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탄생 2 - 초보도 할 수 있는 결혼 준비 이야기 유부녀의 탄생
환타(김환타)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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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드라마에 시즌 2까지 단행본으로 나온 것을 보니 독자들에게엄청난 인기가 있었나보다. 인터넷 연재는 얼핏 보니 시즌 4까지 나온 것 같다. 읽는 내내 격려와 위로가 되었다. 현실적인 조언은 당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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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히 타인이었던 두 사람이 한 가족이 되는 과정인데 너무 쉬우면 더 이상하다 서로 싸우고 고생도 하면서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내 가족과 배우자가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효도는 셀프,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등은 양가에 똑같이, 부모님 앞에서는 없는 칭찬도 만들어서 하기
결혼식은 목적이 아닌 지나가는 과정, 너무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하려고 하기보다는 미숙해도 그 나름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결혼식보다 더 중요한 건 결혼 후에도 잘 사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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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의 탄생 1 - 초보도 할 수 있는 결혼 준비 이야기 유부녀의 탄생
환타(김환타)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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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소개받아 구매했다.
여러 말 필요없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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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꼭 낭만적인 이유로 결심하는 것은 아니더라?
부모님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아무리 나이 많은 자식도 떠나보낼 땐 서운한 듯)
상견례는 평화회담처럼(사전 준비가 매우 중요)
부모님은 자식 돈을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시는데 왜 나는 쉽게 받으려고만 했던 걸까. 이날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인 독립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남들이 하는 뻔한 결혼식,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시스템이라는 것. 친지인사+손님접대+식사+사진촬영=두 시간 만에 해결!
발품을 열심히 판다면 색다른 스타일로 할 수도 있지만 당시 우리에게 결혼식이란 같이 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에 불과했다.
과정은 간단하게 마음은 진솔하게
결혼 준비가 힘든 건 확실히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에 주변사람 하는 대로 알음알음 하다 보니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결혼 준비는 외교관처럼
나쁜 말은 알아서 걸러내고 좋은 말로 번역해서 양가에 전달하는 것
단 하루라도 여자로서 최고로 예뻐지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완벽히 타인이었던 두 사람이 한 가족이 되는 과정인데 너무 쉬우면 더 이상하다 서로 싸우고 고생도 하면서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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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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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마다 느끼는 김중혁 소설의 특징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냈지?'하고 매번 놀라면서도 사람 하나하나가 구별되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녀노소 누구나 단지 얼굴, 나이, 직업 등등만 다를 뿐 똑같은 사람 같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 사람은 작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즉, 스토리는 재미있고 새롭지만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그 자리에 갖다 놓은 느낌이다. 나는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캐릭터의 매력이 소설의 재미에 무엇보다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분명히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고 본다. 어쨌든 이야기는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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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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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그야말로 술술 넘어가는 책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절망이 마치 콸콸 쏟아지는 폭포처럼, 거대한 해일처럼 한순간의 머뭇거림이나 휴식 없이 몰아친다. 힘들다. 힘들다. 과연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고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또 내가 낳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은. 한없이 답답하고 먹먹한 마음이었다.

딜런이 겉으로는 자신의 상처와 짝사랑을 숨겨왔지만 글에서는 조이너가 죽고자 하는 욕망의 요소로 거론한 두 가지 심리상태, 곧 좌절된 소속감(“나는 혼자야”.)과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야.”)이 가슴 아프게도 판이하게 드러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세상에서 딜런을 왕따로 보는 것에 저항해왔다. 딜런에게 가까운 친구가 있었고(에릭뿐 아니라 잭과 네이트도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딜런의 일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딜런의 삶과 딜런 자신이 바라보는 것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살 유가족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도 하다.
딜런에게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딜런은 친구들 곁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일기는 자기 삶에서 좋은 점들을 열거하면서 “좋은 가족”을 적었지만 우리의 한없는 사랑도 딜런의 황폐한 안개 속을 뚫을 수는 없었다. 딜런은 자기가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통과 내가 대학 학비를 어떻게 댈까 입 밖에 내어 걱정한 일은 있다. 그게 오늘날까지도 사무친다.) 딜런은 자기가 속할 수 없고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처음에는 분노가 거의 자기 자신을 향하다가, 서서히 바깥을 향하기 시작한다.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정리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1.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2.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고 자기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 모든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3. 삶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딜런의 심리작용은 심하게 악화되어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이렇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의 이전 자아가 아직 남아 있어서 총격 도중에 최소 네 명을 살려주었습니다.
-피터 랭먼 박사의 이메일(2015년 2월 9일)

이즈음에 고졸 학력 인증을 받으려고 공부하는 고위험군 청소년들을 가르칠 때 만났던 한 여자아이가 종종 생각났다. 아이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같은 반 아이가 점심값을 계속 훔쳐갔다고 한다. 계속 밥을 굶기 싫어서 결국 아버지한테 이야기했는데, 아버지가 빈 욕조에 던져 넣고 더 못 버틸 때까지 허리띠로 때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네 문제를 네가 해결 못 하고 나한테 들고 오지 마라!”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다음 날 갈퀴 손잡이를 들고 학교에 가서 자기 돈을 훔쳐가던 아이를 때렸다. 그 뒤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한테 준 최대의 도움이에요.” 내가 충격 받은 얼굴로 샌드위치를 내려놓는 걸 보고 여자아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머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선서증언을 하러 가면서 좋은 부모라는 게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나는 아버지가 아이를 학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는 사랑과 존경이 담긴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아빠가 자기를 잘 키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버지는 아이가 그들이 사는 거친 환경에 잘 대처할 수 있게끔 가르쳤다. 내가 핵심을 놓친 걸까? 나에게 그런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는 건 분명하다. 아마 누구나 지식과 자원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지도 모른다.

신경과학자들은 사람의 행동이 유전과 양육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흔히 말한다. 미래 언젠가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의 구체적 조합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경학자들이 뇌 안에서 공감과 양심을 관장하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날이 오면 나는 자축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하지만 빅토리아 아랑고 박사 등의 연구를 통해 자살로 죽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뇌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은 밝혀졌다. 켄트 키엘 박사 등은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도 뚜렷한 차이를 보임을 입증했다.
나는 딜런에게 생물학적으로 폭력적 성향이 있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게 우리 책임인지에 한참 골몰했다. 나는 딜런을 임신했을 때 술을 마시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딜런을 신체적 언어적 정서적으로 학대하거나, 다른 사람이 학대당하는 것을 딜런이 옆에서 겪은 적도 없다. 가난 속에서 성장하지도 않았고, (내가 아는 바로는) 폭력적 행동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중금속 같은 특성물질에 노출된 적도 없다. 나도 톰도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이 아니다. 영양도 잘 공급받았다.
설령 딜런이 정말 생물학적으로 폭력적 성향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그게 운명은 아니다. 딜런의 이런 경향을 악화한 영향은 무엇이였을까? 콜로라도 주지사는 총격 사건 이후 처음 공식석상에 나왔을 때 양육 방식을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딜런이 성장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아는 톰이나 나나 답은 거기에 없다고 확신한다.

“담배 한 대 피운다고 폐암에 걸리지는 않지요. 또 평생 흡연을 해도 폐암에 안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관관계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폭력적 오락이 난동의 충분조건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유해한 요인입니다. 소수의 취약한 사람이 흡연을 하면 다른 요인과 상호작용을 하여 폐암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폭력적 오락과 폭력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취약한 사람에게는 위험한 겁니다.” 하지만 톰과 나는 딜런이 취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지는 않았다.
딜런의 취약성이 아마 딜런이 또 다른 유해한 영향이었을 에릭에게 약했던 까닭이기도 했을 것 같다. 나는 딜런이 다른 사람을 추종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딜런은 워낙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춰주는 성격이다. 전형적인 둘째로 어릴 때에는 형을 따라서 놀랐고 톰이나 내가 시키는 대로 저항 없이 잘 따랐다. 하지만 딜런이 친구들하고 같이 노는 모습을 종종 보면 동등한 관계로 보였다. 잭이나 네이트가 딜런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네이트는 피자를 먹고 싶은데 딜런은 햄버거를 먹고 싶다면, 둘이 잘 타협했다.
나는 아직도 딜런이 수동적 추종자에 불과했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에릭이 매력 있고 카리스마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에릭은 상담사와 정신과의사 등 전문가들을 능란하게 속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딜러니 공감과 양심을 지니고 살아온 17년의 삶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었는지를 그렇게 쉽사리 설명할 수는 없다. 살상에 몰두했던 것이 에릭일지는 모르나 그래도 딜런도 함께했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계획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거나,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좋다고 말했고,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계획에 발을 넣었다.
에릭이 제안한 폭력에 딜런이 왜 가담했는지 나는 영영 모를 것이다. 일기를 보면 딜런의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하고 처절한 무력감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에릭은 딜런을 전에 느껴보지 못한 방식으로 정당화해주고 받아들여주고 강한 존재로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세상에 보여줄 기회를 딜런에게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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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천천히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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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에는 어딘가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늘 있는 것일까. 다시 몇 개의 문을 통과하여 중환자실로 향해 가면 너는 몇 번째의 문에선가 다시 몸을 접어 나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곳에서 가만히 있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자꾸만 움직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 소설이라 술술 읽힌다. 그게 이 소설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희망 없는 세대와 미래 없는 시대를 사유하는 작가 박솔뫼의 네번째 장편소설. 다섯 권의 책을 내는 동안 박솔뫼는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에 네 번 선정되었으며 문지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소설에서도 박솔뫼 특유의 '쉼 없이 흘러가다가 익숙해질 무렵 덜컥 변하는 리듬 같은 문체'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공간'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이 책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이다. 희망도 미래도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라는 것을 내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과연 얼마나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독자를 위해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쉽다가도 그 아쉬움조차도 이 소설의 일부이고 또 전부라는 생각을 했다. 오래 전, 10년 전쯤 읽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일본 소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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