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르메는 첫 단어, 첫 줄이 어디로 어떻게 전개되어갈지 정확하게 모른 채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는 거의 자동적으로 얽혀드는 단어와 시행들의 결정화로서, 서로 꼬리를 물고 나오면서 상호 변용시키는 환상과 연상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다. '순수시'의 시학은 이러한 창작방법의 원리를 또 수용방법의 이론으로 바꾸어놓고, 시작품 전체를(...) 반드시 알지 못하더라도 시적 체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 한 편의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시의 합리적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없거나 혹은 적어도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며, 나아가서 시작품 자체가 민요의 경우에서 보듯이 어떤 명백한 '의미'를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그것은 심미주의의 가장 순수한 비타협적 형태를 대변하며 일상적 실천적 합리적 현실에서 완전히 독립된 시적 세계가, 자기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자율적 자족적인 심미적 소우주가 온전히 가능하다는 기본적인 이념을 나타내고 있다.-237-239쪽
시에 접근하는 특징적인 정신적 태도가 합리적 오성이 아니라는 발견으로부터 말라르메는 모든 위대한 시의 근본적인 특징이란 파악될 수도 측정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생략적 표현방식의 예술적인 이득은 명백하다. 연상의 연쇄에서 어떤 고리를 생략하는 것은 효과가 느리게 진행될 때 잃어버리기 쉬운 속도와 긴장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 그의 시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관념의 압축과 이미지의 비약에 힘입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결코 언제나 예술적 관념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의적이고 유희적인 언어의 취급방식과 결부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오직 난해성 그 자체를 추구하는 이러한 야심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려는, 그리고 가능한 한 작은 동호인의 집단에 자기를 제한하려는 시인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 대한 외관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상징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반동적이며, (...) 문학에서의 극우파였다. 물론 개개 시인들의 정치적 신념이 다르고 시의 난해성이란 현대문화가 피할 수 없는, 오래 전부터 준비된 발저느이 결과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시가 어렵다는 사실은 부분적으로 말라르메의 시가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에서 역시 비교(秘敎)적이고 비민주적인 느낌을 주며 광범한 대중으로부터 고의적으로 자기를 은폐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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