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빌 브라이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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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품목으로 어두운 색깔의 타원형 초상화 한 점이 있었다. 높이가 55센티미터, 폭이 45센티미터인 이 초상화는 355기니에 엘스미어 백작이 구입했고, 그 후 챈도스의 초상화로 알려져왔다. 이 그림은 이미 많이 가필되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검게 변해서 그림의 세세한 부부은 상당히 유실되었다.(현재도 그런 상태로 있다.) 초상화는 깔끔하게 턱수염을 기른, 머리가 벗겨졌지만 그리 못생기지 않은 40대의 남자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왼쪽 귀에 금귀고리를 달고 있다. 그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치고 매우 호쾌하다. 이 남자는 당신의 아내나 다 자란 딸을 가볍게 맡길 만한 남자는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빌 브라이슨이 책의 맨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남자는 셰익스피어다. 아마도 책 표지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는 바로 이 초상화를 모방하여 삽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얼굴은 전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셰익스피어의 얼굴을 다 알고 있다. 바로 이 설명대로 생긴, 딱 그 얼굴. 정확히 셰익스피어인지 아닌지도 후대의 우리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머리에 떠올리는 바로 그 모습이다.

 

우리가 인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희극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천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단시들만이 전해진다면, 그를 아주 검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우리는 그를 우아한 사람, 지적인 사람, 철학적인 사람, 우울한 사람, 책략에 능한 사람, 신경질적인 사람, 쾌활한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 등으로도 생각할 수 있엇을 것이다. 물론 작가로서 셰익스피어는 이 모두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셰익스피어가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는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을 당시 그 시대에 인기있는 작가는 많았다. 그러나 400여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작품이 읽히고, 무대에 올라가며, 셰익스피어는 생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을 기계인 카메라에 의해 영상화되고 있는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말고는 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 개인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이 거의 없다.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라고 알려진 그 그림도, 실제 셰익스피어인지 아닌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에식스 백작, 옥스포드 백작 등 다른 인물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저자라는 주장도 있다. 셰익스피어와 한참 동떨어져 있는 나같은 독자도 궁금한 게 많은데, 하물며 현 시대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빌 브라이슨이 여기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우리가 기록에 근거해서 셰익스피어에 관해서 얼마나 많이 알 수 있는지, 실제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이 아주 얇은 한 가지 이유라고 할 것이다.

 

총 224쪽, 본문은 215쪽인 이 책의 제 1장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찾아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에 영국 스트랫퍼드에서 출생했다. 당시 영국 인구는 300만명에서 500만명 사이로, 300년 전 페스트가 휩쓸었던 시기보다 더 적은 인구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바로 그 해에는 신생아의 3분의 2 가량이 죽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기록이 처음으로 제대로 보존되기 시작한 때로, 스트랫퍼드에서는 1558년이 지나서야 기록을 보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극작가로 성공하기 전의 기록이 단 네 건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를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도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아버지 존은 가죽을 다루는 장인이었고, 오늘날의 시장에 해당하는 수석 행정관까지 지냈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름 있는 가문의 작은 지파 출신으로, 그녀는 4남 4녀를 낳았으나 딸은 하나만 살아남았고, 아들 중 결혼한 사람은 윌리엄이 유일했다. 윌리엄은 그 지역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열여덟에 여덟살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고, 셰익스피어와의 사이에서 세 자녀를 낳았지만 그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부부사이는 좋았는지, 그녀가 셰익스피어를 따라 런던에 간 적이 있는지 등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셰익스피어의 일생에 관련된 몇 안 되는 확실한 사실들 가운데 두 가지가 그의 결혼이 그가 죽을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그가 자신이 번 돈을 가능한 한 속히 스트랫퍼드로 보냈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기록은 몇 가지에 그칠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에 정착해서 극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의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이 단 4건-침례 기록, 결혼 기록, 두 차례에 걸친 자녀 출산 기록-에 불과하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의 아버지가 재산 분쟁으로 제가한 소송에 언뜻 그에 관한 언급이 나오지만, 그 기록은 그가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초년 생활은 가끔 그 편린을 볼 수 있을 뿐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제 우리는 흔히 그의 잃어버린 시절이라고 알려진 시기로 접어들려고 한다. 그 시기의 그의 행적은 정말로 완전히 유실되었다.

 

제 2장 <초년, 1564-1585>의 마지막 부분이다. 기네스 펠트로와 조셉 파인즈가 주연했던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생각났다. 사실상 텅 비어 있는 셰익스피어의 한 때를 상상력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재치있고 우아한 영화였다. 이 책의 제 3장 <잃어버린 시절, 1585-1592>에서는, 이 당시 셰익스피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수도 있고, 플랑드르에서 군인으로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바다를 항해했다는 추측도 있다. 1564년 출생하여 세례를 받은 기록 후에 1582년 결혼 허가를 신청했다는 기록이 등장하고, 이어 1583년 윌리엄의 장녀 수잔나가 태어났으며 쌍둥이인 주디스와 햄닛은 1585년에 태어났다. 이후 1592년까지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1592년, 1598년, 1603년, 1608년의 서류에 셰익스피어는 배우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희곡은 작가가 아니라 극단의 소유물이었으며, 공식적인 연출자가 없었기에 작가는 연출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배우의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죽으면서 남긴 유품에 희곡 원고나 프롬프터용 대본이 없는 사실을 설명하는 이유가 된다. 완성된 희곡은 극단이 가지고 있어야 했으며, 작가에 배우, 연출자까지 겸했던 셰익스피어 같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다. 이 시대는 연극의 황금시대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쏟아져나왔지만, 희곡을 써서 생계를 넉넉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작가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가 런던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도시 외곽에 여러 개의 극장이 있었고, 계속 극장은 세워졌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여왕 자신이 연극과 같은 오락을 좋아했고, 여왕의 정부가 볼링장, 극단, 오락장 등의 허가를 내줌으로써, 또 그런 장소들에 필요한 물건들의 제조와 판매로 수입을 거두고 있었다는 점은 셰익스피어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당시는 연극의 테크닉이 급격하게 진화하던 시기였다. 스탠리 웰스가 지적한 것처럼 "연극이 더 길어지고, 규모가 커지고, 구성이 복잡해지고, 감정의 범위가 넓어지고 연기자들의 재능이 더 잘 발휘되도록 기획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이 줄어들었다. 셰익스피어 생전에 자연주의 경향이 더욱 발전했는데 이런 경향을 일으키는 데에 그도 일조했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동시대 작가들은 주제와 배경에 관한 한 아주 폭넓은 자유를 누렸다. 고대 로마의 전통을 따르던 이탈리아의 극작가들은 그들의 희곡 배경을 마을 광장으로 설정해야 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자기 작품의 장소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산허리도 좋고, 요새, 성, 전쟁터, 외딴 섬, 매혹적인 골짜기 등 상상력이 풍부한 관객을 이끌고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았다.

 

제 4장 <런던에서>의 한 부분이다. 이 장에 나와 있는 많은 부분들, 예를 들면 여성 역할을 남성 연기자가 맡도록 하는 관행이라든지 셰익스피어가 연출가이자 배우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라든지 엘리자베스 여왕이 연극과 같은 오락을 좋아했다든지 하는 부분들은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부분이었다. 그 영화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기록을 존중했으며, 고증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미있는 것은 동일한 시대에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여성 역할을 여자 배우들이 연기했으며, 유럽을 여행하던 영국인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곤 했다는 것이다. 또 런던의 극장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하루에 2000명의 관객을 끌어들여야 했는데 이는 당시 런던 인구의 약 1퍼센트였다고 한다. 서울을 기준으로 한다면, 하루에 10만명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소리이니 당시 연극에 종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수록 아득해진다. 영화계에서 초대박을 의미하는 천만 관객 이상의 극장 표를 팔아야 한 극장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손님들을 다시 극장에 되될아오게 하려면 공연되는 연극을 계속 바꾸어야 했고, 1주일에 최소한 5편의 서로 다른 희곡이 공연 되었으며, 한 희곡이 1년에 10차례 이상 공연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당시 희곡들은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서로 비슷한 경우가 많았으며 셰익스피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즉, 먼저 발표된 희곡의 대사나 이름, 제목등을 차용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다만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참고한 수많은 평범한 작품들을 그만의 위대한 작품으로 바꾸어놓았고, 당대 연극의 관행을 깨트리는 파격으로 걸작을 탄생시켰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지식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지리나 역사를 희곡에 언급할 때 사실과 다른 실수를 종종 저질렀다. 그러나 그는 2035개의 단어를 만들어냈고, 지방 사투리를 즐겨 사용하기도 했으며, 떄로 아주 현대적인 언어를 고집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처음 발견되는 단어들의 예는 abstemious, antipathy, critical, frugal, dwindle, extract, horrid, vast, hereditary, excellent, eventful, barefaced, assassination, lonely, leapfrrog, indistinguishable, well-read, zany 등 수없이 많다.('수없이 많다'는 뜻의 countless라는 단어도 셰익스피어가 만들었다.) 이런 단어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이 어떠했겠는가?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지적처럼 셰익스피어는 특히 기존의 단어에 un-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신조어를 만드는데에 능숙했다. unmask, unhand, unlock, untie, unevil 등 이렇게 해서 만든 단어가 314개나 된다.

 

제 5장 <희곡>의 한 부분이다. 지금도 쓰이는 저 말들을 셰익스피어가 처음 만들어냈다니 참 놀랍다. 단어 뿐 아니라 어구를 만드는데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옥스퍼드 인용사전(Oxford Dictionary of Quotations)」에 따르면, 영어가 생긴 이후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의 10분의 1이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당시 영어는 존경받는 언어가 아니었고, 공식적인 문서와 학술 서적, 진지한 문학은 전부 라틴어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환경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영어에 적지 않게 기여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며, 수많은 단어와 어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빌 브라이슨은 제 5장을 다음의 문단으로 마무리한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동료들의 적지 않은 기여 덕분에, 영어가 그것을 만들어낸 나라에서 마침내 주도적인 자리에 오르기 시작햇다. 스탠리 웰스는 이렇게 말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출생기록은 라틴어로 되어 있는데 그의 사망기록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신사'라고 영어로 되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엘리자베스의 통치기간은 대부분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일생과 겹친다. 셰익스피어 개인에게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왕의 시대가 모든 면에서 황금시대였던 것은 아니며, 특히 엘리바베스 여왕 치세의 말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 실업, 상업적 불황, 전쟁, 흉작으로 고통받는 시기였다. 이 불황기 동안에도 극장이 노동계급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다는 분명한 사실은 작가도 미스터리라고 지적한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높아지고 직업적으로도 행운이 잇따랐으며 30대 초반에 이미 명예와 부를 다 누리고 있었다. 반면에 개인적으로는 열한 살인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호사다마일까, 셰익스피어와 그의 동료들은 여왕을 전복시키려는 기도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에식스 백작의 추종자들 중 하나가 셰익스피어가 몸 담고 있던 극단 '체임벌린 경의 사람들'에게 「리처드 2세」의 공연을 해달라고 요구했으며, 왕이 퇴위되어 살해되는 장면을 연극에 삽입하도록 지시한다. 이후 에식스 백작은 여왕을 퇴위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하였고 사형당했으며, 극단 또한 조사를 받게 되나 무혐의로 처리된다. 이상이 제 6장 <명성의 시대, 1596-1603>의 내용이다.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망한 후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는 셰익스피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극단 단원들은 궁정 궁내관이 되었고 후한 보상을 받았으며, 셰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 중 대다수가 이 시기에 나왔다.

 

1609년 5월 20일, 토머스 소프라는 출판업자가 셰익스피어의 단시들을 모은 책을 펴내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총 154편의 단시들 중 126번까지는 1부로, 시인은 아름다운 청년을 찬미하며, 127번부터 154번까지의 2부는 "검은 귀부인"에게 말하는 형식이다. 많은 시들이 눈에 띄게 동성애적이며 당시 동성애는 법률적으로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다. 단시를 비롯해서, 이 당시 셰익스피어는 다른 작가들과 협력해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집필 속도도 조금씩 느려지는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도 나이가 든 것일까. 제 7장 <제임스 왕의 치세, 1603-1616>의 한 부분이다.

 

"셰익스피어는 나이가 들면서 전혀 다른 작가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재기가 넘쳤지만, 더욱 도전적으로 변했어요." 스탠리 웰슨은 한 인터뷰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언어는 더욱 농축되고 간결해졌어요. 그는 일반 관객들의 욕구와 관심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습니다. 희곡들이 덜 연극적이고 더욱 내향적이 되었지요. 만년에는 그는 아마 별로 인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의 후기 희곡들-「심벨린」,「겨울 이야기」,「코리올라누스」등-은 그의 중기 희곡들보다 인기가 덜합니다."

 

1616년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후, '체임벌린 경의 사람들'의 원년 멤버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이었던 헤망과 콘델은 그의 모든 작품을 담은 퍼스트 폴리오를 출판했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나온 약 230여편의 희곡들이 지금까지 전해지는데 그중 15퍼센트가 퍼스트 폴리오에 들어 있다. 따라서 헤밍과 콘델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절반을 구해 후대에 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 시대와 제임스 1세 시대의 희곡들의 상당 부분을 후대에 전하는 공로를 세운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날 무렵에 그가 언젠가는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추앙받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프랜시스 보몬트, 존 플레처, 벤 존슨이 더 인기가 있었고 더 존경을 받았다. 퍼스트 폴리오에는 찬양의 시가 단 4편 실려 있는데 이것은 아주 적은 양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지다시피한 윌리엄 카트라이트가 1643년에 죽었을 때, 60명의 찬미자들이 조시를 바치러 몰려들었다고 한다. "명성이란 이렇게 덧없이 변하는 것"이라고 쇼엔바움은 그의 「간결한 다큐멘터리 일생」에서 한탄한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느 시대고 그 시대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는 대체로 무능한 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연 몇 사람이 펄 벅, 에리크 폰토피단, 루돌프 오이켄, 셀마 라게를뢰프에게 노벨상을 주라고 투표할 것인가? 이 밖에도 자신이 살던 세기가 끝나면서 그 명성도 끝나버린 작가들은 얼마든지 더 있다.

 

제 8장 <죽음>의 일부이다. 그의 아들은 어릴 때 사망했고, 두 딸은 결혼해서 자식들을 낳았으나, 그 자식들은 전부 소생을 남기지 못했다. 이렇게 셰익스피어의 직계는 대가 끊기게 된다. 그가 사망하고 지금까지, 그는 영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이자 세계적인 문호의 자리에 올랐고, 수많은 연구가 뒤따랐다. 그로 인해 다소 이색적인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다른 누군가가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온 책만 5000종 이상이며, 그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학 교수와 작가들도 많다. 그러나 제 9장 <이색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서 저자 빌 브라이슨은 말한다. 여러 셰익스피어 후보자들에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쓰는 데 필요한 시간과 재능, 동기를 무리하게 부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들이 그렇게 했음을 암시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9장의 마지막 부분이면서 동시에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평가해볼 때, 우리는 물론 한 사람이 그렇게 많고 현명하고 다양하고 재미있고 또 언제나 기쁨을 주는 작품들을 생산해냈다는 데 대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천재성의 증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오직 한 사람만이 우리에게 그런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환경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스트랫퍼드 출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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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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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Neither here nor there>의 빌 브라이슨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고 쓴 책이 이 책이다. 빌 브라이슨이 워낙 많은 책을 냈기도 했고, 책이 번역되면서 제목이 상당히 의역된 책이 많을 뿐더러, 개정판이 나오면 그 제목도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나도 빌 브라이슨의 책을 뭐뭐 읽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읽은 책 중 하나는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bolt Kid라는 책으로 처음에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으로 출판되었고, 개정판의 제목은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산책>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의 한국에서의 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도 인상깊게 읽은 책이다. 언젠가 마음먹고 빌 브라이슨의 모든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면 국내도서로는 21종이 나온다. 그 중 개정판이 나와서 겹치는 책을 빼면 17종 정도인 것 같고, 그 중 이 책까지 3권을 읽었으니 14종이 남은 셈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좋다.

 

A Walk in the Woods라는 원제가 책의 내용을 더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된다. <나를 부르는 숲>만 보았을 때는 소로우의 <월든>과 같은 책을 생각했는데, 이 책은 원제처럼 그야말로 숲을 걸어서 횡단하는 내용이니까. 2100마일이면 3380킬로미터 정도인데, 대한민국의 길이가 약 1000킬로미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길이가 아닐 수 없다.

 

또 부러운 게 있다. 그들의 상상력을 받쳐주는 자연의 광활함이다.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산길로만 가는 대장정을 결심하는데 뭐 그리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쉽게 광대한 모험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천혜의 혜택을 타고났다.

 

옮긴이는 책 앞에서, 미국에서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종주 등반객(Thru-Hiker)을 만났을 때의 일화를 적고 있다. 대학 졸업 기념으로 종주를 시작했다는 젊은 남녀를 보면서 옮긴이는 젊은 나이에 벌써 인생의 행로를 꿰뚤어 보고 있는 그들이 부럽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데, 만약 통일이 되어서 육로로 중국과 러시아, 나아가 유럽까지 횡단할 수 있다면,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지금의 젊은이들과는 사고의 틀부터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카츠에게 바친다

 

책의 첫머리에서 밝힌 카츠는, 빌 브라이슨이 어릴 때 유럽 여행을 함께한 친구로,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44세의 나이로 아내와 아들이 있는 빌 브라이슨이, 25년 동안 명확하게 갈라진 인생의 길을 걷고 있던 친구와 다시 한 번 여행길에 오른 책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빌 브라이슨은 오랜만에 만나게 된 이 친구와의 여행에서 억지로 감동을 짜내지도 않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 모든 것이 인생의 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생이 죽을 때까지 걷는 길이라면, 그 중의 한 때를 카츠와 함께 걸었고, 한동안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 또 걸었고, 그리고 헤어진 것이다. '발칙한~' 시리즈가 때로는 불편할 정도의 유머를 구사했다면, 이 책은 좀 더 부드럽고 온화한 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전형적인 미국사람으로서 미국이 아닌 것들에 대해 더 풍자의 잣대를 들이대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 잠시나마 불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기에는 빌 브라이슨의 책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곰과 같은 야생동물의 습격, 한탄바이러스와 같은 질병,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 의한 살인 등등 실재하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애팔래치아를 종주한 그 노력을, 감히 따라할 용기는 나지 않지만, 머릿속으로나마 풍경을 그려가며 빌 브라이슨을 따라가는 만족감은 충분하다.

 

바깥에 나가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불길한 운명 중 기묘할 정도로 예기치 못하는 현상이 저체온증이다. 저체온증에 의한 사망 치고 불가사의하지 않은 게 없다. 《자연법》이라는 책에서 저자 데이비드 퀸먼이 쓴 사례를 보자.

1982년 늦여름, 청소년 4명과 어른 2명이 밴프 국립공원에서 휴일 카누를 즐기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구조 탐색반이 그들을 찾으러 나섰다. 그들은 실종된 6명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숨진 채 호수에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얼굴을 위로 한 채 차분한 표정이었다. 슬픔이나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른 1명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아직도 쓰고 있었다. 근처에 떠다니는 카누들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고, 간밤의 날씨도 온화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6명은 조심스럽게 카누에서 내려 그들의 시체가 발견된 호수의 찬물에 몸을 눕혔다. 한 탐색 반원 말에 의하면 '마치 자러 간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에선 자러 간 게 맞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죽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 눈보라 속에서 비틀거리거나 북극의 바람과 맞서 싸우다 죽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우선 그런 날씨엔 상대적으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밖으로 나가고, 설령 그렇더라도 준비를 잘 갖추고 나가게 마련이다. 저체온증의 피해자들은 주로, 보다 멍한 환경에서 온화한 계절에 얼음이 전혀 얼지 않는 온도에서 당한다. 보통, 그들은 예상 못한 조건의 변화나, 또는 이런 변화가 중첩될 때-기온의 급강하라든가 세차게 내리는 찬비, 길을 잃었다는 자각에-당한다. 왜냐면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의 언제나 그들은 뭔가 멍청한 짓-지름길을 찾기 위해 잘 표시된 길을 버린다든지, 가만히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더 깊은 숲으로 잘못 들어간다든지, 시냇물을 건너려다 몸이 더 젖고 차갑게 된다든지-을 해서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한다.

(중략)

저체온증은 서서히 파고드는 간교한 충격이다. 그것은 체온이 떨어지고 신체의 반응이 느려지고 통제 불가능해지는 정도에 따라 차츰차츰 몸을 갉아먹는다. 그런 상태에서 샐리너스는 자신의 소지품을 버렸고, 곧 빗물로 불어난 강물을 건너야겠다는 절망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렸다. 아마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가 길을 잃은 그날 밤, 날씨는 맑았고 기온은 4°c 안팎이었다. 재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는 불편한 정도의 추운 밤을 보내고 다음날 무용담 하나를 챙겼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대신에, 그는 숨졌다.

저체온증에 걸린 사람들은 몇 단계를 밟는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우선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근육을 수축함에 따라 점점 심하게 몸을 떤다. 그러다 심각한 피로감을 느끼고 몸이 무뎌지고 시간과 거리에 대한 감각을 잃기 시작한다. 그래서 판단 착오를 일으켜 신중치 못하고 비논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는 경향을 보이거나 명명백백한 것을 보지 못한다. 점점 방향 감각을 잃고 위험한 환각에 빠져 드는데, 그중에서도 몸이 얼어붙고 있는데도 타는 것처럼 덥게 느끼는 착각이 대표적이다. 많은 희생자들이 옷을 벗고 장갑을 던져 버리며 슬리핑 백에서 기어나온다. 트레일에서의 사망 사건에 대한 연대기를 보면 텐트 바로 앞의 눈 더미에서 반쯤 옷을 벗은 채 숨져 있는 등산객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몸을 떠는 것을 멈추고 무감각 상태에 이른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뇌파는 대초원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차처럼 낮게 직선을 이룬다. 이때가 되면 희생자를 발견해 응급 처치를 한다고 해도 몸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아웃사이드>라는 잡지의 1997년 1월호에 게재된 사건은 이 같은 경우를 깔끔하게 보여 주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1980년 덴마크 선원 16명이 배가 가라앉자 긴급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낸 뒤 구명조끼를 입고 북해로 뛰어들었다. 거기서 구조선이 와서 건져 낼 때까지 90분을 물 속에서 버텼다. 여름이었지만 북해는 숨막힐 정도로 차가워서 30분만 그 안에 있어도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16명이 생환했다는 것은 축제라도 벌여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담요에 싸여 옮겨짐 뒤 따뜻한 음료를 마시자마자 16명 모두가 돌연 사망했다.

 

이 부분은 애팔래치아 종주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저체온증에 관한 서술 중 일부이다. 실제로 빌 브라이슨이 저체온증으로 판단력이 상실되고 위험한 순간까지 갔던 부분도 이 부분 뒤에 나온다.

 

버몬트 주와 뉴햄프셔 주는 서로 편안하게 마주보고 있을 뿐 아니라 면적이나 기후, 사투리, 그리고 생업-주로 스키와 관광-도 비슷해서 종종 쌍둥이로 같은 괄호 안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사실 두 주는 아주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버몬트 주에는 볼보(스웨덴 회사의 상표) 차와 골동품 가게가 많고 귀엽게 고안한 이름의 여관들이 꽤 있다. 이를테면 메추라기 골짜기 산장(에추라기는 미국에서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속어. 여기에 골짜기라는 은유까지 곁들여 연상한 것)이라든지 바이올린 통 농장 여관-바이올린 본체 부분의 생김새가 무엇과 비슷한지를 연상하라-과 같은 것들이다. 뉴햄프셔 주에서는 사냥 모자를 쓰고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는데, 호기롭게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문구가 적힌 번호판을 단다. 지형적인 특징도 판이하다. 버몬트 주의 산들은 비교적 온유하고 기복이 완만하며, 곳곳에 나타나는 목장들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반면, 뉴햄프셔 주는 주 전체가 하나의 숲이다. 주 면적 9,304평방마일 중 85%-영국의 웨일스보다 넓다-가 숲이고, 나머지는 호수거나 아예 숲이 들어설 수 없는 수목한계선 위이다. 이 주는 때때로 마을이나 스키 리조트가 나오기는 하지만, 까마득한 자연 일색이다. 산들은 높고 바위는 울퉁불퉁 튀어나왔으며, 버몬트의 산들보다 훨씬 까다롭고 험악하다.

《스루 하이커의 안내서》-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책, 이제야 털어놓는다-에서 위대한 댄 '윙풋'(Wing foot은 무지하게 걸음이 빠르다는 뜻) 브루스는 밑에서 올라오는 북상 스루 하이커들이 버몬트 주까지 마치면 트레일의 80%를 걸어온 셈이지만, 걷는 데 드는 품을 감안하면 반밖에 안 된다고 썼다. 화이트 마운튼을 관통하는 뉴햄프셔 주의 259km 구간에는 해발 900m가 넘는 높은 고봉만 35개나 있다. 뉴햄프셔 주는 정말, 어렵다.

 

빌 브라이슨의 특징 중 하나는 비유와 대조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이다. 쌍둥이 주라고 까지 불리는 두 주의 특징이, 단 한번도 이곳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나조차도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래, 트레일을 포기해서 기운이 언짢니?"

카츠가 한참 후에 물었다.

확실치가 않아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대해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됐고,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됐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하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 봤으면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나 항상 그랬다.

"모르겠어. 그렇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하고. 너는 어때?"

그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우리는 사소한 상념에 잠겨 몇 분 간 더 걸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걸 했어."

카츠가 마침내 올려다보면서 입을 뗐다. 그는 궁금해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내 말은, 메인 주를 등산했었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쳐다봤다.

"카츠, 우리는 마운트 캐터딘을 못 봤잖아."

그는 내 말을 사소한 말장난으로 무시했다.

"다른 산은 봤잖아. 브라이슨, 너는 얼마나 많은 산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입을 벌리지 않고 작게 웃었다.

"그래, 그것도 한 방법이겠지."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카츠가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아는 한 말이야.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어. 눈 속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남부에서도 걸었고 북부에서도 걸었어. 내 발에 피가 나도록 걸었어.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어. 브라이슨!"

"우린 많은 구간을 걷지 않았어. 너도 알다시피."

"그건 사소한 것들이지."

카츠가 코방귀를 뀌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물론, 내가 옳아."

그는 달리 생각할 수는 전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결국 애팔래치아 완주는 여기서 끝나고 만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카츠와 헤어진 후에도 혼자성 종종 등산을 게속한다.

 

뉴잉글랜드에서 가을은 달아나고 있었다. 킬링턴에 오른 지 며칠도 안 돼 겨울이 불어닥쳤다. 등산의 계절은 확실히 끝 무렵에 이르렀다. 얼마 안 지나 일요일에 식탁에 앉아 트레일 기록과 계산기를 들고 내가 걸어온 거리를 합산했다. 나는 숫자를 두 번 확인했다. 그런 뒤 카츠와 내가 수개월 전 개틀린버그에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전히 종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깨달았을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나는 1,392km를 주파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다. 모든 노력과 땀, 그리고 구역질나는 지저분함, 터벅터벅 걸었던 끝없는 나날들, 딱딱한 바닥에서 보낸 밤들, 이 모든 것이 더해져 겨우 트레일의 39.5%밖에 안 됐다-전 구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야? 종주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의심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래도 1,392km는 적지 않은 거리다.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가고도 남는다. 만약 다른 곳으로 이만큼 걸었다고 하면 나는 훨씬 더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나는 요즘도, 때로 뭔가 일이 잘 안풀리면 집 근처의 트레일로 등산을 다녀오곤 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상념에 잠기지만, 항상 어떤 지점에 이르면 숲의 감탄할 만한 미묘함에 놀라 고개를 들어 본다. 기본적인 요소들이 손쉽게 모여서 하나의 완벽한 합성물을 이룬다. 어떤 계절이든 간에 멍해진 내 눈길이 닿은 곳은 모두 그렇다. 아름답고 찬란할 뿐 아니라 더 이상, 개량의 여지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걸 느끼기 위해 수킬로미터를 걸어 산 정상에 오를 필요도 없고, 눈보라를 뚫고 기신기신 걸을 필요도, 진흙 속에 미끄러질 필요도, 가슴까지 차 오르는 물을 건널 필요도, 매일 매일 체력의 한계를 느낄 필요도 없지만, 그게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아쉽다. 캐터딘까지 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비록 나는 언젠가 갈 거라고 다짐한다고 해도. 곰이나 늑대를 보지 못한 것도. 느릿느릿 소리 없이 뒷걸음 치는 자이언트도롱뇽을 보지 못한 것도. 살쾡이를 쉬이 하고 쫓아내거나 방울뱀을 피해 옆걸음 치지 못한 것도. 놀란 멧돼지를 맞닥뜨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 나는 딱 한 번만이라도-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면 보장만 있다면-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칠 줄도 알게 됐고, 별빛 아래서 자는 것도 배웠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자랑스럽게도 몸이 날렵하고 튼튼해졋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나는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됐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요즘 산을 쳐다볼 떄마다 나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도려낸 화강암 같은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음미하면서 바라본다.

우린 3,520km를 다 걷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다소 난잡하고 중구난방같던 소설의 세세한 부분이 끝에 가서 한 점으로 수렴하며 커다란 감동을 던져준다. 꼭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의 마지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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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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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본 기사 중 '지대넓얕'이 있었다.

지대넓얕.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줄임말로 채사장이라는 분이 팟캐스트로 먼저 시작한 아이템이었고, 이어서 책으로도 출판된 것에 대한 기사였다. 팟캐스트라는 것을 이용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화제가 되는 팟캐스트는 나중에 출간이 되는 경우 활자의 형태로만 접했기 때문에 이 기사는 여러 모로 나에게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넓고 얕은'이라는 말.

 

이 세상이 얼마나 스페셜리스트를 요구하는가. 나 또한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거기에 다다르기까지는 쉽지 않겠다는 절망감, 그러면서도 특정 분야에서는 무조건 전문가만 찾고 전문가의 권위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는 마음, 등등으로 가득차 있는 요즘이었는데 대놓고 '좁지는 않지만, 깊지도 않은'이라는 설명에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과정은 최대한 넓은 분야에 대해 얕게나마 알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고,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전문가를 알아볼 만한 얕은 지식, 그게 아닐까.

물론 '지대넓얕'을 읽어보지도 않고 내 맘대로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이 아마도 과학 분야에서는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싶다. 책이 꽤 두꺼운 것은 사실이지만, '거의 모든 것의'라는 당당하다 못해 거만해 보이는 제목에 다소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한글로 옮기면서 빠져버린 short의 의미를 되살린다면, 그야말로 '넓고 얕은 지식'을 다룬 이야기인 것이다. 과학적 분야에 한정된 '지대넓얕'인 것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글쓴이는 양성자며 단백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쿼크, 준성도 생소한 단어였고 협곡의 바위 층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아내는 방법에도 무지했다. 정말 아는 것이 거의 없던 작가가 직접 전문가를 찾아내며 끈질기게 질문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3년을 한 끝에 나온 책이다. 빌 브라이슨은 이미 유명한 작가이다. 그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인 그가,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과학 교과서를 끝으로 과학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다가, 전혀 생소한 이 분야에서 제너럴리스트로 도달한 것이다.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어느 한 분야에서 통달한 사람은 전혀 모르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추는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는 생각, 그리고 어린 시절에 접한 책, 음악, 영화, 경험 등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 그리고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등등이다.

 

당연하지만 이 책은 과학의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전문 서적이 아니다. 과학과는 젼혀 무관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어른들, 혹은 아직 뇌가 말랑말랑한, 그래서 아직 어느 쪽에 자신이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지 잘 모르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읽으면서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반가움이 있었고,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연대기적으로 이해하면서 새롭게 생기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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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산책 - 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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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느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든

키득거리며 공감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지하실에서 선더볼트(번개) 무늬가 그려진 낡은 스웨터를 발견한 여섯 살의 빌 브라이슨. 그는 그것을 입고 망토를 두르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었다. ‘선더볼트 키드’라는 이름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꿈꾸며 망토를 두르고 뛰어다닌 어린 시절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느낌표와 물음표로 다가오던 시절 말이다.

이 책은 《나를 부르는 숲》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이미 언론과 독자들에게 맛깔스런 입담과 세심한 관찰력을 인정받은 작가 빌 브라이슨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은 유쾌발랄 성장에세이다. 1951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태어난 저자는 ‘선더볼트 키드’라는 페르소나를 출발점으로 삼아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시대상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코피 흘린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이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훔쳐먹는 등 악동 같았던 저자와, 지역신문의 스포츠 담당기자로서 자부심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던 아버지, 음식을 하도 태워 부엌을 화상병동으로 만들기 일쑤이던 어머니의 이야기에선 안면 근육을 씰룩이며 웃게 되고, 담배, 방사능 낙진이 몸에 좋다고 광고하거나 학교에서 강제로 민방공 훈련을 시키는 미국 정부와, 핵 개발, 공산주의자 색출 등에 희생당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선 가슴이 저린다.

“우리를 특별하고 남다르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지키지 못해 너무 부끄럽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새것이 마냥 좋아서, 일상의 피곤함에 지쳐서 그 옛날 반짝거리던 추억을 잃어가고 있다.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추억을 마음속에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웰컴 투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우리 모두의 기억이 만나는 공감도 테스트!

1. 슈퍼맨을 흉내 내며 보자기를 두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다.

2. 치과에서 발가락이 신발을 뚫고 나올 정도로 아픈 기억이 있다.

3. 운동화 밑창에서 개똥처럼 물컹한 것을 파내느라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4. 모기가 활개를 치는 초여름, 소독차 뒤꽁무니를 신나게 따라다녔다.

5. 코피를 흘리는 친구는 잠깐이나마 연예인 대접을 받았다.

6. 구멍가게에서 아저씨가 한눈파는 사이 과자를 슬쩍한 경험이 있다.

7. 플라스틱 모형을 조립하느라 손이 접착제로 범벅된 적이 있다.

8. 부모님 방에서 야한 잡지나 비디오가 있는지 찾아봤다.

9. 학교에서 민방위 훈련 때만 되면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10. 겨울이면 옷을 많이 껴입히는 어머니 때문에 난감했다.




10개 문항 중 ‘O'를 표시한 문항이 5개 이상이라면 당신은 분명 어린 시절에 ‘선더볼트 키드’였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선더볼트 키드? 무슨 뜻이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빌 브라이슨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티켓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웰컴 투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재기발랄하고 따뜻한 눈을 지닌 작가, 빌 브라이슨의 성장 에세이

세심한 관찰력과 위트 있는 문체로 이미 수많은 언론과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빌 브라이슨. 그의 글을 읽는 동안은 웃음을 참느라 안면 근육을 씰룩이게 되고, 그 맛깔스런 문장에 입맛을 다시게 되며, 읽고 나서는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에 압도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심사 또한 다양하여 여행, 과학, 언어 등의 분야를 종횡무진하는데, 여행기 《나를 부르는 숲》과 과학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모두 베스트셀러로 만든 바 있다.

그런 빌 브라이슨이 이번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성장에세이를 펴냈다. 미국의 세기 중반 1951년, 미국 중부 지역인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베이비 붐 세대의 중간쯤에 태어난 저자는 ‘선더볼트 키드’라는 페르소나를 출발점으로 삼아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시대상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난 세상을 구할 거야! 왜냐면 선더볼트 키드니까!

저자는 여섯 살 때 지하실에서 선더볼트(번개) 무늬가 그려진 낡은 스웨터를 발견한다. 아무도 그 스웨터가 누구 것인지 몰랐지만, 저자는 그 비밀을 알았다고 말한다. 분명히 엘렉트로 별의 볼튼 왕이 부모님에게 자신을 맡기면서 남긴 유산일 것이라고. 그 스웨터를 입고 망토를 두르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은 어린 빌 브라이슨. ‘선더볼트 키드’의 탄생의 내막은 그러했다.

우리에게도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꿈꾸며 망토를 두르고 뛰어다닌 어린 시절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느낌표와 물음표로 다가오던 시절 말이다. 빌 브라이슨은 바로 그 두근거리고 설렜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앞의 공감도 테스트에서 살펴본 10개 문항은 모두 빌 브라이슨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뽑아낸 것이다.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의 이야기임에도 우리의 어린 시절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또한 지역신문의 스포츠 담당기자로서 자부심이 있었지만 밤참을 만들 때면 꼭 반벌거숭이 차림이여서 식구들을 놀라게 한 아버지, 음식을 하도 태워 부엌을 화상병동으로 만들기 일쑤고 자식들이 어느 계절에 태어났는지도 잊어버리는 어머니, 과학적 실험정신으로 집을 날려버릴 뻔한 윌러비 형제, 화물차에서 맥주를 차떼기로 훔친 친구 스티븐 카츠 등의 이야기는 우리의 어린 시절 주변 인물들을 하나둘 떠올리게 한다.




글로서 1950년대 미국의 사회문화상을 그리다

이 모든 것들은 그 시절 길가에 굴러다니던 종이쪽지 하나에 얽힌 이야기까지 풀어놓을 듯한 빌 브라이슨의 놀라운 기억력과 세심한 관찰력, 철저한 자료 조사 덕분이다. 그는 그 당시 어떤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있었는지, 텔레비전 프로그램, 만화, 광고, 스포츠 등에서 무엇이 이슈였는지, 고향의 거리 풍경은 어땠는지, 어떤 먹을거리와 전자제품이 인기였는지 등을 눈앞에 그림을 그리듯 보여준다. 또한 챕터마다 실린 신문기사 한 구절을 읽어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밋거리다.

한편으론 담배, 방사능 낙진이 몸에 해롭지 않고 오히려 좋다고 광고하거나 학교에서 강제로 민방공 훈련을 시키는 미국 정부를 풍자하고, 핵 개발, 공산주의자 색출 등에 희생당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우리는 이런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조차 공감하게 된다. 시대만 다를 뿐 우리도 비슷한 과정을 지나왔으므로….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그리움인 것을

“우리를 특별하고 남다르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지키지 못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새것이 마냥 좋아서, 일상의 피곤함에 지쳐서 그 옛날 반짝거리던 추억을 잃어가고 있다.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추억을 마음속에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즐거운 놀이를 마음껏 즐기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어른들 모두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에서 펌

                                                                                      

너무나 미국적이라 공감이 안 가는 부분만 빼놓는다면 최고의 성장 에세이이자 유년 시절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우리나라 작가가 쓴다면? 혹은 내가 저자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 또래의 작가가 이런 글을 펴낸다면 어떤 글이 될까? 내가 나고 자란 80년대 후반 이후의 서울의 모습, 아파트가 빽빽이 늘어서고 서너 동에 하나씩 있는 놀이터마다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붐볐던 모습, 한 달 동안 전교생이 준비했던 운동회, 저학년 때 했던 꼬마 신랑 각시와 조금 자라고 나서 했던 매스 게임, 줄다리기, 6명씩 끊어서 했던 달리기, 오후 5시부터 시작되었던 만화 타임, 이 때 우리 또래들은 30분 단위로 한 회씩 끊어지는 만화를 지상파 세 방송을 계속해서 돌려가며 각 방송국의 만화를 봤었고 7시까지는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고무줄, 뽑기, 달고나, 만화방, 파워레인저... 지구용사 선가드와 다간의 시간대가 겹쳐서 어린이들 사이에 둘로 나뉘었던 기억, 조금 커서는 HOT 대 젝키 구도로 나뉘었었다. HOT의 캔디 모자와 엉덩이 춤, 학예회나 수련회 장기자랑 때 HOT, 젝키, SES, 핑클의 춤을 삼삼오오 모여 연습하던 시절,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IMF의 기억, 박찬호의 이름을 딴 찬호박 아이스크림, 맨발 투혼의 박세리로 인한 골프 열풍, PC방, 중학교 때 불었던 외고입시 열풍으로 방과 후까지 다녔던 학원, 순정만화를 반에서 한 명이 빌려오면 돌려보던 기억, 중학교 때 활동했던 교지 편집부, 2002년 월드컵 때 학생들마저도 한밤중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기억... 정말정말 많구나... 이 글쓴이처럼 지나간 시간은 모두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나보다. 그럼 지금 나의 모습도 수십 년이 흐르면 아름답게 기억되겠지.

 

덧붙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산책이라는 제목을 보고, 새로 나온 발칙한 시리즈인 줄 알았는데 예전에 읽었던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의 개정판이었다. 언제 읽어도 즐겁고, 다시 읽어도 유쾌하지만, 굳이 개정판을, 그것도 동일한 내용을 제목만 바꿔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저작권 같은 이런 저런 법적인 문제가 걸렸있다면 모를까. 제목도 표지도 처음 나왔던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아니 원제인 "썬더볼트 키드의 생애"가 훨씬 더 낫지 않을까?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연상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글을 죽 읽다 보면, 현재 미국은 어떨까, 이런 어린 시절이 가능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 따르면, 자율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에서조차도 긴 경제 위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눈에 띄게 '실용'과 '쓸모'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는 걸까, 20년 후에는 학원, 야자, 숙제 를 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가 힘든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좀 쓸데 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면 발칙한 미국산책이라는 제목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어린 시절을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꿈꾸는 행위가 '발칙한' 것이 되어가는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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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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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아는 사람 중 글을 제일 잘 쓰는 것 같다.

유머의 본질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유쾌하지만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고, 자신을 희화화하지만 비굴해보이지 않는다.

촐싹대지만 귀엽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아도 사랑스럽다. 참 힘들 텐데, 그것도 오로지 글발로만 그것이 가능하다니!

 

요즘 이래저래 신경쓰고 힘들 일이 많았는데 다소 결벽스럽지만 따스한 수다를 읽으면서 인생 또 이렇게 살면 별 거 아니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생활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글쓰며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회귀하여 새롭게 적응하는 과정을 보면서, 어릴 때와 또 20년간 살던 영국과는 달라진 고국에 적응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도 아직도 책을 홍보하기 위한 전국 투어를 하며 겪는 희노애락을 읽으면서, 결국 인생이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계속 살아가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냥 가만히 수월하게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이며, 좀 더 나에게 충실하고 내 자신을 위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열심히 하는 자세, 평생을 지속해야 하며 특별히 젊은 날에 더하거나 하지는 않다는 것, 오히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도 특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의외의 포인트에서 나에게 힐링을 주다니! 저자의 다른 책도 힘들고 귀찮은 일이 쌓이는 순간마다 한권 한권씩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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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시의성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또한, 요즘은 점점 지구촌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이기에, 미국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거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빌 브라이슨 특유의 독특한 맛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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