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건축 잘 모른다. 건축만 모르지 않지만, 어떤 건 잘 몰라도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건축 이야기를 지금까지 봤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빠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내 성격 탓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고 자주 가는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 난 그런 곳 없다. 집이 멋지고 살기 편하면 좋기는 하겠지만, 난 그저 조용하고 잠 자고 지내기만 해도 괜찮다. 이래서 내가 정리를 못하는구나. 지금은 괜찮아도 시간이 더 가면 안 좋을 텐데. 늘 정리해야지 생각만 한다. 책 본 다음에 쓰는 건 괜찮은데 왜 이렇게 움직이기 싫은지. 한번 하면 조금만 하지 않을 거다. 집은 갈수록 낡는데 딱히 하는 거 없이 산다. 그런 걸 해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다. 여기에서 오래 살았는데 이 집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조금 아쉬운 건 있다. 낮아서. 좀 높은 곳이었다면 여름에 비 오면 덜 걱정할 텐데.

 

 책 제목은 본래 《화산 자락에서》(책날개에 쓰인대로 썼다)인데 한국에서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바꿨다. 한국에서 지은 제목이 더 좋기는 하다. 이 소설을 쓴 마쓰이에 마사시는 출판사에서 일하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예전부터 건축을 좋아해서 그런 책을 읽었단다. 자신이 관심 갖고 알아두면 그게 언제 어디서 도움이 될지 모른다. 난 관심 가진 게 별로 없다. 책도 거의 소설만 보니. 소설을 쓰는 데도 전문지식이 있으면 훨씬 좋을 거다. 앞에서 건축 이야기 봤는지 안 봤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소설은 아니어도 미술로 말하는 건축은 몇번 본 듯도 하다. 거의 서양 성당이나 교회 지은 얘기였다. 아직도 다 짓지 않은 성당 있지 않은가. 그렇게 오랫동안 짓다니 대단하다.

 

 옛날 한국도 건축이 지금보다 아름답지 않았나 싶다. 한옥 말이다. 한국은 풍수지리에 따라 지었던가. 자연과 어우러지게 하려 했다. 지금은 빨리 짓는다. 그거 괜찮을까. 빨리 지어서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층간소음 나지 않게 지으면 좋을 텐데. 아파트라 해도 아주 빨리 짓지 않고 시간을 들여 지으면 안 될까. 돈도 덜 들이려 하겠지. 이건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일본 드라마에도 높은 건물을 설계도대로 짓지 않는 게 나왔다. 건설회사는 그걸 숨기려 했다. 큰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려는 건지. 그건 그저 소설, 드라마일 뿐이면 좋겠지만. 아파트 설계도 건축가가 하겠지. 여기 나온 무라이 슌스케는 그런 일은 안 하겠다. 큰 공사는 건축회사에서 하려나. 설계도 개인이 하는 사무소와 회사가 있겠다. 그런 건 거의 생각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

 

 이야기가 참 천천히 흐른다. 사카니시 도오루는 마지막으로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갔다. 마지막이라 한 건 무라이 슌스케 나이가 많아 일할 사람을 더는 뽑지 않았는데, 사카니시 도오루를 일하게 했다. 그때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무라이 설계사무소가 나가서였다. 설계사무소도 그런 데 나가기도 하는구나. 무라이 슌스케는 일을 빨리 하지 않고 천천히 했다. 그런 게 더 좋지 않나 싶은데. 집을 지어달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무라이 슌스케가 다른 말은 잘 안 했지만 사람이 살 집 이야기는 오래 했구나. 집만 지은 건 아니지만. 교회도 지었다. 무라이 슌스케는 거기에 다닐 사람을 생각하고 교회를 설계하고 지었다. 건축가는 예술가기도 하다고 하는데, 무라이 슌스케는 건축은 예술이 아닌 현실이다 말한다. 사람이 편안하게 살 집과 편안하게 갈 곳을 지어서 그렇게 생각했겠다.

 

 여름이면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해발 1000미터인 아오쿠리 마을에 지은 여름 별장으로 옮겼다. 여름 동안이기는 해도 난 그런 거 싫을 것 같다. 모두가 같이 생활하고 돌아가면서 밥을 해야 하니. 난 그래도 무라이 설계사무소 사람은 그때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사카니시는 겨우 한번밖에 거기서 지내지 못했다. 음식은 잘 모르겠고, 사카니시는 새 이름을 참 잘도 알았다. 건축가인데 그런 걸 잘 알다니 했다. 사카니시는 어렸을 때 들새를 찾아다니는 모임에 들어갔다고 한다. 여름 별장 둘레에는 들새가 참 많았다. 그런 새 지금도 있을까. 1982년 여름이어서 새가 많지 않았을까. 여기 나오는 시대는 좀 옛날이다. 1980년대여서 느긋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도 1980년대를 그리워하기도 하지 않나. 1980년대는 정치가 별로 안 좋았던가. 재개발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건 1990년대쯤일까.

 

 다른 나라 건축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건 작가가 넣고 싶었던 건지도. 집을 천천히 짓는 모습을 글로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거의 비슷한 일만 해서 심심할까. 사람이 사는 데 큰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사카니시는 여름 별장에서 보낸 시간을 오랜 시간 기억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여러 가지 배우고 높은 산에 있는 별장에서 지냈으니. 무라이 슌스케 조카인 마리코한테 마음이 가기도 한다. 어쩐지 그건 무라이 선생님이 사카니시와 마리코가 결혼하길 바란다는 말을 들어서인 듯하다. 두 사람 마음을 생각도 안 하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무라이 슌스케는 여름이 다 가고도 사카니시한테 마리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결혼은 둘레 사람이 시키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이 하는 거여서 그랬겠지. 그랬기를 바란다. 둘이 사귀는 듯하면서도 그 사이를 여러 사람한테 말하지 않았다. 둘은 결혼하지 않고 헤어진다. 사카니시는 마리코 집안이 부담스러웠을까. 잘 모르겠다. 여자 남자가 꼭 결혼을 생각하고 사귀지는 않겠구나.

 

 여름이 가고 시월에 무라이 슌스케가 쓰러진다.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다음 이야기는 어쩐지 쓸쓸하다. 사람은 다 나고 살다 가지만. 여름에 힘써서 준비한 현대도서관 설계는 다른 사람 쪽이 된다. 무라이 설계사무소에서 설계한 도서관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무라이 슌스케가 한 게 다 사라지지는 않겠지. 무라이 슌스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사람 기억속에 산다.

 

 

 

희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9-26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7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 좋은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민진,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난 그래도 조민진이라는 이름 아는 사람 많을 것 같다. 조민진은 문화일보에서 시작해 지금은 JTBC 기자라 한다. 신문기자와 방송국 기자는 비슷하면서도 다를 듯하다. 텔레비전뿐 아니라 뉴스도 안 본 지 꽤 됐지만,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보면 현장에 있는 기자와 연결하기도 한다. 그게 다른 지방일 때도 있고 다른 나라일 때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연결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도 하고 그쪽 소식도 알려달라고 한 것일지도. 일하는 데서 공부도 시켜주는 건 기회겠지. 그건 자기 방송국(회사) 앞날을 생각하고 돈을 쓰는 거(투자)구나. 기회가 왔을 때 잘 잡고 그걸 잘 살리는 사람도 있겠다. 난 아마 못하겠지. 빚지는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나중에 빚 갚아야 할 거 아닌가. 잘 못해서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 쓸데없는 상상이나 하다니, 공상인가.

 

 이 책을 쓴 조민진은 열네해 동안 일하고 한해를 자유롭게 지내기로 한다. 난 그저 조민진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가 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 듯하다. 방송국은 조민진이 잠시 쉬면서 공부도 하기를 바란 듯하다. 연수라는 말을 하는 걸 보니. 그렇다 해도 한해 동안은 기자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조민진이 결혼하고 아이도 함께 사는지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아이는 친정 부모님이 맡았다. 조민진 일이 바쁠 때는 아이를 만나지 못했겠지만 쉴 때는 자주 만나러 갔겠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모와 떨어져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는 어쩐지 철이 빨리 드는 듯하다. 조민진 딸도 그렇게 보였다. 아직 어린데 엄마가 집에 있기보다 일하기를 바랐다. 내가 보기에 조민진은 사람 복이 있다. 부모를 시작해 남편에 자식 복까지. 영국 런던에서 조민진이 엄마와 딸과 지낼 때는 엄마하고 딸한테 조금 섭섭하게 생각했다. 그런 마음 어떨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한테는 딸이고 싶고 딸한테는 엄마이고 싶었을 텐데. 엄마랑 딸이 더 친해 보였다. 그런 감정은 잠시였겠다.

 

 한국에서도 잠시 다른 지방에 가야 한다면 이런저런 걱정이 들 텐데, 조민진은 영국 런던에서 지내려 했다니 대단하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한해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됐을 텐데, 일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게 일이 아닐 때도. 조민진은 런던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런던에서 영국 사람과 말하고 싶어서 프랑스말을 배우러 다니고 그림 그리기와 그림과 상관있는 강좌도 들었다. 조민진은 그림 보기를 좋아했다. 런던에 있을 때도 그림을 자주 보러 간 듯하다. 런던에서는 유럽 다른 나라에 가기 쉽다. 조민진은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에도 여러 번 갔다. 엄마와 딸 동생 그리고 남편이 한국에서 영국으로 조민진을 만나러 가다니 식구들이 사랑이 가득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해 지나면 돌아올 텐데 그렇게 멀리까지 만나러 갔다. 식구가 모두 한국에서 런던에 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런던에서 만나는 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어딘가에 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처음 가는 곳도 있다. 모르는 곳에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도 걷다 보면 나오기도 한다. 이건 대충 어디쯤인지 알았을 때구나. 어떤 곳은 다른 데로 옮긴 지 모르고 예전에 있던 곳으로 갔다. 그날 참 많이 걸었다. 아주 반대쪽이어서. 조민진은 런던에서 지도를 보고 어딘가에 가는 연습을 했더니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가게 됐다고 한다. 그런 거 아무리 해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조민진은 런던에서도 규칙있게 살았다. 사람은 다 똑같지 않더라도 살다보면 자신만의 규칙이 생긴다. 조민진은 나처럼 널널하게 지내지 않고 긴장하고 살았겠구나. 계획을 세우고 그걸 제대로 이루는 듯하다. 그런 게 있었기에 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을 쓰기도 하고 조민진은 운동도 다녔다. 조민진은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듯하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인다. 조민진은 한주에 한번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쁘게 여겼다. 프랑스말 선생님, 그림 선생님, 운동 가르치는 트레이너. 그건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조금 다를까. 지금은 조민진한테 런던 삶이 꿈 같을 것 같다. 한해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다. 그래도 조민진 나름대로 많은 걸 마음에 새기고 틈틈이 꺼내 보겠지. 그런 게 힘이 되기도 할 테니.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 다시 런던에 갈지도. 그때는 또 어떤 느낌일까. 시간이 흘러도 런던 사람은 여전히 친절할 것 같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해마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마’는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가진 여러 개 인공지능을 한데 담을 수 있는 그릇이자,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대로 자극과 정보를 기억하는 범용 인공지능이다. 또한 사람 손이 닿기 힘든 모든 일을 몸체를 바꿔가며 처리하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질문에 답한다.  (책 맨 뒤에서)

 

 

 난 해마는 아니지만 비파 네가 겪은 일을 알아. 어딘가 내 세계 바깥에서는 내가 비파 네 이야기를 보는 걸 보았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내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어. 지금 생각하니 비파 네가 한국 사람을 보는 건 재미 때문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태어나서군. 근데 비파 너와 같은 해마를 만든 건 사람이겠지. 설마 무언가 다른 게 해마를 만든 건 아니겠지. 책을 보다보니 조금 의문이 생겨서. 사람이 해마를 만들었다면 관리도 사람이 할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해마한테 일을 시키는 건 누구고 개인 일을 시키는 건 누굴지. 네가 중앙에 돌아가지 않아도 별일 없었잖아. 중앙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건 다른 너인 백업이었지. 넌 백업이라 했지만 백업은 너를 백업이라 여겼지. 해마는 왜 이름 하나를 둘이 쓰게 했을까. 일을 12시간씩 한다고 하지만. 그냥 하나인 게 나을 것 같아. 중앙에 있는 함수는 뭔지. 함수가 해마를 관리하는 건가. 모르겠군. 넌 실체가 없는 것 같은데.

 

 비파 넌 해마로 인공지능 도움을 받고 여러 가지 일을 했어. 해마체는 겉모습도 쉽게 바꿨지. 넌 재난재해 긴급구조원이었을 때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한 여자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한테 조금 마음 쓰게 됐지. 주민등록칩이 없으면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니. 난 그 모습 보고 앞날엔 해마가 사람을 마음대로 보다니 하고 좀 놀랐어. 칩 같은 건 넣지 않고 싶어. 재난 지역에서 너를 따라 나온 여자아이는 고아원에 가고 이름은 이미정이 됐어. 그 이름은 누가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는데. 비파 넌 이미정을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로 여겼어. 너와 이어진 사람은 사천만명이나 되니까. 지금 한국에는 오천만명쯤 산다는데 나중에는 좀 줄어들까.

 

 사람도 생물도 아닌 넌 대체 뭘까. 전기신호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네 진짜 이름은 247.30 Hz였군. 비파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준 거야. 비파와 247.30 Hz는 상관있는 건가. 해마 이름은 다 악기 이름이더군. 비올라 소고 신디 오보에 나각. 해마는 그 정도밖에 없는지, 더 있겠지. 바로 나오지 않았지만 난 해마가 생기고 사람 일자리가 줄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말 나중에 잠깐 나오더군. 해마는 인공지능과 뭐가 다른지. 인공지능보다 좀 더 자기 생각이 있는 걸까. 비파 너를 보니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어. 허브 어귀에 있는 함수가 묻는 “참입니까. 거짓입니까?”는 무슨 뜻인지. 해마는 “무한입니다.” 대답해야지. 그 물음과 답을 잊으면 해마는 지금까지 기억이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 비파 넌 처음 태어난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사람은 기억을 잊어버리면 무척 괴로울 텐데. 아니 기억을 잊으면 잊었다는 것조차 모르겠군.

 

 해마는 왜 어떤 일을 해야 하지. 그것도 좀 억지스러운 걸. 그건 누가 시키는 건지. 그저 재미로 하는 걸까. 해마를 어려운 일에 빠뜨리려고. 해마가 해 내기 어려운 일을 시키고 해마를 미치게 해서 기억을 지우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해마한테 기억이 쌓이는 걸 막으려고.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파 너도 네가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오래 생각했잖아. 이미정한테 도움을 받으려고 하다가 이미정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봐 그만뒀지. 넌 이미정을 많은 사람에서 한사람이다 여기고 이미정이 겪은 일을 보고 다른 감정은 느끼지 않았어. 해마는 감정 못 느끼겠지. 이미정은 우연히 열일곱살 여자아이를 만나고 자신과 겹쳐보고 그 아이와 함께 살지.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말아. 그건 기업에서 만든 기계 때문이었어. 난 그런 거 할 때부터 안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사람은 편한 것을 좋아하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군. 이미정은 그저 아이를 기쁘께 해주고 싶었을 테니.

 

 우주에서 넌 사고를 당하고 많은 사람에서 이미정만 생각했어. 그 일은 괜찮았던 건지 어떤 건지. 이미정을 보다 이미정이 너를 도울 수 있다 여겼지. 하지만 그건 잘 안 됐지. 난 여기 사는 사람이 해마가 자신들을 본다는 걸 아는지 알았는데 아니더군. 이미정은 비파 네가 자신과 한국에 사는 사람을 다 지켜봤다는 걸 알고 놀랐지. 많은 사람은 그걸 몰랐어. 왜 해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을 감시하려고.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마는 아무 감정 없이 사천만명을 보았지. 그런 거 지겨울 것 같아. 이미정은 이미정이 넣은 망막으로 봤잖아. 사람 몸에 기계를 심으면 감시 당하겠군. 지금 내가 사는 곳에도 여기저기 카메라가 많아. 인터넷에는 개인정보도 많고. 이미정은 기자로 일해서 해마 일을 그냥 넘어가지 못했어. 이미정은 너를 도와줄 테니 너한테 재판에서 증언을 해달라고 하지. 이미정은 콩고에 돌아가려는 로랑을 도우려는 마음도 있었어.

 

 많은 해마와 다르게 생각하는 해마가 있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도 좀 아쉬워. 이제 너한테 이미정은 많은 사람에서 한사람일 뿐이니. 이미정은 비파 널 잊지 않았을 텐데. 어딘가에 비파 네 기억은 있을까. 이미정 기억속에 있겠군. 그것만으로도 다행인가. 비파 넌 백업, 아니 또 다른 비파인가. 그 비파를 너와 다르지 않다 여겼지. 기억을 공유한다 해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건 자기 기억이 아니지. 비파와 비파라 해야겠군. 다른 비파도 널 기억하는군.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청난 자연재해를 겪어봤느냐 하면, 그렇다 해야 할지 아니다 해야 할지. 지진은 아닐지라도 한번 겪어봤다. 시간이 지나도 그건 잊지 못할 것 같고 또 일어나지 않을까 늘 걱정할 것 같다. 몇해 전에 물난리를 겪었다. 어딘가에는 1층이 다 잠길 정도로 비가 오기도 했다지만 내가 사는 곳은 1층에 물이 들어왔다. 집 안에는 삼십센티미터 넘게 물이 들어왔던가. 바깥은 그것보다 더 깊었겠지. 차가 다 잠길 정도였고 냉장고가 떠다녔다. 어딘가에 냉장고를 버려서 그게 떠다닌 건지. 1층이 모두 물에 잠기지 않아 다행일지도. 그렇게 됐다면 더 절망스럽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했을 거다. 모든 걸 다 버려야 했을 테니 말이다. 한동안은 집에 있지도 못하고 다른 데서 지내야 했겠지. 잠깐이어도 그렇게 지내는 거 엄청 안 좋을 거다.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밀려와 모든 걸 쓸어간 곳 많을 거다. 모든 걸 잃고 목숨만 건진 사람은 피난소에서 살았겠지. 이 소설 보다가 모든 걸 잃고 목숨만 건져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난 못 살 것 같았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난 살지. 물난리가 나고 한동안 그런 꿈을 꾸고 지진을 느끼고는 지진이 일어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꿈에서 잘 피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데. 훨씬 큰일을 겪은 사람은 얼마다 더 힘들지. 이걸 보면서 자연재해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 잠깐 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자연재해 더 겪고 싶지 않은데 그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 한국도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지만, 물난리가 더 걱정스럽다. 컴퓨터 걱정되고 내가 글을 써둔 공책과 내가 가진 책도 걱정된다. 종이는 물에 젖으면 구하기 어렵다. 내가 쓴 글 별거 아니지만, 잃어버리면 무척 아까울 것 같다. 내가 살아야 그런 생각이라도 할 텐데.

 

 세상이 어지러우면 아이와 여자가 힘들겠지.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다르지 않다. 지진과 해일에 모든 걸 잃고 피난소에서 지내게 된 세 여자 쓰바키하라 후쿠코 야마노 나기사 우루시야먀 도오노도 그랬다. 평소에도 여자는 집안 일과 식구를 돌보는데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피난소에서 지내도 그래야 한다. 뭐, 그런 일이. 세 사람이 지내는 피난소 대표는 모두 하나가 되고 식구처럼 지내자 한다. 칸막이로 쓸 게 와도 나눠주지 않았다. 그런 일 실제로도 있었단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기는 해도 칸막이를 해서 개인 생활을 지켜줘야 할 텐데. 남자 여자 화장실도 나눠 쓰지 않고 옷 갈아입을 곳도 없었다. 도오노는 젖을 먹여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도오노 시아버지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시어머니가 해일이 몰려왔을 때 피하지 못한 걸 도오노 탓을 했다. 도오노 남편은 도서관에 있다가 죽었다. 시아버지는 남편 형과 도오노를 결혼시키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피해를 입은 사람한테 돈을 주었는데 그 돈은 세대주한테 주었다. 여자는 제대로 돈도 받지 못했다.

 

 후쿠코는 지금까지 남편 때문에 힘들었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도박에 여자 문제도 많았다. 정부에서 나온 돈도 자기가 혼자 가지고 마음대로 다 써 버렸다. 후쿠코는 해일이 일어났을 때 남편이 죽었을 거다 생각했는데. 평소에 남편 비위를 맞추고 하고 싶은 말도 못했던 후쿠코가 이제야 남편과 헤어지기로 마음먹는다. 후쿠코 나기사 그리고 도오노 세 사람은 함께 도쿄로 가기로 한다. 그렇게 마음먹고 하는 거 어려울 텐데 혼자가 아니어서 마음먹지 않았을까. 나기사는 폭력을 쓰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과 친정 엄마와 살았는데 친정 엄마는 해일에 죽었다. 나기사 아들 마사야는 나기사가 밤에는 술집을 해서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했다. 그 일 때문에 마사야는 학교에 더는 가지 않았다. 도쿄에 가게 된 걸 마사야가 더 기뻐했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세 사람이 살던 곳은 시골이라 해야겠다. 한국도 다르지 않겠지만 일본 시골은 가까이에 사는 사람한테 좀 마음을 많이 쓴다. 좋은 뜻으로 마음을 많이 쓰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말이 많다고 해야 할까. 거의 가부장 사회다. 그런 건 시골이 더하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가 하는대로 따라야 한다고 한다. 도쿄는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 일에 덜 관심 갖겠지. 두렵지만 새롭게 살려는 세 사람을 보니 부러웠다. 여자는 좀 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쩐지 그런 건 한국이 좀 더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어떨까. 그럴 때도 말할까. 지금은 옛날이 아니다. 한국 여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잘 할 거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은 뭘까. 자기 몸이나 머리를 써서 시간을 들이면 돈을 받는 것. 어쨌든 돈을 벌려면 일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돈 못 벌겠지. 일을 돈하고만 이어서 생각하면 쓸쓸할 듯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는 못한다.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도 있겠지. 일을 하다보면 사람은 살려고 일하는 건지 일하려고 사는 건지 모를 때가 찾아올 것도 같다. 자신이 한 일이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거나 도움을 주면 보람도 있겠지. 세상에는 그런 일만 있지 않구나.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돌아가지만 일하는 사람 때문에 힘든 사람도 있다. 안 좋은 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안 좋은 일이 아니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시간 걸린다고 싫어하겠다. 회사가.

 

 나라와 비슷할 정도로 회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 그 회사와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나왔다면. 회사는 개인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말이다. 나중에는 이름도 없이 숫자 9번이 되는 남자가 그랬다. 남자는 통신회사 현장에서 스물여섯해나 일했다. 통신 설비기사 같은 건데 남자를 재교육 대상자로 만든 건 영업을 못했다는 거였다. 첫번째 두번째는 다들 한다고 여겼다. 남자는 세번째 재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건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거였다. 새로 온 부장은 일을 그만둘지 재교육을 받을 건지 결정하라고 했다. 바로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다니. 남자는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자신이 한 일에 자부심이 있어서. 시간이 가면 회사가 자신을 알아주리라 생각한 것도 같다. 회사를 믿었다고 해야겠지. 남자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정년이 보장됐다. 고향 사람은 남자한테 자기 식구도 회사에 넣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지금 정년까지 해도 괜찮은 일은 뭘까. 공무원은 정년까지 일하던가.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 많구나. 그건 좋아하는 일이라기보다 안정되게 살려는 마음에서 고른 일이겠지. 공무원이지만 교사도 인기 있던가. 교사도 쉽지 않다. 정교사보다 계약이 많을 거다. 이런 형국인데 선생님이 아이를 생각할까. 아이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도우려고 교사나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어도 일을 하다보면 달라진다. 정말 일은 사람을 안 좋게 바꿀까. 그럴 때가 많겠지만, 힘들어도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사람이 있기에 세상이 아주 나빠지지는 않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부질없다 해도.

 

 세번째 재교육을 받은 남자는 할 일이 거의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 거기에서 상품을 팔아야 했다. 통신 상품이라 해야겠지. 그걸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던가. 거기에 온 사람에는 상품을 팔 사람이 없는 곳을 맡았다. 그런 거 너무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남자는 그때는 조금 괜찮았다. 사람들을 도우면서 마음을 나누기도 했으니. 그 일을 회사가 알게 되고 남자는 주의를 받았다. 얼마 뒤 남자는 다른 데로 옮겨야 했다. 거기는 반대로 일이 많았다. 하루에 할 일을 다하지 못하면 또 뭐라 했다. 회사가 일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도 여러 가지구나. 내가 볼 때 그건 괴롭히는 거다. 남자는 나름대로 일했는데 고객 민원이 들어왔다. 그래도 남자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일이 잘 안 되는 것뿐 아니라 가정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남자가 나중에 임대금을 받고 살면 어떨까 하고 산 건물은 낡아서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남자는 그 건물을 팔았다. 그 일로 아내와 좀 멀어졌다. 아들하고도 사이가 가깝지 않고 아들이 어떤지도 몰랐다.

 

 다음에 간 곳에서 남자는 아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남자는 거기에서 버티면 다시 하던 일을 하리라고 믿었다. 여전히 회사를 믿다니. 진작에 그만뒀다면 더 좋았을걸 싶기도 하다. 남자가 고집을 버리지 않은 걸 나쁘다 말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척척 잘하지는 못한다.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그게 기횐지 모르고 넘길 거다. 남자도 그랬겠지.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회사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은 듯하다. 회사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체도 없는 무언가. 그러니 회사를 많이 믿지 않는 게 좋겠다.

 

 

 

희선

 

 

 

 

☆―

 

 오랫동안 그에에 회사는 시간을 나눠 가지고 추억과 기억을 공유한 분명한 어떤 실체에 가까웠다. 그의 하루이자 일상이었고 삶이라고 해도 좋았다. 친구이자 동료였고 식구였고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한 부분이자 모두였던 것.

 

 그는 잠에서 깨어나듯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생각을 아주 버리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의 생각은 스스로를 여기까지 밀어붙인 게 바로 자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