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2월
절판


우리는 사회 민주주의 의식이 노동자들에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직 외부에서 들여올 수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 계급은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노동 조합주의 의식, 즉 조합으로 단결하여 고용주들과 투쟁하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이러저러한 법률들을 정부가 제정하도록 하는 등등의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마련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사회주의 학설이라는 것은 유산 계급의 교육 받은 대표자들, 즉 지식인들이 일구어 낸 철학, 역사, 경제 이론들에서 자라난 것이다.-39쪽

학설로서의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경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한 그런 경제 관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낳은 대중의 빈곤과 비참함에 반대하는 투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계급 투쟁은 나란히 발생하는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전제 조건 아래에서 생겨난다. 현대의 사회주의적 의식은 깊이 있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실로 현대의 경제학은 현대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건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이 아무리 원하여도 양자 중 어떤 것도 창출하지 못한다.-49-50쪽

과학의 담지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지식인이다. 현대 사회주의는 이 계급의 개별 구성원들의 머리 속에서 생겨났으며, 그들에 의해 지적으로 탁월한 노동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되는 곳에서 노동자들은 이 사상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에 도입시켰다. 이처럼 사회주의적 의식은 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에 도입된 것이지 그 투쟁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자라 나온 것이 아니다. (...) 사회 민주주의 당의 과제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의식과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의식을 도입시키는(문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채워 넣는) 것이라고 너무도 정당하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종종 노동자 계급은 자생적으로 사회주의에 이끌린다고 말한다. 사회주의 이론이 노동자 계급의 불행의 원인을 다른 어떤 이론보다 깊이 있고 올바르게 정의한다는 의미에서 이는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까닭에, 이 이론 자신이 자생성에 굴복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자생성을 정복하기만 한다면,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이론을 그렇게 쉽게 체화하는 것이다. (...) 노동자 계급은 자연적으로 사회주의에 이끌려간다. 그러나 너무나 폭 넓게 유포된(그리고 항상 다종 다양한 형태로 부활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더욱 더 자연적으로 노동자들을 옭아 매고 있다.-53-54쪽

"도대체 어떤 사회 민주주의가, 맑스와 엥겔스의 학설에 따르면 개별 계급들의 경제적 이해 관계가 역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따라서 자신의 경제적 이해 관계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특히 그 계급의 발전과 해방 투쟁을 위해 최우선의 의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 "따라서"라는 말은 전혀 적합하지 않다. 경제적 이해 관계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부터 경제 투쟁(노동 조합 투쟁)의 최우선의 의의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계급의 가장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이해 관계는 근본적인 정치 변혁 일반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바꾸는 정치 혁명을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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