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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마음이 얼어붙어 겨울인 사람은 봄이 온다는 걸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얼어붙은 게 안전하다 생각하겠지.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참으면 되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겉만 그럴 뿐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기는 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밖에 내 보내야 괜찮겠다. 말을 하면 좋겠지만,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을 거다. 그때는 글로라도 풀어야 할까. 그것 또한 쉽지 않겠다.
호정이는 지금 열일곱살로 고등학교 1학년이다. 호정이한테는 동생 진주가 있는데, 호정이랑 진주는 여덟살 차이가 난다. 호정이가 보내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내는 진주. 엄마 아빠 그리고 진주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셋을 보면 호정이 마음속에 치솟는 게 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해도 할 말 안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호정이 엄마 아빠는 갑자기 호정이가 생겨서 하던 걸 그만둬야 했다. 태권도 국가대표가 될 뻔했나 보다. 부모는 돈을 벌려고 중국에 태권도장을 열었는데 그게 사기였다. 호정이 부모가 중국에서 돈을 잘 벌었다면, 할머니 고모 삼촌은 좋아했겠지. 사기 당한 거여서 원망했다. 할머니 돈도 날아 갔으니 말이다. 호정이는 어릴 때 우연히 그걸 알았다. 할머니 고모 삼촌이 호정이한테 뭐라 하지 않았는데 호정이는 눈치를 봤다. 어린이는 말하지 않아도 그런 분위기 잘 알 거다. 엄마 아빠가 중국에서 돌아오고 호정이가 함께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호정이는 그 뒤 몇 해 동안 할머니 집에 살았다.
이 책 《호수의 일》을 보면서 호정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 했다. 어릴 때 아팠던 마음이 다 낫지 않은 거였다. 호정이 엄마 아빠는 너를 위해 손목이 빠지도록 만두를 빚는다고 했다. 아빠만 그런 말을 했던가. 엄마는 그저 호정이가 알아서 잘한다고 믿었다. 호정이가 괜찮아 보여도 괜찮은 게 아니었다. 어릴 때 일은 호정이한테 깊은 상처였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게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호정이 반에 한 아이가 전학 온다. 강은기였다. 호정이는 어쩐지 은기가 마음 쓰인다. 은기한테도 말 못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 호정이 친구 나래와 나래가 사귀는 보람이 그리고 은기 넷이 어울려 밥을 먹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호정이는 은기와 가까워졌다. 지금 아이는 다 스마트폰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그리고 카톡 계정이 있겠지. 그거 안 하면 이상하게 보일까. 요즘은 사이버 따돌림이 생겼구나. 따돌림보다 괴롭힘. 그거 하고 그런 일 당하기보다 아예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은기한테는 비밀이 있었다. 은기는 호정이보다 나이가 한살 많고 주민등록증도 벌써 나왔다. 호정이는 은기한테 이것저것 묻지 못한다. 꼭 그런 걸 알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인지 다른 아이가 은기 일을 알게 된다. 그 일로 은기는 호정이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다. 호정이는 호정이대로 은기가 한살 많다거나 수원에 살았다는 걸 자신이 말했다 여기고 죄책감을 느꼈다. 다른 아이가 물어보고 호정이가 아무 말 못하자 그게 맞다고 여겼다. 지금까지 호정이는 자기 마음을 숨겼는데, 은기 일이 일어나고는 이런저런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하다. 호정이는 은기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그런 마음도 빼앗긴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다는 아니어도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게 나을 것 같다. 호정이는 의사한테 이야기를 한다. 엄마 아빠도 함께 이야기하라고 했나 보다. 그건 참 다행이구나. 예전에 엄마 아빠도 힘들어서 호정이한테 마음 못 썼겠지. 그러면서 호정이를 위해 돈을 번다고 하다니. 그 말과 호정이가 생겨서 꿈을 접었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았을 텐데. 은기하고도 아주 끝인가 했는데, 다행하게도 호정이가 은기를 만나러 간다. 말하지 못하는 게 많겠지만, 제대로 헤어지는 게 좋겠지. 호정이와 은기가 앞으로 꿋꿋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겠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