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제 오랜 세월 공부 열심히 한 덕에 학위를 받게 되네요. 앞길에 대한 문제로 생각이 많을 대입니다. 음악의 길로 갈 것인지, 음악과 학문을 병행할 것인지, 그리고 귀국을 할 것인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곳에서 당분간 사는 것이 좋은지 고민을 하게 되겠군요. 그런 문제에 나는 별로 도움을 줄 만한 실력이나 혜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 자신이 비슷한 고민으로 젊은 시절 오랫동안 잠 못 이룬 경험도 있지요. 그 당시 내가 귀국하지 못하고 미국에 머물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적극적으로 필요로 한 곳이 바로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산다는 것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고 10년 뒤, 아니 1년 뒤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당시의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생각은 내가 아마추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나는 아직 장인이 아니다, 나는 아직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공부를 하는 데 제일 많은 기회를 주는 곳이 어디인가, 그런 의문도 컸습니다.

그런 말 들었지요? 사람은 결혼을 해도 후회하고 결혼을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 후회 안 하는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그 후회의 양과 질이 문제이지요. 천천히 잘 생각해서 모든 일을 결정하세요. 내가 혹 몇 마디 여기에 보태도 된다면, 조 군이 힘들여 공부한 생명공학을 아마추어라는 생각으로 겸손히 더 공부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잠을 좀 덜 자고 내가 감당해야 할 팔자라고 생각하고, 윤석 군이 가진 음악적 재질과 열정, 그 황홀을 버리지 말라는 말도 건네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되도록 너무 늦기 전에 고국에 정착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이유는 명확히 말할 수는 없어요.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후회를 덜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토리노에 도착한 그 날, 영국의 학교로부터 거절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박사 후 과정도 없이 교수 자리를 지원하는 것이 난센스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학회장에 들어서서부터 예전에 학회에 다닐 때 그렇게 재미있고 궁금하던 기분은 난데없이 사라지고, 노벨 화학상까지 탄 슈퍼스타급 연구자의 기조발표도 가서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지요. 그래서 일주일 내내 계속 토리노 시내를 돌아다니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논문심사가 끝나고 시작된, 아니 사실 그간 잠시 잊고 있던 질문과 그 질문들에 대한 답과, 그 답에 대한 100여 가지는 되는 것 같은 이유들을 하나씩 들추어보면서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구를 그만두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이지요.

이곳에 10년, 20년을 산 것도 아니고, 고국에서 쫓겨나듯 오거나 고국이 싫어서 망명을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고 자진해서 온 길이었는데....... 왜 지금 하던 연구를 그만두려는 걸까, 무엇보다 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걸까, 수없이 되뇌어보았습니다. 이건 급작스럽게 내린 결론일까. 아니면 여태껏 축적되어온 무언가가 결국 때가 되어 드러난 것뿐일까. 정말 로잔과 연구자로서의 인연이 다 되어서 떠날 ‘때’가 된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하다못해 가족들에게나 교수님에게도 납득할만한 이유를 드려야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굳이 중심에 있는 이유 하나를 끌어내보았는데, 그동안 그리 짧지만은 않았던 20대 말과 30대 초반의 외국 생활 동안 저의 내부에 끊임없이 쌓여온 어떤 내상이 이제 역으로 서서히 저를 무너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가진단을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두 가지 길을 병행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평생을 걸어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묘한 보완 작용을 할 것입니다.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시인의 길을 오래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나는 편한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고난과 인내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인의 삶이란 당치 않은 것이지요. 내가 만약 시인이 아니었다면 나같이 감정적이고 선병질적으로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으로 외국의 의사 생활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건방진 말이지만 나는 의사로서 오랜 세월 동료 의사나 의대생의 애정과 존경을 받아왔고,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나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제히 소식을 방영하기도 했지요. 윤석 군이 혹 힘들다고 소리를 가끔 지를 수는 있어도 두 가지 전공을 함께 이어가면 생의 끝에 절대로 후회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나에게는 있습니다.

 

언젠가 마음속으로 누군가가 네가 사는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knowing’이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알아가는 것. 깨달아가는 것. 무언가들 수동적으로 배운다기보다는 자극에 반응하는 내 내부의 앎.

 

12년간 공학자로 살아왔지만, 공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도, 위로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남은 하나,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럽의 생활에서 비판적으로 그러나 깊게 깨달은 것은 ‘지금’의 중요성입니다. 왜, 영어로도 현재를 ‘present’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주어진 선물. 이 순간순간의 기쁨, 행복, 즐거움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놓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앞만 보고 인내하고 달려가라는 프로그래밍만 되어 있지, 왜 지금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의대 본과 2학년이 되자마자 썼던 글로 의사이면서 문학자였던 사람들을 모은 글이지요. 시인이며 비뇨기과 의사인 독일의 고트프리트 벤, 소아과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미국의 윌리엄 윌리엄스,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 영국 시인 존 키츠, 독일 소설가 한스 카로사 등 수십 명의 의사 문인을 열거하면서 썼는데, 편집자분들은 역사적 기록물이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사실 나에게는 학생 시절, 의사가 된 뒤에도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사람 중에서 괜찮은 글쟁이도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사전을 뒤지고 땀 흘려가며 이름을 추려냈던 슬프고 불안에 찬 시절의 산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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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핑 베토벤 : 특별판 (2disc)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 에드 해리스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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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예술가와 그 예술가의 ‘그녀’의 이야기는 많다.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앤디워홀과 에디 세즈윅, 쇼팽과 조르주 상드 등. 이 영화는 픽션이다.

귀머거리 베토벤이 등을 돌리고 있어서 자신을 향한 박수를 모르자 한 여인이 뛰어나와 그를 돌렸다는 일화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 일화는 어릴 때 위인전에서 읽어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고 그 에피소드를 묘사한 삽화도 아직 기억이 난다. 기네스 펠트로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처럼 실존했던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만든 픽션인 셈이다.

이 영화의 평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그 논란 중 하나였던 베토벤 캐릭터에 대해서는 오히려 영화에서 잘 살린 것 같다. 귀머거리가 됨으로써, 다소 냉소적이고 우울한 면, 그러면서도 유일한 혈육인 조카에게 집착하는 모습, 젊은 여인의 재주를 인정하면서 그녀의 젊은 잘생긴 애인을 질투하는 모습... 어떤 사람은 베토벤을 주책 맞은 늙은이로 표시했다고 불평했지만 오히려 가장 베토벤다운 시절의 베토벤의 모습을 이 영화는 잡아낸 것 같다.

분명 젊은 시절의 베토벤은 좀 더 도전적이었을 것이고, 반항적이었을 것이고, 젊은 예술답게 감성적이면서도 세심했을 것이다. 귀먹기 전의 그는 다정다감한 젊은이였을지도 모르지. 이런 그의 모습은 당대 여인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을 것이고 어쩌면 화젯거리에도 종종 오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노년의 베토벤도 그러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서을 지녔더라도 그가 성인도 아닌데 귀머거리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노인으로 자식조차 남기지 않았던 그의 말년은 분명히 영화 속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카피스트 안나다. 다이앤 크루거는 트로이에서 봤을 때는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는데 예쁜 인형 같은 역보다 이런 역이 훨씬 더 어울린다. 지적이면서도 성숙한, 도시적이면서도 순수한 매력이 있다. 또 안나는 모성애도 느껴진다. 베토벤이 그녀 앞에서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그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댈 수 있고, 응석부려도 질책하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고 비웃지도 않고 받아 주리라는 것을 아니까.

여자를 규정하는 그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베토벤은 그녀의 재능을 진심으로 인정해준다. 역시 대가이다. 영화에 인색한 점수를 준 사람들마저도 인정한 합창의 초연장면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처음으로 여자부의 합창이 시작될 때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끼쳤고 베토벤의 표정도 스스로 자신의 음악에 빠진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눈을 감으면서 촉촉한 눈으로 감명 깊게 바라도던 조카도. 다만 무아지경에 빠진 연기를 하던 다이앤 크루거가 영화전체에서 유일하게 어색한 부분이었다.

합창 초연 후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감동스럽다. 땀에 전 베토벤이 한순간 멍해졌다가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모습은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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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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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펴낸 책으로는 세 번째 책이고, 내가 읽은 책으로는 두 번째 책이다. 내가 읽은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서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까지 그녀에게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늘 자유로운 곳을 꿈꾸던 그녀가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기를 바라는 순간이다. 아니운서 시절부터 많이 좋아했었고, 그렇기에 그녀가 처음 펴낸 책도 기꺼이, 즐겁게 읽었다. 그 책이 좋다고 말하는 나에게 면전에서 책 별로라고 말해 버린 사람이 있어서 무안함과 함께 오히려 뻗대듯이 그 책이 더 좋아진 까닭도 있다. 개인적으로 참 힘들었을 그녀, 근의 책에는 이젠(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따스함이 넘쳐난다. 타인에 대해... 그리고 그녀 자신에 대해!

주면에 스페인을 많이들 가도 아르헨티나에 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마라도나, 축구, 탱고, 라그리아, 아사도, 엄마찾아 삼만리, 경제위기. 이 책 안에서 밖에서 아르헨티나를 나타내는 몇 가지 키워드들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본래 하고 있는 일 말고도 예술적인 직업을 하나 더 갖는다는 것이었다. 식당 메뉴에 ‘이 가격은 음식을 다 드시고 나가실 때 바뀔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까지 적혀 있던 때가 있을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시절, 말도 못하는 스트레스를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라고. 손미나의 말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픔과 상처를 떠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하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삶을 빚어나갈 것인가’하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모른다. 한 번 크게 넘어졌다고 해서 그대로 영영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 될 테니까.”

알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에서 “스텝이 엉키는 것, 그게 탱고야.”라는 대사가 있었다. 이해는 안 되지만 마음에 남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은 아닌지, 작은 것들을 포기하지 못해 결국 삶 전체를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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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나
스티브 헬리 지음, 황소연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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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문학의 진정성에 관한 유머러스하고도 진지한 성찰

 

진실에 물음표를 던지다

작가(作家, artist)는 ‘문학 작품이나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총칭한다.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창작의 대상을 문학 작품에 국한시켜 생각해보자. 책을 저술하는 ‘저술가’ 혹은 책을 쓴 지은이인 ‘저자’란 어떤 사람들일까?

저술가나 저자는 영어로 ‘Author’라 할 수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author의 어원은 ‘무언가를 발명하거나 유발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 ‘autor’와 라틴어 ‘auctor’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15세기 무렵 본원의 뜻에 ‘진짜’ 혹은 ‘진품’이라는 뜻을 가진 ‘authentic’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모양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술가, 즉 글을 쓰는 작가들은 가짜나 허위보다는 진짜,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정말 그럴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통념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과연 대중의 사랑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들은 정말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서투른 글을 다듬어주고 비용을 받는 일종의 대필 회사에서 일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우리의 주인공 피트 타슬로는 냉소적인 이 시대의 젊은이다. 그는 인기 소설가들을 대중에 영합하는 소설가 나부랭이, 사기꾼이라 비웃으며 자신도 베스트셀러 한 편을 보란 듯이 써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예와 부를 거머쥐어 남은 평생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꿈에 부푼다.

그가 이렇게 건방진(?) 꿈을 감히 꿀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뭐 대단한 진리가 존재하겠느냐는 일종의 회의론과 인간은 진실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진실을 싫어한다. 온 우주를 통틀어 사람들이 가장 치를 떠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사람들은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대면하느니 차라리 3박 4일 동안 수천 가지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중략) 누구든 붙잡고 인생에 대한 진실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해보아라. 당신이 빗속에서 쫄쫄 굶어 죽어가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틀거나 넷플릭스의 예약을 조정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점으로 달려가서 24달러 95센트를 지불하는 이유는 진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59쪽)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 문제를 풀자면, 우선 인간에 대한 성찰이 다각도로 필요한 듯하다. 많은 학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다양한 해석과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우리의 주인공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론은 아마도 세간에 잘 알려진 ‘생존편의(survivorship bias)’와 ‘블랙 스완(black swan)’ 이론이 아닐까 싶다.

주로 금융공학 쪽에서 통계의 오류를 지적할 때 쓰이는 생존편의는 생존에서 살아남은 것을 과신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 개념은 부지 불식간에 우리의 생활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우리는 생존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성공의 가능성을 과대 평가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직장인들이 1등에 당첨된 자들의 소문을 듣고 복권을 사서 일주일 동안 지갑 안에 고이 넣어 다닌다거나, 청소년들이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들의 성공 신화를 보고 연예인의 꿈을 키우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휴지 조각이 된 수많은 복권과 빈곤에 시달리는 무명 연예인들은 우리의 의식 바깥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이솝(Aesop)도 인간의 이런 속성을 간파했다. 우유를 한 양동이 얻은 시골 처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우유를 팔아 병아리를 사고, 병아리가 커서 닭이 되고, 닭이 또 병아리를 낳고....... 하는 식으로 미리 김칫국을 마시다가 그만 우유를 쏟아, 일을 그르치고 마는 우화도 넓게 보면 생존편의가 초래한 비극이다.

그렇다고 복권을 사고 연예인이 되는 꿈을 키우는 것이 꼭 잘못이기만 할까?

영국의 위대한 현자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희망은 경험을 압도하고 승리를 거둔다”고 말했다. 그리고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면서 희망이 없는데 어찌 노력하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생활 속에 존재하는 생존편의적 측면은 비록 허황된 희망일지라도 삶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우리의 주인공 피트 타슬로의 야심찬 꿈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것이었지만, 그 헛된 꿈이 결국은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도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행운의 여신

미국의 철학자 나심 탈레브가 주창한 블랙 스완 이론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1697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가 처음 발견되면서 백조는 흰색이라는 기존의 개념이 송두리째 뒤집어졌다. 그때부터 검은 백조는, 진귀한 것 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블랙 스완이란 말하자면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존재나 개연성을 따지기 어려운 것, 즉 운을 의미한다. 인간의 실력이나 능력은 행운이나 불운 앞에 속수무책이지 않은가. 속된 말로, 노력하는 자와 즐기는 자는 이 운이 좋은 자를 당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한데 버무려 소설 ‘회오리 바람 장례 클럽’을 탄생시킨다. 그가 그럭저럭 봐줄만한 글 솜씨를 밑천으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자, 웬걸, 행운의 여신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아준다. 책의 출간을 결정짓는 자리에서, 주인공이 자기 소설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의 친구 루시는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뭐?”

“말 못해. 좋은지 나쁜지 나는 모른다고.”

(중략)

“그들도 몰라. 내 상사는 절대 모르고. 상사의 상사는 더더욱 모르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 앞에 고생길이 훤한 거야.”

“잠깐.......”

“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원고를 받는지 짐작이 가? 수천, 수만건이야!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어떤 사람들은 책상은 없어도 원고 더미는 쌓여 있어. 원고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일만 하는 사람도 있어. 어마어마하게 큰 쓰레기통에! 삽으로 퍼서! 그래도 원고는 끊임없이 들어와.”(156쪽)

 

정말 허무하고 황당한 장면이지만,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만큼 현실적으로 대중이 기호와 훌륭한 작품을 판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남대서양주식회사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고 나서 “나는 천체의 운동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해서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겠다는 불순한 동기와 약간의 글발(?)로 탄생한 주인공의 소설은 운이 좋아 출간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출판사의 벽이라는 첫 번째 난관을 넘고 나서, 다시 이 운이란 놈이 작용하는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우연히 어느 목사에 의해 광고가 되고, 우연히 미국의 서평 문화에 불만을 품은 어느 독자가 평론가에게 호되게 물어뜯긴 주인공의 소설을 예로 거론하는 바람에 세간의 이목을 끌어 재판을 찍고, 우연히 어느 유명한 여배우의 스캔들 사진에 등장하는 엄청난 행운을 잡는 덕분에 판매에 가속도가 붙더니, 우연히 인기 드라마에서 살인마가 읽고 있었다는 이유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친구 루시의 인맥으로 인기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그의 소설은 일약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그만큼 실력과 재능이 빼어난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힘들다는 뜻도 되겠다.

 

그래도 진실이 승리한다? 아니, 진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행운의 여신의 간택을 받아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주인공은 정상에서 계속 버티지 못하고 역시나 운명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주인공이 사기꾼이라 그토록 비웃던 거물 작가 프레스턴 브룩스와의 맞대결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데다(대중은 냉소적인 주인공보다 진실과 희망을 노래하는 프레스턴 브룩스를 선택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뒤통수를 맞고(과거에 다니던 회사 사장의 부탁으로 어떤 펀드의 소개문을 써준 일 때문에) 뮤추얼펀드 사기꾼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

역시 행운의 여신이 뒤에서 밀어주면 성공의 고지에 오를 수는 있어도, 진실(적어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그런 신념이 없이는, 정상에서 버티기는 힘든 모양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고작 3,400부 팔린 ‘베이징’이라는 소설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리를 담은 그 작품의 문학적인 가치를 칭송함으로써, 그동안 줄곧 문학에 퍼붓던 냉소와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고 희망을 노래한다.

이 이야기는 얼핏 말도 안 되는 코미디 같기는 해도 아주 그럴싸하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거나 언급된 소설가들은 거의 모두 허구의 인물들임에도 실존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며 생생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소설과 같은 일이 진짜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흥망성쇠가 사실 본인의 잘잘못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또는 운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못난 자의 비겁한 변명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니까.

옛말에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 듯하다.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훨씬 더 겸손해진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이 사기꾼 취급했던 프레스턴 브룩스는 정말 사기꾼일까? 그는 거짓으로 희망을 노래하며 단지 대중에게 사탕발림을 한 것에 불과했을까? 이것을 가리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즉, 그가 진실로 희망을 품고 있었다면, 그래서 진실로 그 희망을 믿고 대중에게 설파한 것이라면, 그는 진실한 작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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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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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의 기쁨과 슬픔 본문 中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제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해의 노동의 결과를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한 장소에 모아둘 기회는 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한 부분을 자기 손으로 바꾸는 장인에게는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 보일는지.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루를 마치고 또는 한 생을 마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하나의 대상-그것이 네모난 캔버스든 의자든 도자기든-을 보며 그것이 그의 기술들의 안정된 저장소이고 그가 보낸 세월의 정확한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씩만 책을 읽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 동료를 물려고 하는 것, “오전 11:00에서 오전 11:15까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이라고 적힌 회의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 나아가는 것, 부주의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 전투에서 산화해버리는 것-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참 좋아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전혀 무관한 대상들 사이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잡아내거나 사소한 면에서 위대함을 찾아내고 반대로 거대한 부분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책에 비해 조금은, 조금은 실망한 구석이 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기에 가능한 실망이다. 책만 놓고 보아서는 10가지의 이질적인 직업들의 기쁨과 슬픔을 마치 생선살을 발라내듯이 차분하고 가지런하게 정돈하여 보여줄 수 있는 작가는 다시 없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보통이기에, 기대치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조금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다가 우연히 한 블로거의 글을 읽고 아하, 싶었다. 책 속의 직업 중 하나에 종사하는 블로거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감탄하며 책을 읽다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서술을 읽으며 불쾌함이 들었다고. 그 글을 읽자 대번에 이해가 되었다. 여태까지의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은 마치 유명한 요리사가 쓴 푸드 에세이라고 할까? 재료부터 요리를 만드는 과정까지 낱낱이 파악한 사람이 보기 좋게, 읽기 좋게,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느낌이었다면, 이 글은 마치 유명한 맛집 블로거가 쓴 레스토랑 소개서같다는느낌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 못하다 라고 비교할 필요가 없이 관찰자로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서술한 것과 직접 그 세계에 몸을 완전히 담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든 상태에서 쓴 글은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6장의 그림 부분과 다른 부분은 크게 차이가 났다. 아무래도 보통이 작가이고, 그러다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창작을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는 다른부분과는 다르게 따스함이 느껴진다. 일종의 편애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직업의 기쁨과 슬픔에만 몰두하고 억울해하고 열변을 토하고 떠들어댈 뿐, 다른 직업의 기쁨과 슬픔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니까. 나부터도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일의 기쁨은 money? 슬픔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 이라고 단순화했던 사람이니까.

 

덧붙임

1년 반이 지나서야 이 리뷰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의 한 웹툰 시리즈를 정주행하다가, 똑같이 '일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보게 된 것이다. 아마도 웹툰의 작가도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제목의 책 아닌가. 더구나 지은이는 알랭 드 보통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에피소드에 이 책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이 책에 대해서 특별히 감동을 받았다거나 인상이 남았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보통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이 책은 인기를 끄는 책은 아니니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었으며, 좋아하는 일인데도 늘 일하기는 싫다고,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순간 노동이 되어 버린다고, 이 웹툰 작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마라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웹툰 작가는 결론을 내린다. '놀고 싶으면 일을 하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그러니 일을 한다고.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이것도 어떤 방식으로는 답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일이 주는 자잘한 기쁨,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많은 슬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몸으로 움직이는 방식이 되든, 최면처럼 내 마음을 바꾸는 방식이 되든, 슬픔을 견딜 수 있게 최대한 줄여보거나 기쁨을 늘려서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취미가 직업이 된다면 참으로 기쁘겠지만, 그 또한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게 나의 취미를 즐기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슬프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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