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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이 어느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든

키득거리며 공감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지하실에서 선더볼트(번개) 무늬가 그려진 낡은 스웨터를 발견한 여섯 살의 빌 브라이슨. 그는 그것을 입고 망토를 두르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었다. ‘선더볼트 키드’라는 이름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꿈꾸며 망토를 두르고 뛰어다닌 어린 시절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느낌표와 물음표로 다가오던 시절 말이다.

이 책은 《나를 부르는 숲》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이미 언론과 독자들에게 맛깔스런 입담과 세심한 관찰력을 인정받은 작가 빌 브라이슨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은 유쾌발랄 성장에세이다. 1951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태어난 저자는 ‘선더볼트 키드’라는 페르소나를 출발점으로 삼아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시대상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코피 흘린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이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훔쳐먹는 등 악동 같았던 저자와, 지역신문의 스포츠 담당기자로서 자부심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던 아버지, 음식을 하도 태워 부엌을 화상병동으로 만들기 일쑤이던 어머니의 이야기에선 안면 근육을 씰룩이며 웃게 되고, 담배, 방사능 낙진이 몸에 좋다고 광고하거나 학교에서 강제로 민방공 훈련을 시키는 미국 정부와, 핵 개발, 공산주의자 색출 등에 희생당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선 가슴이 저린다.

“우리를 특별하고 남다르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지키지 못해 너무 부끄럽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새것이 마냥 좋아서, 일상의 피곤함에 지쳐서 그 옛날 반짝거리던 추억을 잃어가고 있다.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추억을 마음속에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웰컴 투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우리 모두의 기억이 만나는 공감도 테스트!

1. 슈퍼맨을 흉내 내며 보자기를 두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다.

2. 치과에서 발가락이 신발을 뚫고 나올 정도로 아픈 기억이 있다.

3. 운동화 밑창에서 개똥처럼 물컹한 것을 파내느라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4. 모기가 활개를 치는 초여름, 소독차 뒤꽁무니를 신나게 따라다녔다.

5. 코피를 흘리는 친구는 잠깐이나마 연예인 대접을 받았다.

6. 구멍가게에서 아저씨가 한눈파는 사이 과자를 슬쩍한 경험이 있다.

7. 플라스틱 모형을 조립하느라 손이 접착제로 범벅된 적이 있다.

8. 부모님 방에서 야한 잡지나 비디오가 있는지 찾아봤다.

9. 학교에서 민방위 훈련 때만 되면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10. 겨울이면 옷을 많이 껴입히는 어머니 때문에 난감했다.




10개 문항 중 ‘O'를 표시한 문항이 5개 이상이라면 당신은 분명 어린 시절에 ‘선더볼트 키드’였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선더볼트 키드? 무슨 뜻이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빌 브라이슨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티켓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웰컴 투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재기발랄하고 따뜻한 눈을 지닌 작가, 빌 브라이슨의 성장 에세이

세심한 관찰력과 위트 있는 문체로 이미 수많은 언론과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빌 브라이슨. 그의 글을 읽는 동안은 웃음을 참느라 안면 근육을 씰룩이게 되고, 그 맛깔스런 문장에 입맛을 다시게 되며, 읽고 나서는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에 압도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심사 또한 다양하여 여행, 과학, 언어 등의 분야를 종횡무진하는데, 여행기 《나를 부르는 숲》과 과학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모두 베스트셀러로 만든 바 있다.

그런 빌 브라이슨이 이번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성장에세이를 펴냈다. 미국의 세기 중반 1951년, 미국 중부 지역인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베이비 붐 세대의 중간쯤에 태어난 저자는 ‘선더볼트 키드’라는 페르소나를 출발점으로 삼아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시대상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난 세상을 구할 거야! 왜냐면 선더볼트 키드니까!

저자는 여섯 살 때 지하실에서 선더볼트(번개) 무늬가 그려진 낡은 스웨터를 발견한다. 아무도 그 스웨터가 누구 것인지 몰랐지만, 저자는 그 비밀을 알았다고 말한다. 분명히 엘렉트로 별의 볼튼 왕이 부모님에게 자신을 맡기면서 남긴 유산일 것이라고. 그 스웨터를 입고 망토를 두르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은 어린 빌 브라이슨. ‘선더볼트 키드’의 탄생의 내막은 그러했다.

우리에게도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꿈꾸며 망토를 두르고 뛰어다닌 어린 시절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느낌표와 물음표로 다가오던 시절 말이다. 빌 브라이슨은 바로 그 두근거리고 설렜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앞의 공감도 테스트에서 살펴본 10개 문항은 모두 빌 브라이슨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뽑아낸 것이다.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의 이야기임에도 우리의 어린 시절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또한 지역신문의 스포츠 담당기자로서 자부심이 있었지만 밤참을 만들 때면 꼭 반벌거숭이 차림이여서 식구들을 놀라게 한 아버지, 음식을 하도 태워 부엌을 화상병동으로 만들기 일쑤고 자식들이 어느 계절에 태어났는지도 잊어버리는 어머니, 과학적 실험정신으로 집을 날려버릴 뻔한 윌러비 형제, 화물차에서 맥주를 차떼기로 훔친 친구 스티븐 카츠 등의 이야기는 우리의 어린 시절 주변 인물들을 하나둘 떠올리게 한다.




글로서 1950년대 미국의 사회문화상을 그리다

이 모든 것들은 그 시절 길가에 굴러다니던 종이쪽지 하나에 얽힌 이야기까지 풀어놓을 듯한 빌 브라이슨의 놀라운 기억력과 세심한 관찰력, 철저한 자료 조사 덕분이다. 그는 그 당시 어떤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있었는지, 텔레비전 프로그램, 만화, 광고, 스포츠 등에서 무엇이 이슈였는지, 고향의 거리 풍경은 어땠는지, 어떤 먹을거리와 전자제품이 인기였는지 등을 눈앞에 그림을 그리듯 보여준다. 또한 챕터마다 실린 신문기사 한 구절을 읽어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밋거리다.

한편으론 담배, 방사능 낙진이 몸에 해롭지 않고 오히려 좋다고 광고하거나 학교에서 강제로 민방공 훈련을 시키는 미국 정부를 풍자하고, 핵 개발, 공산주의자 색출 등에 희생당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우리는 이런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조차 공감하게 된다. 시대만 다를 뿐 우리도 비슷한 과정을 지나왔으므로….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그리움인 것을

“우리를 특별하고 남다르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지키지 못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새것이 마냥 좋아서, 일상의 피곤함에 지쳐서 그 옛날 반짝거리던 추억을 잃어가고 있다.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추억을 마음속에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즐거운 놀이를 마음껏 즐기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어른들 모두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에서 펌

                                                                                      

너무나 미국적이라 공감이 안 가는 부분만 빼놓는다면 최고의 성장 에세이이자 유년 시절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우리나라 작가가 쓴다면? 혹은 내가 저자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 또래의 작가가 이런 글을 펴낸다면 어떤 글이 될까? 내가 나고 자란 80년대 후반 이후의 서울의 모습, 아파트가 빽빽이 늘어서고 서너 동에 하나씩 있는 놀이터마다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붐볐던 모습, 한 달 동안 전교생이 준비했던 운동회, 저학년 때 했던 꼬마 신랑 각시와 조금 자라고 나서 했던 매스 게임, 줄다리기, 6명씩 끊어서 했던 달리기, 오후 5시부터 시작되었던 만화 타임, 이 때 우리 또래들은 30분 단위로 한 회씩 끊어지는 만화를 지상파 세 방송을 계속해서 돌려가며 각 방송국의 만화를 봤었고 7시까지는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고무줄, 뽑기, 달고나, 만화방, 파워레인저... 지구용사 선가드와 다간의 시간대가 겹쳐서 어린이들 사이에 둘로 나뉘었던 기억, 조금 커서는 HOT 대 젝키 구도로 나뉘었었다. HOT의 캔디 모자와 엉덩이 춤, 학예회나 수련회 장기자랑 때 HOT, 젝키, SES, 핑클의 춤을 삼삼오오 모여 연습하던 시절,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IMF의 기억, 박찬호의 이름을 딴 찬호박 아이스크림, 맨발 투혼의 박세리로 인한 골프 열풍, PC방, 중학교 때 불었던 외고입시 열풍으로 방과 후까지 다녔던 학원, 순정만화를 반에서 한 명이 빌려오면 돌려보던 기억, 중학교 때 활동했던 교지 편집부, 2002년 월드컵 때 학생들마저도 한밤중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기억... 정말정말 많구나... 이 글쓴이처럼 지나간 시간은 모두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나보다. 그럼 지금 나의 모습도 수십 년이 흐르면 아름답게 기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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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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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한국을 여행한다면? 

수많은 리뷰들을 찬찬히 보면서, 역시 사람들 눈은 비슷하다는 생각과, 좋은 글은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마음을 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말장난, 화장실 농담, 성적 조크, 이것이 다였더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할 수 있을까? 특히 나를 비롯한 여성들이라면 말이다. 한바탕 웃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공허함에 빠지게 되는 단순한 언어유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 차고 넘치는 저자의 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어우러져 한 편의 꽉 찬 저널리스트의 글을 읽은 느낌이다.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라는 부제는 원래 있는 건지 출판사에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붙인 건지 모르지만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참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유럽에 대한 일반 사람들이 품고 있는 선망을 발로 차 무너뜨리고, 그 이면을 까발리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읽는 이에게 불쾌감을 안겼을 테지만, 이 여행기 곳곳에서 사회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에 책을 다 읽고 난 사람이라면 ‘의외로 훈훈’함을 느끼게 된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주옥(?)같기에 몇 개만 옮겨 적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든 궁금증 하나. 만약 빌 브라이슨이 한국을 여행한다면 어떤 글을 쓸까? 그의 여행 지역 목록에 한국이 꼭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여행기가 그의 저서들 중 가장 신랄하면서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p.54

 런던에 있을 때 유럽 여행을 한 다음 책을 쓸 거라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시나 보군요.”

 “아니, 영어밖에 모르는데요.”

 내가 모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그것이 외국 여행의 묘미다. 나는 여행지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자는 갑자기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신히 눈치로 알 수 있을 뿐이며,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가 없다. 존재 자체가 연이은 추측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p.135

 네덜란드 인들은 영국인들과 매우 비슷하다. 모두 좀 칠칠맞지 못하다. 그러나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 차를 주차하는 법이나 쓰레기통을 배치하는 방법, 제일 가까운 나무나 난간 등에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모습까지 상당히 유사하다.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보는 강박적인 정리정돈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주택가에 주차된 차들도 자와 측량 기계를 이용해서 세워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차를 운하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두는데, 물에 굴러 떨어지기 직전인 차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은 영어 발음도 영국인처럼 해서 나는 당황하곤 한다. 「더 타임스」에서 일할 때 네덜란드 출신의 동료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에게 반 고흐를 ‘반 고’로 발음하는지, ‘반 고흐’로 발음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아니, 빈센트 반….”까지 발음하더니 갑자기 나방이라도 목에 걸린 듯이 가래 뱉어내는 소리를 낸다.

 <중략>

 나는 다른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도 이런 주문을 해보았다.(파티에서 만난 네덜란드 사람과 달리 할 말이 없을 때 심심풀이로 하기 좋은 장난이다.) 결과는 늘 똑같다. 모두 가래 뱉는 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가래 뱉는 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네덜란드 사람들의 발음이 영국인과 비슷하다고 했지만, 사실 어떤 지역의 영어와도 다르고 기묘하다.




p.159

 다이어트를 시작한 첫 주에 2kg 가량 체중이 줄어 매우 기뻤던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런 속도로 가다가는 1년만 지나면 내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실된 몸무게를 다이어트 2주째에 다시 회복하게 되자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 다이어트라는 것도 실은 내가 고안한 '피자-아이스크림 다이어트'라는 특별 다이어트였다.) 그리고 전 세계에 기아가 찾아온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누워 기아로 죽어갈 때 나는 축적해 둔 지방 덕에, 어쩌면 테니스라도 치면서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점에 큰 위안을 받는다.




p.321

 "그게 바로 오스트리아의 문제야."

 여행하는 내내 몇 번 입을 연 적이 없는 과묵한 토마스가 갑자기 열정적으로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인데, 망할 오스트리아 놈들로 가득하거든."




p.383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




p.385

 나는 분명 여행의 끝에 와 있었다. 저 반대편이 아시아가 아닌가. 유럽에서 가장 멀리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고생만 하고 있는 내 아내는 한 해 걸러 아기를 가졌는데 지금도 임신 중이었다. 아내는 전화 통화에서 아이들 중 어린 두 녀석은 성인 남자만 보면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잔디는 허리까지 자랐고, 목장 울타리는 일부가 쓰러져가고 있었으며, 양들은 물가의 풀밭에, 소들은 옥수수 밭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나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 보고 싶었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리웠다. 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픈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동시에, 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는 계속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타성이 있다. 해협 바로 저편에 아시아가 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저기가 아시아 대륙이라고 생각하자 경이로웠다. 몇 분이면 아시아 땅을 밟을 수 있다. 돈도 아직 남았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대륙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콜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오가는 페리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시아에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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