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 평소에 그 일이 일어나면 어떤 조짐이 보일 것 같았는데, 조짐 따위 없이 그 일은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는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천문학자나 과학자는. 말하지 않은 건 아무 대책이 없어서였겠지.
지구에 살던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내가 그렇게 느낀 거고 실제로는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한해쯤 전 혜성이 지구로 아주 가까이 다가오지만, 다행하게도 혜성은 지구와 부딪치지 않고 지나간다고 했다.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 혜성이 다시 지구 쪽으로 오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는데.
그때 슈퍼 컴퓨터가 계산을 잘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많은 걸 슈퍼 컴퓨터에 맡기고 슈퍼 컴퓨터가 내놓은 답을 따랐다. 어느 순간 슈퍼 컴퓨터는 성실하게 일하기 싫어졌을지도. 자아가 생긴 거지. 그렇다고 자신까지 죽는 일을 만들다니.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난 산 사람이 아니다. 혜성이 지구와 부딪쳤을 때 나 또한 목숨을 잃었다. 그 일이 일어나고 얼마 뒤 눈이 뜨였다. 눈이라 할 만한 건 없지만. 몸도 없고 정신이랄까, 열혼이랄까 하는 게 우주를 떠돌았다. 다른 건 못해도 눈을 감고 싶다 생각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난 그저 우주를 떠다닐 뿐이다.
나만 이렇게 된 건지 많은 사람이 나처럼 우주 공간을 떠도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내지도 못하니.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 해도 모르겠지. 그래도 아주 가끔 누군가 곁에 있는 듯 따스함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제 난 사람도 아니구나. 예전에 사람일 때는 죽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게 끝나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난 어떤 상태인 건지. 죽은 것 같기는 한데 아주 죽은 게 아닐까.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지.
사람일 때처럼 외롭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 우주를 떠도는 일이 심심하다. 별과 별 사이는 아주 멀다. 난 거의 검은 공간을 떠다닌다. 우주는 진공이어서 물체가 떠다니던가. 난 물체가 아니지만 떠다닌다. 신기하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구나.
시간이 갈수록 예전 기억이 사라진다. 어쩌면 좀 더 떠돌다 보면 나 자체가 우주에 녹아들지도. 인류는 지구의 한 부분이다 생각했는데 난 우주의 한 부분이 되겠다. 그렇게 되는 것도 괜찮겠지. 지금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도 힘들 것 같다.
혜성이 지구와 부딪치고 목숨 있는 건 거의 사라졌겠지. 어쩌면 살아 남은 게 있을지도.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인류가 나타날지도. 인류가 지구를 떠나 비슷한 별을 찾지 못한 건 지구가 있어서였을지도. 지구 같은 별은 하나만 있으면 괜찮을 테니 말이다.
저 멀리에서 무언가 아주 밝게 빛난다.
“이보세요. 괜찮아요.”
누군가 나를 세게 흔들었다. 난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생각났다. 여기는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곳이었다.
정전이 되고 그게 돌아오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난 이상한 일을 겪은 거였다. 정전이 됐으니 내가 본 건 가상현실이 아닐 거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그걸 꿈이라 여겨야 할지.
그날 밤 뉴스에서는 한해 뒤에 혜성이 지구 바로 옆을 지나갈 거다 했다.
모두가 사라질 때 지구 종말 앤솔러지
정명섭, 조영주, 신원섭, 김선민, 김동식
요다 2019년 10월 30일
*더하는 말
《모두가 사라질 때》에는 단편 다섯편이 실렸습니다. 언제나 책을 볼 때면 어떻게 쓰지 생각하는데, 마지막 단편 볼 때 이걸 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여기 담긴 소설에 곧 혜성이 지구에 부딪친다는 말이 있더군요. 지구가 끝장나는 거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여기 담긴 소설을 보고 한번 생각해 봤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