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시 공부를 위한 리스트라는 것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만든다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하고요. 훈련소 가기 직전 학기에 D대학과 K대학 선생님께서 강의를 한 강좌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셨지만, 빨리 군복무(?)를 마무리 짓고 좀 길게 공부계획을 세워보려 해서, 사죄말씀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독서 리스트는 어떻게 작성할 것인지 고민을 좀 해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학부나 교양에서의 시 강의는 역시 ‘전문적으로 시 공부’를 하려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기보다는, ‘시’라는 것에 친구들이 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준, 더 나아간다면 ‘필독시’들을 같이 읽고 설명하는 방식에 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전문적’으로 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마 대학원에서 시를 전공하는/하려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적’이라는 말에는, ‘전공’이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있으니까요. 제 석사과정을 돌이켜보거나 학부과정을 돌이켜봐도 딱히 시 공부하기 위해서는 이 리스트를 읽고 오게라는 선생님은 안 계셨던 것 같습니다. 고전문학의 박희병 선생님께서는 그러신다고 하시지요. ^^ 또 예전에 김윤식 선생님도 그런 리스트 비슷하게 말씀하시고는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문학’에 관한 리스트이기는 해도, 그 리스트라는 것이 우선은 ‘정치경제학’ 공부부터 해라였습니다.
자명한 산책님처럼, 시를 좋아하시고 시를 많이 읽으시고 계간지도 꾸준히 보시는 분이 이제 시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실 때 무엇을 읽어야 할까... ‘전문적’으로 공부하시겠다는 것은 결국 ‘인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에 대한 이론서 리스트는 많지만, 이를 다 볼 필요도 없고 실제 시를 공부하는 석사/박사 학생들도 이를 다 보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관심이 생기는 분야의 이론서들을 공부하지요. 그렇다면 보통 요즘 석사/박사들은 어떤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고 한다면 정신분석학 쪽과 탈식민주의입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이론들을 우회해서 시를 읽는 것일 수도 있고, 혹자는 이론적 정신분석이나 탈식민주의를 ‘내면화’해서 나름 세계를 보는 눈/마음을 확정한 후 이를 통해 시를 보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 또래 학생들 중에서는 소수자(?)로 맑스주의를 통해 이런 작업을 해보려고 하고 있고요. 이렇게 보면, 결국 시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시’ 자체에 대한 공부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시각에 대한 공부인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신비평에서 이어져 나오는 ‘시 자체’에 대한 이론들도 어느정도 숙지는 하고들 있지만, 보통 이에 큰 노력을 쏟지는 않지요.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이론’또는 ‘방법론’공부입니다. 이 다양성에 대해서는 테리 이글턴의 아래 책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 한국 현대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주로 공부하는 것은 소위 ‘자료 읽기’입니다. 이는 시가 쓰인 당대의 ‘자료’들을 읽는 것으로, 당대 신문/잡지를 읽는 것을 말합니다. 시인이 이 시를 쓰던 당대, 이 시를 쓰게 촉발시킨 직접적/간접적 영향들에 대한 실마리를 잡는 것이기도 하고, 시인론을 쓰기 위해서,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대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찌보면 역사공부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1차자료들을 읽어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쓰고보니, 쓸데없어보이기도 하는 대학원을 왜 사람들이 가는 것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공부들은 혼자 하기 힘든 경우가 많거든요. 우왕좌왕 말을 풀어내서 자명한 산책님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결론은 시와 이에 대한 연구서를 읽는 것 이외에 이론/방법론 공부로서의 인문학 공부, 자료 읽기, 이렇게 사람들은 시를 공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