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머는 나의 눈을 열어주는 고전입니다. 그의 묘사와 비유 등은 우리에게 시적 감동을 주면서도 말할 수 없이 자연스럽지만, 그 순수성과 내면성에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괴상하게 날조된 사건이라도 묘사된 대상이 아니고는 아무데서도 느끼지 못할 자연스러움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잠깐 내 견해를 들어주기 바랍니다. 호머가 묘사하는 것은 실제로 현존하는 존재임에 반해, 우리는 보통 그것의 효과만을 묘사할 뿐이며, 호머가 두려운 것을 서술한다면 우리는 두렵게 서술하고, 호머가 쾌적한 것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쾌적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과장되고 기교적이며 지나친 겉치레와 위선을 드러낼 뿐입니다. 효과만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면 그러한 효과를 충분히 느끼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한 이야기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면, 나는 새로운 계기로 그 점을 아주 생생하게 느꼈을 겁니다. 이 모든 것, 즉 해안과 산맥, 만과 곶, 섬과 지협, 바위와 모래사장, 관목으로 뒤덮인 언덕과 부드러운 초원, 비옥한 들판과 잘 꾸며진 정원, 잘 손질된 나무들과 줄줄이 매달린 포도덩굴, 구름이 맴도는 산정과 언제나 청명한 평원, 절벽과 제방, 그리고 그처럼 다양하게 변화하는 바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내 마음 속에 현실감있게 간직되어 있는 지금에야 비로소 <<오디세이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338쪽
서구 지식인들이 언제나 회귀하고 싶어하는 그리스. 그리고 호머.
'호머'라는 것이 결국 '민중성'을 의미한다면, 위 괴테의 글에서 '호머' 대신 '민중'을 넣는다면 80년대 많이 보아왔던 민중에 대한 낭만주의를 읽어낼 수 있다. 결국 괴테의 시기도 그러한 민중에 대한 낭만주의와 겹친다. 괴테는 '호머'라는 위대한 개인으로 읽어낼 수도 있지만, 묘하게도 '민중'의 작품인 오디세이아에 대한 괴테의 시각과 민중성에 대한 괴테의 시각이 겹치는 부분이다.
결국 이런게 '심미안'이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