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핑 베토벤 : 특별판 (2disc)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 에드 해리스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천재 예술가와 그 예술가의 ‘그녀’의 이야기는 많다.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앤디워홀과 에디 세즈윅, 쇼팽과 조르주 상드 등. 이 영화는 픽션이다.

귀머거리 베토벤이 등을 돌리고 있어서 자신을 향한 박수를 모르자 한 여인이 뛰어나와 그를 돌렸다는 일화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 일화는 어릴 때 위인전에서 읽어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고 그 에피소드를 묘사한 삽화도 아직 기억이 난다. 기네스 펠트로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처럼 실존했던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만든 픽션인 셈이다.

이 영화의 평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그 논란 중 하나였던 베토벤 캐릭터에 대해서는 오히려 영화에서 잘 살린 것 같다. 귀머거리가 됨으로써, 다소 냉소적이고 우울한 면, 그러면서도 유일한 혈육인 조카에게 집착하는 모습, 젊은 여인의 재주를 인정하면서 그녀의 젊은 잘생긴 애인을 질투하는 모습... 어떤 사람은 베토벤을 주책 맞은 늙은이로 표시했다고 불평했지만 오히려 가장 베토벤다운 시절의 베토벤의 모습을 이 영화는 잡아낸 것 같다.

분명 젊은 시절의 베토벤은 좀 더 도전적이었을 것이고, 반항적이었을 것이고, 젊은 예술답게 감성적이면서도 세심했을 것이다. 귀먹기 전의 그는 다정다감한 젊은이였을지도 모르지. 이런 그의 모습은 당대 여인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을 것이고 어쩌면 화젯거리에도 종종 오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노년의 베토벤도 그러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서을 지녔더라도 그가 성인도 아닌데 귀머거리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노인으로 자식조차 남기지 않았던 그의 말년은 분명히 영화 속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카피스트 안나다. 다이앤 크루거는 트로이에서 봤을 때는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는데 예쁜 인형 같은 역보다 이런 역이 훨씬 더 어울린다. 지적이면서도 성숙한, 도시적이면서도 순수한 매력이 있다. 또 안나는 모성애도 느껴진다. 베토벤이 그녀 앞에서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그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댈 수 있고, 응석부려도 질책하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고 비웃지도 않고 받아 주리라는 것을 아니까.

여자를 규정하는 그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베토벤은 그녀의 재능을 진심으로 인정해준다. 역시 대가이다. 영화에 인색한 점수를 준 사람들마저도 인정한 합창의 초연장면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처음으로 여자부의 합창이 시작될 때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끼쳤고 베토벤의 표정도 스스로 자신의 음악에 빠진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눈을 감으면서 촉촉한 눈으로 감명 깊게 바라도던 조카도. 다만 무아지경에 빠진 연기를 하던 다이앤 크루거가 영화전체에서 유일하게 어색한 부분이었다.

합창 초연 후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감동스럽다. 땀에 전 베토벤이 한순간 멍해졌다가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모습은 뭉클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