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재灰 > '김윤식'에게 끼인 '냉장고'

 

책읽기는 더딘데 책사기는 줄기차다. 김윤식의 교토기행기 <청춘의 감각, 조국의 사상>(솔, 1999)이, 오늘 배달되어 온 책들 중에 끼어 있다. 근대한국문학사상, 작가론, 한일문학 관계론, 기행기, 현장비평. 다섯 가지로 대분류했을 때, 그의 중심적인 책들은 모두 갖고 있다. 그의 글이 한겨레에서 연재되고 있다는 것은 지나는 말로 들어 알았다. 둔감한 이는 공부의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음을 알겠다.

<인터넷 한겨레>에서 옮긴다. 한국근대문학이 스스로에게 젖줄(受乳)이었던 까닭을 '수유+너머'의 다층적인 이들에게 선보였으리라. 언젠가, '김윤식'이라는 산은 깍아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 넘는 것이라고 메모했었다. 걷기는 걷되, 넘을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게된다. 중요한 것은 넘는 것이 아니라 '김윤식'을 답파(踏把, 破가 아니다)하는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넘어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 그것에 대한 짧은 답변이 김윤식의 토막글을 절단내고 있는 지펠 냉장고에 있다. 그나마 이미지로 도배되어 실체를 뒤덮는 광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김윤식'과 '차인표'가 어떤 배리를 이루고 있다.

ps. 광고는 쉼이 없다. 시시각각 변한다. 변해야 <한겨레>도 먹고 산다. 문제는 그 변함 속에 개재되는 척도적 권력의 토대다. 그 비판/비평이다.  

 

아, ‘수유+너머’의 맛을 보다

한겨레
»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

연초 난데없이 한 통의 전화가 왔소. ‘수유+너머’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이동이겠군, 하자 잠시 주춤하더니, 좌우간 여기에 와서 강의를 한번 해보겠느냐 했소. 잠시 주춤할 수밖에. 그러자 조심스레 이렇게 잇지 않겠는가. 그대 역시 ‘수유’를 넘어서고자 한다는 풍문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종교를 바꾸는 것이 커피를 바꾸기보다 쉽다는 말이 있거니와 전공 바꾸기도 그러할까. 내 ‘수유’는 한국근대문학이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순간 선인들이 즐겨 쓰던 속담 하나가 스치지 않겠는가. ‘불 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가 그것. 정년 이후 만 6년째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록 꿈이긴 하나, 하나의 꿈을 꾸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 그 꿈 왈, 나도 내 수유를 언젠가 넘어서리라는 것. 이것이 저 풍문의 씨앗이었던가.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그 꿈꾸는 것을 조금 말해보아도 되겠느냐고. 다행스럽게도 ‘된다!’고 힘차게 대답하지 않겠는가.

‘수유+너머’는 남산 밑 용산동에 있었소. 수유에서 밀리고 종로에서 치여 이곳까지 밀려온 것일까. 점점 덩치가 커져 여기까지 달려온 것일까. 청파동을 지나 용산고를 넘어 골목을 여러 번 톺아 마주친 곳, 비쩍 마른 시멘트 4층 건물이 그 둥지였소. 오후 6시. 식당부터 갔소. 이곳 주인은 모두 식모이자 주방장. 반찬으로 멸치도 있고 보면 채식주의자들은 아닌 듯. 놀라운 것은 접시를 그럴 수 없이 깨끗이 비우기. 식사 후, 여제(女帝) 또는 마녀라 불리는 두목이 마을 내부를 안내했소. 공부방, 서실, 세미나실, 심지어 육아실까지 있지 않겠는가. 인문학 공부이기에 앞서 바로 생존의 터전. 두목이 마지막으로 안내한 곳은 썩 근사한 카페. 들어서자 진한 커피 향기와 함께 닐 다이아몬드의 <비(Be)>의 깊은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겠소. 단박에 요란한 기계소리와 함께 커피 잔이 둥근 탁자 위에 놓이지 않겠는가. 한 모금에 혀가 얼얼. 이 광장한 호사스러움. 순간 문득 깨달았소. 아, 이것이 ‘수유+너머’의 맛이다, 라고.

강의는 7시부터. 어찌 시간제한이 있으랴. 제1강(1월 8일). 어째서 한국근대문학사가 내게 있어 수유일 수밖에 없었던가. 말을 바꾸면 어째서 인문학의 근거가 ‘식민지 사관 극복’에 있었는가를 로스토의 <경제발전의 제단계>(1960)를 들어,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염치없이 떠들었소.

제2강(1월 9일). 한국 근대사 속에 섬처럼 놓인 이중어 글쓰기 공간(1942.10-1945.8). 어떤 국민국가의 시선도 미치지 않는 열린 글쓰기의 공간에 대한 논의.

제3강(1월 10일). 해방공간(1945.8-1948.8)의 글쓰기론. 이 또한 특수공간이기에 모두가 민족문학론의 깃발을 내세웠지만 어느 국민국가에도 소속되지 않는 열린 글쓰기 공간.




제4강(1월 11일). 위의 두 공간이 어째서 꿈꾸기인가에 대해서. 그 지겨운 ‘한국’에서 멀어지기, 또 그 지겨운 ‘문학’에서 벗어나기. 국어도 만국어도 아닌 그냥 글쓰기.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근대’뿐인가. 그런데 봐라, 남았다고는 하나 ‘근대’ 자체도 초극의 형태이자 해체일 수밖에.

횡설수설이 끝났을 땐 밤 11시 20분.(중간에 한 번 쉬었던가?) 안쓰러웠던지 여두목께서 카페로 안내. 커피 티켓 한 묶음을 선물하지 않겠는가.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르라고. 휘청거리며 귀가하자 자정. 페넬로페보다 늙은 마누라가 근심스레 기다리고 있었소. 마누라여, 그런 표정은 거두시라. ‘수유+너머’ 문턱까지 갔다가 이렇게 멀쩡히 돌아왔으니까.

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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