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남겨놓았을까
정거장 옆 낡은 공중전화에는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 돈
60원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어디로도 반환되지 않을 것이다
이 봄
긴 병 끝에 겨울은 가고
들판을 밀고 가는 황사바람을 따라
부음은 왔다 어느 하루
민들레 노란 꽃이
상장(喪章)처럼 피던 날 너는
어지러이 마지막 숨을 돌리고
나는 남아 이렇게 안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떠도는 홀씨 환한 손바닥으로
받아보려는 것이다
저 우연한 단돈 60원이
생의 비밀이라면
이미 써버린 지난 세월 속에서
무엇과 소통하고 무엇이 남아
앞으로 남은 시간을 견디게 할 것인가
산다는 것이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환되지 않는 것조차 남기고 간다는 것을
너는 알았을 것이다
나만 몰랐을 것이다 호주머니 속의 두 손처럼
세월이 가고 다시 이 자리에 섰을 때
무엇이 달라져 있을 것인가
나 또한 바람 속에 흩어져 있을 것이고
흩어진 자리에 민들레꽃 한두 송이
너를 기억할 것이다 안녕, 사랑아-28-29쪽
불치병을 앓고 있는 시인. 공중전화에 남겨진 돈 60원에서 인생을 본다. 누구와 '통화'할 수 있을 뿐 반환되지는 않으며, 반환되지 않는 것조차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마침 그 날은 친구의 부음을 받은 날. 겨울동안 앓았던 시인은, 이제 봄이 되었는데, 노란 민들레가 피었는데 부음을 받아들고 민들레가 상장(喪章)처럼 피었다고 한다. 산다는 것은 통화라는 것. 그리고 매순간 동전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죽음도 그렇다는 것을. 시인은 '세월이 가고 다시 이 자리에 섰을 때' 달라진 것은 '나 또한 바람 속에 흩어져'있고 민들레꽃 한두 송이만이 '너를 기억할 것'이라고 한다. '안녕,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