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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딩 더 로드 메이드 (TV) - Something the Lord Mad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신이 만든 어떤 것”
제목부터가 끌렸다. 당연히 의사에 관련된 영화라는 것은 의료 정보학 수업이니까 알고 있었지만 흑인과 백인이 가운을 입고 함께 나오는 포스터를 보고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다. 영화 파일을 찾느라 꽤 힘들었다. 겨우겨우 파일을 찾았는데 찾는 과정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영화에 대한 평들을 볼 수 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명작이라는 찬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칭찬 일색이었다. 더구나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것을 알면서 영화 시작부터 집중이 되었다.
특별한 해고 사유 없이도 쉽게 해고당하는 흑인 청년. 그것도 비비안이라는 여자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미국 영화는 백인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영화는 흑인 주인공의 시각에서 풀어간다는 점부터 신선했다.
비비안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찾아 간 백인 외과 의사 블레이럭은 지나치게 거만하다. 대중 매체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의사의 모습이었다. 까다로워 보이는 의사 밑에서 일하던 비비안은 의사의 연구실에서 의학책을 보고 어렸을 적부터 항상 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느끼는 부분인데 의학책의 인체를 보고 집중할 때의 그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 ‘닥터’라는 호칭을 강조하던 블레이럭이 너무 권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자꾸 보면서 느낀 점은 ‘닥터’라는 호칭을 자꾸 사용하게 함으로써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비비안에게 무의식중에 의사로서의 꿈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는 권위적이지만 의사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항상 생각하고 진정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한 사람에게 진정한 멘토가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한편으론 그 당시에 자신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고졸 흑인을 기존의 편견이나 고정 관념을 떨치고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는 백인 의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갓 선배가 된 나는 좋은 후배보다 좋은 선배가 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서서히 느끼고 있다. 단순히 잘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이끌어줄 위치에 있다는 것, 또 그 방식에 있어서 상대에게 다소 엄격하게 그러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대한다는 것이 약간 어렵게 느껴졌었는데 블레이럭을 보고 진정한 스승, 멘토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또 비비안의 경우,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어도 완전함을 추구하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모은 돈이 한꺼번에 없어진 절망적인 상황.(아마도 대공황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힘든 것은 상황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상태에서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고 느낄 때이다. 그의 실망이나 허전함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갔다.
의과대학의 꿈이 좌절되었지만, 단순히 이 일이 좋아서 힘들어도 그 일을 추구하는 비비안의 모습을 보며, 요새 의사 자체보다는 편한 미래에 안주하고픈 마음으로 의대에 오는 대다수 의대생들의 반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꼭 의대가 아니더라도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생들 중 자신의 학교나 전공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그들이 정말 모두 국가에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되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학에 들어올 때의 동기가 무엇이든 일단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의대생이나 의사로서의 자세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안이 블레이럭의 조수로서 대학에 출입하자 외부인 이니 펀치를 찍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펀치를 찍는 그 공간에는 흑인밖엔 없었다. 흑인이 가운을 입자 신기하게 쳐다보는 의사와 간호사들. 또 의사 한 명은 커피와 도넛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과연 그가 백인이어도 그랬을까. 이 몇 장면만 보고도 그 당시 흑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앞부분에서 여자 의사가 심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블레이럭에게 하자 훨씬 나이어린 백인 남자 의사들이 비웃던 모습도 나왔다. 그만큼 이 시기에는 흑인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편견에 시달리고 있을까. 물론 예전보다는 확실히 많이 나아졌고 앞으로도 우리가 많이 바꿔가야 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심장 이상으로 안쓰러울 정도로 얼굴이 파란 아기도 나왔다. 의사들의 대화 중 심장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심장을 정지시켜야 하는 수술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 당시 의사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만 급급해서 자신이 배운 지식과 반대되는 쪽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현재에도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현재는 심장 수술에 대해 꽤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고 이 당시만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수술들이 행해지고 있다. 모든 직업, 모든 사회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의사들은 아집이나 편견에 빠져서도 안 되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인체에 대해 밝혀진 것은 아직도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고 환자를 위해서라면 의사는 항상 기존의 지식에서 자꾸 나아가고 발전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전부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지식을 기꺼이 수정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영화나 드라마의 의사들은 외과 의사라는 점이다. 아마도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일 것이다. 차라리 자라서 환자가 되겠다고, 그럼 바쁜 아빠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블레이럭의 딸의 모습에서, 또 항상 바쁜 비비안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그의 아내의 모습에서 외과의의 삶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신부와 함께 온 블레이럭 앞에서 개를 끌어안고 있는 비비앙의 모습. 누가 봐도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를 안고 있던 비비앙의 모습은 단순히 허탈함이나 좌절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파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비록 동물이지만 환자처럼 느끼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 충격 때문인지 그는 악몽까지 꾸게 된다.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의 실패와 그 이후에 얻은 깨달음으로 인한 기쁨. 외과 의사의 삶이란 얼마나 많은 환희와 절망을 오가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 때문에 비인기과라는 외과를 그래도 아직 많은 학생들이 희망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감히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수도 없이 많이 했다. 물론 사람을 살려내었다는 기쁨 때문에 보람은 다른 의사보다 더 클 수 있겠지만 그것을 위해 거쳐야 할 수많은 불안과 긴장과 또 죄책감을 내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두려운 느낌도 들었다. 책임감 없이는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블레이럭의 대사 중 “야망이 나를 무모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최근 방영하고 있는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 겹쳐졌다. 과연 순수하게 환자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이 의사의 전부일까. 정말로 개인의 명예나 자존심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 적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아직 여기에 대한 결론은 잘 모르겠다.
의사 자격증은커녕 의과대학에 들어가지도 않은 비비앙이 수술하는 모습을 보고, 물론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13년동안 최고 외과의사 바로 곁에서 보조를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한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비안이 의과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도 뛰어난 실력을 겸비하고 있어서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눈을 감고 수술하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비앙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영화적 설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에 그의 재능이 그렇게 천부적이라면 블레이럭은 비비안을 의과대학에 가서 정규 수업을 받고 의사가 되도록 도운 후에 수술에 참가하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게 실화라고 생각하니 그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두 번 있으면 그다지 좋을 일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의과대학에 들어간 다른 의사들보다 그의 능력이나 열정이 더 뛰어났다는 점을 보면서 현재 의대생들이 각성하는 정도로 삼아야지 이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좀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블레이럭 팀, 그러나 모든 영광은 블레이럭에게 돌아가고, 정작 중추적인 역할을 한 비비안은 의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블레이럭이 동료들에게 하는 인사에 이름조차 올라가지 않는다. 보면서 느낀 것이 의사 자격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유전학 시간에도 들었지만 ‘라이센스’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 나중에 나도 그런 위치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새삼 내가 나중에 의사가 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한편으로는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었다.
결국 일한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비비안은 폭발하고 실험실을 뛰쳐나온다. 외판원으로 떠돌던 그는 결국 실험실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는 보상받지 못한 자존심보다 일 자체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물론 뛰어난 기술 덕분에 실험실의 디렉터라는 위치까지 나중에 올라가지만 일단 그 당시에는 차별과 편견과 불합리한 대응을 스스로 극복했을 비비안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비록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의 노력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약한 장애에도 쉽게 꺾이고 억울해하는 우리의 모습에 비하면 수십 년 동안(영화에서는 1964년까지의 일이 나온다.) 꾹 참아가며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인 비비안은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또한 그러한 비비안을 알아본 블레이럭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닥터’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큰 중요성이 있을까. 그 당시 그를 정말로 괴롭혔을 그 문제는 이제 의학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그에게 있어서는 작은 보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처음 들어올 때 펀치를 뚫어야만 들어올 수 있었던 바로 그곳에 이제는 블레이럭의 초상화와 함께 그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리게 되는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쉽게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고 싶어 하는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개인의 명예를 우선하기보다는 의사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그것에 대한 보상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하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