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그와 통화를 하다가 문득 하늘을 보게 되는 날이 잦아졌다. 무거워져 들어지지 않는 머리를 들어올려 고개를 젖히고 보는 하늘에는 까만 도화지에 노랑색 크레파스로 잘못 찍은 듯한 별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외치는 말이 “개밥바라기별!”이었는데, 그는 내가 그 말 뜻도 모르면서 쓴다며 웃곤 했다. 아이러니하게 그에게 이 책이 있어 그가 슥 내미는 것을 덥썩 잡고는 두어달 가량을 묵혀두고는 읽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은 겉표지를 상실해버린 책의 모양새는 못생긴 벌거숭이를 보는 듯함에 저 예쁜 겉표지는 왜 버려두고 이렇게 발가벗겨 놓았느냐고 따져물었더니, “내맘이다!”라고 답하는 그에게 샐쭉해진 표정으로 입을 댓발이나 내민 채로 툴툴거렸다. “왜 겉표지는 버려서…”어쩌고, 저쩌고 -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잡게 된 요 책은 대략 70페이지를 훌쩍 넘어서야 나의 머릿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 전까진 상황 전개고 뭐고 주루룩 나열되어 있는 검정색 한글을 아무 생각없이 눈으로 읽기만 한 모양이다.

 

 

 

시대는 월남전이었던 1970년, 그것은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는데 첫 장, 첫 줄을 보면 그해 겨울에 나의 베트남 파견이 결정되었다.로 시작하기에 책을 읽으며 알아가기 보다는 처음부터 거저 주워먹는 꼴이다. 여기서 ‘나’는 ‘준’인데, 이런 말을 구지 해야하는 것은 화자가 한 명이 아닌 까닭도 있지만, 이야기는 주로 준을 주축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같이 보인다. 준 외에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가 각 장마다 이야기의 화자로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그 전에 다른 화자가 이야기했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마치 이어달리기의 한 장면을 보는 것도 같다.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 며 그 때의 회상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1장이 아닌, 2장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왜들 그렇게 먹구사는 일을 무서워하는 거야.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 거야. (p41) 나는 나를 잘 모른다,고 시작된 준의 독백은 자신을 찾기 위해 점철지어진 학교생활을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자퇴,를 하게 된다. 그 때 준이 말한 자퇴의 이유가 어찌나 명료하던지 몽글몽글 솟아나는 뭉클함을 만들어내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중략) 모든 선택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결심하고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도 하지만 미지의 자유에 대하여 벅찬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시간을 나눈어 쓰면서 창조적인 자신을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p90) 그렇게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라 단언하며 그는 산으로 가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고, 내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천천히 내 숨소리에 집중한다. 콧털이 가늘게 떤다. 그마저도 익숙해진다. 눈구멍 밖으로 조금 볼 수 있는 나의 거처인 가슴팍에서부터 배와 두 무릎으로 이어진 몸을 본다. 그는 여기 나와 함께 있다. 그리고 가뭇, 내가 사라진다. (p108) 세달쯤 후 그는 산에서 내려와 도시의 이곳저곳을 무전여행하며 길 위에서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과 밤마다 마주하고 그들을 끌어안기에 이른다. 허깨비같은 삶으로 돌아왔을 때, 방랑의 동행자였던 장씨를 유치장에서 만나 공사판을 다니고, 오징어잡이 배를 타며 그는 느낀다.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p261) 하지만 그는 곧 그와 작별을 고하고 제빵집에서 겨울을 나고 동래 범어사에서 입산 출가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봉지 안에 있던 알약을 털어놓게 된다. 닷새째 오후, 그는 혼절 상태임에도 부연 빛을 보고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알아채고 그쪽 방향으로 나오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의 색깔이 변해가는 모양을 내다 보았다. (···) 색깔이 차츰 나뉘며 각각의 색으로 돌아갈 즈음에야 하늘이 쾌청하게 맑고 푸르다는 걸 나는 알았다. (p281)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기, 사춘기가 나에게도 있었으나 나는 정도가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에 순종했고, 그 경쟁 속에서 뒤쳐지긴 했어도 살아남으려 노력했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미미하지만 여전히 -ing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황석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개밥바라기별’은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간접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비록 그가 겪은 시대와 내가 사춘기 시절 겪었던 시대는 확연히 다를지 몰라도 방황기에 누구나 겪는 심리 상태는 충격적이게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음을 인식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작가가 쓴 준의 이야기가, 오롯한 그의 이야기만이 아닌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야기도 될 수 있음에 - 적어도 나에게는 - 교감을 느끼게 되며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걸치게 되는 것이다. 그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길어지는 서평글이 보기가 싫어서, 아니 - 이것들을 통틀어 귀찮아서_라는 명백한 사실앞에서 제대로 된 줄거리를 여태껏 쓰지 않고 버텨왔던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즐비하게 나열한 이유는 미안하게도 내가 놓친 그들의 걸음걸이를 조금 더 좁히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거나 나이먹거나 세월은 똑같이 소중한 거랍니다. 젊은 날을 잘 보내세요. (p17) 작가가 말하는 젊은 날은 비단 방황하던 그 때만이 아닌 지금도 포함되는 것이리라. 나는 여전히 지금에 와서도 방황하고 있고 그 방황에 의의를 두고 싶지 않다. 그것도 또 하나의 ‘내’가 되기 위한 성장일테니. 그 방황이 끝나는 날, 내 젊은 날도 끝나는 것이리라.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오늘 퇴근하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뜬 별이 내눈에 개밥바라기별로 보이는가, 샛별로 보이는가_ 아직은, 개밥바라기별로 보이겠지 그것은. 오늘 그에게 말해줘야지. “오늘도 개밥바라기별이 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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