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게 죽음을 ㅣ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 책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소설 자체의 힘이 아니라 외적인 요소를 자꾸 고민하게 한다.

 

예를 들어서,

명량의 인기는 물론 상업영화로서 꽤 나쁘지 않은 정도의 작품이 나왔지만,

그 정도의 광풍은 개봉 당시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상당히 기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음을 상기한다면

 

이 책 또한, 그렇게까지 독일에서 인기가 많았다는데, 또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나 인기가 많은데,

그 이유가 과연 뭘 까, 하고 다른 쪽으로 자꾸 궁금증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범인으로 지목받은 사람이 범인이 아니었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내용은

남녀간의 사랑에서 양가 집안의 반대만큼이나 식상할만큼 반복되어 오는 구성인데

이것을 풀어나가는 전개에도 전혀 신선함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정말 표지 하나만큼은 만점을 주고 싶다. 얼굴은 가려서 확인할 수 없으나 나체의 젊은 여성은 눈을 떼기 힘들고, 오히려 얼굴을 가렸기에 궁금증과 함께 신비스러움도 느끼게 한다. 파란색의 바탕과 뾰족한 지붕의 집들, 그리고 꽃의 색깔까지 화려하지 않고 우아한 느낌이 나는데 아마도 여기에서 사람들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게 아닐까. 요금처럼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는 시선을 끌어당겨 일단 책 표지를 열게 만드는 것도 엄청난 노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되니까.

 

미녀, 억울함, 전도 유망하고 잘생긴 청년, 살인 사건, 진범, 아름다운 소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어떤 부분에서 독자들의 판타지를 많이 자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살인 사건 이야기라도, 똑같이 스릴러라는 장르를 다루더라도, 미야베 미유키처럼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거나 우리 내부의 악마스러운 면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그 삶의 진실의 폭로라는 점에서 선뜻 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 그리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범죄소설... 정도?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영화화하기에는 어쩌면 딱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연기력이 나쁘지 않은 외모 출중한 남녀 배우만 확보된다면,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접근성 면에서 일정정도 관객은 확보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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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 대한민국 2030 여자들의 직장생활백서
임경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임경선 이라는 저자의 이름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일간지의 한 칼럼이었다. 평소에 읽으면서 아~ 톡톡 튀는 저자의 글솜씨에 매력을 느끼던 도중,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각인하게 된 것은 의외의 계기였다. 지금은 내용이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어떤 독자의 고민 상담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답을 내어 놓은 글이었는데, 다 읽고 난 후 가장 첫번째로 떠오른 느낌은 '불쾌함' 이었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 내용이 얼토당토하지 않아서? 전혀 아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고민이라서? 그것도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당시 그 독자의 고민은, 그 당시에 나도 가지고 있던 고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독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내가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이입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임경선의 글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썩 유쾌하지 못했던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임경선의 조언은, 옳았다. 그것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수긍은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왜일까?

 

얼마 전에 유명한 스타 강사가 논문 표절 의혹으로 한동안 홍역을 치룬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의 전후를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는 한 동안 그 일 때문에 쉴 수 밖에 없었고, 얼마 전 복귀하면서 한 인터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본인 나름대로 억울한 면도, 속상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무심히 읽어나가던 도중, 내 눈이 멈춘 부분이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쉬다 보니 아무래도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졌는데, 자신이 강연을 한참 하고 다닐 무렵, 자신에 대해 누군가가 SNS에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고. '김미경 강신주 법륜스님 이 세사람은 나에게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어른 흉내를 내며 꾸짖기만 한다고, 나다운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고.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싸잡았구나, 또 다른 숲을 보는 충격에 며칠간 고민했다고. 법정 스님 말대로 글쓰고 말하는 일 모두 업보를 쌓는 일이라며 앞으로 자신은 소수의 생각과 상처를 존중하는 법을 찾겠다고. 그 대목을 보고 알았다. 아, 공감이 실려 있지 않은(혹은, 듣는 이가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충고는 마음만 다치게 하는구나. 나 또한 이런 실수를 누군가에게 했을 것이고, 내가 이유도 모르게 누군가의 충고를 듣고 머리로는 그게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반발을 했던 것이 이 때문이로구나.

 

아마도 나는 칼럼을 읽으면서 아무런 애정이나 공감없(다고 내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조언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제는 작가가 아니라 그 당시 나에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게 여러모로 망설여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기쁘게도(?) 작가에 대한 내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칼럼과 이 책 사이,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며 아마도 작가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었던 걸까. 날카롭게 충고를 하면서도, 그 충고의 사이사이에 따뜻한 조언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비슷한 자기 계발서류에 상처받았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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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다 보면 '괜찮은 워킹우먼+나쁜 아내'의 시기가 있을 수도 있고 '보통 워킹우먼+보통 엄마+불량 아내'로 조합된 시기도 있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 및 살림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일하는 여자들은 '일이냐, 결혼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양쪽의 가치를 다 가질 수 있다. 단, 완벽주의자 기질만 과감히 버린다면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라고 푸념하지만, 가격대비 양질의 호텔을 비교하고 현지에서의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과제처럼 연구하는 그녀들은 이미 아무 생각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일을 한다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그 모진 상사의 말대로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 모두가  '커리어 관리'의 불가결한 일부다. 남이 나를 챙겨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챙겨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는 거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단, 그 상황에서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상황을 '삼키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신의 야속한 장난처럼 보이는 사건에 맞닥뜨릴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다. 불안감과 초조함을 이겨낸 뒤 찾아오는 변화된 인생의 항로에는 새로운 발견과 선물이 있다는 것을 믿어도 좋다.

남자들은 선의로든 악의로든 주변의 워킹우먼을 직장에서의 딸, 아내, 누이, 여동생으로 보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여자를 자신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약자로 생각하는 우월적 사고가, 약자인 여자들과의 경쟁을 거부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여성성이 가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독립적이고 능력 있는 워킹우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그들에 맞추어 역할설정을 하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의 위치를 독창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남녀간 연애처럼 때로는 적당히 둔감해지는 것이 회사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자들은 연애에도 직장일에도 너무 예민하게 올인하는 탓에 스스로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우를 범한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은 인간성을 평가받는 것과 다르다. 부하직원에게는 인간성 좋은 상사보다 유능한 상사가 필요하다. 상사가 조직 내에서 파워를 가지고 있어서 타 부서에 지지 않는 것이 싫은 소리 안 하는 상사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부하직원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지시하기가 계면쩍어서 본인이 그냥 알아서 해치우는 것도 이런 착한 여자 상사들의 공통된 습성이다. 과거 사원 시절에 혼자 일을 다 끌어안고 끙끙대던 습성이 남아 있어서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과감히 맡기는 것이 무척 서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더욱 잘해내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부하직원들이 가진 저마다의 능력을 주저없이 적시에 빌리고,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협조를 뽑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과감히 일을 맡겨야 한다.

 

피고용자 마인드란 '어차피 내가 노력해봤자 남 잘되게 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습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아껴봤자 잠시 몸만 편할 뿐 긴 안목에서 보면 자기능력을 계발할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셈이다. 당장은 하찮아 보이더라도 자신이 낸 실적 하나가 회사의 목표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더욱 일할 맛이 날 것이고 부과된 업무 외에도 추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서 효과를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민의 근원은 그녀가 자신의 출근복을 '패션'으로 간주한다는 데에 있다. 패션은 자기 표현이며 성인인 이상 남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기 힘든 사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몸담고 있는 회사가 패션의 독창성과 자유를 독려하는 패션관련 회사가 아닌 바에야 그것은 패션이 아니라 '차림새'의 문제가 된다. 기본적으로 스타일의 80퍼센트는 그 직장과 업종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이 좋다. 80퍼센트는 조직 내 조화를 고려하고 20퍼센트는 그 조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창의적인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남녀 막론하고 옷차림새와 외모는 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다. 즉, '일을 잘할 것처럼 보이는 외모'도 필요한 것이다.

 

조직생활은 이렇게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것 말고는 거의 공통점이 없을 법한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만 하는 엄청난 감정노동을 동반한다.

첫째,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생각은 애당초 접어라. 눈 질끈 감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할 생각도 하지 말고 사랑받을 생각도 하지 말자. 피를 나눈 가족이나 십년지기 친구들과도 오해와 갈등을 겪는데 하물며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여러 사람들과 서로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기가 어디 쉬울까?

둘째, 회사 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 대한 대가도 월급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라. 인간관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고 직급이 올라간다고 해서 반드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 직급과 환경에 맞는 새로운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무방하다.

셋째, 회사라는 조직체는 자선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이기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기적이라 함은 그로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이성적인 행동임을 뜻하기도 한다. 고로 권선징악의 단순한 룰에 따라 증오해야 할 대상을 정해놓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소모시키는 것은 괜한 낭비다. 차라리 무관심하자.

넷째, 미운 사람은 잊으려고 애써야 하지만, 반대로 나를 도와준 사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결국엔 평생에 걸쳐 나를 지속적으로 도와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사내정치는 상사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상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동료나 후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도 쉬울 것이다. 상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사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부하 직원에게 자신이 어떤 상사로 비춰질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상사보다 낫다고 확신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상사의 한 가지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만으로 상사의 모든 점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약한' 특정 업무에 우연히 내가 '강하면' 자신이 그렇게 잘나 보일 수가 없다. 그런 일이 몇 번 생기면 그때부터는 아예 상사를 무능력자로 낙인 찍어버리는 것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여자들 중에는 일이 다 끝나고 나중에 가서야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뒷북치는 둔감한 이들도 있는데, 일일이 주변 사람들 신경 썼다가는 본인이 못 견딘다. 자신의 행동이 공정하고 떳떳하다면 이제는 유능해서 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목의 집중을 받는 만큼 부담도 커서 괴롭겠지만 앞서 나가는 사람은 늘 외롭고 고된 법이다. 다만 가끔은 자신의 언동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다른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았는지 객관적으로 반추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에 한동안은 괜스레 졌다는 패배의식과 창피함 때문에 고통을 느낄 것이다. 한 가지라도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뭐든지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결시키는 습관이 들면 곤란하다. 콤플렉스 타령이 현실을 위로하기 위한 진통제처럼 쓰이면 정작 자신이 제대로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가 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보다 긴 안목으로 커리어플랜을 바라본다면 자학적인 비교가 의미 없을 뿐만 아니라 이왕 승진했다면 그것이 내가 친하게 지내던 동료인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느덧 당신이 더 높은 직급에 올라 있을 수도 있고 한 때 질투 대상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선택해 경주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더 높은 직급의 명함을 가진 사람이 이겼다거나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수직적인 평가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한 번이라도 윗사람이 돼본 경험이 있으면 알 것이다. 아랫사람이 내게 싫은소리 하는 것을 듣는 심정을. 그리고 그게 맞는 말일수록 더욱 못마땅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윗사람들에게는 일이 조금 서툴더라도 자신의 가르침에 순순히 수긍하는 직원들이 훨씬 예쁜 법이다. 특히 3~5년차 대리쯤 되면 회사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또 회사 어른들의 '구린' 것이 하나둘 눈에 띄는 시기라 '정의감'에 불타오르기 쉽다. 또한 부하직원을 처음 거느린 팀장이 되었을 땐 마찬가지로 내 밑의 직원들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하에 자칫 이성적이고 전략적으로 팀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소영웅처럼 감정적인 선택과 행동을 함으로써 그 팀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여자 상사는 아직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그만큼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 그러다 보니 여자 상사들의 어깨엔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기 십상이다.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정면 돌진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일로 부딪치는 기회를 최소화하고 일 얘기만 한다든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포함시켜 일을 진행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싫은 사람과의 교제로 마음고생 하느니 좋아하는 사람,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책상정리를 잘하는 것처럼 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중간 중간 정리를 해나가며 살아간다. 어차피 포기해야 할 인간관계라면 눈 딱 감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자. 최소한 인간관계에 관한 한 완전한 회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20대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경험해보아햐 한다고 생각하는데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본 경험이 있어야 30대에 할 수 있는 일의 용량이 커지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의 치열했던 경험이 자신감으로 연결되어 경력이 쌓이면서 훨씬 더 나은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소한 20대 중반 무렵까지는 쉽게 현재의 일을 포기한 채 바로 전직에 눈을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정도 비중 있고 치열한 일을 나한테 맡겨줄 때까지 전직하지 않고 일단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30대 전직의 키포인트는 장기적 커리어 목표에 도움이 되는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같은 직종이라도 개개인의 책임과 권한이 더 커지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를 선택해서 도전해본다거나, 여태까지 일해온 분야에 좀더 깊이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능동적인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로의 전직이라면 생각해봄직하다. 20대의 전직은 자신을 맹렬하게 하드 트레이닝시켜 줄 수 있는 곳으로 일부러 뛰어들어가는 것이어야 하고, 30대의 전직은 장차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비전에 따라 빠진 퍼즐조각을 끼워맞춰 완성해가는 것이어야 한다.

 

 

직장에서 작든 크든 성취해낸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혼자서 자축해보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기쁜 일이 있을 때 귀갓길에 탐스러운 장미 한 다발을 사서 집에 장식해놓곤 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보다 금방 없어지는 물건은 그 순간을 향유하는 정취가 있고, 또 꽃만큼 감정이 사치스러워지는 것도 없다. 

 

 

긍정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우울증은 우리가 일해온 방식이나 살아온 방식을 재검토하고 궤도수정할 기회를 주는 선물과도 같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무리를 해왔다는 증거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사 밑에서 스트레스를 쌓아가면서 소모품처럼 일해왔다면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은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정말 이 일인지, 신중히 심사숙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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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우리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참 이상하기도 하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샀을 때는 꽤나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 같기도 한데,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단어 하나에 떨렸고

오랫동안 사진을 바라보며 가슴 뭉클했던 것 같기도 한데,

꽂아 놓아도 예쁘고 꺼내어 놓아두어도 예쁘고

어느 장을 펼쳐 놓아도 마음에 쏙 들도록 책이 예뻐서

늘 흐뭇하게 바라봤던 것 같기도 한데,

 

언제부터인지 있는지도 잊어버린 채, 한 동안 그저 그대로 책장에 두었었다.

 

우연히 책 정리를 하다가 아, 맞아, 이 책 있었지,

내가 이 책을 샀을 때,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언제지? 27살 때인 것 같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왜 샀는지도 기억난다. 늘 가던 서점이 아니었고,

내가 거주하고 생활하는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 날, 할 일은 없는데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웠고,

또 무섭고 슬펐던, 그런 밤이었다고 기억한다.

 

밤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고, 감성에 젖어서 한편으로는

위로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는데,

참... 그때 내가 했던 수많은 공상들.

지금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지만, 어쨌든 미래를 꿈꾸는 것은 현재를 견디게 하니까.

 

우습게도 그때 와닿았던 구절들이, 지금 보니까 약간 오글거리는 것 같고,

그때 무심히 넘겼던 문장들이, 지금 나에게 뜨겁게 울린다.

좋은 책의 조건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혀지는 책이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나도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그 시간에서 참 많이도 변했고.

그때 당시에는 그로부터 몇 년 뒤의 내가 지금 이런 모습일거라고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책을 샀을 때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내가 변했다면,

정확히 그 시간만큼 흐르고 나서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또 다른 구절을

문장을, 단어를, 나는 발견하고 감동받겠지.

그런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 아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책을 정리하는 데에 미련은 없었다. 홀가분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샀을 때의 그 암담했던 날의 기분이 떠오르고,

어쩌면 그 느낌을 영영 기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한 때 외로웠던 순간,

그 절절한 감정을 고스란히 잊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달콤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박차고 앞으로 나가려는 나,

가뜩이나 지나온 상념이 붙잡고 놔주지 않아 이리저리 마음 다잡기 힘든 나를

어떻게 해서든 일으켜 세우려면 쓸데없는 감정적인 소모는

스스로 노력해서라도, 이런 행동을 통해서라도 의식적으로 매듭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독이 얼마나 달콤할 수 있는지, 외로움이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

원래 외로운 나 자신을 즐겼었던 나지만,

더 이상 코스프레로라도, 허세로라도, 그냥 농담으로라도, 장난으로라도,

고독은 피하고 싶었기에 더 빨리 이 책을 정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해피엔딩이, 시끌벅적이, 무모한 용기와 활발함이,

목젖을 넘어갈 정도의 웃음이, 열정이,

단순하고 관조하는 삶, 조용한 미소, 정돈된 상태에서 오는 편안함,

감성적이고 예민한 것, 질서 정연함보다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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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나는 첫눈에 반하고 말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걸 설득시켜야 했다.

나는 그녀가 다니던 대학의 대학원을 다녔다고 말했다.

그녀와 나의 나이 차이로 볼 때 우리는 그 시절에 교정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것도 몇 번이나.

그때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로,

작은 방해물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 장면을 상상하자,

우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로맨틱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빠져 있었기에 그녀가 나를 좋아해 주기만을 바랐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우연히 스쳐 지나간 적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

가슴을 설레게 했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난 후에는,

우연히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영원히 머물 줄 알았던 사랑이,

또다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세상에서 배운 가장 무서운 사실이다.

-<어떻게 만났는데 이렇게 잃어버리는 거니> 중에서

 

 

그와 헤어진 직후에 여행을 갔는데, 여행지에서 한순간,

마치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그리움이 간절해졌다고 한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이게 뭘까?'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깨달았다고 한다.

그 사람이 즐겨 쓰던 향수 냄새를 맡았다는 걸.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젠 잊었어."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그 향수를 뿌리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아프기는커녕 이런 생각이 들어 홀가분해졌다고 한다.

'그래, 이건 누구나 뿌릴 수 있는 향수일 뿐이야.'

 

유일한 존재가 평범한 존재가 되는 순간,

그때 그녀는 그를 잊었다.

-<유일한 존재가 평범한 존재가 되는 순간> 중에서

 

 

그녀가 참을 수 없었던 건, 전 남자친구에게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가 후줄근한 복장으로 혼자 있을 때 그를 만났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녀가 진짜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녀와 만날 땐

7년 동안 단 한 번도 떡볶이를 먹지 않았던 그가

다른 여자와는 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떡볶이를 권하면 자긴 싫어한다면서

입도 대지 않았던 그였다.

그녀는 그의 뒤쪽으로 살짝 다가가,

있는 힘을 다해 젓가락을 휘둘러 그 애의 하얀 티셔츠에

떡볶이 국물로 북두칠성 모양을 그려 줬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자, 몰래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빨간 떡볶이 국물로 남은 여자였다.

 

<헤어진 후에도 참을 수 없는 것>중에서

 

 

"제가 대신해 드릴게요. 차에서 내리세요."

그녀의 얼굴에서 초조한 기색이 사라지고

평소 익숙하게 보았던 약간은 게을러 보이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차를 주차하다가 그만 차 옆쪽을 긁고 말았다.

운전 경력이 5년인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사태를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창문을 내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변상해 드릴게요."하고 말했다.

새 차를 처음 갖게 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변상이라는 말에도

별 위안을 받지 못했다.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어쩜 좋아요. 며칠 전에 뽑았는데......."하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그녀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차를 고쳐 주겠다며,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그 후 매일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은 게으르게 다가오고, 차 사고처럼 시작된다.

 

<사랑은 게으르게 다가오지만>중에서

 

 

 

참 이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CD로 들을 때도 좋긴 하지만,

라디오에서 들을 땐 좋은 느낌이 몇 배가 된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건 그 노래를 누군가가 같이 듣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음악을 소개했던 DJ가 들었을 것이며

그 방송을 들었던 다른 사람들도 들었을 테니까.

 

라디오를 틀어 놓고 꽉 막힌 도로 위해 멈춰 서있었다.

가슴 한쪽이 콱 막힌 듯이 아팠던 시절이었다.

도로가 막히자 온갖 잡념들이 떠올랐다.

나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때 옆에 서있던 차에서도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가슴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그 황량한 도로에서,

어떤 누군가와 똑같은 노래를 들었고

나는 행복해졌다.

 

우리를 설레게 하고 반하게 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더 즐거워진다.

 

<사람들은 즐겁다>중에서

 

 

그녀가 일하는 곳에선 한 달에 한 번 매출액을 점검했다.

그런데 그녀의 실적은 목표량에서 한참이나 부족했다.

자칫하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D-day를 딱 하루 남겨 둔 날, 거짓말 같은 일이 생겼다.

한 손님이 외국에 가게 됐다면서 한 달 치 매출에 해당하는 물건을 사간 것이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그녀의 실적이 꼴찌에서 1등으로 올랐다고 한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비록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어둠뿐일지라도

어둠에 익숙해지면 문이 보일 것이다.

 

<숨은 해답 찾기>중에서

 

 

"얼마 전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봤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어, 이게 진짜야?'하는 사이에 다 끝나 버렸지."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을 것.

완전한 형태를 갖지 못한 소원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기회는 별똥별처럼 나타나 안개처럼 사라지니까.

 

<별똥별이다>중에서

 

 

 

그는 구두를 벗기고 서랍에서 목이 짧은 털양말을 꺼내어

그것을 여인의 발에 신겨 주었다.

"자, 이만하면 조금은 낫겠지. 괴로울 때도 하찮은 일에서도

위안을 찾아내도록 해야 해요. 옛날부터 내려오는 군인들의 철칙이랍니다."

 

하찮은 일에서 위안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괴로울 수밖에 없다.

온몸이 행복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은

우리 인생에서 몇 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들>중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낭여행객들이 유럽의 명소로 손꼽히는 광장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너바나의 노래를부르자, 국적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많은 청년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우연히 모이게 되어 캠프파이어를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노래를 합창하게 될까.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아린 추억이 있는 노래, 한 시절을 관통하는 젊음의 서러움이 서려 있는 노래, 그런 노래는 무엇일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볼륨을 키우게 되는 것. 친구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그 노래를 부르면 저절로 합창을 하게 되는 것. 공연장에서 그 노래가 나오면 수많은 관객들이 다 같이 따라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것.

 

"스무 살 무렵, 그땐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것에도 상처받았고 내일마저 불확실했기에 무언가에 열렬히 빠져들 수 있었어. 그리고 그 노래들이 우리의 빈 곳을 채워 주었던 거야."

스무 살 무렵에 만났던 청춘의 송가는 그전에도 그후에도 다시 느낄 수 없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감동은 아픈 자의 특권이다.

 

<청춘의 송가>중에서

 

 

 

언니는 방금 지은 따듯한 밥을 퍼서 공기에 담았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반찬 그릇들이 파리해서

밥과 김치찌개가 더 따근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게, 비정상 아닐까?

다들 뒤죽박죽으로 살다가, 가끔 청소해서 조금 정리하고,

다시 어지르고, 그러는 거야. 우리도 일주일 만에 청소했잖아."

 

세상 일이 모두 수학 문제집처럼 문제와 정답이 한꺼번에 주어진다면

우리의 고민은 아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답안지도 정답도 없는 문제에 맞서

훌륭한 결과를 끌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지나온 자취는 뒤죽박죽이고, 갈 길은 멀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걸어왔다.

 

<다시 한 번, 걷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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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공원

이곳에서의 생활은 조금은 슬프고, 대체로 평화롭지만 불행하다.

내 일상의 주된 요소는 일과 목욕과 남편이다. 그 틈틈이 치과에 다니고 공과금을 내러 가고, 책을 읽고 청소와 빨래도 하고, 간식과 술과 사람과의 약속이 끼어든다.

결혼하기 전, 나는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추리 소설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년 사이에 바뀌고 말았다. 지금은 추리 소설이 없으면 아내로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과 둘이 종종 공원에 갔다. 낮잠을 자고 캔 녹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언젠가 같이 살게 되면 공원 옆이 좋겠다고 말했고, 그 말대로 됐다. 다만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자주 산책을 하지는 않는다.

 

비

나와 남편은 취향이 전혀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책도 다르고, 뭘 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다르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왔고, 오히려 다른 편이 건전하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같으면 좋았을텐데,하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같았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비는 소염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령 감정의 기복-예를 들면 연애-이 어떤 유의 염증이라고 한다면 비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간 여자

결혼할 때, 남편에게 약속 받은 일이 한 가지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외간 여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꽃다발이나 구두, 가방, 장신구는 상관없지만, 초콜릿은 안된다고.

나는 옛날부터 초콜릿은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달콤하고 사치스럽고, 입안에서 쾌락과 함께 녹는 초콜릿을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연애를 하면서 한 약속은 대개 무의미해서, 가령 다른 사람은 절대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한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고, 또 약속때문에 그런 기회를 놓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령,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게 되었을 때, 초콜릿을 피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깜찍한 쿠키나 꽃다발을 선물하면 되니까. 나는 그때의 성실함을 오히려 신용한다.

남편은 가끔가다 내게 초콜릿을 사다준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무슨 기념일 같은 때.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은 린츠나 메테르의 단순한 것. 은색 상자에 들어 있는 SWISS THINS나, 핑크색 동그랗고 조그만 상자에 들어 있는 마거릿. 나는 남편에게 초콜릿을 선물받을 때마다, 나를 외간 여자에서 자기 여자로 만든 남편이 사과하는 뜻으로 건네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월요일

얼마 전까지 내게는 주말이란 개념이 없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나서 변했다. 남편과는 주말에만 놀 수 있으니까.

전에도 몇 번인가 연애는 했지만, 주말이란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단박에 주말이 좋아졌다.

주말은 늘 남편과 함께 지낸다. 그리고 거의 주말마다 티격태격댄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폭풍우 같은 싸움까지.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정말이지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둘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직한 것일까).

월요일 아침, 나는 회사로 가는 남편이 싫어서 그만 입이 부루퉁해진다. 어서 다음 주말이 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현관에다 구두를 내 놓는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난 순간, 나 자신도 놀라울 만큼 안도감의 물결이 밀려온다.

우리는 많은 주말을 함께 지내고 결혼했다. 늘 주말 같은 인생이면 좋을텐데,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하루하루가 주말 같다면 우리는 보나마나 산산이 조각나리라는 것을.

 

밥

"나, 9월에 여행할 거야."
양복과 넥타이, 와이셔츠와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던 남편이, 옷을 벗다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밥은?"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밥?
몇 초 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내가 말했다.
"밥? 첫 마디가 그거야?"
지금 외출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앞으로 몇 달 후에 여행을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처음 한는 소리가 어디?가 아니고, 며칠 동안이나?도 아니고, 밥은?이라니.
나는 나의 가장 큰 존재 가치가 밥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슬펐다.
밥.
결혼하고 두세 달 지나면 결혼 생활에서 밥이 얼마나 큰 관건인지 싫어도 깨닫게 된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고 자는 그 일련의 행동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속에서 예의 진부한 의문-이 사람, 혹시 밥 때문에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을 떨어내기가 어렵다.

 

색

결혼하고서 생활에 색이 입혀졌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모든 것에 색상이 생기고, 그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면서 동시에 다소는 불안한 일이기도 했다.

애당초 나는 화려한 색상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받으면, 색깔 별로 나눠서 꽃병에 꽂을-하얀 꽃은 현관에, 노란 꽃은 화장실에-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꾸민 방처럼 차분한 정신 상태로 살려면 결혼은 적합하지 않다.

독신 생활에는 흑백의 정연한 질서가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의 사사로움, 그 번거로움, 그 풍요로움. 혼자가 둘이 되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나 개인에 한해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남편이 남자라는 점이다. 그래서 생활에 색깔이 입혀졌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든 함께 생활하고 싶다면 동성의 친구라도 상관없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편이 간결하고 확실하다. 다만, 남자와 같이 살면 생활에 색깔이 입혀진다.

 

풍경

그런 몇 가지 풍경이 있다. 공유하고 있는 기억.

그 무렵 우리는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만나면 늘 같은 풍경을 보았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기 떄문에 더욱 더. 지금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나는 남편의 머리를. 남편은 현재를, 나는 미래를. 남편은 하늘을, 나는 컵을.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 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

 

노래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흥분해 있을 때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할 수 없이 스스로를 달래면서 냉정해지기를 기다리는데, 그런 때 남편을 만나기 전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남편 없이도 혼자 잘 해 나갔던 시절. 남편 없이도 행복하고 충만했던 때.

남편은 내가 자기에게 화가 나 있을 때면, 우리가 어린애들처럼 달콤했던 시절에 들었던 곡을 불쑥 틀어놓는 술수를 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아무튼 들러붙어 자는 것이 바람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는 음악이 또 바람이 되어준다. 그런 소박한 일들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사랑은 관철할 수 없다.

 

벚꽃 드라이브와 설날

하얀 꽃잎을 올려다보면서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단순한 의문문으로. '함께 보고싶다'가 아니라 '과연 함께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다. 아주 희망에 찬 생각이라고 나는 기뻐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뿜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한 것은 많은 가능성 속에서 한가지가 선택되기 때문이고, 그 선택에 나는 가슴이 설렌다.

새해를 맞아 처음 보는 얼굴이 남편이기를 꿈꿔왔지만, 새해 처음 만나고 싶은 사람이 남편인 쪽이 난 더 행복하다. 남편이 보고 싶어 애틋한 아침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골치아파진다.

 

결혼한(또는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

 

어리광에 대해서

결혼하고서 딱 한 가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올바름에 집착하면 결혼 생활 따위 유지할 수 없다.

나는 가능한 한 그렇게 하고 있다. 어리광을 피우고 어리광을 피우게 하는 것은 어른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니까.

평온하고 사랑에 가득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억지를 관철해야 한다.

 

킵 레프트

화해란 요컨대 이 세상에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

 

RELISH

결혼하고야 내가 지겹도록 사리정연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이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 거의 심신의 파멸.

다만 결혼하고야 나는 분노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한층 혼란스럽다.

그러나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읻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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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웃기는 의사 히르슈하우젠의 도파민처럼 짜릿한 행복 처방전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지음, 박규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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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알라딘 평점도 이렇게나 높고, 박경철과 김제동 등 명사들이 추천한 책인데 내가 읽으면서 내내 명성만큼은 아니라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책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었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볼 때마다 표지부터 나를 잡아끌었고,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한번 집어들어 죽 넘겨 보았을 때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사진들도 인상깊었었다. 하지만 막상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엄청난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참 훌륭하고 좋은 책인데, 받아들이는 나와 좀 안 맞는 책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만약 책을 읽는 행위가 저자와 독자의 능동적인 대화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의 자기 주관적인 이야기를 힘들게 몇 시간 동안 들었다는 생각이다.

 

일단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다른 행복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고개 끄덕끄덕하고 감탄하고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행복했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이건 편집이나 번역의 문제 이전의 문제 같은데, 글쓴이 자체의 스타일이 종잡을 수가 없다. 즉, 첫문장, 첫단락을 읽고 그 장의 대강의 느낌이 보통 오기 마련인데 처음 시작과 끝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 반전의 묘미를 넘어서 읽고 나면 머리에 뚜렷하게 남는 게 없다. 또 과학의 한 분야인 의학을 전공한 의사의 글로는 참으로 특이하게도, 행복에 대한 설문조사, 연구 결과, 수치 보다는 주관적인 생각, 주변 사례의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읽는 내내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닌데? 이건 독일, 그것도 지식인들에 국한된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행복한 순간'이라고 이야기한 그 순간이 나에게는 진짜 행복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뿐더러, 군데군데 기존 상식을 뒤엎는 발언-예를 들어 남녀 사이에 대화가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 않다. 침묵이 금이라는 것은 남녀 사이에도 유효하다-는 이야기는 나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뭐, 아직 내가 살아온 시간이 짧아서, 라고 이야기한다면 할 말 없지만.

 

다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딱 한 부분만은 건질 게 있어서, 그 부분만 기록하기로 했다.

 

우리가 자주 반복하는 일들은 우리의 뇌에 각인됩니다. 자주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경가소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들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부정적 감정들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과부하를 예방해줍니다. 하지만 일단 메시지를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그런 감정 자체를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주 화를 내면, 화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쉽게 내부에서 끓어오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반복적인 화풀이는 뇌 안에 '화가 다니는 길'을 매끈하게 잘 닦아놓는 역할도 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그 '길이 곧게 뻗은 8차선 고속도로가 되어 우리는 더욱 쉽게 그 위로 미끄러지면서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현대의 스트레스 심리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화를 내지 않으면 화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끓어 넘치기 전에 불을 줄이거나 냄비를 불에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쿨'하게 가만히 기다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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