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 시선 16
김경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구판절판


비정성시(悲情聖市) - 그대들과 나란한 무덤일 수 없으므로 여기 내 죽음의 규범을 기록해둔다-146-147쪽

모든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이 살던 시절의 공기가 고여있다 따뜻한 말 속에 따뜻한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모든 영정 속에 흐르는 표정은 그 사람이 지금 숨쉬고 있는 공기다 영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면 내가 그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이곳을 느끼고,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쪽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정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붉은 공기가 된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사진 밖의 나를 보면 어지럽다.
시차(時差) 때문이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죽음이 필요했기에 당신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으로 나는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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