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잘못 읽은 것인지. 

아니면 기대를 많이 한 탓인지.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한 것인지. 

 

'퀴르발 남작의 성'을 보고 감탄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집었지만 

다 읽고 난 후 지금은... 글쎄 잘 모르겠다. 

 

전작이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틀 안에서 최대한의 비틀기를 시도했다면 

이번 작품은 틀 자체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틀을 흔들고 변형하여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이야기이고, 다음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흐릿하게 한다. 

 

내가 촌스러운 탓인지, 작품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최대한 '논리적'으로,  

사건의 전후를 잡아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서평대로, 이 책은 스포일러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작가는 볶고, 굽고, 찌고, 끓여서 

같은 재료를 썼지만 맛은 전혀 다른 네 개의 중편을 만들어냈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결국 작가도 이 책을 독자들이 느끼기를 원하지 분석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다만 나는 작가의 전작이 훨씬 더 좋았고, 

이 작품은 내 타입은 아니지만 분명 놀라운 책이며, 

작가의 다음 행보는 매우 궁금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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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장 피에르 주네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아멜리에는 몽마르뜨 근처에 사는, 예쁘지만 엉뚱한 아가씨이다. 

무뚝뚝한 아버지, 히스테릭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스킨십이 없었던 아버지가 의사로서 딸을 진찰할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아버지의 손길로 인해 심장이 심하게 뛰어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한 아버지가 학교에 보내지 않아서 

교사였던 어머니에게 집에서 배웠다. 또래 친구와 어울리지 못했고, 

그나마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훌쩍 자란 그녀는 한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어느 날 우연히 집에서 발견한 오래된 상자를 발견하고, 

그 상자의 주인을 찾아 50년대에 소년이었던, 그리고 그 당시 그 아파트에 살았던 

누군가를 찾아다니게 된다. 

결국 그에게 몰래 어린 시절의 보물 상자를 전하게 되고, 

분명히 수호천사가 보낸 것이라고 감격하는 이제는 노년에 접어든 그 소년을 보고, 

아멜리에는 다른 이에게도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카페를 배경으로 한 쌍의 남녀를 이어주기도 하고, 

뼈가 잘 부서지는 병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화가에게 바깥 세상과의 통로가 되어 주며, 

야멸차고 잔인한 가게 주인에게 종업원을 대신해서 귀여운 복수를 해 주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멜리에 못지 않을 만큼 엉뚱한 청년의 앨범을 주으면서  

그 청년의 뒤를 따라다니고 숨으며 짝사랑을 시작한다. 

 

이 프랑스 영화는 심각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색감이 예쁘고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헛점이 있지만 다들 사랑스럽다.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사람들. 

 

늘 다른 이들의 행복을 바라던 전반부의 그녀와 

짝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후반부의 그녀의 연결고리는 

집에서만 생활하는 화가 아저씨의 충고였다.  

"물잔 든 소녀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요. 딴 곳에서 우연히 만나서 마음이 끌린 어떤 남자요."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하고 친해지려 노력하기보다는 멀리 있는 그 누군가를 상상하고 있다?" 

"네. 그녀는 남들의 불행에도 관심이 많죠." 

"그럼 자기 자신의 불행은 어떡하고? 그건 누가 해결하지?"

"넌 나와 달라. 네 뼈는 유리처럼 약하지 않아. 넌 너의 삶의 험한 파도를 헤쳐나갈수 있어. 지금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결국 네 심장은 내 몰골처럼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져 버릴꺼야. 그러니까, 당장 가서 그를 붙잡아." 

 

마냥 순수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녀가 그를 놓칠까봐 울먹이는 장면, 

짝사랑하는 그 앞에서 물처럼 녹아내리는 장면, 

그가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리저리 상상하다가 될대로 되버려~! 하는 장면, 

어떻게든 자기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의 앞에서 서성이지만 

정작 알아보자 도망쳐버리는 모습.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뒤늦게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Portable Groove 09의 Amelie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상큼한 노래처럼 이 영화도 산뜻하고 예쁘다.  

호기심 가득한 큰 눈의 오드리 토투, 

순수한 눈빛의 마티유 카소비츠. 

(마티유 카소비츠는 짝사랑 상대로 참 어울린다. 감성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이라서. 

알고 보니 '뮌헨'에 출연한 실력파 배우에,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유명 감독이라고. 

최근 모습을 보니 멋지게 나이가 들었더라. 젊은 시절의 감성, 열정을 간직한 채로 

관록이 더한 느낌?)  

 

용기 내어 세상으로 나가라고, 그리고 용기 낸 아멜리에게는 해피 엔딩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버렸기 때문인지. 

주저주저하다가 막상 용기를 냈을 때는 씁쓸한 결과가 많이 왔던 기억 때문인지. 

이런 영화를 보고도 '그래, 나도 용기를 내야지!'가 아니라 

한순간 위안에 그쳐버리고 마는 것은 지나친 자기 비하인지. 

 

아무튼 상큼한 오드리 토투와 보고 있으면 설레게 하는 마티유 카소비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참 좋았다. 비록 내 현실과는 조금 달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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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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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고슴도치'라는 별명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고슴도치도 살 동무가 있다"  

"고슴도치한테 혼난 범이 밤송이 보고도 놀란다" 

고슴도치와 관련된 속담은 대략 이 정도. 

그런데 우리 중 실제로 고슴도치를 본 이는 몇이나 될까? 난 본 적 없다. 

그래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나 소, 닭처럼 관련된 속담도 많이 없나 보다. 

범도 고슴도치에게 혼날 정도이니 함부로 주변인이 못 건드릴 정도의 까칠함, 

고슴도치도~, 즉 고슴도치 마저도~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왠지 변변한 친구도 없을 것 같고, 생김새도 비호감인 사람. 이정도? 

그러고보면 헌제는 엄밀히 말해 고슴도치는 아니지 않나? 세상이 보기에 '혹이 딸린 이혼남'이어도 너무나 괜찮은 여자들이 다가오고, 결국 결실도 맺는다. 절대 비호감은 아니란 소리다. 헌제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만만하게 대한다. 그리고, 헌제의 딸 유진은 깜찍하게 예쁘다. 즉, 헌제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고슴도치이고 싶은 사람, 혹은 고슴도치이기를 가장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디 내 옆에 오기만 와보라고, 가시로 찔러줄 거라고. 그러나 헌제는 그 누구에게도 상처입히지 못하고 오히려 본인이 상처입는 쪽을 택한다. 아니 반대인가? 아내도 연화도 그로 인해 상처받았을 테니까. 피해자인것처럼 굴지만 결과적으로 남에게 더 큰 상처를 입혀서? 그래서 연화를 보내고 그렇게 힘들어했던 자기가 알고 보니 자기 연민에 허우적대던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연화의 결혼 상대에 대해 듣고 힘들었던 건가? 

읽다 보면 헌제의 소심함과 피해 의식에 답답해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매사는 아니어도 특정 순간에 한번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또 어디 있으며 나 또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되자 짠해지기도 한다.  

헌제에게 명신이 다가온 것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책 읽는 내내 했지만, 마지막 까지 다 읽고 나자 조금 바뀌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명신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지나치게 사람의 의도를 내 나름대로 헤아리거나 지레 의심하지 말고, 조금 손해보더라도 조금 상처받더라도 털털하게 털어버릴 수 있었으면. 정말 좋으면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지 말고 당당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그러면서도 상대를 배려할 수 있었으면. 누구와도 편안하게 부담주지 않고 대화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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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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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여행

세상 모든 괴짜들의 고향 Bookmark1 아웃사이더 예찬 ‘마이클 커닝햄’

몽상가의 여행법 Bookmark2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달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가 그리울 때 Bookmark3 파리카페 ‘노엘 라일리 피치’

나는 걸었다, 세계는 좋았다 Bookmark4 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사람들이 인도를 찍은 사진은 다 비슷해 보인다고 하니 그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보이는 대로 다 찍어서 그래. 인도는 어디를 찍어도 전부 사진이 되니까, 무엇을 찍지 않을까 하는 마이너스 작업에 의해서만 사진 찍는 사람의 시각이 드러나.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처럼 양이 중요한 사회에서 살다가 인도에 온 사람에게 ‘찍지 않는 것도 표현’이라는 발상이 나오기는 어렵지. 인도 같은 곳에서 히피들처럼 날것의 행위만을 원칙으로 삼는 인간 앞에 서면, 행위를 표현과 결부시키려 드는 인간은 정말 꼴사나워. 나 같은 사람이지. 난 방랑자이고 싶었지만, 언제나 돌아갈 곳을 마련해주고 날것의 행위를 사진이나 글자로 얼버무리며 떠돌아다닌 거야.”

여행의 목적은 없다 Bookmark5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제프리노먼’

새로운 시간을 찾아서 Bookmark6 야간열차 ‘에릭파이’

보헤미안의 정거장, 샌프란시스코 Bookmark7 보헤미안의 샌프란시스코 ‘에릭 메이슬’

가여운 외국인이 이제야 초원을 봤다는구려 Bookmark8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 ‘비얌바수렌 디바, 리자 라이쉬’

도시에서 마음이 헛헛할 때 Bookmark9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은하수를 따라 별들의 벌판을 지나 Bookmark10 느긋하게 걸어라 ‘조이스 럽’

청춘은 방황이니까 Bookmark11 청춘, 길 ‘사진 베르나르 포콩/글 앙토넴 포토스키’

이 별에서 저 별로 지쳐 쓰러져갈 때까지 Bookmark12 길 위에서 ‘잭 케루악’

1만 개의 골목, 1만 개의 만남 Bookmark13 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모든 존재는 여행을 한다 Bookmark14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거침없이 원하는 대로 놀라운 인생을 Bookmark15 프리다 칼로 ‘헤이든 헤레라’

내 옆에 있던 20대 여자 관람객이 눈시울을 붉힌다. 그녀가 프리다에게 자신의 상처를 투영하고 있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단지 프리다의 불행만을 떠올리고 있는 거라면,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프리다에 대해 말할 때 ‘그림으로 고통을 승화시켰다’는 식의 말이 상투적인 것처럼, 그녀가 당한 사고만으로 그녀를 불행한 여인으로 만드는 것은 당치 않다. 프리다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니? 교통사고나 디에고의 외도로 인한 고통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야. 기쁨과 절망이 공존하긴 했지만 나는 원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어. 내가 당신보다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야.”

고요한 모험 Bookmark16 on the road ‘한현숙’

 

 

# 여행책

잘 입고, 잘 먹고, 달콤하게 연애하고 Landmark1 크레모나

외롭지 않아, 고독한 거지 Landmark2 헬싱키

할렘 산책 Landmark3 할렘

난 할렘에 한번 가보지도 않은 채 선입견만으로 할렘의 흑인들을 범죄자로 간주했다. 할렘을 한 번 걸어보고 나서야 할렘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난센스인지 알았다. 정작 백인들이 나를 본다면 나는 백인 쪽에 가까울까 흑인 쪽에 가까울까?

붉은 구름 사이에서 보낸 하룻밤 Landmark4 교토

잘 노는데다가 고고하기까지 Landmark5 아바나

고흐, 그 보통의 삶 속으로 Landmark6 아를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 이상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 Landmark7 앙코르와트

“지금은 모토돕이지만 나중에는 컴퓨터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돌보고 싶어요.”

캄보디아에는 거친 삶에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현실이 나이와 상관없다. 그도, 유적지의 아이들도 어떤 식으로든 제 몫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내가 이들을 동정할 계제가 아니다. 꿈이 있는 그의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노란전차를 타고 Landmark8 하코다테

사바이, 사누크, 사도아크 Landmark9 님만해민

일상을 예술가처럼 Landmark10 뒤셀도르프

사랑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Landmark11 후지산

난 사랑의 끝까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길을 걸어보고 싶어 하면서도 이 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랑은 어차피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대개는 안 좋은 방향으로. 하지만 사랑이 변질된 것 같더라도 더 가봐야 하는 게 사랑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내년에도 남편과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단순한 의문문으로. ‘함께 보고 싶다’가 아니라 ‘과연 함께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다. 아주 희망에 찬 생각이라고 나는 기뻐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쁨이다. 나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란 말로 맹세한 사랑이나 생활은 어디까지나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목적은 아니라고 믿고, 찰나적이고 싶다. 늘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은 함께하는 생활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오면 조금은 울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면, 아마 더 울지도 모르겠다.

카오산로드에 가서 실망했다는 독자에게 Landmark12 카오산로드

어떤 이들은 카오산로드에 맥도날드가 생긴 것을 보고 “카오산도 이제 상업화되었다”고 비아냥거린다. “순수했던 여행자들의 거리가 퇴색해버렸다”는 식이다. 하지만 맥도날드가 정말 여행자가 걱정할 문제일까? 맥도날드는 거대자본의 흐름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 배낭여행 자체도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배낭을 매건 캐리어를 끌건 소비적 행위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은 이제 전지구적인 범위로 퍼져간다. 카오산로드와 배낭여행 역시 자본주의라는 큰 흐름 안에 연결점을 갖는다. 카오산이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물론 변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카오산이 여행자들의 바람대로 변화의 예외일 수는 없다. 나도 당신도 변할 것이다. 카오산이 변하듯 청춘도 어느 순간 지나간다. 그러니 변하는 것을 안쓰러워하기보다는 내 삶에서 변하지 않을 무언가를 찾는 수밖에! 나는 카오산을 떠올릴 때마다 어떤 정신, 에너지 같은 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의 카오산로드는 단지 방콕의 북서쪽 방람푸의 좁은 거리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길을 나섰을 때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이 바로 카오산로드다.

‘여기에 산다’는 여행 Landmark13 야쿠시마

 

 

가지도 않고 책만 읽고 마치 가본 것처럼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일종의 독후감이자 콩트이기도 하다.(콩트: 기지나 풍자가 풍부한 가벼운 내용의 짧은 이야기) 제시된 책을 전혀 읽지 않았기에 대체 작가가 어떻게 영감을 받아 어떤 식으로 풀어냈는지 궁금했다. 결국 집 근처의 북카페로 향해 여행의 기술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헨리 워즈워스, 시간의 점, 레이크디스트릭트 등 몇 개의 키워드만 가지고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뿜어냈다. 우리도 여행가기전 설레며 이런저런 공상을 하지 않나? 두근거리는 로맨스, 아찔한 위험 등. 막상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 책은 오히려 여행의 가장 잔잔한 부분만을 보여준다. 장식이 화려한 케이크 중에서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부분만 애써 골라내 잘라 주는 것처럼.

 

여러 이야기 중 꽤나 많은 작가들이 박준의 여행에 ‘직접’ 등장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을 때 화자와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번씩은 해보는 공상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고 나서 18세기 영국의 시골을 걸으며 그녀와 이야기해본다거나 앤 시리즈를 읽으며 비슷한 상상을 해 본다거나. 단지 상상에 그치는 부분을 이렇게 ‘깜빡’ 속을 정도로 풀어내다니 그동안 수많은 독서와 여행으로 다져진 박준의 내공이 짐작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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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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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잠은 오지 않고 외로워 미칠 것 같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자니 너무 힘들고, 밖에 나가자니 무섭고, 누군가에게 전화로 문자로 위로받고 싶은데 미안해서, 또 답문이 바로 안 올까봐, 민망해서, 연락도 못하겠다. 그 모든 것을 무릅쓸 만한 사람도 없다. 남들도 다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유독 예민한 건지, 외로움이라는 것이 비록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 잘 알지만 이렇게 자주 강하게 느낀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과연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죽기 전에 만날 수나 있을지, 끝끝내 못 만난다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외로울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이 공지영의 책들이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녀의 소설이나 여타 산문집과는 달리, 이 책은 그녀 자신의 넋두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딸이나 독자들로 청자를 한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전의 책들이 쏙쏙 마음에 와 닿았다면, 이 책은 그녀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흘러 한참 어지러운 마음의 내가 귀 기울이기는 힘들다. 마치 술에 취해, 감정에 취해, 힘들게 늘어놓는 친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처럼. 그 이전의 책들이 독자를 위로한다면,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을 위로하며 쓴 글 같다. 나의 일로도 번잡스러운데 남의 가슴앓이까지 들어주기에는 지금의 나는 너무나 벅찬 것 같다. 남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스킬이 필요하고, 남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으려면 정제된 말보다는 두서없을지언정 쏟아지는 말들로 인해 내 마음이 풀어지는 법인데, 이 책은 후자인 것 같다. J는... 그녀 자신이거나, 아니면 작가 스스로 위로받고 싶은 어떠한 존재가 아닐까. 많은 독자들에게 공지영이 그래왔듯이.

 

 

 

 

 

 

 

 

 

 

 

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일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지요. 그가 죽는다는데 어쩌면 그가 나를 모욕하고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날들만 떠오르다니. 저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리고 그의 죽음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진실이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만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할 수 없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 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이별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리하여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책을 덮고, 살아온 모든 생애의 힘을 다해서 오래도록 움켜쥐고
있었던 손을 폈습니다.
내가 움켜진 많은 것들..
결혼에 대한 집착, 행복한 가정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집착,
심지어 도덕적으로 옳고 착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그 끔찍한 집착까지!
그러고 나자 마지막으로 억울하고 가련한 희생자가 되고 싶은
저의 교활한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것은 제가 그토록 경원하던 무책임한 삶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요.
제 온 몸에서 푸릇푸릇한 녹즙들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던 나날이었습니다.

 

신이 저를 사랑하시고 제가 진실에 가까이 근접하기를 원하셨다면
고만고만한 행복에 제가 머무르도록 허락하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불완전함만큼 더 큰 동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오래 앓았고
그러나 이제는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처럼 담담하고 맑아지고 있습니다.
씩씩해지고 많이 웃을 수 있습니다.
가끔 달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자전거도 탑니다.
J,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끝에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 때 그 외로움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고 내가 남들보다 감정의 폭이 격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남들이 잘 안 쓰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옥타브부터 높은 옥타브까지 모두 두드리며 사는 부류들이 있는데
제가 그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글도 쓰고 그래서 남들 표현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그것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생애 동안 우리는 대개 낮은 건반을 두드리는 일이
높고 경쾌한 건반을 두드리는 일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냥 인정해버리자
저는 저 자신을 비로소 얼마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에게
"그러지마. 이건 진짠데 난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파해"
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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