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세계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공동토의)(3)

 

시마다 : 이 10년은 냉전구조에 의해 은폐되었던 것이 일순간에 노정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것은 미국이 자본의 영구운동을 전세계적으로 추진한 10년이었다. 나는 코뮤니즘 문제를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야마시로씨가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서 말하면 『끝없는 세계』 속에서 「세계자본주의란 코뮤니즘이다」라는 가라타니씨의 발언은 그 시점에서는 대단히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그 후의 세계의 전개를 보면 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탈린주의적인 국가사회주의와는 별개로 자본의 운동에 충실한 코뮤니즘을 생각할 경우, 그것은 미국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 가는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운동으로서 전개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련붕괴 후의 러시아도 더욱 더 아시아제국(諸國)을 포함해서 전개하고 있다. 이 글로벌리제이션은 국가나 정부가 그 시스템을 지도하는, 혹은 그것과 필적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운동 자체는 시장원리에 기초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라기보다는 국가적인 계획경제를 합리적으로 진행시켜 간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주식회사화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확실히 자유주의경제에 편입되었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혼란이 극에 달했다. 아시아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미국경제의 국가적 전략에 완전히 말려들어 통화위기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형태로 상징되는 경제의 구조 자체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반미주의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바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경우 경제원칙을 벗어나 반미주의를 말한다 해도 이시하라 신타로오(石原愼太郞)같이 되면 안 된다. 지금 가장 나쁜듯한 반미주의에 오히려 무엇인가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 지역주의인가 혹은 그것과 일체가 된 내셔널리즘인가 하는 것이 현상이다. 만약 거기에 이라크나 유고와 같은 파시즘적인 저항과는 별개의 윤리적인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한 지역적인 저항운동의 가능성이 있다면 새로운 코뮤니즘이 되고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되며 나아가 그것들에 연결되는 문화운동의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라타니씨가 『트랜스크리틱』에서 말하고 있는 윤리적인 동기를 기초로 한 코뮤니즘의 가능성에는 흥미를 갖고 있는데, 불매운동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떠한 움직임으로서 전개되어야 하는가, 혹은 그러한 현상이 현실적으로 지금 관찰되고 있는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가라타니 : 사실을 말하면 그러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8월경부터였습니다. 그러한 것을 쓰지 않는다면 『트랜스크리틱』은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파는 입장」과 「사는 입장」의 비대칭성에 대하여는 전부터 생각했지만 그것은 『탐구Ⅰ』의 단계에서는 자본운동의 위험함, 혹은 「신용」의 문제로서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노동자의 대항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돌연 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새로운 생각인지는 알지 못했다. 왜 이런 단순한 것을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것인가, 내가 근본적으로 틀린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입니다. 그 때에 마침 야마시로씨가 그 무렵 후쿠모토 이즈무(福本和夫)를 읽고 나와 비슷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초고단계의 맑스론을 야마시로씨에게 보이고 의견을 들었던 것입니다. 나는 후쿠모토의 협동조합론에 대하여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그것은 확실히 1950년대의 것입니다.


  야마시로 : 네. 후쿠모토는 전후 농지개혁과 연계하여 50년대의 농업문제나 임업문제를 실지연구(實地硏究)하는 가운데 생산협동조합에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55년에 『전후 일본의 농림업문제』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60년대에 들어서면 후쿠모토가 주최하는 『맑스주의 공론』이라는 잡지에서 이론적인 면에서 생산협동조합이라는 관점에 서서 소련형의 사회주의에 대해 스탈린 비판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레닌, 나아가 엥겔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일련의 사회주의관을 다시 검토하는 논문의 연재를 합니다. 이것은 그 후 1967년에 『자주성, 인간성의 회복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됩니다.


  후쿠모토는 1925년 전후에 이른바 후쿠모토주의라 불리는 분리결합론을 전개합니다. 결론이 나지 않는 것으로부터의 단절이라는 것은 잘 알겠지만, 그 단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초기의 저서를 읽어도 잘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야마카와 히토시(山川均)로부터의 단절도, 다이쇼(大正)적인 것으로부터의 단절도 아니다. 후쿠모토는 한편으로 1940년대 옥중에서 호쿠사이(北齋)를 조사한다거나, 전후 『일본 르네상스사론』과 같은 문화사적인 작업을 했는데, 이러한 것과 생산협동조합론이 어떤 관계를 갖는가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생산협동조합론에 착안해 가는 과정은 레닌주의적인 분리결합론에 대한 자기비판이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후쿠모토는 분리결합론을 평생 버리지 않았습니다. 비판하는 것은 잘라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라내 버려도 남는 것을 보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협동조합론을 가져와서 비판해도 분리결합론에는 남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마 그것은 레닌주의와도, 후쿠모토주의와도 관계가 없다. 따라서 내 입장에서는 분리결합론에 대한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후쿠모토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하는 관심에서 생산협동조합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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