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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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보낸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민망하게 짧았던 가을을 보내고 이제 겨우 겨울이란 녀석을 두 팔로 끌어안아 맞이하였는데, ‘여름’이라는 제목을 떡하니 써놓은 이 책을 집어들다니, 풉. 나도 모르게 낮은 실소를 터뜨린다. 그간 읽히지 않던 책들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자니 얼마나 짜증이 솟구쳐올랐는지 아무도 모를게다. 하지만 여기에 덤을 얹어주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온다 리쿠라는 작가는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도미노」라는 작품을 통해 이미 한번 접한 바 있으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내 매몰차게 돌아서 다음 작품을 기약하겠다,했었고 그것이 이 작품이었다. 읽기 전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이 작품을 손에 들고 읽으려니 땀이 베어나오는 것을 슥슥 닦고서야 심호흡을 한다. 첫 장은 그렇게 힘겹게 열렸다.

 

 

 

 

이번 작품의 제목인 ‘여름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는 19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가 만든 곡인데, 한 가지 테마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곡이에요. 그래서 소설도 그 곡의 이미지를 따라 제1변주에서 제6변주까지 이어집니다. 역시 장이 바뀔 때마다 같은 테마가 반복되면서 점점 변화해 가는 이야기죠. _ 온다 리쿠 인터뷰 中

 

제목 속의 여름,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게 소설 속의 계절은 눈이 오고 코트를 입고 있으니 겨울을 뜻함을 오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자매의 초대를 받아 간 호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문장이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제 1 변주_미나토 도키미쓰, 제 2 변주_다도코로 사키, 제 3 변주_사와타리 류스케, 제 4 변주_아마치 시게유키,제 5 변주_사와타리 사쿠라코,제 6 변주_다쓰요시 아키라’라는 순으로 뒤죽박죽 변주가 시작되었다. 아니, 뒤죽박죽이 아니다. 한 변주가 끝나면 그 다음 변주가 이어서 시작하는 그런 변주인게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그 다음 변주에서 등장한다니, 이 혼동을 어찌 부여잡고 읽을 수 있겠는가,싶다. 골치가 아프다. 맞춰보라는 식인가, 우선 무작정 읽는다. 그러나 책 속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라는 영화의 인용문들은 쓰잘떼기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기에 읽는 내내 불편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이것은 미스테리니까, 그렇기 때문에, 혹여나 복선이 있을까 싶어 읽지만, 아…허무하다. 그것은 오랜만에 외출하는 날에 차려입은 옷에 묻은 김치국물이었던 셈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다른 리뷰를 찾아보기에 발동이 걸렸다. 그것이 이 책을 이끌어나간다고? 도대체 어떤 부분이? 게다가 무엇보다 이 책에 난색을 표하고 싶은 점은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인데, 토론 대회에서 한창 열 올리고 있는데 맥없이 끝난 것과 동시에 아무런 결과를 통보해주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그런 좋지 못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는 점이다. 맥없이 끝나버리는 이야기에 내가 잘못 읽은 거겠지,를 연발하며 열페이지 가량을 되돌려 읽었으나 헛물킨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진실은 거짓에 섞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진실다워 보인다. 또 진실은 농담에 섞어야 한다. 그래야 얘기가 더욱 탄탄해진다. (p244) , 정말로, 정말로 이치코씨는 그 얘기를 할 작정이다. 진실은 허구 속에, 진실은 거짓말 속에. 진실은 농담 속에. 지금 그녀는 진실을 허구 속에 담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p261)

 

제 4변주부터 재미조차 찾을 수 없던 나는, 결국은 범인잡기에 포기하고, 이 책에서 족히 스무 번은 넘게 나왔던 ‘진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힌트를 얻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말을 해달라고, 옆에 있었더라면 귀가 떨어져나가라 소리를 질렀을런지도 모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도대체 그 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겐지. 하지만 이미 진실은 휘발된 상태, 그러니까 애초에 진실따위는 없었던 게다. 그렇다면 작가는 독자를 농락한겐가. 아니, 아니다. 내가 놓친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온다 리쿠 마니아들이 그렇게도 좋다 했던 분위기고 뭐고를 파악할 타이밍도 놓친 채,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한 영화의 인용문으로 인해 몰입성마저도 떨어진 나는 더욱 더 미칠 듯한 슬럼프가 나를 감싸고 있음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간신히 꾹꾹 눌러 참고는 다 읽은 책을 책상에 휙, 집어 던진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하는지 아무 것도,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이는 모두 그간의 황폐해진 독서의 결말인 것이다. 안되겠다. 조금은 마음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머지않아 한국 작가의 책을 읽어야지,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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