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부에서보다 범위가 확 넓어진다. 읽어나가면서 따라가기가 힘들고 만만치 않다. 거의 도전적인 자세로 읽게 되는데, 1권을 읽었으니 오기로라도 2권은 다 끝내리라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결국 파우스트는 구원받았다... 이것을 스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 결론은 정해져 있고, 그렇다면 이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가 이 소설의 핵심인 것이다.

괴테가 평생을 두고 파우스트를 썼다는데, 24세에 쓰기 시작해 82세에 완성했다고 한다. 2부는 괴테가 죽고 난 후에 세상에 나왔다고도 하는데... 괴테의 개인적인 삶을 훑어보면 평생 동안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실망도 했다가, 그래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놓지 못하다가 죽기 직전에서야 아, 인간은 이렇구나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구나 하고 나름의 결론을 낸 게 아닐까 싶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덧없는 것들에 큰 가치를 부여하면서 스스로를 괴롭게 했는가. 그 과정이 지속된다면 인간은 추해질 수도 망가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무서움이 든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라는 마지막 행이 작가의 결론일 텐데, 부와 명예를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것들, 그리고 그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만은 비인간적인 것들에 대해 구원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라고 정리하기에는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길 때 한 번 더 파우스트를 읽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우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마와 인간이 서로 계약을 한다는 스토리의 원조이다. 최근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라는 드라마도 있었다. 한 회도 보지 않아서 어떤 이야기인지 자세히는 모르나 아무튼 그 드라마도 악마와 인간간의 계약을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고, 그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았을 때 해지할 수 있으며, 해지 뿐만 아니라 위자료 등 피해 보상도 할 수 있다. 결국 스토리는 부족하고 약한 인간이 한순간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계약을 했다가 결국 스스로의 의지로 계약을 파기하고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그런 스토리인데... 아마도 이런 스토리가 사람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살면서 한번쯤은 만약 나에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하고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이런 식의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요약하면 아주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읽으면서 수없이 생각했던 부분은, 같은 민음사 판에서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가 있던데... 그 책이 훨씬 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비극 1부를 다룬 1권은 읽을 만하다. 최소한 읽으면서 허들이 많이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포스터가 들어갈 정도이면 이 영화가 얼마나 유명한 영화인지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일단 영화는 보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굳이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와 소설이 다른 점이 있다는 정보는 인터넷으로 확인이 가능했고, 마지막 장을 통째로 덜어내고 마지막 장 직전의 장에서 영화가 끝맺음을 했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감독의 재량권이나 해석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고, 나쁘게 말하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난 그냥 내 마음대로 하겠다 라고 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 장의 주인공과 마지막 장 직전의 장에서의 주인공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메시지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묘사해야 했는지 이건 작가가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인가 사이코패스인가 하며 작가의 정신 세계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자 했다가도 저자인 앤서니 버지스의 아내가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해 알게 되면 왜 작가가 그렇게까지 묘사했는지, 또 이 장면을 소설에 넣으면서, 또 마지막 장을 쓰면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했을지 고통을 알 것 같다. 원작자인 버지스는 큐브릭 영화의 완성도는 인정했으나 영화 자체는 싫어했으며, 자신의 작품이 큐브릭 영화의 원작으로만 알려지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또한 영화와 달리 원작의 내용에 충실한 시계태엽 오렌지의 연극판의 각본을 직접 썼으며, 극중 큐브릭을 닮은 사람을 등장시켜서 구타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버지스가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해 알게 되면 작가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큐브릭 감독이 원작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샤이닝의 원작자 스티븐 킹은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원작과 달라진 영화의 내용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쯤 되면 감독이 사이코패스성향이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스탠리 큐브릭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는 영국에서 이 영화를 본 청소년들의 모방범죄가 다수 발생했고, 폭력을 조장했다는 비난과 항의가 큐브릭에게 향하고 심지어는 살해 협박까지 받아서,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지도 못했고 자신도 이대로는 더 견딜 수 없다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상영중지를 부탁했다고 나온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가족에 대한 고통에는 민감한 사람이 남의 고통에는 무감각했던 것일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어떻게 몰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무성하다. 큐브릭하면 평론가들이 높게 평가한 것에 비하면 아카데미가 외면한 감독으로 유명한데, 아카데미에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 중 배우가 제일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는 간다. 감독에 대한 인격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과연 인간이 스스로 갱생이 가능한 존재일까, 연쇄살인마도 갱생이 가능할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버지스보다는 큐브릭의 관점에 더 기울기는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숄로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8
미하일 숄로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 그림은 바실리 페로프라는 화가의 마지막 여행이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서 누구인지 검색을 해 봤는데 러시아 화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로 유명하며 러시아 화가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라고 한다. 19세기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그 당시 러시아에서 사실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명성을 높임과 동시에 스스로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 표지 그림의 제목은 마지막 여행, 그림을 보면 말이 끄는 썰매에 관을 싣고 가는 3명의 사람이 보인다. 왜 마지막 여행인지 알겠다. 살아있는 사람 3명에 관의 무게까지 홀로 버텨야 하는 말은 힘들어 보이고, 어른 한 명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며 아이 둘 중 관을 끌어안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넋이 나가 있다. 다른 아이 하나는 모자와 옷에 쌓인 채로 입을 벌리고 있어서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인다. 그림 하나만으로도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만하다.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화가가 묘사하는 이 시기 러시아 사회가 어떠했는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절망감도.

작가인 숄로호프가 태어난 것은 페로프가 사망한 후 몇 년 뒤이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적은 없으나 화가의 시대이건 작가의 시대이건 이 시대의 러시아가 혼란스러운 시대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시대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고요한 돈 강이라는 책을 어릴 때 봤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은 아니었으니 아마 친가나 외가 둘 중 한 군데였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반복적으로 봤던 기억은 커서도 잔상이 남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여러 권으로 되어 있었고 두꺼웠으며 다소 낡아 보였는데 마지막 글자 강은 한자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숄로호프가 1965년에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한국에까지 소설이 당연히 번역되어서 출판되었을 것이고, 노벨상 받은 작가이니 당시 친가가 되었든 외가가 되었든 그의 소설이 있을 수 있겠다. 소설을 산 사람이 삼촌이었는지 고모였는지 누구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선물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노벨상을 받은 숄로호프는 현실 정치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레닌 상과 스탈린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암 진단을 받은 후 막내딸을 선집 출판 편집자로 지정했으며, 이 책의 역자 또한 딸을 직접 만났다는 후기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그의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러시아 민중의 삶은 비참하다. 가족 간에 고발이나 살해도 일어난다. 정작 작가는 개인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누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생전에 공산주의 국가인 조국으로부터, 그리고 내 짧은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게도, 작가의 조국이나 그 조국의 통치자의 이념과는 반하는 가치를 높게 평가할 서구 세계로부터, 문학적인 찬사와 현실에서의 영향력을 전부 획득했다. 심지어 사후에는 자신의 딸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부분적으로 물려주며 발휘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대해서는 일단 표지 그림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표지 그림은 폴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이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은 N 포털 사이트를 참고했다.

사이트의 지식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자화상은 폴 고갱이 18914월 타히티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에 42살이었던 고갱은 근엄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였으며 침착하고 사려 깊었으나, 때로는 냉소적이기도 했다는 동료의 표현이 있다. 고갱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거울 맞은 편에 서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작업하였다고 하는데 평행한 붓터치와 고르게 분포된 빛 효과 덕분에 그의 모습은 자신 있게 그려졌고, 야성적인 표정도 강조되었다고 한다. 고갱의 주위로 보이는 두 작품은 그가 1889년 완성한 두 점의 작품이라고 한다. 좌측에 보이는 작품은 황색 그리스도의 일부분으로 거울에 반사되어 좌우가 뒤바뀐 채 보이는 데 당시 이 작품은 고갱에게 1890년 겨울에 숙식을 제공해 준 친구인 에밀 슈페네커의 아틀리에에 있었다고 하는데 고갱은 이 친구와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초상화를 완성하기도 전에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자화상 항아리, 1890년에 에밀 베르나르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후 슈페네커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이 책의 표지에 딱 맞는 그림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출판사에서는 표지 그림으로 폴 고갱의 어떤 그림을 넣을 것인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책은 결국 평범한 직장인으로 만족하면 살고 있는 것 같던 한 작가가 대체 왜 예술의 세계로 뛰어들며 가족도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는지 그의 마음을, 어두운 동굴에서 손전등 하나로 더듬거리며 출구를 찾아가듯 조심스럽게 짚어가는 책이다. 타히티로 가기 직전에 완성한 자화상. 작가 스스로 자신을 표현한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번민과 고민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한 인간의 의지와 열정이 보인다. 자화상 속 남자는 전혀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갈 길을 명확히 결정한 사람이다. 자신감 있고 안정되어 보인다.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도 느껴질 정도로.

이 작품의 제목은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이다. 두 가지 그림이 등장하는데 왼쪽에 보이는 작품만 제목에 등장한다. 숙식을 제공한 친구의 아틀리에에 있다가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이 그림을 완성하기도 전에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는 뒷이야기를 알고 나니, 어쩌면 서머싯 몸이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스트로브와 블란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면에서 박완서 작가의 나목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나레이터가 등장하는데 서머싯 몸 자신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의학교를 졸업하고 면허를 얻지만 작가 수업을 위해 의업을 포기했다는 작가의 이력을 읽고 나면 뒷부분에 등장하는 자신의 두 동창 의사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처음 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은데 다시 읽으면 그은 밑줄을 다시 지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작가의 감정 과잉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자기애 때문인가 싶기도 한다. 의사 면허를 얻지만 의업을 포기하고 작가가 된 서머싯 몸이 고갱에게 매혹된 이유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 들고, 소설이 끝날 때까지 출발점에서 크게 멀어진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사회의 모든 관습을 극복하고 예술가가 된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고갱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 소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찬미이자 세상에 대한 변호라는 생각을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실제로 소설에서는 고갱(=화자)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 중 긍정적으로 묘사된 인물이 거의 없다. 드물게 긍정적인 면이 부각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또한 고갱(=화자)에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이다. 고갱(=화자)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주변 사람들을 지나칠 정도로 형편없게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구절에서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작가들을 알지 못했다. 이제 보니 아주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내게는 그들이 한 번도 진짜 작가들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21P

 

로즈 워터퍼드는 냉소주의자였다. 그녀는 인생을 소설 쓰는 기회 이상으로 보지 않았고 대중을 소설의 소재로 보았다. 대중 가운데 자기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집에 초대하여 아낌없이 대접했다. 그녀는 명사들에게 약한 그들 대중을 장난스러운 경멸감을 가지고 보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 앞에서는 저명한 여류 작가답게 점잖게 처신했다. -24P

 

더크 스트로브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꼴은 우스꽝스러웠다. 좀 초췌하고 여위기라도 했더라면 동정을 살 수도 있었으련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뚱뚱한 데다 불룩한 뺨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불그레했다. 늘 말끔하게 차리고 다니는 사람이라 여전히 말쑥한 검은 웃저고리에 언제나 약간 작아 보이는 중절모를 멋쟁이처럼 쓰고 다녔다. 게다가 배까지 나오는 중이어서, 슬픔의 흔적이라곤 도무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때보다 더 돈 많은 장사꾼처럼 보였다. 때로 그처럼 사람의 외형이 정신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크 스트로브는, 말하자면, 뚱뚱보 토비 벨치 경의 몸뚱이에 로미오의 열정을 지닌 격이었다. 착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늘 실수투성이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진짜 훌륭했지만 평범한 그림밖엔 그려내지 못했다. 감성은 유별나게 섬세하면서도 행동은 투박했다. 남의 일에는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면서도 정작 자기 일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처럼 허다한 모순을 안겨주고선 이 사내로 하여금 당혹스럽고 냉엄한 세상에 맞서게 한 걸 보면, 조물주의 장난도 잔인하기만 하다. -164P

 

이 소설이 출간 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작가의 다른 소설이자 먼저 출가된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소설의 인기까지 끌어올렸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소설 자체의 훌륭함보다는 폴 고갱이라는 화가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아보카도에 대한 주석이었다. 타히티에서 화가가 살았던 집 뒤꼍에서는 아보카도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 아보카도 열매에 배 모양의 과일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요즘 아보카도를 모르는 한국인이 누가 있겠나. 아마 최근에 나온 책들에는 아보카도를 따로 주석을 달아서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가 되었을 때에는 아보카도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책이 사랑받고 있는지 새삼 알았다. 인류가 고갱에 대해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이 소설도 계속 읽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종점에서 종점으로 오가는 전차와도 같아서, 이 전차를 타고 다니는 승객의 수를 거의 정확히 알아맞힐 수 있었다. 생활이 너무 편안하리만큼 정돈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끔찍한 생각이 들어서 내 작은 아파트를 비워 주고 얼마 안 되는 소유물을 처분한 뒤,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정했다. -88P

 

 

셰익스피어도 이아고를 고안해 냈을 때, 달빛과 상상의 실을 엮어 짜 데스데모나를 상상해 냈을 때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느꼈을 것이다. (중략) 자기가 창조해 낸 인물에 살과 뼈를 부여함으로써 작가는 다른 식으로는 방출될 수 없는 자신의 본능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198P

 

세상에는 자비로운 섭리에 따라 분명 독신으로 살게끔 운명지어졌으면서도 고집이 세거나 또는 불가피한 사연으로 그 천명을 거스르는 사내들이 있다. 결혼한 독신주의자처럼 가엾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231P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바글대는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뭐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중략)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죄다 태어날 때부터 낯익었던 풍경과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정착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이곳에서 휴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254P

 

그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둥근 구멍에 모난 못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곳에는 별의별 구멍이 다 있어, 제 구멍을 찾지 못하는 못은 없었다. 여기라고 해서 그가 더 점잖아졌다거나, 이기적인 성격과 무지막지한 성질이 더 줄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환경이 그에게 유리해졌을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만 살았더라면 그도 다른 사람보다 더 고약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에 와서야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서는 기대도 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았던 것, 곧 동정을 얻었다. -27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