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은 상류계층을 다루면서도, 상류계층스럽지 않게 다룬다. 코미디가 특별히 여기서 발생하지도 않는다. 즉, 상류층의 풍자가 아니라는 것. 주지하듯, 코미디는 '우리'보다 '낮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 상류층을(또는 특권계급)을 상류층으로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그들을 다른 계층과, 다른 계급과 함께 재현하지 않고, 그들만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류'라는 상대적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재현된 텍스트 자체에서는, 그들의 '특권'은 가려진다. 시청자가 텍스트 외부와 관계맺으면서 해석할 때만이 이들이 '상류층'임이 드러난다.

이순재&박해미는 한의사인데, 그것도 엄청 잘 나가는 한방병원을 운영한다. 대통령을 만나고, ivy가 진료를 오고, (박해미의) 대기환자로 항상 만원이다. 그래 좋다.

이들은 외식때 115만원어치의 소고기를 4명이서 먹고, 항상 이준하(이순재의 아들이자 박해미의 남편)는 증권으로 몇천만원을 잃고, 또 얻기도 한다. 그래 좋다.

이 집의 막내아들인 이윤호는 반나절 라면을 먹고 cf를 찍어서 80만원을 받는다. 특별히 연애기획사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에서 '잘 나가는' 학생일 뿐인데... 그래 좋다.

이러한 특권층 주위에 있는 사람들 또한 돈에 별로 거침없다. 갖 부임한 (81년생으로 나오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인 서민정은 학생과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일인당 20만원짜리 코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한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말이다. (집이 부자인가? 알 수 없다)

이러한 군상들 틈에서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초반에는 고민했던 인물은 신지(이순재의 ex-며느리)인데, 그녀 또한 대책없이 살다가, 극이 진행될수록 경제적으로 아무런 고민도 없게 된다. 뮤지컬 배우이고, cm송도 불러서 이제 배부른가 보다.

신지가 유일하게 이순재 집단을 외부에서 '병원장'집안이라고, 특권층이라고 발화하던(언표가 되던, 아니면 신지라는 존재자체로서 그렇게 기능을 하던) 인물이었는데, 이 또한 점차 눈 녹듯 사라진다. 병원장 가족 내부에서는 이준하가 실업자이고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서 고민하는 인물이다. 물론 비생산적 노동이자, 자본주의의 최첨단인 '증권회사'에 근무했었고, '경제학과'를 나왔고, 집에서 (추정키로) 몇억의 재산을 굴리고 있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이준하에게 밥벌이는 '밥벌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일 뿐이다. 항상 그의 지갑 속에는 돈이 많다. 따라서 이 시트콤은, 이순재 병원장 집단이라는 계층만이 현실의 전부로 재현된다.

이게 불만이라는 것인가? 어떠한 현실 재현도, 일정한 은폐 또는 억압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시트콤의 목적 자체 또한 현실 '재현'에 있지 않다. 그러나 이는 현실 '재현'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지닌다.

그렇다면 '현실'을 살펴보자. (아래는 자명한 산책님 페이퍼에서 인용)

2007년 법정최저임금

시급 3,480원으로 결정됐다. 이 금액은 일급으로 환산할 경우 2만7,840원이고 월액으로 환산하면 주44시간 기준으로 78만6,480원이고 주40시간 기준으로 72만7,320원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 소득을 올리는 차상위계층이 716만명 빈곤층 규모는 전체 인구의 15%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가 40만1천원, 2인가구 66만9천원, 3인가구 90만8천원, 

 4인가구 기준으로 월 113만6천원

 

남한 전체의 가구 평균소득

 3134만원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총인구(4882만명)를 총가구수(1553만가구)로 나누면 평균 가구원수는 3.1명이고, 1인당 개인소득은 1011만원


하지만 이는 세수통계의 근로자가구 평균소득보다 1100만원 정도 많다. (그렇다면

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은

 2000만원 가량, 대충 3으로 나누면 700만원이 안 된다.)

 

 

왜 드라마는, 특정한 계층의 현실만을 재현하는가? 삶이 안 그래도 꿀꿀한데, 꿀꿀한 삶을 구태여 시청할 이유가 어디있겠는가?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삶이 꿀꿀해서 드라마를 보는 것인가?)

 

삶이 꿀꿀한데, 드라마는 어찌이리도 안 꿀꿀할 수(혹은 다르게 꿀꿀할수) 있을까? 왜 그들은 밥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까? 드라마가 배포하는 잘난 사람들만의 세계, 드라마가 재현하는 특권층의 삶, 그리고 이것이 일반 대중의 인식에 미치는 효과. 내 삶은, 우리의 삶은 왜 재현되지 않을까? 이의 지루함? 이의 평범함? 이의 불온함?

 

비정규직의 문제, 한미 FTA문제, 실업의 문제, 생존의 문제라는 우리의 삶을 매스미디어에서 다루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이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것을, 왜 거대 자본에 의해 작동하는 매스미디어에의해 매개되는 재현된 현실들은 입을 닫고 있는가?

 

누구나 제기하는 문제, 누구나 답을 알고 있는 문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잠시 잊기도 하는 문제.

 

Mass Culture가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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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4-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것 곰곰 생각해보니 '하이킥' 감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