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 카미노 데 산티아고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순례자의 길을 걷다
신석교.최미선 지음 / 넥서스BOOKS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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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음이다. 어떤 마음으로 길을, 풍경을, 도시를, 사람을 품었는가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면 오히려 많은 것이 보인다. 볼 것이 없으면 나를 바라보게 된다. 순례길은 그 자체로 인생의 축소판이다. 인생이든, 여정이든, 모두 우리 앞에 놓인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지겹다고 되돌아갈 수 없고 즐겁다고 마냥 느리게 갈 수만은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먼저 앞선 사람이 뒤쳐지기도 하고 뒤쳐졌던 사람이 앞서기도 하는 이 길. 살아가면서 잘나가던 사람이 멈칫하기도 하고 멈칫했던 사람이 잘나가기도 하는 인생길과 비슷하다." 

"한동안 화살표 없는 길에서 헤매다 보니 괜히 불안해져 화살표를 찾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라니. 우리네 사는 인생길과 비슷하지 싶다. 주어진 길로만 가다보면 일탈하고 싶고 일탈하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앞만 보고 걷는 길은 절반의 카미노다. 인생도 여행도 뒤돌아볼 때 더 풍요로워진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왜 똑같은 말을 반복하나 했더니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책이 한 권이 아니다. 순례자의 길, 나에게는 '연금술사'의 코엘류로 인해 익숙한 이 단어가 최근 몇 년간 한국인에게는 꽤 '핫'한 화두였나 보다. 이 책에도 나오는데,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한국인이 요즘 그렇게도 급증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니,(정확히는 읽기보다는 '보기'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사진들은 내가 본 여행책들의 사진 중 가장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사진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비전문가의 감성에 의존하는 사진과는 다르다. 여행자의 들뜬 마음보다, 냉정한 거리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사진을 보며 나만의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사진은 한 장이지만, 사실은 수백, 수천 장이 될 수 있다.) 나도... 가고 싶다. 산티아고에. 하필 5-6월이 제일 좋다니깐 마치 나를 위한 것 같은데? 

한 가지 대단한 점은, 부부에 시어머니까지 함께 갔다고~!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을 나란히 때려친 부부도 놀랍지만, 셋이 함께 갔다는 것도 상식을 뛰어넘는다. 생각이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마음이 맞는 시어머니를 만난 것도, 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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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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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여자는 말한다. 자기는 영웅이 아니라고.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라고.

아무도 자기만큼 그 아이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서 직접 나섰을 뿐이라고.

왜 이 여자는 이렇게까지 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든 의문이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스밀라는. 차가워보이는 그녀가 사실은 누구보다 따스한 사람이라서?

남의 일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는 것일까? 자기 아버지에게도 ‘노력해서’ 무관심해지려는 사람이?

 

나는 학교 성적이 썩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아마도 이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나는 덜 피곤할 것이고 학교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며 성적도 더 잘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용돈이 생기니까? 뭐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다. 어차피 과외를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해도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도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굳이 학생을 가르쳐야 할 만큼 경제적인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일을 엄청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학생을 많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 그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 할까, 내가 내 자신을 챙기기에도 너무나 버겁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때, 내 자신의 삶의 무게에 치여서 압사되는 느낌이라 소소한 재미에 차마 눈을 돌리지도 못할 만큼 지쳐있을 때, 과연 내가 쓸모가 있기는 한 지, 지금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혹시나 세상에 왔다 간 게 의미가 있기나 할런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가 주변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끊임없이 자책감이 들 때, 내가 내 인생을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하게 방치해도 되는지 회의가 들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아가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끌어오고 싶은데 그게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희미해진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 아니 지금이라도 하면 되는데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을 때, 그 때 유일하게 나에게 ‘현재의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미래의, 가 아니라 현재의 나, 지금 내 자신만으로도 충분히 남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일상의 나머지 부분을 견뎌낼 수 있고 힘낼 수 있다는 것, 늘 남에게는 있으나마나한 치이는 존재, 아니 늘 성가시게 굴어서 귀찮은 짐이 되는 존재에 불과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고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도 스밀라도, 그래서 그것의 존재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놓치는 순간 내 자신이 무너져버리는 경험을 목격할 수 있으니까. 눈물이 났다.

 

이 두툼한, 꽉 찬, 숨막히는, 대단한, 엄청난 소설에서 수많은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부딪혀고 명멸했다. 그 생각들 중 내가 활자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위에 언급한 것이다. 나머지 것들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야지. 나는 이 책을 사기로 했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알아내려고. 느끼려고. 내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고. 그러니까 나의 독후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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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생각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은 열려 있고, 진정한 내적 자아는 밖으로 저절로 스며나온다고 한다. 그런 말은 죄다 틀렸다. 아이보다 더 비밀스러운 사람은 없으며, 아이보다 더 절실하게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항상 아이들을 깡통따개로 따서 안에 뭐가 들어 있나 보면서 그 안을 더 쓸모 있는 잼으로 바꿔줘야 하는 게 아닌가 궁금해하는 세상에 대한 대응이었다.(74p)

 

나는 전화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보고 말하고 싶다.(78p)

 

어떤 과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의 존재만 확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고트호프 길이 아침 5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84p)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 양 매 걸음을 떼어야 한다.(145p)

 

나는 바닥에 대고 다리를 흔들었다. 이제 공포가 찾아들었다. 이것은 내가 37년 동안 피하려고 노력해왔던 것이다. 나는 구조적으로 세상에서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을 연습해왔다. 단념하는 법을. 어떤 것에 대한 희망도 버렸다. 자기 비하의 경험이 올림픽 경기종목이 된다면, 나는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250p)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살아보는 것. 그 문화 속으로 이사하여, 손님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해서 언어를 배운다. 어떤 순간이 되면 이해가 찾아온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 현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가 카나크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든지 다른 사람에게든지 얘기하기 시작하면 결코 한번도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다시 한번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처럼, 수리공의 소파에 앉아 내가 왜 이누이트들과 연관성을 느끼는지 설명하고 싶을 때가 그렇다. 그건 이누이트들이 한 점 의심의 그림자 없이 삶이 의미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의식속에서 화해할 수 없는 모순들 사이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고 간단한 해결책을 찾지도 않으면서 긴장감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이 열락에 이르기까지 짧고도, 짧은 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이 동족 인간을 만났을 때, 판단하지 않고 편견으로 명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임을.(259p)

 

최악의 것은 분노가 아니다. 최악의 것은 분노 뒤에 있는 욕망이다. 순수한 감정으로 사는 것은 가능하다. 진정으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에게 매달리고 싶은 나의 비밀스러운 갈망이다.(5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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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판타지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성기 옮김 / 문학의문학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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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좀 자세한 묘사에 많이 놀랐다. 여자 작가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쓴 글을 본 적이 있었던가? 작가 소개를 보고 나서는 더 놀랐다. 나츠는 저자의 분신이라고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물론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논픽션이 아니다. 그러나 '즐거운 나의 집'에서 위녕의 엄마를 '공지영'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힘든 것처럼, 이 소설은 작가의 자기 고백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만약 그렇다면 작가는 최소한 나츠처럼, 아니 아마도 그 이상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여자로서도, 작가로서도. 그렇다면 이 책은 스스로 고통을 견뎌낸 흔적이며 결과물이다. 일단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너무나 사랑했던 남자의 변심, 그로 인해 힘들어했던 나츠 또한 똑같이 변해버린 태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머리로는 자꾸 아니라고 해도 가슴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결국 끝까지 가서야, 끝을 보고 나서야, 차라리 안 보고 안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바닥까지 샅샅이 확인해야만 단념이 된다는 사실이 참 가슴 아프다.  

소설의 제목은 동명의 노래에서 따왔다고 한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노래... 남녀는 결국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두 개의 판타지를 그릴 수 밖에 없다고... 결국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두 다리를 땅에 대고 서야만 된다고... 역설적이지만 그래야만 남녀관계 또한 삐걱이지 않게 된다. 이 당연해 보이는 진실은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야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니 절절히 느끼게 된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니까. 뇌와 심장의 차이 때문에 모든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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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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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든게 된 건, 사실 '김언수'를 '김연수'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었다. '김연수'의 한 소설에 반해서 이 작가의 책을 찾던 중 집어든 게 이 책이었다. '아, 내가 잘못 보았구나'하고 내려놓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게, 책 표지가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어떻게 죽여드릴까요?' 암살을 설계하는 자들이 있고, 그 설계를 실행에 옮기는 자들이 있다. 표지에 있는 한 남자의 지극히 긴 그림자. 이 모든 것이 나를 끌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동료 작가들의 경탄과, 독자들의 열광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당연하다. 특이하고 잔인한 소재를 냉정하게 풀어낸 서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묘사,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중심을 잃지 않는 구성, 은근히 뒷통수를 치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 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 마지막 래생의 선택은, 사실 이름만 보고도 결말은 충분히 짐작했지만 마지막까지 제발 아니기를 아니기를 하고 바라다가 맥이 탁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아마도 '인간다움'을 저 깊숙이서 갈구하고 있던 자가 나에게는 없는 줄 알았던, 적어도 이번 생에서는 포기하고 살아야 할 줄 알았던 그것이 나에게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안타깝다. 

책 소개를 보니 연재되는 동안 영화화가 된다면 어떤 배우가 연기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독자들간에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고 하는데 제대로 영화화가 된다면야 바로 영화표를 끊고 가서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만들어진다면, 영화에서는 '미사'의 이야기가 좀 더 자세하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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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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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정도로까지 평이 좋을지는 몰랐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 

문학의 영원불멸의 주제, 사랑. 늘 그 사랑을 탐구하고, 사랑에 집중하고, 사랑을 쓰는 작가가 기욤 뮈소이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서점에서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책상에서도, 가방 안에서도 쉽게 발견되어서 적어도 표지만큼은 익숙했다. 실제로 내가 읽은 책은 이 '종이 여자'뿐이지만. 

알랭 드 보통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나 '우리는 사랑일까'는 내가 간절히 원해서 읽었지만 왠지 기욤 뮈소의 책들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등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서도 왠지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기욤 뮈소의 책들도 다 읽고 난 후에 꼭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내가 다른 기욤 뮈소의 책을 더 읽은 후에 얻어야 할 것 같다. 접어두고, 일단 이 책에 대해서만 요약하자면, "자세한 묘사덕에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쉽게 그려지고 소설에 빠져들수 있게 하지만, 소설의 모든 것이 전에 이미 한 번 본 것"이라는 것이다.  

책 속의 만들어진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교감, 그것은 이미 수많은 소설에서 되풀이 되었다. 몇 년 전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히 이 소설보다는 훨씬 더 앞섰을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 소설에서도 이러한 설정이 등장하는데, 기욤 뮈소는 먼저 나온 이 소설의 참신함을 넘지 못했다는 것만 밝혀둔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이 역시 익숙한 피그말리온 신화의 변형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결말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상대에게 진짜 사랑을 느낀다는 설정이 진부하다는 것은 진부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진부할 정도이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사랑을 찾게 되는 해피엔딩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이며, 상대를 끊임없이 바꾸는, 소위 '나쁜 여자' 혹은 '나쁜 남자'에게 연민을 느끼며 내가 그이를 바꾸어보리라, 고 헌신했다가 헌신짝처럼 버림받고 나또한 상대의 컬렉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는 소설 초반의 설정 또한 계속 말하면 입 아프다. 

작가의 이름을 보건대 분명 프랑스나 벨기에 쪽의 혈통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묘사는 토종 아메리칸(이라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미국인)보다도 더 미국적이다. 그나마 내가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를 보아서 작가의 의도대로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이건 뜬구름잡는 식이다. 왜 꼭 이 작가는 인물을 묘사할 때 할리우드 영화 배우, 인기 미드 출연자를 예로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나마 내가 별 하나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한국에 대한 작가의 애정(!) 때문이었다. 초반에 한국의 '윤진'이가 작가에게 보낸 메일이야 그렇다쳐도, 꽤 중요한 인물이 한국인으로 나오는데 그의 설정이 매우 구체적이다. 글쎄, 한국에서 출간된 뮈소의 소설들이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걸까? 작가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을 등장시킨 걸 보면 우리나라의 반응이 제일 뜨거웠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는 분명히 있다. 장점도 많다, 이 소설에는.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작가가 소설 내내 달려온 여정의 결말이 그 정도였다면, 결국 하고 싶어했을 말이 그 이야기라면 굳이 앞에 그런 설정들이 필요했을까? 다 읽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작가가 과연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청초하고 매력적이지만 다소 심심하고 백치미가 느껴지는 여자를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책 속의 책의 그녀, '종이 여자'와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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