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성실한 반론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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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과 상처 - 우리 시대 문학의 주요 논쟁에 대한 탐사!
권성우 지음 / 숙명여자대학교출판부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알게 된 경로: 미디어몹 정문금추님의 추천.
입수경로: 회사 도서관 신청 후 대출.
향후 구입여부: 빌려본게 찝찝하다. 저자 생각하면 '제 돈 주고 사야'하는데.
매너놈의 기억력이 정확하다면 현재 5%할인에 쿠폰까지 끼워주는 이 책은 한달 전까지만해도 할인 0%의 희귀종이었다. 지금 다른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니 여전히 0%인 곳이 몇 군데 있는 걸 보면 이 기억이 맞지 싶다. 할인 0% 책의 판매지수는 얼마나 될까. 0%의 할인지수와 판매지수는 곧, 성실한 반론이 이곳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준다.
김정란의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으로 촉발된 문학권력 논쟁을 누가 기억하는가. 세기말, 그리고 몇 년 뒤의 문학판을 뒤흔들었던 문학권력 논쟁에 있어서 김정란, 강준만, 권성우, 이명원 등의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 지적받았던 집단은 냉소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2001년 남진우로 대표되는 문학동네의 필진들이 대단히 불성실하고 지저분한 반론으로 논쟁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자, 결국 이 논쟁은 언론과 일반 독자들에 의해 '진흙탕 싸움'으로 낙인찍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만다. 그 뒤 권성우와 이명원, 강준만의 성실하고 세밀한 반론은 흙탕물 속에 그대로 가라앉아버렸다.
수준 이하에 면박과 모멸에 대한 성실한 반론과 질의. 이 책을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그렇다. 남진우를 비롯한 문학동네 필진들의 분탕질에 엉망진창으로 몸이 더럽혀져도, 권성우는 몸에 묻은 진흙 툭 툭 털어내고 한 자 한 자 꾹꾹 연필을 눌러 성실하게 반론을 제기한다. 적어도 글의 타당성과 완결성에 있어서, 권성우의 성실함과 꼼꼼함은 문학동네 필진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하나. 욕설에 가까운 수준 이하의 반론이 전체 논쟁의 수준을 끌어내렸다. 한 번 진흙탕에 빠진 논쟁은 그 이후에 잘 다듬어진 정갈한 글이 나오더라도 그 빛을 잃고 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남진우와 문학동네 필진들은 이를 계산하고 그 수준에서 논쟁을 마감하기 위해 수준 이하의 글을 써서 진흙탕을 만든 게 아닐까. 남진우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이 없는 상태에서, 한 번 끌어내려진 수준으로 모든 반론이 도맷금지어지는 걸 노렸던 게 아닐까. 이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문학권력 논쟁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내린 책임은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둘. 권성우의 반론은 글 내적으로는 흠잡을데 없다. 하지만 간과되었거나 가볍게 넘어간 부분이 있다. 문학권력에 대한 논쟁을 회피함으로서, 혹은 적극적으로 제기함으로서 얻어지는 각 진영간 의견의 대차대조표 말이다. 물론 철저히 글의 내적 일관성과 논리정연함으로 매듭지으려 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남진우의 '권성우에 답함'같은 수준 이하의 욕설과 비난에 10년 전 서평까지 끌어와 일관된 논리를 요구할 요량이라면, 남진우의 반론이 무엇을 은폐하는지, 그 은폐로 '문학권력'집단에 얻어지는 이득은 무엇인지 상세히 밝히는 게 그 진영의 저열함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정도 대차대조표까지 꺼내는 건 문학판의 공멸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더 나아가, 비판 진영의 대차대조표까지 제시했더라면 어땠을까.
정갈하고 성실한 반론을 읽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글이 나온 이유가 수준 이하의 저열한 비난이라는 건 찝찝한 일이다. 여기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일게고, 그나마 이미 접힌 논쟁을 복기하며 제대로 배운 게 아주 생뚱맞게도, 어떠한 논쟁에 있어서 반론과 재반론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듣는 것 보다 더욱 해당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는 법은, 각 진영이 주장하는 함의에 따라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그 주장으로서 어떠한 이득이 어느 편에 떨어지는지를 따져보고 그 타당성을 따져보는 게 낫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