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찬바람이 불면 떠오르는 스무살 그 소년

김현진, 故 서지원을 추억하다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서지원과 가수 서지원

‘누나’가 대세다. 팬티의상으로 화끈하게 가수 컴백한 엄정화 언니는 호탕하게 이승기에게 “너라고 부르라”고 하고, 섹시한 현영 언니는 동생들에게 예의 S라인 몸매를 과시하며 누나 누나의, 누나 누나의 꿈을 이뤄 달라고 속삭인다. 슈퍼 주니어니 동방신기를 사랑하는 어린 소녀들 못지않게 강력한 팬층 역시 경제력과 행동력과 조직 장악력을 겸비한 2,30대 누나 팬들이다. 그야말로 예쁜 것들을 죄다 누나들이 먹여 살리는 사회가 된 형국이다. 사실 이승기가 몇 년 전 너라고 부르겠다며 온 세상 연상녀들의 가슴을 적셨을 때 나는 그 노래가 썩 맘에 들지 않았는데, 그건 나에게 확실한 ‘누나쏭’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승기도, 그 누구도 이 누나를 위한 세레나데를 넘을 수는 없다. 그 원조는 바로 서지원이다. 본명은 박병철, 당시 소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미라의 순정만화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남자 주인공 서지원의 이름을 따서 예명을 삼았다. 실은 그것도 사람들이 그를 많이 놀리던 이유였다.

사람은 가고 세상에 남은 노래를 듣는다

그는 살아서 두 장, 죽어서 두 장의 앨범을 남겼다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잘 몰랐고, 죽고 나서야 많이 알았고, 죽고 나서 노래 좀 떴다고 사람들이 많이 비웃었다. 서지원이 살아 있을 때 그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나는 음악적 취향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철없는 여자애랍니다”라고 털어놓는 것과 같았고, 서지원이 죽었을 때 그를 좋아했노라고 고백하는 것은 “저는 군중심리에 잘 휩쓸리고 엄청 감상적인, 그야말로 10대 소녀여요”라고 제 입으로 부는 것과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나서 노래만 홀로 남아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했던 ‘내 눈물 모아’보다 살아 있을 때 불렀던 자잘한 노래들이 훨씬, 좋았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 멍한 일요일, 버스를 타고 서울역 고가 위를 지나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그 서지원의 데뷔곡이었다. 안녕 안녕 인사 뒤로 널 떠나갈 때를 아직도 되뇌이며 울먹이는 널 위해서. (‘또 다른 시작’) 그 목소리는 맑고, 특징 없고, 부담 없고, 듣기 좋았다. 그게 그의 약점이었다.

공손하고 수줍었던 그의 세레나데

소녀들의 왕자님이 되기에는 어설프게 곱상한 외모가 2% 부족했고, 대놓고 섹시하기에는 너무 수줍었고, 발라드의 왕자가 되기에는 이승환과 신승훈이 너무나 강력했고, 댄스가수가 되기에는 룰라와 듀스의 벽이 막강했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어정쩡함을 찾는 사람들이 없진 않았다. 예의 원조 ‘누나쏭’을 들은 것은 중학교 때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노래 신청 쪽지를 모을 때였다. 몇 학년 몇 반 아무개가 쓴 신청곡 중에 ‘76-70=♡’라는 노래가 있었다. 서지원이 박선주와 함께 부른 듀엣곡이었는데, 방송반 애들은 모여서 그 하트 기호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걸 뭐라고 읽어야 돼? 칠십육 빼기 칠십은 하트? 칠육 빼기 칠공 이콜… 하트?

지금이라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칠육 빼기 칠공은? 그거 연애지, 연애. 이 누나를 위한 세레나데는 이승기의 그것보다 훨씬 공손하다. 다짜고짜 나를 동생으로만 생각한다며 징징대다가 버럭 허락도 안 받고 너라고 부르겠다며 대뜸 맞장 뜨는 이승기와 달리 서지원은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그대 그걸 알고 있나요 내가 그댈 사랑한다는 걸. 가끔씩 멍하니 그댈 몰래 훔쳐보곤 했다는걸. 몇 년간의 여차저차한 경험으로 연하남이라면 이부터 갈리는 나는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이승기 노래처럼 다짜고짜 너라고 부를게 니가 뭐라고 하든지! 라며 땡깡을 부리면 이놈의 자식 버르장머리 봐라, 하며 걷어차 줄 자신이 있지만 이렇게 조용히, 혹시 그댄 알고 있냐고, 들킬까봐 냉정한 척 했는데 이젠 더 이상 자신이 없다고 조근조근 속삭인다면 완전 자신 없다. 걷어차긴 커녕 저기 얘 우리 이러면 안 돼, 돼, 돼, 돼… 라며 항복해 버릴 게 뻔하다.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지나간다

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면 (‘내 눈물 모아’)

어쨌든 이 달콤하고 심심한 남자는 고작 20살에 죽었다. 76년에 태어나 96년에 죽었고, 채 성년이 되기도 전이었다. 남자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애처로운 나이였다.‘내 눈물 모아’는 공전의 히트를 했지만 죽고 나서 뭐가 됐든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덕 볼 일도 없으니 도무지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일이다.‘내 눈물 모아’는 좋은 노래였지만 그런 거국적 히트는 어쩐지 서지원과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또한 내 편견이다. 그리고 그건 많은 사람들의 편견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유독 굵직한 가수들이 죽었는데 서지원의 죽음은 듀스 김성재의 죽음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않았고, 김광석의 죽음처럼 수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지도 못했다. 아쉽지만 그것은 크지 않은 파문이었고, 오히려 철딱서니 없는 어린 아이돌 가수가 홧김에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끊었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사후 발표된 3집 앨범 <Made in Heaven>에 실린 타이틀곡은 그런 비난에의 대답 같은 노래였다. 시간이 덜어주지 않는 슬픔은 없나 봐. 사랑도 이별도, 그때가 좋았어. (‘그때가 좋았어’)

스무 살은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기엔 가소로운 나이지만 서지원은 죽어 버림으로써 살아 있을 때, 살아 있던 때, 그때가 좋았다고 말할 영원한 권리를 획득했다. 죽은 사람은 침묵하고 산 사람은 어쨌거나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해가 갈 때마다 꼭 싸늘한 계절에,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어김없이 그 가사가 생각이 난다. 사랑도, 이별도, 그때가 좋았어… 오바하기 좋아하는 성격대로 나는 내가 지나온 모든 날들이 토할 만큼 싫지만 술에 반쯤 취해서 어디 길바닥에 앉아 좀 깨고 집에 가야지, 이런 날이면 변함없이 흥얼흥얼, 그 노래를 부르게 된다. 시간이 덜어주지 않는 슬픔은 없나 봐, 하지만 이젠 그 모두가 오래 전 일 같아… 그때가 좋았어. 그렇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말하겠지 “그때가 좋았어”

좋아하는 가수 누구예요? 하는 질문에 서지원 노래 좋아하는데요, 하고 대답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누구지? 프로게이머? 이거나 아니면 대부분 조소다. 아 그 자살한 애? 걘 도대체 왜 죽었대? 그 반문들에는 대부분 별 것도 아닌 애가 죽어서 떴다는 투가 들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한테 얼마나 대단한 별건지 모를 일이다. 그냥 내 취향을 비웃으며 누가 그런 소리를 하면, 댁은 얼마나 별거냐, 라고 하진 않고 그냥 말한다. 제 명보다 짧게 죽었으면 다 개죽음이지 잘난 죽음 못난 죽음 따로 있나요. 그냥 죽은 사람은 다 불쌍하고 산 사람도 다 불쌍하지… 그래서 죽은 사람 중 이렇게 운 좋은 사람은 노래로라도 남고 산 사람은 술 마신 날 그 노래에 제 추억을 섞어 죽은 사람을 다시 한 번 불러낸다.
헤어졌던 마지막 날에 너를 미워하며 마음이 아파 긴 밤 지샌 어제의 하루들. 하지만 이젠 그 모두가 오래 전 일 같아. (‘그때가 좋았어’)
분명히 금방, 또 오래 전 일이 될 오늘을 살아내면서.

 

 

출처 :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12002003&article_id=42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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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2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서지원. 제 한때 애창곡이 '내 눈물 모아'랑 'I Miss You'였는데..
오랜만에 노래방이나 가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