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기초적 맑스이론에 대한 소고(2)

 

제1부 맑스주의 이론 개설


1.철 학

  맑스주의 철학은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관을 통일적 체계로서 포괄하는 것이며, 자연․사회․인식에서 운동과 발전을 비로소 수미일관한 유물론적 세계관에 의해 이론적으로 기초 짓는 것이다. 현재와의 관련에서 말한다면 현대사회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는 계급사회인 이상, 계급간의 이데올로기투쟁은 피할 수 없으며, 철학적으로는 특히 무엇보다도 그 세계관에서 유물론 혹은 관념론이라는 명료한 대립이 되어 나타난다.


(1)유물론

  유물론은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 존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 최고(最高)의 발전형태로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검토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2천년에 걸친 철학의 발전사를 관통하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최고의 산물이다. 특히 시인 하이네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 대혁명에 비견되는 독일철학 혁명의 성과를 남김없이 흡수한 것으로, 직접적으로는 독일관념론 철학의 집대성자 헤겔 및 중간자 역할을 한 포이어바흐로부터 각각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섭취하고, 당대의 자연과학의 성과를 적용한 것에 의해 성립한 것이 맑스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맑스주의 철학이 형성되고 확립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서이며,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의 부정적 상태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 되었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철학, 특히 근세철학의 큰 근본문제는 사고와 존재와의 관계문제이다. 이 문제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서 철학자들은 두 개의 진영으로 분열했다. 자연에 대한 정신의 본원성을 주장하고 따라서 결국 어떤 종류의 세계창조를 인정한 사람들은 관념론의 진영으로, 자연을 본원적인 것으로 본 사람들은 유물론의 여러 학파에 속한다”(『포이어바흐론』)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 즉 정신(의식)의 발생 이전에 이 지구라고 하는 자연(물질)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지금은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주관적 관념론자는 세계가 자신의 주관, 감각에 의해 구성된다고 하고, 객관적 관념론자는 세계는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절대정신이 외화(外化)한 것이라고 하며, 신비주의자, 종교인은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하여 그들이 관념론의 진영을 형성한다.


  유물론은 이것에 대해 자연의 근원성을 자연과학의 발전에 의해 직접적으로 확증했다. 물질과 의식의 이 대립은 철학의 근본문제인 세계관의 대립으로서 절대적이지만, 이것은 물질이든 의식이든지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대립에서 벗어나면 의식도 또한 물질에 의존하고 양자의 대립은 이 한도에서 상대적이다. 물질이 제1차적이라는 것은 유물론에 대한 편견에서 볼 수 있는 물질이 중요하며 정신이 하찮은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물질이 본원적인 것에 의해 세계의 통일성도 또한 그 근거를 물질에서 발견하고 있다.


   “세계의 현실 통일은 그것의 물질성에 있다. 그리고 이 물질성은 두 세 개의 기이한 문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학과 자연과학의 아주 긴 발전에 의해 증명될 뿐이다”(엥겔스, 『반듀링론』)


  세계의 통일성을 어떤 정신이나 신에 귀착시키는 관념론철학과는 달리 유물론철학에 의해 비로소 자연, 사회, 인식의 대상에 유기적 연관과 현실적 기반이 부여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은 뇌수라는 물질 자체가 아니며 물질의 최고형태로서의 뇌수의 작용인 것이며, 관념이라는 것도 타고나면서 갖추어진 것이 아닌 자연, 사회의 객관적 대상이 인간에 의해 과학, 산업,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인간의 의식에 반영되는 것이라는 것, 의식의 심화와 관념의 발달도 사회적으로 물질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삼라만상이라고 하는 이 세계의 통일은 확실히 물질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물질이란 무엇인가. 유물론의 물질관념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레닌에 의해 가장 완전하게 정의되었다.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에 부여된 것으로 우리의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면서 우리의 감각에 의해 모사되고 촬영되며 반영된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이다”(『유물론과 경험 비판론』)


  유물론의 원칙을 정리해 보자. 첫째, 물질이란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라는 것에 의해 관념을 과장하는 주관적 관념론과 대립한다. 둘째, 물질이 감각을 통해서 부여되는 것에 의해 이성만을 중시하는 객관적 관념론에 대립한다. 셋째, 물질이 감각에 의해 모사되는 것에 의해 인식의 불가능성을 설파하는 불가지론에 대립한다.


 특히 세 번째 원리의 반영모사론(反映模写論)은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혹은 부정적 태도를 취하는 불가지론자(흄, 칸트) 또는 현실의 합리적 인식으로 진전하지 않으려는 니힐리즘, 실존주의 철학을 비판하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것이 된다. 엥겔스는 불가지론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천, 즉 실험과 산업”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면 붉은 풀의 색소 아리자닌을 들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금은 이미 자연에서 구하지 않고 코르타르로부터 훨씬 싸고 간단하게 제조한다. 아리자닌이라는 물자체는 우리에 대하여 물이 되었다”(『포이어바흐론』)


 인식의 원동력은 실천이다.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산업이 진전하는 것에 의해 미지의 분야는 우리의 공유인식이 된다. 지금은 지구 이외의 다른 천체에 대해서도 인식은 확대되고 있다. 인식이 무한하게 확대되고 완전하게 되어가는 것은 절대적 진리이며 그 인식이 시대의 제약을 받는 것에 의해 그것은 상대적 진리인 것이다.


  앞에서 거론한 레닌의 물질에 대한 인식론적 범주는 물질의 여러 가지의 구조, 성격을 규정하는 자연과학적 범주와는 별개의 것이다. 물질의 자연과학적 카테고리는 과학의 진보에 수반하는 인식의 심화에 의해 점차 다면적이고 고도의 것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물질은 이런 것이라고 하는 인식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물질이 발견될 때마다 ‘물질은 소멸했다’고 하는 마흐주의자가 물질의 철학적 개념과 자연과학적 개념을 구별하지 않고 혼동한 것을 보아도 이 구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음으로 물질의 존재양식과 속성에 대해서인데 물질은 어떤 특정의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며 끊임없는 자기운동의 과정이다. 유물론의 물질관은 형이상학과 같은 절대적이고 도식적인 고정관념 및 주관적 관념과 같은 자의적이고 신비적 관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맑스주의에 적대적인 듀링은 공간과 시간을, 운동과 물질을 형이상학적으로 잘라내고 절대적인 항상 불변의 상태에 있는 신비적인 세계 매개물질을 고안하는 것에 의해 물질의 변증법적 운동을 부정했다. 엥겔스는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총괄하고 있다.

 

   “공간과 시간은 모든 존재의 기본형식으로 시간의 밖에 있는 존재라는 것은 공간의 밖에 있는 존재라는 것과 같은 것으로 대단히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물질의 존재양태이다. 운동이 없는 물질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물질이 없는 운동이 생각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운동은 물질 자체와 같은 것으로 창조할 수도 소멸할 수도 없는 것이다” (『반듀링론』)


  마지막으로 유물론의 역사를 보자. 18세기의 기계적 유물론 즉 프랑스유물론은 확실히 변증법적 발전관의 결여 등 기계적이었지만, 자연과학을 중시하고 실증적 견지에서 물질의 구명을 향한 위대한 성과를 남겼다. 그런데 19세기의 속류 유물론은 그 이름대로, 예를 들면 의식을 뇌수의 분비물로서 생리학적으로 파악하려 하여, 유물론을 비속화한 수준 이하의 유물론이었다. 19세기에 활약한 헤겔좌파인 포이어바흐가 ‘하반신은 유물론자, 상반신은 관념론자였다’고 말한 것도 포이어바흐 자신의 결함(사적 유물론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당시 뒤처진 독일사회의 제약과 당시의 속류 유물론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유물론을 변증법적으로 기초짓고 자연뿐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물질대사에 의존하는 인간사회 및 그 반영으로서의 의식에 적용한 것이 새로운 유물론, 맑스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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