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이거 보고도 밥이 넘어가냐?

도브의 어떤 용기

전지현의 17차 CF

<CSI>를 보면서도 나뒹구는 시체를 반찬 삼아 밥 한 공기 뚝딱 비우던 나였다. 그런데 최근 CF 한 편에 밥맛을 잃고 말았다. ‘내 몸을 위한 욕심은 끝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난 끊임없이 끊임없이… (물만 마셔)’ 안 그래도 선녀 같은 전지현이 드디어 인간계를 떠나 승천하려는 건가? 아, 아니다. 곡기를 끊고 물만 마셨더니 몸이 가벼워지다 못해 공중부양의 경지에 이른 게로구나. 단식의 후유증인 듯 매가리 없는 그녀의 눈빛에선 은근히 오만함이 묻어난다.
‘너, 그 허벅지를 하고 밥이 넘어가니?’
아, 네. 조용히 밥숟가락을 놓아야 할 듯싶다.
S라인까진 괜찮았다.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고. 의학의 힘을 빈다 해도 동양인에겐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 힘든 커브를 구사하는 소수의 여인네들은 ‘적’이 아니라 ‘미덕’. 박수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뒤이어 44 사이즈가 이슈가 된 건, 노출의 계절 여름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말이 44지 타이트한 55에 태그만 바꿔치기 한 쇼핑몰의 얄팍한 상술이라 속으로 코웃음 치면서.

마른 몸매 광풍, 염장지르는 그녀들

고소영의 오늘의 차 CF(위), 김아중 상큼한 현미흑초 사랑초 CF(아래)

날이 추워지면 한풀 꺾이지 싶었다. 하지만 웬걸?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는데도 살에 대한 혐오는 식을 줄 모른다. 피하지방이 절로 두툼해지는 겨울일수록 경계를 늦추지 말자는 건 이해하겠는데, 이젠 S 라인이고 나발이고 가슴살을 포기하고서라도 ‘무조건 빼빼 마르자!’식이다. 니콜 리치가 거식증으로 입원했다더라, 오프라 윈프리가 과도한 다이어트로 쓰러졌다더라 등의 가십 기사도 관심만 증폭시킬 뿐,‘거봐, 다 가진 셀러브리티도 살 못 빼 안달이잖아?’라며 여자들은 더 자극받고 ‘마른 몸매 열풍’은 번져만 가고 있다.

모든 걸 이 죽일 놈의 스키니진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광고의 부채질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전지현의 공중부양을 필두로 특히 젊은 여성을 겨냥한 음료 광고들은 죄다 한 목소리다. ‘(먹거린 기본) 물도 함부로 마시지 마!’ 돌아온 CF퀸 고소영은 일반 여성과는 거리가 먼, 모델아카데미에서 단체로 캐스팅한 엑스트라들을 견제하며 0칼로리에 집착한다. (포토샵 효과든 말든) 지도 충분히 늘씬쭉쭉하면서! 언니, 욕심도 과하셔라. 20대 김아중은 더 잔인하다. 남들은 뱃살 두께가 여성지니 해리포터 하드커버니 하는데, 그녀는 아예 잡히지도 않고 심지어 튕겨낸다. 집으려던 손가락만 무안하게시리.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20년 전 화장품 광고 모델의 몸무게는 여성 평균치보다 8% 정도 가벼웠으나, 현재는 무려 23%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알다시피 광고는 그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마른 모델이 대세라는 건 대중이 마른 몸매를 보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거기다 대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들이대는 건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도브의 발칙한 누드 도발

도브의 리얼 뷰티 캠페인 CF

도브의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이 의미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캠페인을 처음 본 건, 잠시 뉴욕에서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하던 2004년. 모델이 아닌 일반인,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무슨 대회 입상자도 아니고, 뱃살이며 팔뚝이 장난 아닌 여자들의 세미 누드가 뉴욕 거리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연예인처럼 날씬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기 몸매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건전했지만 내 눈은 거부반응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항의가 빗발쳤다. ‘집에서 보는 것도 모자라 왜 밖에서까지 봐야 하나?’ ‘이것도 공해다!’ 악의적인 낙서로 뒤덮인 광고판도 수두룩했다.

평범한 여성이 광고 모델로 거듭나는 도브 진화 CF

도브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더 꿋꿋하게 “나이 든 것이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받아들일까요?”라는 논쟁적인 카피와 함께, 96세의 할머니를 등장시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84초짜리 동영상을 공개해 또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진화’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은 평범한 여성이 헤어와 메이크업, 대대적인 포토샵 작업을 거쳐 광고모델로 거듭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광고판 속의 그녀를 아름답다 생각했겠지만 결국 속은 셈이다.

광고는 단지 광고일 뿐이다. 군살 없는 몸매가 번듯한 아파트만큼이나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 광고가 그런 사람들의 인식을 고칠 순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편들고 부추기기만 할 텐가? 도브 캠페인을 보라. 위험을 무릅쓴 그들 덕에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잠깐이나마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광고의 몫은 그걸로 차고 넘친다. 이참에 우리나라 도브 광고도 좀더 용기 내줬으면!


 

출처 :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12003003&article_id=4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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