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울프의 <등대로>를 읽어나가면서 처음 느낀 것은 불편함이었다. 그녀/서술자가 남성을 묘사하는 것이 너무 편향되어 있는 듯 해서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성인 남성은 모두 성격이 지랄맞다. 램지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여성들에게는 '동정sympathy'(동정이라 번역됬는?공감이나 동감으로 번역되어도 좋을 것 같다)을 요구한다. 그러니까 성인 남성들은 모두 'tyranny'(횡포/폭정)하고 일면은 덜 자란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 이것이 울프가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만 같아서 못내 불편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은 여자 친구들은 그것을 전혀 불편하지 않게, 당연하게 여겼다. 남성이 tyranny하고 덜 자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흠. 생각해보면, 남성 작가들이 상투화되게 여성을 묘사하는 폭력성을 이에 익숙해진 남성 독자들은 별 문제의식 없이 넘어가고 있었다면, 울프는 반대쪽에서 이를 자극하는 셈.

그래서 그 불편함이 반가웠다.

그리고, 이 소설을 나는 매우 단순하게 읽어서, 그냥 단순하게 읽혔다. 결국 나도 문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학생이니(이였으니?), 텍스트라는 것을 '일반독자'보다는 분석적(?)으로 읽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유사-군발이(pseudo-soldier? ㅋㅋ) 공익. 공익근무를 하면서 읽은 울프는 단순한 도식으로 정리된다.

즉,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이의 변형/ 그리고 한 여성의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변증법적 지향

램지는 강력한 부권과 가부장을 체현한 인물이지만 알고보면 약한 면모도 지닌 인물. 여성의 sympathy(공감/동정)을 요구하고 아이들에게 '금지 명령'을 끊임없이 내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적인' 부인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현실적 아버지상'.

램지부인은 여신과도 같은 이로, 자연과 신비로운 합일감을 느끼며 '존재체험'을 한다. 램지 부인 또한 남성을 통제하고 조종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한편으로는 내면의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상적 어머니상'. 번접할 수 없는 여신이여!! 오오. 읽으면서 짜증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울프의 이상적 자아이자 그녀의 어머니. 아직도 자신의 어머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유아성이 조금은 구역질 났다. 이 소설에서 얼마나 그녀를 '신적'으로 칭송하는지, 넌덜이가 날 정도. 그럼에도 이것이 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램지 부인을 초반에 죽여버리기 때문.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게 돌연사하게 되는 램지부인. 그래야 novel이 되는 것. 아니면 거의 epic. -_-;

램지부부의 아이들은 8남매이지만 대부분 1차세계대전 중에 죽거나 아이 낳다가 죽는 등이고, 마지막에는 남자 아이인 제임스와 여자 아이 캠이 남는다. 둘 다 아버지의 폭정에 반대를 하지만, 제임스가 주도적으로 극렬히 반대하고 캠을 반대로 이끄는 반면, 캠은 은연중에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오, 오이디푸스! 결국 제임스가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인정'이었던 것이 판가름나면서, 화해 된다. 제임스 또한 남성 성인이, 즉 '아버지'가 된 것.

마지막으로 릴리는 화가이면서 노처녀로, 남성들이 '여성이 무슨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라는 편견에 맞서는 인물. 울프의 현실적 자아의 반영된 모습. 남성들을 경계하며 현실적인 여성의 역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만 일상에서 이의 거부를 실천한다. 울프의 현실적 자아의 모습이 얼마나 가련하고 안타까운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인 램지부인 사이의 변증법적인 합일이 결국 이 소설의 주제인셈.

이 소설의 마지막에는 릴리가 마침내 '통찰력'을 얻었다는 표현과 함께 마무리 하지 못했던 그림에 중대한 변화를 주는 것으로 끝난다. 릴리 또한 '램지 부인화'되었다는 것일까? 그것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녀는 솔로이고, 남들을 조종하려는 욕망도 덜하다. 현실적 자아와 이성적 자아의 합일. 울프의 탄생, 이랄까?

최근의 한국소설들에 대해서 그닥 희망을 못 찾는 나로서는, 80년전 울프의 이 소설은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하고 화나게도 하고, 아하, 그렇구나, 이런 생각도 들게한 독서체험이었다. 이를 통해 다시금 소설이라는 것의 존재의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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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er16 2006-11-2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너는 내가 아는 남자 중 가장 울프를 긍정적으로 읽은 사람인 것 같아. 난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 말다 하는 중. 결국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겠지.

기인 2006-11-2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라뇨~ 저도 나름 긍정적으로 본 거에요. ㅎㅎ
ㅎ 영문학 박사님께서 읽어주시니 부끄러워요 ㅜㅠ

seeker16 2006-11-2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접속사 "그래도"는 그런 의미로 쓴 게 아니라...넌 긍정적으로 읽었으니 정말 훌륭하다..뭐 그런 얘기였어. 그래도는 대체 왜 쓴 거지? 의미없는 그래도였음. ㅋ

기인 2006-11-2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 그래도는 영어로 뭘까요? 음.. 잘 안 떠오르네,
but? although? 허허~ 역시 언어는 접속사라도 100% 딱 맞는게 없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