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에서 김윤식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계시군요 ^^ 저는 공익 복무 때문에 시간이 안 되서 못 들었답니다 ㅜㅠ 대신 애인이 가서 열심히 듣고 있지요. 애인에게도 정확한 맥락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봤는데, 김윤식 선생님께서 별로 자세히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 하네요 ^^;
자명한 산책님: 지난 번에 기인님이 요즘 문학 전공자들이 포스트식민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김윤식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얼핏 하시는 말씀이(자세한 말씀은 없으셨는데) 포스트식민주의의 문제제기가 성립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그런 것까지도 다 포괄하고 있는 것인데, 이제 와서 포스트식민주의의 명제가 학적으로 성립이 가능한 것인지 자신은 의문이다.~는...... 얘기의 맥락을 좀 더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철학 전공자가 아니고,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 콜러니얼리즘)을 공부는 했지만, 저도 포스트 식민주의의 문제제기나 실효성에 상당히 비판적이라서 탈식민주의 입장에서의 대답이 될 지는 모르겠네요. 국문과 동료 중에 탈식민주의 전문가가 있으니 제가 글을 쓴 이후에 또 물어보도록 할께요 ^^ 사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을 한 권 쓸수 있을정도로 전문적인 것일 터이고, 저는 그러한 전문성이 없지요 물론. ㅋ 그러니 저도 그냥 자명한 산책님과 함께 고민해본다는 의미로, 앞으로 더 공부할 방향 같은 것이나 전체 맥락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것도 어려울 것 같네요 ^^;
지금은 집에 와서 제 옆에 장씨 아저씨의 헤겔 정신현상학 연구가 없지만 ^^; 정신현상학에서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어떻게 탈식민주의 (그냥 이 용어로 통용하도록 할께요. 포스트 콜러니얼리즘, 포스트 식민주의, 탈식민주의.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포스트 식민주의' 답기는 하지만 ^^ ㅋ)의 문제제기와 연결이 되나 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 제가 철학전공도, 더군다나 헤겔 -_-; 전공은 아니라서 대충 약술 합니다. ㅎ)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자기 의식이 또 다른 자기 의식에 대하여 인정 투쟁을 통해 성립합니다. 하나의 '자기 의식'은 자신이 '본질'임을 확신하기 위하여 다른 독립적인 본질(다른 '자기 의식' 즉 타자)을 지양합니다. 이러한 인정 투쟁에서 승리한자가 바로 '주인' 즉 인정받는 자이고, 패배한 자가 바로 '노예' 즉 인정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주인에 '의해서' 노동하는 노예는 노동함으로서 사물에서 주인으로서 정립되고 반면에 주인은 노예의 노동 산물에 예속됨으로서 사태가 역전하는 것.
이것이 주인-노예 변증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탈식민주의적 문제제기와 주인-노예 변증법은 어떠한 맥락에서 연결되는 것일까요. 탈식민주의는 용어 자체가 함축하고 있듯이, 식민주체-식민지의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가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이 중 문화적 관계에 대한 전복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요약하자면, 결국 '식민주체'의 것을 전유하는 것을 통한 저항으로서의 식민지 문화의 모방성. 또는 전후관계나 주체적 입장을 달리해서 말해보면. 식민지 문화의 모방성은 식민주체의 것을 전유하는 것을 통한 저항이라는 것. 또는 이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궁극적으로 탈식민주의 문화/문학 이론의 기본 전제이자 목표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김윤식 선생님의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이 이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국 두 자기 의식에서 패배한 '노예'로서의 식민지가 주인을 극복 지양하는 것. 이라는 일차적 의미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순수 의식의 측면에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살펴보면, 마찬가지로 노예과 주인을 극복할 때 노예는 주인 속에서 주인을 본질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함으로서 '대상의식'이 아니라 '자기 의식'으로서 정립합니다. 결국 자기의식은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립 기반을 찾는 것이라 할 때, 궁극적으로 '주인-노예'관계는 평등한 두 상호주관으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는 사실 당위론적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탈식민주의에서 말하는 '식민주체' '식민지'의 이자적인(물론 상호작용도 존재합니다만) 영향-피영향, 주체-모방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윤식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인류 차원/인류사'의 전개라는 것도 결국 일국 일문화 민족주의적인 경계를 벗어나서 생각한다면, 식민주체-식민지라는 차원도 자기의식이 또 다른 자기의식 속에서 자신의 존립 기반을 찾아나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굳이 '탈식민주의'라는 문제제기조차 별 의미 없다는 것이 된다는 것. 문제는 '탈식민'이 아니라 노예의 '자기의식'화일 뿐이라는 것.
저는 헤겔이나 탈식민주의를 공부하려고만 몇번 하다가, 금세 흥미를 잃은 이유 중 하나는 너무 '관념적'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도 '토대-상부구조'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환원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 변수 중 하나가 토대임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나 공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탈식민주의에 대한 논의나 공부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현 제국적/제국주의적 토대의 작동방식에 대한 나름의 이론적 틀이 있는 경우나, 토대라는 변수의 중요성을 괄호에 넣고 사유할 수 있고 제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요.
탈식민주의나 헤겔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보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 말이 많았네요. 김윤식 선생님 수업 못 들은게 아쉽네요. ^^;
탈식민주의와 헤겔 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사실 제일 좋은 것은, 이를 공부하는 것이겠죠 ^^ 원전을 읽어가며 극복 '지양'하는 것.
제 공익 생활 동안의 목표는, 맑스를 열심히 공부해서 '기초'를 튼튼히 해 두는 것과, 소설이나 시를 써서 등단하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그 동안 안 굶어죽기 위해서 돈도 벌어야 하겠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 지난번에 산책님께 문학도들은 무엇을 공부하냐 라고 물으셨을 때, 보통 요즘은 '탈식민주의'하더라 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는 것.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것. 자기의 세계관이나 취향(?)에 맞는 것. 을 공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오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