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권력과 운동만으로 정치사 서술이 가능한가?

* 담론비평(2007. 3. 14)  / 권력과 운동만으로 정치사 서술이 가능한가?

 

이태훈 박사,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 서평에서 비판

 

리뷰팀 review@dambee.net

 

▲ 김동명 저,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경인문화사)

주권국가는 없지만 권력의 지배는 존재하는 시기, 식민지는 그러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식민지시기 정치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를 서술한 대부분 개설서에 지배정책과 저항운동의 항목은 있지만, '정치' 항목은 없었다. 식민지배권력은 조선인의 참정권을 부정했고, 지방자치적 권리마저도 일부만 인정했기 때문에 정치보다는 '통치'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는 게 통념이었던 탓이다.

그런데 이런 통념에 도전하는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김동명 국민대 교수의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제국주의와 조선인의 정치운동'(경인문화사)이 그것이다. 김 교수의 이 책은 권력의 일방적인 장악과 행사, 복종, 저항의 항목만으로 일제강점기를 서술한다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공백이 있다며,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집필된 것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조선인들의 권력을 둘러싼 다양한 활동을 '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매우 인색했다. 예컨대 이 분야의 대표적 연구라 할 수 있는 '일제하 한국지배정책사'(강동진, 한길사, 1980)의 경우,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일제에 의한 일방적 포섭과 지배정책의 실현과정으로 서술했다.

하지만 총독부시하의 조선사회 내에서도 지배적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한 미시적 정치행위는 계속 존재했다는 게 김 교수의 관점이다. 자치운동과 참정권 운동 같은 움직임이 있었다면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 조선사회 내의 이해관계, 사회적 기반, 사회내의 역학이 당연히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 권력과 권력의 제도를 둘러싼 그 관계들을 구조적으로 포착해내지 않을 때 일제강점기의 역사상은 지배정책사와 저항운동사 이상의 모습이 되긴 힘들다.

김 교수의 연구는 그 애매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상호관계의 영역을 지배정책과 운동의 평행선이 아닌 정치관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성과다. 과연 그 복잡한 관계의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당시의 정치세력을 크게 동화형 협력세력, 분리형 협력세력, 저항운동세력으로 구분한다. 이는 종래 친일세력으로 불리던 세력을 도덕적 평가에서 벗어나 정치운동의 기능적 성격에 따라 하나의 온전한 정치운동세력으로 범주화하고 그 활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는 데서 큰 의의가 있다.

김 교수는 기존의 연구가 지배정책과 조선인의 운동을 별개의 것으로 서술했다고 비판하고, 구조적이며 생생한 정치사의 복원을 위한 유기적 정치과정의 분석도구로 '바게닝'(bargaining)을 제시한다. 일제와 조선인 사이의 관계를 교환, 타협, 거부, 제안을 포괄하는 바게닝 과정으로 파악하고, 이것이 어떻게 전개되고 그에 따라 정치국면들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서술한다.

네 시기로 나눠 이러한 분석을 행한 뒤 김 교수는 1920년대 조선에서 전개된 정치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조선인 정치운동세력은 모두 당초의 노력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안정적인 지배체제 구축을 위해 조선인 협력세력의 확보를 추구했지만, 결국은 강력한 저항운동에 직면해 포기했고, 조선인 정치운동세력 또한 운동 내부에서의 경쟁과 대립, 총독부의 탄압, 조선사회의 가한 비타협의식 등으로 목적달성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최근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비판적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태훈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이 '역사문제연구' 제16호에 실은 서평 '권력과 운동만으로 정치사는 서술될 수 있는가?'가 그것이다.

이 연구원은 이 책의 미덕을 △운동사에 머물던 기존 정치사 연구를 지양하고 일제하 정치를 구조적 시야에서 서술했다. 그로써 신간회운동 등을 주체의 목표분석을 넘어 일제가 어떻게 개입하고 그에 따라 운동이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짚어졌다. △기존 연구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던 친일정치세력의 활동을 복원했다. △그간 피상적으로 검토되었던 일제의 지배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변화해가는가를 분석했다 등으로 정리한다.

하지만 저자가 조선총독부-조선인정치운동세력-조선사회의 삼자 관계 속에서 구조적으로 서술하겟다고 했지만, 실제분석은 주로 조선총독부와 조선인 정치세력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정치세력을 동화형, 분리형, 저항형으로 분류한 것도 그들의 정치적 기반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가령 3.1운동기 저항운동세력의 핵심이었던 동아일보 주축인물들이 이후 자치운동으로 전환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선 설명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동아일보의 사회적 기반이 되는 자본가 부르주아 세력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분석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동화형, 분리형, 저항형의 구분 기준도 애매하다고 지적한다. 가령 조선인 교육개선회가 총독부와 협조해서 조선인 중심의 교육권리를 획득하려 했다가 무산되자, 민립대학기성회를 발기해 독자적으로 교육하려 했는데, 저자는 전자는 분리형 협력운동의 성격을 띠고, 후자는 저항운동의 성격을 띤다고 말하는데 이 연구원은 "대학설립운동은 식민지 체제 안에서 일상적 이익의 하나를 획득하려 한 것이기 때문에, 교육권리를 합법적으로 취득하려했던 앞 시기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들 정치세력이 총독부의 움직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처럼 서술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령 조선인 정치세력이 확실한 보장이 없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무려 4차례에 걸쳐 줄기차게 자치운동을 전개한 이유는 총독부의 자치제 내부검토를 통해서만 설명하기는 어렵고, 자치운동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정치사회적 기반으로부터의 요구가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이런 설득력 부족은 각각의 정치세력들이 갖고 잇는 내적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게닝' 개념이 갖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간단히 말해 이는 정치적 교환관계를 말하는 것인데, 일제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조선인들에게조차 정치적 협력에 대응하는 정치적 선물을 줄 생각이 없었다는 증거들을 볼 때, 이는 일방적 포섭정책이지 바게닝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 연구원의 서평은 책의 미덕과 부족한 점을 나름의 관점에서 논쟁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주요 개념적 도구와 관점의 약점을 지적하고 있어 과연 이에 대해 저자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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