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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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여자는 말한다. 자기는 영웅이 아니라고.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라고.

아무도 자기만큼 그 아이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서 직접 나섰을 뿐이라고.

왜 이 여자는 이렇게까지 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든 의문이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스밀라는. 차가워보이는 그녀가 사실은 누구보다 따스한 사람이라서?

남의 일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는 것일까? 자기 아버지에게도 ‘노력해서’ 무관심해지려는 사람이?

 

나는 학교 성적이 썩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아마도 이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나는 덜 피곤할 것이고 학교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며 성적도 더 잘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용돈이 생기니까? 뭐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다. 어차피 과외를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해도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도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굳이 학생을 가르쳐야 할 만큼 경제적인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일을 엄청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학생을 많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 그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 할까, 내가 내 자신을 챙기기에도 너무나 버겁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때, 내 자신의 삶의 무게에 치여서 압사되는 느낌이라 소소한 재미에 차마 눈을 돌리지도 못할 만큼 지쳐있을 때, 과연 내가 쓸모가 있기는 한 지, 지금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혹시나 세상에 왔다 간 게 의미가 있기나 할런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가 주변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끊임없이 자책감이 들 때, 내가 내 인생을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하게 방치해도 되는지 회의가 들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아가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끌어오고 싶은데 그게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희미해진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 아니 지금이라도 하면 되는데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을 때, 그 때 유일하게 나에게 ‘현재의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미래의, 가 아니라 현재의 나, 지금 내 자신만으로도 충분히 남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일상의 나머지 부분을 견뎌낼 수 있고 힘낼 수 있다는 것, 늘 남에게는 있으나마나한 치이는 존재, 아니 늘 성가시게 굴어서 귀찮은 짐이 되는 존재에 불과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고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도 스밀라도, 그래서 그것의 존재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놓치는 순간 내 자신이 무너져버리는 경험을 목격할 수 있으니까. 눈물이 났다.

 

이 두툼한, 꽉 찬, 숨막히는, 대단한, 엄청난 소설에서 수많은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부딪혀고 명멸했다. 그 생각들 중 내가 활자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위에 언급한 것이다. 나머지 것들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야지. 나는 이 책을 사기로 했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알아내려고. 느끼려고. 내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고. 그러니까 나의 독후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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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생각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은 열려 있고, 진정한 내적 자아는 밖으로 저절로 스며나온다고 한다. 그런 말은 죄다 틀렸다. 아이보다 더 비밀스러운 사람은 없으며, 아이보다 더 절실하게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항상 아이들을 깡통따개로 따서 안에 뭐가 들어 있나 보면서 그 안을 더 쓸모 있는 잼으로 바꿔줘야 하는 게 아닌가 궁금해하는 세상에 대한 대응이었다.(74p)

 

나는 전화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보고 말하고 싶다.(78p)

 

어떤 과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의 존재만 확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고트호프 길이 아침 5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84p)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 양 매 걸음을 떼어야 한다.(145p)

 

나는 바닥에 대고 다리를 흔들었다. 이제 공포가 찾아들었다. 이것은 내가 37년 동안 피하려고 노력해왔던 것이다. 나는 구조적으로 세상에서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을 연습해왔다. 단념하는 법을. 어떤 것에 대한 희망도 버렸다. 자기 비하의 경험이 올림픽 경기종목이 된다면, 나는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250p)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살아보는 것. 그 문화 속으로 이사하여, 손님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해서 언어를 배운다. 어떤 순간이 되면 이해가 찾아온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 현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가 카나크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든지 다른 사람에게든지 얘기하기 시작하면 결코 한번도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다시 한번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처럼, 수리공의 소파에 앉아 내가 왜 이누이트들과 연관성을 느끼는지 설명하고 싶을 때가 그렇다. 그건 이누이트들이 한 점 의심의 그림자 없이 삶이 의미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의식속에서 화해할 수 없는 모순들 사이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고 간단한 해결책을 찾지도 않으면서 긴장감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이 열락에 이르기까지 짧고도, 짧은 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이 동족 인간을 만났을 때, 판단하지 않고 편견으로 명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임을.(259p)

 

최악의 것은 분노가 아니다. 최악의 것은 분노 뒤에 있는 욕망이다. 순수한 감정으로 사는 것은 가능하다. 진정으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에게 매달리고 싶은 나의 비밀스러운 갈망이다.(5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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