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시간에 따라 전체적인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 대를 이어 공유하는 공통적 특성과 감정이 점점 더 불변적이 된다. 그러다 비로소 군중은 국민이 되고 야만상태를 탈피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노력과 집요하고도 반복적인 투쟁을 거쳐 하나의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이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민족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감정과 사상으로 결집시킬 수 있으면 된다. 이 단계에서 고유한 제도, 신앙, 예술을 가진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 그러다가 이상의 약화가 되면 그 이상이 고취한 모든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구조들도 흔들리고, 이상이 점진적으로 사라짐에 따라 민족은 응집력과 단결력 그리고 힘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패러다임 교체같다)

레닌과의 비교가 흥미롭다. 아래는 레닌(최호정 옮김), 󰡔무엇을 할 것인가󰡕, 박종철출판사, 1999. 에서의 발췌 (러시아에서 1902)

우리는 사회 민주주의 의식이 노동자들에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직 외부에서 들여올 수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 계급은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노동 조합주의 의식, 즉 조합으로 단결하여 고용주들과 투쟁하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이러저러한 법률들을 정부가 제정하도록 하는 등등의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마련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사회주의 학설이라는 것은 유산 계급의 교육 받은 대표자들, 즉 지식인들이 일구어 낸 철학, 역사, 경제 이론들에서 자라난 것이다.(39)

과학의 담지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지식인이다. 현대 사회주의는 이 계급의 개별 구성원들의 머리 속에서 생겨났으며, 그들에 의해 지적으로 탁월한 노동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되는 곳에서 노동자들은 이 사상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에 도입시켰다. 이처럼 사회주의적 의식은 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에 도입된 것이지 그 투쟁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자라 나온 것이 아니다. (...) 사회 민주주의 당의 과제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의식과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의식을 도입시키는(문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채워 넣는) 것이라고 너무도 정당하게 말한 바 있다. (49-50)

대중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문제로 말하자면, 열정적인 정치 선동과 타오르듯 생생한 폭로만 있다면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다. (...) 포괄적인 의미가 아닌 구체적인 의미에서 촉구한다는 것은 행동이 일어나는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즉 각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 사회 민주주의적 평론가의 일은 정치 선동 및 정치 폭로를 강화하고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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