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구판절판


빅토리아 시대의 독서층은 이미 명확하게 구별될 수 있는 두 개의 써클로 나누어졌으며(...) 이러한 분열은 물론 18세기에 벌써 존재했고, 그래서 가령 리처드슨은 디포우와 필딩에 비하여 좀더 고상한 시민계급의 취미를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리처드슨과 디포우와 필딩의 독자는 크게 보아 아직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1830년 이후부터 이 두 문화계층 사이의 간격은 훨씬 더 뚜렷해졌으며, 비롯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중간지대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하더라도 디킨즈의 독자층과 새커리(W.M. Thackeray)나 트롤로프(A. Trollope)의 독자층은 쉽사리 갈라볼 수 있게 되었다. (...) 오늘날의 상황에서 매우 특징적인 현상, 즉 교양있는 비판적 독서층과 함께 가벼운 일시적 오락 이외의 어떠한 것도 문학에서 찾지 않는 똑같이 규칙적인 일단의 독자들이 존재하는 현상은 빅토리아 시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문학적 오락에만 관심이 있는 계층은 아직 대체로 어쩌다가 책을 읽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반면에 정규적인 독서층은 교양인들로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디킨즈의 시대에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문예작품에 흥미를 가진 두 그룹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 시대와 우리 시대의 유일한 차이는, 당시의 유행문학이 아직 디킨즈 같은 작가의 작품들을 포함하고 두 종류의 문학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음에 반하여, 오늘날에는 훌륭한 문학이 근본적으로 비대중적이요, 인기있는 문학이란 식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158-159쪽

흥미로운 지점. 하우저는 그러나 평이하게 서술하며, 입증하지도 않고, 이의 사회적 원인을 깊이 있게 서술하지도 않는다. 이 흥미로운 지점에 대한 각주에는 오직
Q. D. Leavis, Fiction and the Reading Public, 1939만이 각주로 달려있다.
조선에서는 어떠했을까? 천정환 선생님의 책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80 2007-04-05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독서(독자)는 천정환 선생이죠. ^^

기인 2007-04-05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ㅎㅎ 어제 다시 '근대의 책 읽기' 뒤적이면서, 박사논문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도 되고 절망-_-;도 되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