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일반판 박스세트 (9DISC)
김철규 감독, 김영애 외 출연 / KBS 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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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황진이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다.

 

외모도 아름답고 예술로도 높은 경지까지 올랐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항상 당당했다는 점.

 

 

 

세상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고,

 

타인이 자신에게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자 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그렇게 살다 갔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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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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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만든 어떤 것”
제목부터가 끌렸다. 당연히 의사에 관련된 영화라는 것은 의료 정보학 수업이니까 알고 있었지만 흑인과 백인이 가운을 입고 함께 나오는 포스터를 보고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다. 영화 파일을 찾느라 꽤 힘들었다. 겨우겨우 파일을 찾았는데 찾는 과정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영화에 대한 평들을 볼 수 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명작이라는 찬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칭찬 일색이었다. 더구나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것을 알면서 영화 시작부터 집중이 되었다.
특별한 해고 사유 없이도 쉽게 해고당하는 흑인 청년. 그것도 비비안이라는 여자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미국 영화는 백인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영화는 흑인 주인공의 시각에서 풀어간다는 점부터 신선했다.
비비안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찾아 간 백인 외과 의사 블레이럭은 지나치게 거만하다. 대중 매체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의사의 모습이었다. 까다로워 보이는 의사 밑에서 일하던 비비안은 의사의 연구실에서 의학책을 보고 어렸을 적부터 항상 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느끼는 부분인데 의학책의 인체를 보고 집중할 때의 그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 ‘닥터’라는 호칭을 강조하던 블레이럭이 너무 권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자꾸 보면서 느낀 점은 ‘닥터’라는 호칭을 자꾸 사용하게 함으로써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비비안에게 무의식중에 의사로서의 꿈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는 권위적이지만 의사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항상 생각하고 진정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한 사람에게 진정한 멘토가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한편으론 그 당시에 자신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고졸 흑인을 기존의 편견이나 고정 관념을 떨치고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는 백인 의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갓 선배가 된 나는 좋은 후배보다 좋은 선배가 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서서히 느끼고 있다. 단순히 잘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이끌어줄 위치에 있다는 것, 또 그 방식에 있어서 상대에게 다소 엄격하게 그러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대한다는 것이 약간 어렵게 느껴졌었는데 블레이럭을 보고 진정한 스승, 멘토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또 비비안의 경우,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어도 완전함을 추구하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모은 돈이 한꺼번에 없어진 절망적인 상황.(아마도 대공황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힘든 것은 상황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상태에서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고 느낄 때이다. 그의 실망이나 허전함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갔다.
의과대학의 꿈이 좌절되었지만, 단순히 이 일이 좋아서 힘들어도 그 일을 추구하는 비비안의 모습을 보며, 요새 의사 자체보다는 편한 미래에 안주하고픈 마음으로 의대에 오는 대다수 의대생들의 반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꼭 의대가 아니더라도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생들 중 자신의 학교나 전공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그들이 정말 모두 국가에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되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학에 들어올 때의 동기가 무엇이든 일단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의대생이나 의사로서의 자세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안이 블레이럭의 조수로서 대학에 출입하자 외부인 이니 펀치를 찍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펀치를 찍는 그 공간에는 흑인밖엔 없었다. 흑인이 가운을 입자 신기하게 쳐다보는 의사와 간호사들. 또 의사 한 명은 커피와 도넛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과연 그가 백인이어도 그랬을까. 이 몇 장면만 보고도 그 당시 흑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앞부분에서 여자 의사가 심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블레이럭에게 하자 훨씬 나이어린 백인 남자 의사들이 비웃던 모습도 나왔다. 그만큼 이 시기에는 흑인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편견에 시달리고 있을까. 물론 예전보다는 확실히 많이 나아졌고 앞으로도 우리가 많이 바꿔가야 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심장 이상으로 안쓰러울 정도로 얼굴이 파란 아기도 나왔다. 의사들의 대화 중 심장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심장을 정지시켜야 하는 수술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 당시 의사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만 급급해서 자신이 배운 지식과 반대되는 쪽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현재에도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현재는 심장 수술에 대해 꽤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고 이 당시만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수술들이 행해지고 있다. 모든 직업, 모든 사회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의사들은 아집이나 편견에 빠져서도 안 되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인체에 대해 밝혀진 것은 아직도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고 환자를 위해서라면 의사는 항상 기존의 지식에서 자꾸 나아가고 발전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전부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지식을 기꺼이 수정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영화나 드라마의 의사들은 외과 의사라는 점이다. 아마도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일 것이다. 차라리 자라서 환자가 되겠다고, 그럼 바쁜 아빠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블레이럭의 딸의 모습에서, 또 항상 바쁜 비비안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그의 아내의 모습에서 외과의의 삶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신부와 함께 온 블레이럭 앞에서 개를 끌어안고 있는 비비앙의 모습. 누가 봐도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를 안고 있던 비비앙의 모습은 단순히 허탈함이나 좌절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파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비록 동물이지만 환자처럼 느끼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 충격 때문인지 그는 악몽까지 꾸게 된다.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의 실패와 그 이후에 얻은 깨달음으로 인한 기쁨. 외과 의사의 삶이란 얼마나 많은 환희와 절망을 오가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 때문에 비인기과라는 외과를 그래도 아직 많은 학생들이 희망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감히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수도 없이 많이 했다. 물론 사람을 살려내었다는 기쁨 때문에 보람은 다른 의사보다 더 클 수 있겠지만 그것을 위해 거쳐야 할 수많은 불안과 긴장과 또 죄책감을 내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두려운 느낌도 들었다. 책임감 없이는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블레이럭의 대사 중 “야망이 나를 무모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최근 방영하고 있는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 겹쳐졌다. 과연 순수하게 환자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이 의사의 전부일까. 정말로 개인의 명예나 자존심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 적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아직 여기에 대한 결론은 잘 모르겠다.
의사 자격증은커녕 의과대학에 들어가지도 않은 비비앙이 수술하는 모습을 보고, 물론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13년동안 최고 외과의사 바로 곁에서 보조를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한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비안이 의과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도 뛰어난 실력을 겸비하고 있어서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눈을 감고 수술하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비앙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영화적 설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에 그의 재능이 그렇게 천부적이라면 블레이럭은 비비안을 의과대학에 가서 정규 수업을 받고 의사가 되도록 도운 후에 수술에 참가하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게 실화라고 생각하니 그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두 번 있으면 그다지 좋을 일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의과대학에 들어간 다른 의사들보다 그의 능력이나 열정이 더 뛰어났다는 점을 보면서 현재 의대생들이 각성하는 정도로 삼아야지 이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좀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블레이럭 팀, 그러나 모든 영광은 블레이럭에게 돌아가고, 정작 중추적인 역할을 한 비비안은 의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블레이럭이 동료들에게 하는 인사에 이름조차 올라가지 않는다. 보면서 느낀 것이 의사 자격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유전학 시간에도 들었지만 ‘라이센스’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 나중에 나도 그런 위치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새삼 내가 나중에 의사가 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한편으로는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었다.
결국 일한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비비안은 폭발하고 실험실을 뛰쳐나온다. 외판원으로 떠돌던 그는 결국 실험실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는 보상받지 못한 자존심보다 일 자체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물론 뛰어난 기술 덕분에 실험실의 디렉터라는 위치까지 나중에 올라가지만 일단 그 당시에는 차별과 편견과 불합리한 대응을 스스로 극복했을 비비안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비록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의 노력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약한 장애에도 쉽게 꺾이고 억울해하는 우리의 모습에 비하면 수십 년 동안(영화에서는 1964년까지의 일이 나온다.) 꾹 참아가며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인 비비안은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또한 그러한 비비안을 알아본 블레이럭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닥터’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큰 중요성이 있을까. 그 당시 그를 정말로 괴롭혔을 그 문제는 이제 의학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그에게 있어서는 작은 보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처음 들어올 때 펀치를 뚫어야만 들어올 수 있었던 바로 그곳에 이제는 블레이럭의 초상화와 함께 그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리게 되는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쉽게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고 싶어 하는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개인의 명예를 우선하기보다는 의사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그것에 대한 보상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하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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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코이즈미 타카시 감독, 후카츠 에리 (Eri Fukatsu)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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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아름다운 세계로 인도하는 ‘착한’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가장 단순하고, 가장 원초적인 수(數).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기 힘들겠지만, 수학의 세계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순수한 것이야말로 수학의 세계라는 것을. 하지만 그걸 말로 설명하거나,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절대적인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박사의 말처럼 ‘용기와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느껴야 한다, 마음으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순수한 수학의 세계와 맞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리고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따뜻한 영화다. 부드럽게,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인도해주는.

10살인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는 쿄코. 배운 게 없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육체노동 즉 가정부 일뿐이지만 언제나 프로페셔널하게, 누구보다 활기차게 살아간다. 몇년간 수없이 가정부가 바뀌었다는 박사의 집으로 파견된 쿄코는 박사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박사는 10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유지하는 시간이 80분밖에 안 된다. 더이상 박사에게는 추억이란 것이 없다. 한때 수학교수였던 박사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하루를, 외롭게 ‘수’만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은 멈추어진 채, 그저 반복되는 하루를 지워버리는 것뿐.

박사는 처음 본 쿄코에게 묻는다. 신발의 수치가 어떻게 되냐고. 24라고 답하자, 24는 4의 계승이고 고결한 숫자라고 말해준다. 이렇듯 박사는 언제나 수학 이야기만을 한다. 쿄코의 생일이 2월20일이라고 하자, 자신의 시계에 적혀 있는 284라는 숫자와의 관계를 말해준다. 220의 약수의 합은 284이고, 284의 약수의 합은 220이 된다. 그런 관계를 우애수라고 한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220과 284는 기묘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박사는 교코의 아들을 보고는, 루트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루트는 어떤 숫자이건 공평하게 감싸준다면서.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숫자로 설명할 수 있고, 숫자로 치환할 수 있다. 박사에게 수학의 세계는, 모든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그 자체다.

처음에는 어딘가 괴팍한 사람이 아닐까, 라고 걱정했던 쿄코는 박사가 너무나도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쿄코가 박사의 저녁 식사를 해주는 동안 아들이 혼자 있다는 것을 안 박사는 매일 아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한다. 그날부터 박사와 쿄코 그리고 루트는 기묘한 가족이 된다. 모든 것이 달랐던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수학과 야구다. 그들이 누구이건,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건, 수학과 야구는 그들을 통하게 하는 다리가 된다. 박사가 수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타인과의 교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수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지역이나, 나이나, 성별 같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박사가 왜 수학을 택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지만, 박사가 왜 수학에 선택받았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은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수학의 본질을 깨닫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박사는 수학과 가장 닮은 것이 농업이라고 말한다.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보살피는 것이 농업이다. 수학도 자신의 필드를 정하고, 사색을 시작한다. 온갖 노력을 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은 씨앗의 자라는 힘이다. 농부는, 수학자는, 그저 그것을 북돋워주고, 발견할 뿐이다. 이런 통찰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박사는 수학을 통해, 이 세계의 본질을 깨달은 현자다. 하지만 박사는 이미 이 세계에서 이탈된 존재다.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게다가 과거는, 여전히 그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는, 슬프다. 아침마다 일어나 양복에 매달린 쪽지에 붙어 있는 ‘내 기억은 80분간만 지속된다’란 말을 보았을 때, 그는 탄식할 것이다. 날마다, 날마다 그 탄식은 반복된다. 박사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지나간 과거에서, 박사 혼자만이 머물러 있다. 그 쪽지를 본 박사는 생각했을 것이다. 나에게 남은 것은 수학뿐이라고. 과거에도, 미래에도 영원한 것은 수학뿐이라고.

수학의 본질은, 그것 자체로 완전하다. 완전수처럼. 수학이 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수학의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다. 수학을 하는 목적은,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박사는 말한다. 거기에 진실이 있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박사와 똑같다. 박사는 더이상 현실과는 아무런 연계가 없지만, 박사는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용기와 현명함은,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쿄코와 루트는, 박사를 통해서 세계의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바로 오일러의 공식이다. ‘e를 π와 i를 곱한 수로 거듭제곱하여 1을 더하면 0이 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 모순되는 것들이 하나로 통일되어 결국은 무를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정체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박사와 쿄코와 루트가 만나 서로의 마음을 연결할 때, 영원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건 절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원작은 아쿠타가와 수상 작가인 오가와 요코가 2004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정수, 소수 같은 수학 용어가 서서히 시의 언어로 다가왔다’라는 평처럼,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얼핏 차가워 보이는 수의 세계에 상존하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한껏 전해준다. 영화도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차분한 소설을, 정갈하게 영상으로 옮겼다. 조금 지루한 구석도 있지만, 수의 세계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그것 모두가 아름다움의 한 표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른이 되어 수학 선생이 된 루트가 아이들에게 박사의 이야기를 전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영화판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무난하고, 정석을 따른 각색을 보여준다. 수학의 형식적인 딱딱함처럼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평범하게 관객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수’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순간, 쿄코와 루트가 그랬듯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늘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영원한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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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박사가 사랑한 수식>-보지 못하던 무(無)의 아름다움

 

쿄코는 9번이나 가정부를 바꾼 한 박사의 가정부로 취직한다. 박사는 교통사고로 인해 지난 10년간의 기억이 없고, 매번 단 80분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 박사와 쿄코는 언제나 숫자로 된 같은 인사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박사는 쿄코에게 10살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친구가 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영화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전혀 가치 없어 보이던, 의미 없다고 느끼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단 117분 안에 바꿔놓으며, 우리를 멍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영화의 힘을 느끼기 위해서일 거다.
사고로 인해 1975년 이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용량이 단 80분밖에 안 되는 박사 때문에 쿄코는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매일 아침 ‘새로 온 가정부’라고 인사해야 하고, 그때마다 신발 사이즈를 얘기해야 하고, 박사가 직접 지어준 ‘루트’라는 별명을 가진 아들이 있으며, 그가 프로야구 팀 한신 타이거즈의 팬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알려줘야 한다. 싫은 내색 한 번 안 한다. 쿄코와 루트, 루트의 야구 친구들끼리는 ‘박사님이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박사님에게 말하지 않기’라는 약속을 지킨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의미 없고 시간 낭비인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 작품은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비록 같은 일일지라도 반복할 수 있는 그 상황, 80분이 지나 모든 것이 백지로 돌아가 버린 그 상황, 아무것도 없는 그러나 분명히 불변의 진실은 존재하는 바로 그 상황.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전한다. 쿄코가 반복하는 대답과 루트의 순수한 마음을 빌려서 천천히. 조용하고 잔잔한 이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우리가 보지 못한 그 진실, 하지만 존재하는 그 진실이 울림을 주기 때문일 거다.
영화는 도저히 말로 정리할 수 없는 느낌을 준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중 첫 부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아라’를 처음 접할 때의 그 느낌 같은. 박사처럼,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한 느낌 같은. 정말 절묘하게 영화 마지막에 그 시구가 자막으로 흐르고, 우리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수는 만물의 근원’이라는 피타고라스의 말처럼 영화는 수가 얼마나 완벽하고 아름다운지 다양한 수식을 통해 보여준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고고함을 유지하는 소수, 신의 의도로 운명적으로 묶인 우애수, 수천년 동안 단 30개밖에 발견하지 못한 완전수. 그럼, 박사님이 사랑한 수식은 무엇일까? 레오널드 오일러가 발견한 ‘e^πi+1=0’이다. 무한한 숫자인 e(네피어수)와 π(파이), 상상의 수인 i. 전혀 관계없는 이 숫자들이 결합한 수에 1을 더하면 0이 된다는 공식. 영화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모두 설명한다.-무비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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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SE - [할인행사]
제임스 맨골드 감독, 존 쿠삭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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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 길의 잇달은 사고, 모텔 안에 고립된 11명의 사람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밤… 네바다 주의 사막에 위치한 외딴 모텔에 10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리무진 운전사와 그가 태우고 가던 여배우, 경찰과 그가 호송하던 살인범, 라스베이거스 매춘부와 신혼부부, 신경질적인 모텔 주인까지 포함한 총 11명. 사나운 폭풍우로 길은 사방이 막혀버리고 사람들은 어둠과 폭우가 걷히기를 기다리지만 연락이 두절된 호텔에 갇힌 이들은 하나 둘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믿지마라! 그것이 너 자신이라도...

죽음으로 시작된 살인의 그림자는 그들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간다. 현장에 남겨진 것이라곤 모텔 룸 넘버 10이 적힌 열쇠뿐… 연이은 죽음의 현장에는 9,8,7..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열쇠만이 남아 끝나지 않은 살인을 예고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 모두가 기억하기 싫은 비밀이 서서히 베일을 벗는데...



영화보고 이거 뻔한 거 아니야~ 이랬는데 존 쿠삭이 분명 열쇠를 쥐고 있을 거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반전), 그 뒤를 이은 또 한 번의 반전(?!)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최고의 반전영화로 꼽히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존 쿠삭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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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부스 - 할인행사
조엘 슈마허 감독, 콜린 파렐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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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주인공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것~ 그 정도 잘못쯤이야 현대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만한 일 아닌가? 마지막의 그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스튜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피자 배달부의 죽음이 설명되지 않는다. 마지막 대사 난 언제고 너에게 다시 올 수 있다는 말이 한편으론 뜨끔하지만 소름끼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결국 그는 한 번 더 스튜에게 기회를 준 셈이니까.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은 내용이고 장소도 공중전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데도 이렇게 스릴있을 수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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