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팽 대 홈스의 대결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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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든 생각은...

모리스 르블랑은 셜록 홈즈 없이는 아르센 뤼팽의 활약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셜록 홈즈에게는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모리아티라는 숙적이 있다. 왜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에 필적할만한 매력있는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일까?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 그리고 자국 문화에 대한 불편할 정도의 자신감을 생각해보면 하필이면 프랑스 작가가 남의 나라 영웅을 이렇게 집요하게 자기 소설에서 멋대로 차용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뭐, 프랑스 국민들 입장에서는 훈장까지 줄 정도로 정신 승리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살아 숨쉬며 끊임없이 소비되는 홈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랑스 밖에서의 뤼팽의 인기가 떨어지는 이유는 그가 우리 사회의 법적 테두리내에서 규정된 범죄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모리스 르블랑이 「아르센 뤼팽」을 구상하게 된 배경에는 바다 건너 셜록 홈스의 성공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은 이미 세계적인 명탐정의 반열에 오른 셜록 홈스에게 던지는 아르센 뤼팽의 본격적인 도전장이다. 프랑스인 특유의 자존심을 고취시켜 작가의 폭발적인 인기상승에도 큰 공헌을 한 작품이지만, 내용을 파고들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평한 균형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코난 도일은 자신의 창조물인 셜록 홈스를 제멋대로 요리하는 걸 못마땅히 여겨 즉각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살짝 이름 철자를 바꿔 '헐록 쇼메스'로 개작 출간했으나, 원래 작가의 기도를 살리는 의미에서 한국어본에서는 모두 셜록 홈스로 고쳤음을 밝혀둔다. 당대의 두 영웅이 벌이는 두뇌 싸움 및 개성대결이 볼 만하다.

 

 

첫번째 에피소드 : 금발의 귀부인

1. 23조 514번 복권
2. 푸른 다이아몬드
3. 셜록 홈스, 전투를 개시하다

"홈스 말인가? 솔직히 그는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 하지만 바로 그 자 때문에 아까부터 내 기분이 이렇게 흥분되고 즐거운 것 또한 사실이야. 우선은 자존심이 사는 기분이지. 나를 상대하려면 그 정도는 되는 명사가 나서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솔직히 기분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나 정도 되는 협객이라면 당연히 셜록 홈스와 한판 대결을 벌인다는 생각에 짜릿한 기분이 들 것일세. 어쨌든 이제부터 당분간은 좀 바빠지겠어...... 나는 그 자를 잘 알거든. 절대로 물러설 친구가 아니지......"

"하긴 그는 생각보다 강할 걸세."

"무척 강하지......탐정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맞수는 옛날에도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내가 그보다 유리한 점이라면, 그는 공세를 취하지만 나는 방어를 한다는 것뿐일세. 즉 내 역할이 조금 더 쉽다는 것이지......게다가......"

그는 눈에 띌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난 그가 싸우는 방식을 잘 알고 있는 데에 반해서 그는 내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거야......두고 보게, 내가 예비해둔 몇 가지 함정들 앞에서 그는 꽤 골머리를 앓아야 할 걸!"

마침내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한두 차례 두드리더니 황홀한 표정으로 이렇게 내뱉었다.

"아! 아르센 뤼팽 대 셜록 홈스라...... 프랑스와 영국의 격돌이라니...... 좋아, 트라팔가르(1805년 넬슨의 영국함대가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에스파냐 남서쪽 끝의 트라팔가르에서 격파한 해전/역주)의 빚을 멋지게 갚아주겠어! 아, 딱한 친구...... 그 자는 내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을 거야......"

 
4. 어둠 속의 희미한 빛

그들은 그렇게 무척 많이도 걸었다. 앙리-마르탱가의 저택을 에워싼 두 채의 건물을 일일이 방문했고, 그 다음 클라페이롱가까지 곧장 걸어가 25번지 건물의 전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홈스는 연신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모든 집들 사이에 분명 비밀통로가 있어......한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왓슨은 난생 처음으로 가슴 깊이 이 동업자의 전지전능한 천재성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었다. 대체 왜 저리도 말만 많고, 행동하는 건 하나 없단 말인가?


5. 납치
6. 아르센 뤼팽, 두번째 체포되다
셜록 홈스라니! 아르센 뤼팽은 무슨 처절한 광경을 보느라 눈이 거북한 사람처럼, 두 눈을 꿈벅이며 홈스를 바라보았따. 셜록 홈스가 이 곳 파리에 나타나다니! 바로 전날, 무슨 위험한 화물처럼 영국 땅으로 돌려보냈던 셜록 홈스가 지금은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저렇게 눈앞에 버티고 서 있다니! 아, 아르센 뤼팽의 의도와 정반대의 기적이 실제로 일어난 건 필경, 순간적이나마 자연의 법칙이 삐끗했고, 온갖 비논리적이고 비정상적인 기운이 이 세상에 만연했기 때문이리라! 셜록 홈스가 지금 눈앞에 멀쩡히 돌아와 서 있는 것이다!

 

잠시 깊은 생각이 오가는 듯 침묵을 지키던 뤼팽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 지금 선생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나와 함께 옛 추억이나 떠올리자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물론 그보단 훨씬 더 중요한 동기가 있지요......"

당신이 내 선장과 선원 친구들을 용케 따돌린 것만으로는 우리의 싸움에서 그리 중요한 사건을 치렀다고 할 순 없소이다...... 혹시 충분한 복수의 준비를 갖추지 않은 채, 이렇게 감히 아르센 뤼팽 앞에 홀몸으로 나타나신 건 아니겠죠?

"여부가 있겠소!"

"이 건물은 접수한 거요?"

"그야 물론이오."

"이웃하는 두 건물도?"

"물어 무엇하겠소......"

"이 위층 집들도?"

"뒤브뢰이 씨가 소유한 6층의 세 아파트들 역시 우리 수중에 떨어졌소."

"그렇다면......"

"결국 당신은 붙잡힌 꼴이지요, 무슈 뤼팽......옴짝달싹 못하게 붙잡힌 꼴 말이오!"

일전에 납치 중인 자동차 안에서 홈스가 느꼈던 황당하고 분한 감정을 지금은 아르센 뤼팽이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운명의 섭리에 순응하는 듯한 기분 또한 함께 밀려왔다. 둘 다 똑같이 강한 인간으로서 정정당당한 패배 역시 깨끗하게 수긍할 땐 하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둘이 비긴 셈이로군요......"

뤼팽은 간단히 던지듯 내뱉었다.

 

"잘 가시오, 선생! 우리 사이에 맺어진 우정어린 관계를 내 절대로 잊지 않으리다......왓슨 씨에게도 안부나 전해주시구려!"

아무런 대답이 없자 뤼팽은 혼자서 냉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정나미 없는 거 보면 역시 영국 놈이야......하긴 섬나라 샌님에게 우리의 예의 바른 우아함을 기대하는 게 무리겠지......한번 생각해보시오, 가니마르, 프랑스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저런 식으로밖에 퇴장을 못하겠소? 모르긴 몰라도 세련되기 그지없는 겸허한 태도로 넘치는 승리감을 살짝 가릴걸!"

 

"왓슨, 좀 어떻게 해보게......자네 정말 한도 끝도 엉ㅄ구만......힘 좀 내봐 이 사람아!"

"힘이 모자란 게 아닐세......"

"그럼 뭔가?"

"팔이 하나가 이 모양이니 원......"

"저런, 저런...... 저 엄살 좀 보라구...... 누가 보면, 이 세상에 자네 하나만 그런 처지라고 생각하겠구만! 팔 하나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겠나? 자네 정도면 지극히 준수한 편이지......"

 

"아무튼 이렇게 정식으로 배웅을 하게 되어서 다행이오...... 물건들 더 필요한 건 없소? 담배며 성냥이며......그렇지! 석간신문은 있겠죠? 거기에 당신의 최근 무용담이자 나의 체포에 관련된 기사가 실려 있을 것이오......자 이만 나는 작별인사를 해야겠소이다. 서로 좀더 깊이 사귀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었소......앞으로도 나를 만나고 싶어하신다면 무한한 행복으로 여기리다......"

그리고는 훌쩍 플랫폼으로 뛰어내린 뒤 문을 닫았다.

아르센 뤼팽은 넋을 잃고 창문을 내다보는 두 사람을 향해 밖에서도 여전히 손수건을 흔들어대며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두번째 에피소드 : 유대식 램프
1.
2.

홈스는 부부를 한동안 멀뚱하니 앉혀놓고는 방 안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한데 그의 옷차람이 하도 괴상해서 부부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어야만 했다. 생각해보라, 꺽다리 영국신사가 광대 같은 옷차림을 한 채,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이소는 창문에서 문까지, 다시 문에서 창문까지, 마치 자동인형처럼 똑같은 걸음걸이와 똑같은 걸음수를 유지하며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이보시오, 무슈 뤼팽, 이 세상에는 뭘 어찌 한다 한들 내가 절대로 놀라지 않을 사람이 딱 둘 있소. 우선 나 자신과 바로 당신이오."

이 정도면 일종의 평화협정이 정착된 걸까?

비록 아르센 뤼팽을 잡아 넘기려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어도, 그리항 여전히 붙잡을 수 없는, 늘 우세를 인정해주어야 한느 특별한 적으로 그를 생각해야 하면서도, 영국인은 그래도 끈질긴 인내력을 발휘한 끝에 푸른 다이아몬드를 되찾은 것처럼 유대식 램프를 원상복귀시킨 것만을 사실이다. 하긴 일반 대중들의 눈에는 이번 사건이 푸른 다이아몬드 사건보다 덜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을 거이다. 왜냐하면 유대식 램프를 되찾게 된 경위는 물론,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인간대 인간, 뤼팽 대 홈스, 그리고 경찰 대 도둑 그 어느 쪽도 승자나 패자가 아닌 평등한 상태로 막을 내렸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묘미가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모두가 이긴 싸움이었다고나 할까?


모리스 르블랑 전기

1864년 루앙에서 출생. 유복한 도매상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주로 읽은 책으로는 월터 스콧, 발자크, 위고, 뒤마와 쥘 베른의 책들이 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잠시 동안 제사(製絲) 공장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880년 노르망디 전역을 자전거로 여행했다. 이때 섭렵한 에트르타 절벽이라든가 쥐미에주 수도원, 센 강 어귀의 여러 지역들, 생트-방드리유의 폐허들은 그의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고향이 루앙인 플로베르의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수많은 쟁쟁한 작가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고, 자신 또한 노르망디 출신의 유명 작가가 되기로 결심, 모파상을 열렬히 숭배하게 된다.

1888년 루앙을 떠나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쌓으려고 파리에 정착한다. 당시 상징주의자들과 데카당파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몽마르트르의 카페 샤 누아르(검은 고양이)”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거기에서 알퐁스 알레와 모레아스, 르통트 드 릴르 등과 교우한다.

1889년 에른스틴 랄란과 결혼. 딸 마리-루이즈 탄생.

심리학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콩트집 부부들(Des couples)을 처음 발표하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1892년 둘째 여동생 조르제트가 루앙은 답답하고 편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싫다며 집을 나과 가수 겸 여배우의 삶을 시작한다. 소설가 마르셀 프레보가 문단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신문 질 블라스에 그를 소개한다. 거기에서 그는 일정한 호응을 얻는 콩트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1893년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Une vie)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첫 소설 어떤 여자(Une femme)질 블라스지에 연재한다. 쥘 르나르와 레옹 블루아, 알퐁스 도데 등이 극찬한다.

1894, 어려서부터 자전거광이자 예찬론자인 그는 그녀(Elle: 자전거를 의미한다)”라는 제목으로 자전거 예찬론을 발표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의 사유재산이 한 대의 자전거로 집약될 때가 오리라! 모든 기쁨과 건강, 열정, 젊음의 원천인 자전거......이 영원한 인간의 친구에게로 말이다!”

1895년 첫 아내와 이혼한다. 당시 메테를링크와 동거 중인 여동생 조르제트가 연 살롱에는 말라르메를 위시해서 르뷔 블랑슈의 고정 필자들, 콜레트 등 대다수 파리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모리스 르블랑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며 견문이 넓은 세련된 댄디로 통했다. 그즈음 문학보다는 시사문제에 개방적인 에코 드 파리에 기고를 한다.

1896년 단편 모음집 신비의 시간들(Les heures de mysere)에는 꿈이나 신경증 같은 묘한 심리상태에 대한 남다른 취향이 드러나 있다.

1897아르벨과 클로드(Armelle et Claude)라는 소설과 자전거를 예찬하는 소설 날개를 펴다(Voici des ailes)를 발표한다.

1898년 드레퓌스 반대파에 가담했으나, 같은 진영 내에서도 자주 반론을 제기한다.

1899, 1838년 발자크 주도로 결성된 일종의 문인협회(la Societe des Gens de Lettres)”에 입회한다. 소설 열광(Enthousiasme)이 별 호응을 얻지 못한다.

1902년 자신에게 아들 클로드를 낳아준 마르그리트 보름제와의 결혼이 여의치 않은 데다, 건강 및 심리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빠진다. 이때부터 좀더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줄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1905, 막 창간된 주 세 투(Je sais tout)의 편집장 피에르 라피트가 영국에서 대단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셜록 홈스 시리즈풍의 소설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한다. 그에 따라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L`Arrestation d`Arsene Lupin)가 조르주 르루의 삽화를 곁들여서 19057월에 처음 연재된다. 그 당시 모리스 르블랑은 코난 도일을 몰랐었다. 그 직후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Arsene Lupin en prison)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전대미문의 신나는 모험담을 계속적으로 선보일 것을 약속한다. 당시 광고문안은 프랑스의 코난 도일이라는 닉네임으로 그를 칭했다.

1906아르센 뤼팽 탈출하다(L`Evasion d`Arsene Lupin)가 점잖은 경찰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지적을 경찰당국으로부터 받는다. 오랜 연애 끝에 드디어 마르그리트 보름제와 결혼을 한다. 또다시 뤼팽 시리즈에 손을 대지만 자신을 통속작가로 치부하는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 코난 도일로부터 셜록 홈스를 멋대로 소설에 차용한 것에 대한 비난의 편지를 받는다.

1907문인협회위원으로 선출된다. 작가들의 권익 옹호에 적극 나선다. 그때까지의 아르센 뤼팽에 관한 단편들을 모아서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Arsene Lupin gentleman-cambrioleur)을 출간한다. 그 해 여름 최대의 성공을 거둔다.

1908년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수수께끼(Le Mystere de la chambre jaune)가 출간된다. 아르센 뤼팽을 소재로 한 8밀리 영화 괴도신사(The Gentleman Burglar)”가 에드윈 S. 포터에 의해서 처음으로 제작된다. 기암성(L`Aiguille creuse)주 세 투에 연재되기 시작한다.

1909르 주르날(Le journal)지에 813의 비밀(813)이 연재되기 시작한다. 한 줄당 2프랑까지 고료를 받으며 이후 20여 년간을 이 신문에 글을 쓰게 된다. 반면 가스통 르루는 르 마탱(Le Matin)지에 기고한다.

1910뤼팽 대 홈스의 대결(Arsene Lupin contre herlock Sholmes)이 연극으로 각색되어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된다.

1912수정마개(Le Bouchon de cristal)르 주르날지에 연재하고, 모파상의 영향이 묻어나는 콩트집을 발표한다. 자신이 아르센 뤼팽의 창조자로만 유명한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한다.

1915년 너무 나이가 많아 전쟁에 참여할 수 없자, 르 주르날지에 애국적인 내용의 콩트와 같은 발상의 포탄 파편(L`Eclat d`obus)을 발표한다(이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발표된다).

1916년 피에르 라피트로부터 뤼팽 시리즈의 판권을 사들인 아셰트(Hachette) 사가 그간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대량으로 출간하기 시작한다.

1920발타자르의 기상천외한 인생(La Vie extraordinaire de Balthazar)으로 새로운 히어로를 창조하려고 했으나 실패한다.

1921년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프랑스인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크게 고취시킨 공로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에트르타에 전원 별장지를 구입해서 뤼팽 별장(Le Clos Lupin)”으로 이름짓는다. 이곳은 이후에도 기암성과 더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유명 코스가 된다.

1924년 전 세계적으로 아르센 뤼팽의 번역 판권과 시나리오 판권으로 막대한 수입을 얻는다.

여동생 조르제트를 염두에 둔 소설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La Demoiselle aux yeux verts)를 단행본으로 출간.

1927년 늘 그와 비교되던 가스통 르루 사망.

1930년 영국의 코난 도일 사망. 바리바(La barre-y-va)르 주르날지에 연재.

1934년 아르센 뤼팽을 소재로 한 미국 영화 아르센 뤼팽(Arsene Lupin)”이 개봉되었으나 모리스 르블랑은 그 어디에도 뤼팽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며 혹평을 한다.

1935백작부인의 복수(La Cagliostro se venge)를 발표. 여기에서 뤼팽은 코트 다쥐르 연안으로 은퇴한다.

1936년 뤼팽 시리즈가 라디오 연속극으로 편집된다.

1941년 모리스 르블랑 사망.

이후에도 뤼팽 시리즈는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고 수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다.

1970년에는 TV 시리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1989년 세기에 출판사에서 첫 본격적 전기(轉記)가 출간되었으며, 로베르 라퐁 사에서 부켕 총서로 처음 전집 출간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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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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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황금가지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완독하였다. 그리고 나서 한 달 동안 한편으로는 시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다가 결국 현대문학의 주석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를 2015년 7월 한달동안 읽었다. 남은 것은 아르센 뤼팽 전집. 이 방대한 전집에 내가 시동을 걸게 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는 빨리 그런 날이 왔다. 1년 만이다.

역시 여름은 추리 소설의 계절이다. 정신없이 달려와 지쳐서 겨우겨우 일하고 있고, 휴가는 다가오지만 아직 멀리만 느껴지는 이 때, 더위와 무기력함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게 뭘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이름. 아르센 뤼팽, 그리고 모리스 르블랑!

예전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과 셜록 홈즈 전집을 읽으면서 아르센 뤼팽 전집에 대한 정보도 찾아본 적이 있다. 수많은 출판사에서 나온 전집 들 중 열혈 블로거들의 추천은 까치의 성귀수씨 번역본이었다. 황금가지를 택한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 한 작품도 빠지지 않은 유일한 출판사였고, 현대문학을 택한 것은 셜록 홈즈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홈즈와 작가에 대한 내용들이 꽉꽉 눌러담긴 본문량을 훌쩍 뛰어넘는 주석 때문이었다. 까치의 전집은 모리스 르블랑이 세상에 내어놓은 바로 그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고, 한 명의 번역자가 번역하여 통일성이 있으며, 모든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의 해설 및 연보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안에 있는 삽화는 출판 당시의 오리지날 삽화라고 하며, 나란히 일렬로 세워놓았을 때 색색깔의 표지는 또 얼마나 선명하고 예뻤는지! 더구나 표지 그림은 역자가 직접 그린 뤼팽의 얼굴이라고 하니 출판사도, 역자도 얼마나 이 전집에 공을 들이고 애정을 담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 이제 즐거움과 괴로움, 아쉬움과 황홀함이 공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집 독파 여정을 시작해볼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은 아르센 뤼팽의 탄생을 알리는 첫 작품이다.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의 체포로 문을 여는 이 작품에는 "절대로 붙잡히지 않는 괴도"의 신화를 이끌어갈 모든 요소가 농축되어 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개성과 카리스마, 대표적인 수법, 숙적관계 등이 그것이다. 처음 연속되는 삼부작(체포-수감-탈출)은 따로 한 권의 작품으로 묶이기도 했다가 나중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확장된 것이다. "뤼팽 시리즈"의 인큐베이터와도 같은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1.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운전기사에서 테너 가수로, 마권업자에서 양가집 도련님으로, 청년에서 노인으로, 마르세유의 떠돌이에서 러시아인 의사로, 다시 에스파냐의 투우사로 종횡무진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바로 그 남자, 아르센 뤼팽!


2.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

"아하, 선생...... 설마하니 내가 이런 축축한 짚단 위에서 빈둥대며 썩을 인물 같아 뵈오? 그렇다면 실망인 걸! 아르센 뤼팽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감옥에 머물 뿐이오. 더도 덜도 말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말이오......"
노형사도 지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그러셔? 그럼 아예 감옥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하, 빈정대시는구만! 나를 체포했다는 자부심에 아직까지 취해 계신거요? 이것 보십시오. 존경하올 형사양반, 그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 관심이 훨씬 더 중요한 일에 쏠리지 않았다면, 당신을 포함해서 이 세상 그 누구도 내게 손을 대지는 못했을 거요."
"그거 참 의외로군."
"한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소, 가니마르. 난 그녀를 사랑했지.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당신은 알고 있소? 다른 건 내게 하등 중요치 않았소. 맹세하오. 그래서 지금 내가 이곳에 와 있는 거요."


3. 아르센 뤼팽 탈출하다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피고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것 같소. 요즘 같은 현대 세상에 피고처럼 과거의 족적이 불분명한 경우도 무척 드문 일이오. 피고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며, 어릴 때는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소. 피고는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 자신이 아르센 뤼팽이라고 주장했소. 지성과 광기와 패륜과 수완이 묘하게 뭉뚱그려진 괴물로서 말이오. 그 이전까지 피고에 관해서 알려진 모든 것은 그저 상상과 짐작의 소산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오. 예컨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마법사 딕슨 곁에서 일을 함께 했다는 로스타라는 작자도 아르센 뤼팽의 다른 분신일 뿐이며, 6년 전 생 루이 병원의 알티에 박사 연구실을 자주 드나들며 세균학에 관한 기발한 가설들과 피부병에 대한 과감한 실험으로 종종 스승을 놀라게 했던 러시아인 학생 역시 아르센 뤼팽의 또다른 분신이었을 것이오. 주주츠(주주츠:한자로는 유술. 유도의 전신에 해당하는 일본무술/역주)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기 훨씬 전에 파리에 이미 터를 잡았던 일본 무술 선생, 만국박람회 때 자전거 선수로 출전해 단번에 그랑프리와 더불어 상금 1만 프랑을 낚아챈 뒤, 영영 종적을 감춰버린 남자도 아르센 뤼팽일 것이오. 뿐만 아니라 1897년 5월, 121명의 목숨을 구해냄과 동시에 그들의 물건을 갈취한 장본인 또한 아마도 아르센 뤼팽이라는 이름의 인물이었을 것이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재판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듯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피고가 이 사회에 대적해 벌여온 싸움에 대해서, 피고 스스로 자신의 힘과 기지를 총동원한 그 주도면밀했던 인생체험들에 대해서 극히 보잘것없는 대비책만을 가져왔던 것 같소. 피고는 이런 모든 사실들을 인정합니까?"

 

"일단은 푹 쉴 생각이오! 영양보충도 해서 차츰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겠지요. 보드뤼든 다른 누구든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개성을 마치 셔츠를 갈아입듯 바꾸고, 외모와 목소리, 눈빛, 필체 따위를 맘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문득 그 모습들 가운데서 진짜 자기 자신을 못 알아볼 때가 있어요......그땐 몹시 서글퍼진답니다......지금도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요......이제라도 나 자신을 되찾아야겠죠......"

 

4. 수상한 여행객

나 하나를 처치하는 동작을 보니, 이 방면에 도가 튼 작자임이 분명했다. 단 한마디 말도 없고 눈곱만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모든 일을 해치우는 것이었다. 냉혈한의 기질과 무지막지한 강심장이 단박에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마치 미라처럼 꽁꽁 묶인 채, 의자에 맥없이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이다. 나, 아르센 뤼팽이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보통 웃기는 일이 아니었다. 상황 자체는 심각했지만,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이 가지고 있는 어이없는 아이러니와 코믹함을 모르는 체할 수가 없었다. 아르센 뤼팽이 한낱 풋내기처럼 당하다니! 마치 애송이를 다루듯 웬 강도가 내 지갑과 소지품을 탈탈 털고 있지 않은가! 이번엔 아르센 뤼팽이 혼쭐날 차례라도 되었다는 말인가......내 참 어이가 없어서!


5. 왕비의 목걸이

이제 드뢰ㅡ수비즈 부부와 손님들의 심기는 알 수 없는 불쾌감에 잔뜩 짓눌려 있었다. 과연 플로리아니 경의 어조와 말하는 방식 속에는 단순한 신념말고도, 처음부터 백작의 마음을 예리하게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랄까, 어떤 아이러니 같은 것, 어딘지 적의가 느껴지는 빈정거림이 분명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작은 억지로 웃는 시늉을 했다.
"그야말로 황홀할 지경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상상력이에요!"
하지만 플로리아니 경은 더더욱 엄정한 어투로 외치는 것이었다.
"천만에요! 그게 아니죠! 상상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필연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에요!"
"대체 그 일에 대해서 당신이 진짜로 알고 있는 게 뭔데......"
"백작님 스스로 내게 직접 얘기해준 그대로지요. 난 단지 그 아이와 엄마의 삶, 그 외진 벽촌에서, 몸져 누운 엄마와 보석을 팔아치우기 위해서 골몰하는 아이의 절박한 심정, 자기 엄마를 낫게 하거나 최소한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수 있게 애쓰는 그 아이의 마음을 머리 속에 그려본 것뿐이올시다. 하지만 결국엔 불행이 덮쳤죠. 엄마는 죽었고, 세월은 흘렀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어른이 되었겠죠. 그리고ㅡ여기서부터는 내 상상이 과하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만ㅡ바로 그 어른이 문득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로 돌아갈 필요를 느꼈다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막상 와서 보니, 자기 엄마를 의심하고, 핍 박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히죽대고 있더란 말입니다......어때요, 그 파란만장한 사건의 전모가 펼쳐졌던 옛 무대를 돌아보았을때 그가 느꼈을 법한 가슴 저리는 감회가 상상이 되시나요?"


6. 세븐 하트

"이 놈아, 당장 나하고 밖에 바람이나 쐬러 나가는 게 어때? 기분이 훨씬 나아질 걸! 저 공터로 나가서 보여줄 게 있다구......저 구석에 돌무더기 있지? 그 아래 뭐가 있을까?......"
"아니오! 사실이 아니오!"
"천만에,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엄연한 사실이지......이 구멍 뚫린 철판도 바로 그 밑에서 나왔거든! 제 주인인 루이 라콩브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 왜 자네도 잘 알지? 자네와 자네 동생이 그의 시체를 파묻을 때 거기 함께 묻어버렸지 않은가? 아마 경찰이 그곳을 파보면 자네에게 상당히 불리한 증거가 꽤 많이 나올걸!"
바랭은 한동안 두 주먹으로 얼굴을 가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내뱉듯이 이렇게 말했다.
"좋소, 내가 졌소이다......더 이상 없던 걸로 하죠......단, 하나만 짚고 넘어갑시다. 딱 하나만......"
"뭔가?"
"저 금고 안에 말이오......보다 큰 금고 안에 보석상자가 하나 있었을 텐데......"
"있었지."
"당신이 이곳에 왔을 때, 그러니까 6월 22일 밤에서 23일 사이, 거기에 상자가 있었소?"
"있었다니까."
"그 안에......"
"바랭 형제가 여기저기서 긁어모아둔 온갖 금은보석들이 가득 들어있더군......"
"그것도 당신이 차지한 거요?"
"자네가 내 처지였다면 안 그랬겠나?"
"그렇다면......보석상자가 사라진 걸 알고는 내 동생이 자살을......?"
"가능한 일이지......아마도 폰 리펜 장군과 자네의 서신만 사라졌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보석상자까지 없어졌으니 충격이 대단했겠지......자, 그럼 이제 궁금증이 풀렸는가?"
"또 하나 있소이다. 당신의 이름이 뭐요?"
"아하, 왜, 나중에 복수라도 하려고?"
"누가 아오? 운수란 돌고 도는 법이니까......오늘은 당신이 승자이지만, 내일은......"
"그야 자네가 승자가 될 수도 있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자, 어서 이름이나 밝히시지!"
"아르센 뤼팽이라 하네."
"뭐! 아르센 뤼팽!"


7. 마담 엥베르의 금고

"그래 가짜! 철도라든가 파리 시청, 수에즈 운하, 북부 지역 광산 등 모든 공채들이 그저 휴지 조각에 불과했단 말일세! 단 한푼도, 한푼도 그 다발들에서 건질 수가 없었어! 그런데 날더러 뉘우치라구? 저들은 나를 흔해빠진 머저리 취급을 했던 거야! 세상 둘도 없는 호구로 가지고 놀았던 거지!"

상처받은 자존심과 원한으로 그는 정말이지 엄청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던 거야. 제일 처음 마주쳤을 그 순간부터 말이네. 이 사건에서 내가 진짜로 담당한 역할이 무엇인지 아는가? 하긴 그들이 계산적으로 내게 위임한 역할이지만 말이야...... 그건 다름 아닌 앙드레 브로포드, 바로 그 역할이었어! 그래,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구! 나중에, 신문을 보고, 이런저런 사항들을 꼼꼼히 따져보고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네. 내가 마치 큰 은혜라도 베푸는 사람인 척, 위험을 무릎쓰고 위기에 처한 피해자를 구출해줄 때, 그는 나를 브로포드 가문의 일원인 것처럼 둔갑을 시켰었단 말이야...... 정말 대단하지 않나? 자기 집 3층에 살고 있는 그 괴팍한 인물, 무식하고 거친 인물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브로포드 가문이고, 바로 그 브로포드는 다름 아닌 나였던 거야! 당연히 내 덕에, 그러니까 브로포드가 한 집에 저리도 사이좋게 살고 있다고 하니, 은행가들은 돈을 빌려주려고 줄을 섰을 테고, 공증인들도 고객들의 돈을 마구마구 끌어다댔을 것 아니겠는가! 아...... 정말이지 내가, 이 아르센 뤼팽이 그때 그 부부에게 톡톡히 한 수 배운 셈이었다구!"

거기까지 정신 없이 내뱉던 그는 문득 내 팔을 부여잡더니, 일부러 잔뜩 목에 힘을 주며 이렇게 기막힌 농담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일세,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제르베즈 앵베르가 내게 1,500프랑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야!"

나는 도저히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러는 거였다.

"그래, 더도 덜도 말고 딱 1.500프랑일세! 그때까지의 급료 중 단 한 푼도 만져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여편네가 글쎄 나한테 1,500프랑이나 꿔갔었던 거야! 당시 별볼일 없는 젊은이의 거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말일세! 게다가 무슨 핑계를 대고 꿨는지 아나? 하긴 알 턱이 없지...... 바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더구만! 그래 그렇게 말했어! 소위 빈민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남편 몰래 위로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거야!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말이야! 정말 포복절도할 얘기 아닌가? 아르센 뤼팽이 한낱 마음씨 좋게 생긴 아줌마한테 1,500프랑을 사기당했다 이 말일세! 수백만 프랑어치의 위조 증권을 챙기는 대신 1,500프랑을 날치기당했단 말이야...... 게다가 그런 '멋들어진' 성과를 얻으려고 쏟아부은 시간하며 골머리 앓고 낑낑댄 걸 생각하면......하여간 내 인생에서 그때 딱 한 번 완벽하게 엿을 먹었던 셈이네! 젠장할! 그래 엿을 먹어도 아주 제대로 먹었지, 아주 엄청난 수업료를 내고 말이야......"


8. 흑진주

그는 어느 금요일, 해가 저물 무렵에 감옥에서 풀려났다. 6개월에 걸친 감방생활로 꽤 여위고 의기소침해진 상태였다. 예심과 영어생활, 지루한 법정 공방, 그리고 판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그를 이처럼 병색이 완연하게 만든 것이다. 밤마다 그는 온갖 약물과 환상에 시달려야만 했고, 신열과 공포심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곤 했다.
그는 아나톨 뒤푸르라는 가명으로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 방 한 칸을 빌렸는데, 거기에서 잡일로 연명하며 비틀비틀 살아가고 있었다.
가련한 삶이 아닌가! 이후로도 세 명의 새로운 주인에게 고용이 되었었지만, 곧바로 신분이 들통났고 그 즉시 해고되었으니 말이다.
종종 그는 어떤 사람들ㅡ아마도 경찰임이 분명한데ㅡ에게 미행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또다시 자신을 옭아매려고 드는 치들이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미리부터 어떤 가혹한 손이 자신의 멱살을 휘어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느낌에 대책 없이 시달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동네 음식점에서 저녁을 들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앞에 슬며시 앉았다. 한 40대쯤 되어 보이고, 검은색 프록코트 차림이 이상할 정도로 말끔한 신사였다.


9. 셜록 홈스, 한 발 늦다

예심판사도 검사도 아무 성과 없이 떠나고 난 자리에서 사람들은 셜록 홈즈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를 대하자, 내심 의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의 명성에 걸맞게 무척 괴이하고 신비스런 외모를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그저 깔끔한 부르주아의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셜록 홈즈하면 떠오르는 소설 속 영웅 같은 카리스마는 솔직히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인은 소포를 싸고 있는 끈을 풀고 포장지를 조심스레 열었다. 시계였다.
"이런 제기랄!"
순간, 부아가 치미는 듯, 셜록 홈즈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건 시계 아닙니까......"
드반은 시계와 영국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사색이 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세상에...... 그건 당신 시계로군요! 아르센 뤼팽이 당신 시계를 되돌려준 겁니다! 그렇다면 그걸 그 친구가 슬쩍? 감히 천하의 명탐정 셜록 홈스 님의 시계를 이처럼 제멋대로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정말 웃기는 노릇이로군...... 아참,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뜻밖의 일이라......”
마침내 드반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대차게 웃어버렸다. 실컷 웃고 나서야,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 선생 말이 정녕 맞군요...... 그 친구, 정말이지 대단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영국인은 이후로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디에프에 도착하기까지, 단 한마지도 내뱉지 않은 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지평선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그런 침묵은 버럭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무섭고, 격렬하며, 의미를 가늠키 어려웠다. 플랫폼에 당도해 악수를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는데, 그 어조 속에 이 특별한 인물의 모든 열정과 의지가 무서울 정도로 농축되어 있다는 것을 드반은 느낄 수 있었다.
“맞소이다. 그는 분명 대단한 인물이오...... 이제 그 대단한 인물의 어깨 위애, 지금 내가 당신에게 내미는 이 손을 얹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오. 드반 선생, 왠지 이 셜록 홈스와 아르센 뤼팽이 조만간 다시 맞붙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구려...... 하긴 이 세상은 우리 같은 두 인물이 서로 마주치지 않기에는 너무 좁지 않겠소?”

해설: 괴도신사의 재림을 기원하며

역자가 잘 아는 50대 후반의 어느 한 점잖은 신사가 술잔을 나누는 사석에서 무심코 이런 이야기를 흘린 적이 있다. “자네가 번역을 하니까 말이네만......아르센 루팡-, 사오십대가 넘은 독자들에게 사실 뤼팽보다 루팡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더 친근한가!-책이 좀 나왔으면 좋겠어......제대로 잘만 나온다면 지금이라도 서점에 가서 얼른 사다 읽을 텐데 말이야......” 내로라 하는 기업체의 중역으로, 자식 셋을 모두 성공적으로 키웠고 이젠 떡두꺼비 같은 손자까지 본 그 분의 푸념 비슷한 그 말씀은 일종의 계시처럼 내 이마를 때렸다.

 

깔끔한 실크해트와 외눈안경,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단단한 지팡이와 근사한 망토차림의 멋쟁이 신사로 뭇 여성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면서도 늘 사지(死地)를 넘나드는 위험한 인생에 기꺼이 자신을 던지고야마는 타고난 협객(俠客)......누구보다도 차가운 머리를 지녔지만 항상 뜨거운 가슴을 보다 더 우선시하는 로맨티스트......늘 대중의 편견을 비웃으면서 불가능을 훔쳐내서 보여주는, 그리하여 도둑질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현대판 로빈 후드......뤼팽만한 카리스마와 매력이라면, 더 이상 놀랄 가슴도 신기해할 머리고 없어 재미가 없는 이 시대의 지친 우리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빠르고 너무 편해서 멋이 없어진 이 사회에 진정한 멋과 통쾌함이 무엇인지, 이 전설적인 범죄자한테서 한 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아르센 뤼팽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한 시대를 화려무쌍하게 주름잡을 영웅의 탄생치고는 의외일 정도로 사소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1905년 파리의 프티 브루주아층을 대상으로 심심찮게 재미를 보고 있던 주 세 투(Je sais tout)(“나는 다 안다라는 의미)라는 대중잡지의 발행인 피에르 라피트는 십수년 전 셜록 홈스라는 탐정의 이야기를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던 스트랜드 매거진(Strand Magazine)이라는 잡지의 성공사례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매사 영국과는 경쟁관계에 있는 프랑스로서는 아무래도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아직 실력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신문에 꽤 많은 글을 기고해오던 작가 모리스 르블랑에게 이 영국인 탐정에게 대적할 만한 프랑스적인 영웅의 이야기를 집필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19057월 처음으로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이 바로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라는 제목의 짤막한 단편이었고, 그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새로운 스타일의 추리소설은 당시 대중에게 세 가지 점에서 무척이나 참신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첫째, 현학적이고 꼬장꼬장한 형사 나리의 빈틈없는 추리로부터 시원하게 벗어나서 엉뚱하게도 기상천외한 재주를 부리는 호쾌한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둘째, 그 범죄자에게 남녀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과 저항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한껏 부여했다는 점, 셋째, 이야기의 시작을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이 붙잡히는 것으로 열었다는 점이다.

 

물론 모리스 르블랑의 일방적인 조작으로 성립된 라이벌 관계이긴 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탐정과 도둑이라는 숙적관계를 떠나서도, 서로 대조적인 인간의 면모로 보이는 뤼팽 대 홈스라는 긴장된 구도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다소 신경질적으로 차갑고 냉철한 두뇌형 인간이 홈스라면, 뤼팽은 삶과 인간을 사랑하는 타고난 로맨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태도를 볼 때, 극심한 여성 혐오주의자인 홈스와는 정반대로 뤼팽은 결혼을 네 번까지 할 정도로 여성에게 인기가 있음은 물론이고 여성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안다. 천하를 제 것인 양 주무르는 대도(大盜)이면서도 의중의 여성 앞에서는 도둑질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는 여린 심성 또한 갖추고 있다. 공권력을 옆 집 개만큼도 여기지 않는 철저한 범법자이면서도 살인은 절대 금물이고, 심지어는 경찰을 도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주기도 하며, 조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분연히 나서는 애국자이기도 하다.

 

아르센 뤼팽에게 도둑질이란 하나의 예술이자, 고도의 정신적 유희이다. 그는 도둑질을 할 대상에게 미리 시기와 방법까지 예고를 하고서 멋지게 성공해내는 대담무쌍함을 곧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특유의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면서 도난 피해자의 재산목록 중 진품이 아닌 물건들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알려주는 친절함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드시 부유층만을 털며, 가난한 사람들과 전리품을 나누는 의적임은 물론이다. 법학과 의학을 상당 수준 공부했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비롯한 수많은 언어에 통달한 그는 예술품에 관한 한 전문가나 다름없는 감식안과 역사적 지식을 갖추었다.

그런가 하면, 그의 놀라운 재주는 이와 같은 점잖은 차원에만 머물지 않으며 웬만한 마법사 뺨치는 마법 실력과 더불어 무술 또한 수준급이어서, 경찰 십수 명 쯤은 혼자서도 너끈히 상대할 만한 완력의 소유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뤼팽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재주는 변장술인데, 그 자신조차 자기 얼굴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신기(神技)의 경지에 들어서 있다. 수십여 가지의 이름과 얼굴, 그 나름의 경력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살짝살짝만 자신의 존재를 암시하는 그의 자취를 이리저리 따라가며 넘겨짚는 재미야말로 뤼팽 독자들만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에나 가능할 이와 같은 슈퍼히어로의 모습에 열광하는 것은, 아마도 체제와 조직을 필요로 하되 그것을 탈피하고 싶은 그래서 우리 안의 경직된 준법성을 통쾌하게 따돌리고 어디 한번 멋진 일탈을 감행해보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욕망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반복될 현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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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읽기 공부법 - 책 한 권이 머릿속에 통째로 복사되는
야마구찌 마유 지음, 류두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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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좋은 책!이지만

사서 볼 정도는 아니다!

 

요약: 7번이든, 5번이든, 11번이든 반복해서 읽어라.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나서 세부 내용을 파악해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결국 모를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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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래서 자기계발서는 안보게된 달까요!^^

마고할미 2016-08-07 05:32   좋아요 1 | URL
한번은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두번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그장소] 2016-08-07 05:34   좋아요 0 | URL
저는 두번째 나온 책을 본것 같아요. ^^

마고할미 2016-08-2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두번이나 나왔었군요. 인기가 많은 책이라 그런가 봅니다.
 
혼자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삶을 찾아나선 당신에게
센다 다쿠야 지음, 이혁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이 굉장히 쇼킹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직장내 패거리 문화 및 갑을관계, 눈치 싸움에 지쳐 있었던 때라 한편으로는 속이 뻥 뚫리는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냉정히 이성을 가지고 보면, 사실상 우리네 직장이라는 것이 이렇게 막나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는 나는 이 길을 가지는 못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길도 가는구나, 이런 길도 있구나 하고 마지막 보루처럼 한가지 위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도움은 될 것이다.

 

인생에서는 옳고 그름보다 좋고 싫음이 훨씬 높은 가치를 가진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평생 옳은 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은 궁핍하고 얼굴이 어둡다. 반면 즐거운 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은 부자에다가 피부에 윤기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옳은 인생을 살아온 인생의 정점은 대법원장 정도다. 기껏해야 연봉 5천만 엔. 반면 즐거운 일을 관철한 인생에는 정점이나 상한선이 없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세계의 거부들처럼 구름 위를 노니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회의실이라는 곳은 회사원이 일제히 모이는 최악의 장소다. 그냥 패거리로 뭉치기만 해도 가난해지는데, 전원이 한방에 모이니 대책이 없는 것이다. 방대한 인건비와 시간이 낭비된다.


나 자신 신입사원 시절부터 호텔에서 커피 마시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왜 그렇게 분수 넘치는 짓을 거리낌 없이 했느냐 하면, 커피값보다 가치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보내는 한두 시간은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인간 드라마를 관찰할 수 있었다. 또 최상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 쓰는 글의 소재가 된 것들도 많다.
 커피 맛은 2차적인 얘기고, 호텔 카페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특별히 권하고 싶은 것이 평일의 낮 시간대에 가보는 것이다. 외근 중에 과감히 땡땡이를 치고 가보는 것도 좋고, 유급 휴가를 내고 평일 오후의 호텔 커피를 즐겨보는 것도 좋다.
 지금까지 지내던 공간에서 만나오던 사람과는 질적으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그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잠시나마 지금 만나는 무리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의 공기를 마셔보는 것은 거대한 자극이다. 회사원이라는 무라 사회의 고민 따위, 한 줌의 먼지 따위로 여겨질 것이다.


지금까지 3천 명 이상의 임원들과 교류해왔는데, 일류 인사들은 대부분 남의 일에 참견하길 좋아했다. '참견'이란 단어가 나쁜 어감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애정이 깊고,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일류들은 이미 지위 명예 권력 등 모든 것을 얻었기 때문에 이제 자신의 성공보다는, 남을 성공시키는 것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자신의 성공 방정식이 정말로 옳은지, 타인에게 전수함으로써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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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1disc) - [초특가판]
왕가위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화양연화.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1960년대 홍콩. 서민아파트의 옆집에 나란히 세들어 사는 두 부부가 있다. 장만옥이 연기하는 리첸 부부, 양조위가 연기하는 차우 부부. 이들은 같은 날 이사를 왔고, 맞벌이 부부이며, 비슷한 나이로 보인다. 어느 날, 리첸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가 서로 불륜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되고, 리첸과 차우는 동병상련을 느끼며 서로를 위로하다가 어느새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된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우리 나라 영화 '외출'과 매우 흡사하다. 외출 뿐 아니라, 배우자의 외도를 알고 난 후 남은 상대방이 거기에 대응하는 내용이나 결혼한 남녀가 육체적인 선을 넘지 않고 사랑을 이어가는 내용 등은 사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되어 왔던 주제이기도 한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아름답다'는 것. 그야말로 제목에 딱 들어맞는다. 장만옥이라는 배우의 영화를 다 보지도 못했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아마도 가장 아름답게 나온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치파오를 입은 리첸은 너무나 아름답다. 어쨌든 이 영화는 2000년에 개봉된 영화. 21세기에서 바라본 1960년대 홍콩의 모습은, 홍콩이라는 도시의 화양연화가 아닐까 싶다. 왕가위 감독이 기억하는 홍콩의 화양연화는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시간이 아닐까. 영화 속 마지막에서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후의 남녀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영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실 정작 그 순간에는 모르고 있다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보면, 배우자의 외도로 가장 바닥을 쳤고, 당시에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두 남녀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꼽는다면 그 떄로 꼽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이러니다. 또 정작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리첸이라는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양조위가 연기한 차우의 기억에 전적으로 기인할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나서 차우는 캄보디아를 찾게 되고, 거기에서 절절한 사랑의 기억을 봉인하는데, 그만큼 차우의 기억 속에 리첸은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처음 이 영화가 나왔을 떄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었는데, 그떄가 아닌 지금 보아서 더 좋은 영화 가같다. 10년 후에 보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어쩌면 가슴 아파질 지도 모르지.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서 양조위의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우수어린 눈에, 장만옥의 치파오와 미소에, 익숙한 음악에, 배경인 홍콩에 설레고 또 설레었다. 아, 그리고 국수 먹는 장면이 참 자주도 나오는데, 결국 보다가 국수 대신 컵라면을 끓여서 주인공들과 함께 먹으며 영화를 봤다. 새삼 궁금해졌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일지. 어쩌면 지금인데 지금은 모르고 먼 훗날 지나야 알게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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