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카피, 인간이 결혼백화점의 상품으로 전락한 광고에 기함하다
오늘 할 얘기는 지난주에 본 자일리톨의 느닷없는 티징 광고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쌩쑈 광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번 주에 꼭 매듭지어야만 하는 얘기도 아니다. 다소 기원전 느낌이 들 정도로 오래 전부터, 마주칠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에 심기가 거슬렸던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광고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언제나 이야기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
결혼. 혼기가 훌떡 지나버린 처자가 이런 화두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 건, 지뢰자리 확인하고 부러 밟는 자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괜히 결혼에 관련된 주제에 의견을 내놓았다가 독신주의자나 페미니스트라고 오해를 받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도 자기변명으로 치부되는 느낌이다. 아무 의견을 내놓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는데도 결론은 언제나 미혼의 결혼일정을 묻는 인사로 끝나기 마련. 후유증이 부디 가벼운 두통 정도로만 끝나준다면 감사할 정도랄까. 따라서 편협한 자기주장으로 비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될 수 있으면 덮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일부러 헤집는 것은 요즘 지하철에서 나를 향해 도전하는 이 광고의 참을 수 없는 네이밍 때문이다.
이름하여 ‘닥스클럽’. 그렇다. 그 닥스 맞다. '닥스'라는 말을 보자마자 당신의 머리에 떠오른 그 이미지. 샤넬, 루이비통 같은 그 명품, 맞다. 그런데, 이 이름을 쓰는 회사가 무슨 회사인 줄 알고 있는가? 바로 로열층만을 연결해준다고 광고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의 네이밍이다.
결혼시장을 깔보는 결혼백화점의 등장
결혼정보회사의 광고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나로서는 듀오다. ‘결혼은 귀찮아’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싱글 남녀가 이 광고를 통해 듀오에 접속했다.(물론 나도 접속했지) 그리고 소위 ‘신고식’이라 할 수 있는 ‘등급 매기기’를 한 번 경험한 후 자신의 배우자로서의 등급에 쇼크들을 먹어도 한참 먹었다. 아니 회사에선 썩 잘 나가주는 내가 15등급? 아니 아버지가 샐러리맨이라서 18등급? 결혼시장에서는 사람의 가치가, ‘부모님이 국회의원인가, 재벌인가’(아니 재벌이 결혼정보회사를 왜 이용하겠남!), ‘가진 땅이 몇 평인가, 건물이 몇 채인가’ 등의 여부에 따라 20여 개의 등급으로 계량화되어지고 있다. 이 등급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인간의 인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명백한 ‘부의 등급’이다. 결혼시장에서 훌륭한 결혼 상대는 부로 판단된다는 거다. 이런 사실은 물론 다른 결혼정보회사들도 똑같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네이밍에서부터 속셈을 드러내 보인 회사는 본 적이 없다. 닥스는 명품이다. 즉 상품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상품을 고르라고 말하고 있다. 가뜩이나 계급사회인 이 시장에서 시장 물품 사지 말고 백화점 물품 사라고 경계까지 친절히 그어주신다. 예를 들면 이들은 샤넬을 쇼핑하듯이 결혼을 쇼핑한다. 이를테면 조건 좋은 상품들만 모아놓은 결혼백화점에서 명품 신랑신부를 자신의 품위를 위해 걸치는 것이 이들 명품 결혼의 지론이다. 파는 물건이 사람이 아니고 상품이다 보니, 참으로 놀라운 세일 광고도 등장한다. 재밌는가? 재미있다. 인간의 치부가 너무나도 드러나 있어 토악질이 날 지경으로 재미있다.
논리의 오류: 부자 결혼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얼마 전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 "왜 부자들은 부자들 하고만 결혼하는 거야?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맞다, 이것이 현실이다. 부자는 부자랑 결혼한다. 명품만이 명품을 고를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이 광고는 뭘까?
당신은 당신의 가치가 겨우 당신 지갑 속의 푼돈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부모의 직업만으로 결정지어지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 차치하고, 단 20가지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나 있을까? 적어도 인간에게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2만여 개의 게놈이 있고, 이 사회가 부정할지라도 십수 년을 쌓아온 지성이 있고, 닥스보다는 확실히 비싼 인성이란 것이 있으며,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과 오늘과, 미래라는 것이 있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명품인가?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당신은 작품이며 아직 손에 가진 것이 없어도 당신은 충분히 명품이 될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스스로 명품이 되라. 부자가 될 사람도 안 말린다, 스스로 부자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