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의 역사 세미나 <공산당 선언> (맑스 엥겔스 선집 1, 박종철출판사)

1882년 러시아어 제2판 서문

<공산주의당 선언>은 불가피하게 닥쳐오고 있는, 현대 부르주아적 소유의 해체를 선포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우리는 급속히 번창하는 자본주의로 인한 현기증과 이제 막 발전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토지 소유의 맞은편에서 절반 이상의 토지가 농민들의 공동 점유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다: 비록 토지의 원시적 공동 점유의 심하게 붕괴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의 오브쉬치나Obschtschina는 공산주의적 공동 점유라는 보다 높은 형태로 직접 이행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서구의 역사 발전을 이루고 있는 동일한 해체 과정을 먼저 겪어야만 하는가?

오늘날 이에 대한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혁명이 서구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어,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면, 현재 러시아의 토지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72

1883년 독일어판 서문

<선언>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사상: 각 역사적 시대들의 경제적 생산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사회 구조가 그 시대들의 정치사 및 지성사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 그에 따라 (원시적인 토지 공동 점유의 해체 이래로) 역사 전체는 계급 투쟁의, 즉 사회 발전의 다양한 단계에서의 피착취 계급과 착취 계급, 피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 사이의 투쟁의 역사였다는 것; 그러나 현재 이 투쟁은,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동시에 사회 전체를 착취, 억압, 계급 투쟁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자신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부르주아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기본 사상은 오로지 전적으로 맑스에 속한다. 373

1893년 이탈리아어 판 서문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는 이탈리아였다. 봉건적 중세의 종말과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시작은 한 위대한 인물에 의해 고지된다: 그는 중세 최후의 시인이자 동시에 현대 최초의 시인인 이탈리아 인 단테이다. 오늘날, 1300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 프롤레타리아의 새 시대의 탄생을 고지할 새로운 단테를 우리에게 보내 줄 것인가? 394

1. 단테를 중세 최후이자 현대 최초로 보는 이유. 종교와 정치 분리 주장. 중세가 성경과 신적 질서의 현현으로서의 자연을 중시했다면, 단테는 신과 인간을 중시. 이탈리아어(지역어)로 신곡 서술(14세기 초서, 보카치오와 함께 최초. 조선 최초는? ‘최초’라고 하면 지리한 논쟁이 되기 쉬운데, 1511 <설공찬전>으로 봄.)

2.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의미하는 것?)

공산주의당 선언 본문의 문제들.

I.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Bg발전단계의 상응하는 정치권력의 발전(402)에 ‘기계적’으로 대응되는 pt혁명. 즉 pt혁명의 모델로서의 Bg혁명. (파리꼬뮌 이후 인식이 바뀌기는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의문)

II.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문제적 부분.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따라서, 당-국가, 전위의 문제들이 나타난다. (사실 이런 문제는 어찌보면 스콜라적 문제일 수 있다. 맑스가 ‘어떻게’ 말했느냐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실제 실천에서 어떤 것이 더 적합했느냐의 문제. 그러면 그 ‘적합성’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해보면 아는 것일까?)

‘공산주의자’라는 주체는 어디서 왔는가? pt 전체의 이해 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는 갖지 않으며, pt운동을 짜 맞추고자 하는 바의 특수한 원리를 세우지 않으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pt 정당과 구별’되는 그들. 또는 그 집단.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pt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여타 pt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pt 정당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pt의 계급으로의 형성, Bg 지배의 전복, pt에 의한 정치 권력의 장악.’

공산주의자와 pt는 다른가 같은가? 결국 ‘혁명적 주체’라는 정체성은 누구에게 있는가.

또 pt라는 계급은 대상성으로 대상적으로 규정된다. 생산수단의 무소유(비소유?). 이러한 pt를 주체화하는 몫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돌아간다. pt의 계급으로서의 형성. (즉 이때는 주체로서의 형성) 이러한 pt가 주체(정치-주체)로 된 이후에, 정치권력을 쥐고 pt독재가 일어난 후, 이 pt독재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계급의 철폐, 이고 ‘사물의 관리’로의 이행, 즉 다시 정치의 측면에서 ‘비주체화’, 대상으로 돌아간다. (420~421면)

자기 자신의 폐지를 위한 것. 그 매개로서의 또 ‘당’이 등장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당은 당을 없애기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마치 우로보스의 뱀같이, 두 대가리가 서로 먹어들어가다가 없어지는 것? 결국 ‘사물의 관리’하는 정부로의 점진적(?) 이행은 pt독재 후에 가능한가? 아니면 다시 ‘영구혁명’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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