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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맨
크리스틴 스팍스 지음, 성귀수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에 대해 비유적으로 평가하자면, 4번타자 이승엽이 직구를 정확히 그리고 강하게 때려서 이승엽과 투수를 포함해서 관중들도, 아 이제 넘어가겠구나 하고 저 멀리를 바라보는데, 공이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고? 쉽게 말해서; 소재와 주제는 훌륭하고 정말 잘 쓰여질 수 있는데 (즉 홈런을 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데) 막상 서술이 너무 딸려서 나온 결과물은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빈치 코드같은 소설이랄까. 좀 더 흥미롭게, 좀 더 독자들이 짐작할 수 없는 부분을, 좀 더 내밀하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표면만을 잽싸게 훑는 듯한. 할리우드 영화나 디즈니 만화같은 꺼림칙한 분위기.
이 소설의 '소재'는 엘리펀트 맨으로서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에 프로테우스증후군'을 함께 앓아서 '괴물'과 같은 외모를 지니게 된 한 남자와 그를 처음에는 연구대상으로만 보다가 마침내 그와 '친구'가 되는 젊은 의사의 이야기이다. 이 스토리-라인 자체도 쫌 디즈니 만화나 할리우드 영화 같은 인공적 솜사탕 같은 분위기가 있지만, 이러한 설정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내면'은 실화에서 전해주지는 못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그 박사의 '회고록'. 물론 이는 일방적인 정보다.)
그랬을때 정말 독자가 알고 싶은 것, 혹은 이 책이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외모지상주의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고귀함을 증명해낸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표피적인 서술과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급박한 스토리-라인 속에 묻혀지고 만다.
이 소설을 쓴 이 또한 소설가이며 동시에 시나리오작가라서 그런지, 소설보다는 '감동적인' 할리우드 영화 대본을 보는 듯 하다.
정말, 엘리펀트맨의 내면을, 그의 과거를, 그의 꿈과, 그의 콤플렉스와, 그에 대항하는 그 주위의 '일반인'들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를 통해 우리의 '외모지상주의'를 준엄하게 꾸짖을 수는 없었을까? 소설 중간중간에 엘리펀트맨을 향한 뭍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에 내 자신의 추악한 내면을 보는듯 화끈거리는 장면은 몇개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이러한 반성은 곧 스토리만을 급박하게 좇아가는 서술로 인해 방해되고 말았다.
주인공 의사와 병원 운영위원회는 어찌 그리 착하고, 영국 공주와 여왕은 왜이리 천사 같은가? '설정된' 티가 뻔히 나는 전형적인 악당은 왜 그렇게 흠집 하나 없이 악하고,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지독하면서도 또한 몸이 불편한 엘리펀트맨이 달아날 수 있을 만큼 어리숙한가?
그렇다. 동화이니깐 가능하다. 요즘 전태일 평전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읽으며 분노하고 눈물도 흘리고, 슬퍼하다가도 희망을 찾는다. 이는 '사실'에 입각한 평전의 성격과 더불어, 조영래 변화의 뜨거움 가슴과 냉철하게 현상의 이면을 뚫으려는 서술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 엘리펀트 맨은, 그러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 소재의 문제가 아니다. 전형적인 인물들의 설정, 뻔한 스토리 라인. 요즘은 이제 디즈니도 이렇게는 안 쓸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