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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의 발견>정순우 지음. 현암사 펴냄. 1만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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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생을 둔 집은 전쟁이다. 몇달 뒤면 아이의 삶이 갈리기 때문. 성적순으로 끊어 운명을 재단하는 사회구조 앞에 개인은 한없이 초라하다. 교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는 흉물스런 이름 ‘교육인적자원부’다. 개인의 인격이 아닌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데라는 뜻. 학생1, 학생2가 있을 뿐 장삼, 이사가 있을 턱이 없다.
이러한 현실 뒤에 진화론이 똬리져 있다. 교육을 효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학교는 정글. 적자만 살아남는다. 무차별 경쟁에 노출된 아이들은 서로가 적이다. 그러기에 우리사회는 ‘교육열’로 터질 듯하다. 학원산업이 재벌기업에 못잖고 사회 공기인 신문·방송에서도 과외를 한다. 좋은 학교가 있다는 강남 학군은 집값이 몇배나 비싸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중압감을 못 이겨 자진하는 아이도 있다. 교육열을 두고 어느 미래학자는 발전 원동력이라고 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속성재배해 때깔이 좋을지 몰라도 쉬 물러터지는 딸기처럼 사람도 사회도 건강을 잃어버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미치광이 사회를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 인간다운 삶을 유보하고 살 것인가.
<공부의 발견>(현암사) 지은이는 조선시대로 눈길을 옮겨 참다운 공부법을 찾자고 말한다. 고리타분한 성리학이 지배했던 전근대사회에서 가능할까? 지은이는 그때를 ‘공부의 황금시대’라고 부르며 그곳에 길이 있다고, 적어도 지금과 같은 미친사회를 보완할 대안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조선 후기 교육사와 지성사를 전공한 한국학대학원 정순우 교수.
공부를 가장 깊이 논의한 사람은 퇴계 이황이다. 그의 공부론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지향하며 존천리 거인욕(尊天理 去人欲), 즉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는다는 체계에 자리잡고 있다.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순수하고 선한 본연지성을 최대한 늘리고 형기(形氣)의 구속을 받는 기질지성을 도려내는 게 초점이다. 그 방법은 경(敬). 경이란 무엇이뇨. 정좌법이 요체라. 언제나 일상의 세계에 머물며 또랑또랑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새벽 잠에서 깨어나 저녁에 다시 잠들 때까지 도덕적 각성 속에서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는 일신우일신으로서 구도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달점은 티끌 욕망도 없는 순백 도덕세계 즉 성인의 경지다. 성인이란 본래 인간의 참모습을 회복한 상태를 말한다. 결코 쉽지 않은 공부법이다.
퇴계, 인간 참모습 위해 ‘일신우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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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산구곡도시화병’ 가운데 제5곡인 소현서원도(1803, 개인소장). 율곡의 강학처인 황해도 고산의 소현서원을 그린 그림이다. 현암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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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공부론은 시대와 사람에 조금씩 변주를 한다.
‘목이 뻣뻣한 선비’ 남명 조식은 세상과 한발짝 떨어져 살았지만 세상을 향한 고민은 거두지 않았다. 그는 학문을 알기만 하면 족한 것이 아니라 몸소 실행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마음공부를 위해 깨끗한 대접에 물을 가득 담고 두손을 받들어 밤새도록 엎지르지 않도록 하여 뜻을 지키는 고행을 참아내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역사의식과 실천을 중요시하여 문하에서 의병이 많이 배출되었다. ‘세상과 불화한 자’ 허균은 인간을 응고된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감성과 미학적 상상력의 대상으로 파악하면서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한테는 예교 세계를 거부하고 모든 도덕 규범과 준칙을 거부하는 자유정신이 스며있다. “남녀의 정욕은 천성이고 남녀를 분별하는 윤리는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은 성인보다 높으니 성인을 어길지언정 감히 하늘이 품부한 본성을 어길 수 없다”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파천황이었다. 순암 안정복은 “공부의 공(工)자는 여공(女工)의 공 자와 같고, 부(夫)는 농부(農夫)의 부 자와 같다”며 “사람이 학문을 하되, 여공이 부지런히 길쌈을 하고 농부가 농사에 힘쓰듯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상화하고 허문화한 성리학적 공부론은 마치 기생이 <예경>을 외우는 것과 같다며 생활 속의, 구체적인 삶을 중시하는 교육을 강조했다. “이론적 앎과 실천적 익힘이 동시에 이뤄져야 참된 앎을 이룬다”는 다산 정약용은 가치명제와 사실명제를 구별한 아동 한자학습서를 만들었다.
식민화교육정책의 잔재 지금까지
예로 든 다섯 선비는 일상에 단단히 발을 딛고서 학과 도의 세계를 추구했다는 특징을 가졌다.
지은이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나아감’의 쌍이었던 ‘물러남’ 철학이 소멸된 점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제도를 경계로 하여 세간과 출세간에 걸쳐 있었다. 역사에 개입하고 현실의 구체적 삶에서 충실해야 할 때는 출사하여 벼슬살이를 하고, 역사와 현실의 무게가 버거울 때는 출세간하여 처사가 되었다. 즉 유가의 교육에는 나아감 철학과 더불어 이를 억제하는 또 다른 축인 물러남 철학이 있었다는 것. 물러남 철학은 존재의 내성적 성찰을 중시하고 세속적 욕망의 절제를 가르쳤다. 그런 까닭에 조선의 교육은 천박한 출세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맹목적인 교육열에 들뜨지 않을 수 있었다. 존재의 내성적 성찰을 중시하는 교육에서 교육열이라는 현상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학교가 제향-강학 두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 공간이 학의 세계에 관여한다면 도통의 세계에 몸담은 제향 공간은 도의 세계를 표상한다. 그런데 개화기 근대교육이 도입되면서 도의 세계는 사라지고 오로지 남은 학의 세계가 진화론과 결합하면서 사단이 생겼다. 나아감 철학만 기형적으로 발전하고 물러남 미학이 소멸되면서 과도한 교육열을 냉각시킬 작동기제가 멈춘 것이다.
“학교는 공장이다.” “학생은 원료품이다.” “기계 같은 교과서를 사용하여 만들어낸 생산품, 학생은 다른 공장의 공산품 같이 거의 비슷하다.” 일찌기 <개벽>이란 잡지에서 주장했던 국가주의적 교육이념이다. 일제는 식민화정책에 이를 교묘히 이용했고 이 여파는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밤도 창백한 형광등 아래서 청춘이 피 말리고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