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당신의 초능력 잠금 해제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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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이야기를 쓰면 책이 여러 권이다,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쓰면 한권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걸 쓰지는 못하겠네요. 어릴 때 일은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요. 초등학교 글쓰기 시간에 학교에 다니기 전 이야기 하나를 쓴 적 있는데, 그건 지금도 기억해요. 어릴 때 이런저런 글을 썼다면 기억하는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쉽네요. 학교 다닐 때 글쓰기 시간 싫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글쓰기 시간이 아니고 국어에 글쓰기가 있어서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일기 검사 받은 기억도 있어요. 이것도 자주는 아니었어요. 방학 때 한번인가 두번인가. 그 일기도 밀려서 썼네요. 방학숙제는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에 부랴부랴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엔 꼭 방학 시작하면 숙제 일찍 끝내야지 생각했어요.


 방학 끝나기 며칠 전에 숙제 하던 거 생각하니, 마감 시간이 생각나네요.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마감 시간이 있어서다고도 하잖아요. 그게 없었다면 글 쓰지 못할 작가 많았다고 하지요. 예전에는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군요. 어릴 때는 책을 읽지도 않고 글도 즐겨 쓰지 않던 제가 책을 보고 글을 쓰게도 됐어요. 저는 거의 마감하고 상관없이 읽고 씁니다. 어릴 때는 남(선생님)한테 제가 쓴 글 보여주기 싫었는데, 지금은 봐주길 바라는군요. 왜 저는 달라졌을까요.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이 늘 같지는 않겠네요. 마음이나 생각은 자주 바뀌기도 하지요. 바뀌는 것도 있고, 바뀌지 않는 것도 있겠습니다.


 앞에서 저는 남한테 제가 쓴 글 보여주기 싫다고 했잖아요. 일기 검사 받기 싫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그때 선생님이 일기 읽지 않았을 것 같더군요.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죠. 바쁜 선생님이 어떻게 아이들 일기를 하나 하나 봤겠어요. 그때는 그런 생각 못했네요. 신기하게도 일기 검사 받지 않아도 됐을 때는 마음대로 일기를 썼어요. 편지도 썼군요. 저는 사춘기 별 일 없이 지냈다 여겼는데, 그때 일기 쓰고 편지를 썼네요. 쓰기만 하고 책은 못 봤습니다. 책이란 거 잘 몰라서. 제가 책을 읽어야지 한 건 고등학교를 마치고부터예요. 책을 읽기는 했지만, 감상은 안 썼습니다. 책을 보다 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재미있는 이야기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시간이 더 흐르고서야 책을 읽고 뭐든 남기게 됐습니다.


 이번에 《글쓰기, 당신의 초능력 잠금 해제》(민혜)를 만났습니다. 글쓰기를 말하는 책이에요.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쓰기가 먼저였네요. 그건 아닌가. 책은 읽지 않아도 다른 걸 봤겠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거, 그게 책읽기 대신이었을지도. 얼마전에 이 책 제목 보고 난 초능력 없는데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보면 초능력이 생기고 글을 잘 쓰려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책을 본다고 바로 글을 잘 쓰지는 않겠지요. 그건 저도 잘 압니다. 글은 잘 쓰든 못 쓰든 자꾸 써야 조금이라도 나아집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은 별로고 어느 날은 좀 괜찮은데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도 ‘글을 쓰고 또 쓰자’고 하네요. 물건이 말을 걸어오면 그걸 쓰고 메모도 잘 해두라고 합니다. 제가 잘 못하는 게 메모군요. 메모는 따로 안 하고 한다 해도 제대로 살려 쓰지 못하지만 제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죠. 정말 그러면 좋을 텐데. 책을 볼 때는 조금 적기도 하는데, 글 쓸 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메모를 잘 못해서겠지요.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어도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많다고 하지요.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죠. 저도 조금 욕심 있지만, 지구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지거나 책을 내지 않아도 글 쓰고 싶어요. 글은 누구나 써도 괜찮군요. 지금 생각하니 글쓰기는 평등하네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을지도. 인터넷이 생기고는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쉽게 쓰게 됐습니다.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니 자기 감정을 푸는 사람도 있지만. 남을 공격하는 글보다 자신한테 도움이 되는 글을 쓰면 더 좋겠습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에 반려라는 말을 붙이는데, 민혜는 글쓰기를 속정 깊고 뜻 있는 반려다 했어요. 책과 글은 사람을 떠나지 않네요. 책을 읽는 것보다 글쓰기가 조금 더 힘이 들지만. 쓰는 것보다 읽는 시간이 덜 걸리잖아요. 책도 잘 읽으면 시간 많이 걸릴지도. 책을 읽기만 하는 것보다 쓰기도 하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건 책을 읽고 쓰는 글은 아니군요. 어떤 글에든 적용해도 괜찮겠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립니다. 기억은 자꾸 되새기지 않으면 사라지지요. 단기기억, 장기기억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글로 쓰는 건 기억을 붙잡는 거겠습니다. 글을 쓰고 좋아진 게 많다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딱히 상처를 낫게 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어서. 이런 마음 없다 해도 글을 써서 나아진 거 있을 거예요. 글쓰기는 저한테 삶이기도 합니다. 숨쉬기보다 애써야 하는 거지만. 책읽기와 글쓰기에 중독된 걸지도. 다른 중독보다 낫지 않을까요. 쓸 게 없어도 쓰려고 하면 뭐든 씁니다. 저한테 꿸 구슬은 없지만, 글을 쓸까 합니다. 뭔가 떠오르는 거나 보고 듣는 거 잘 적어두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겠지요. 글쓰기에는 초능력보다 꾸준함이 중요하겠습니다. 어쩌면 꾸준함이 초능력일지도.




희선





☆―


 귄터 그라스는 ‘작가란 과거의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사라져가는 시간에 거역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57쪽)



 그렇지 않아, 친구.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탄광 속에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일해도

 창작을 해내지.

 작은 방 한 칸에 애가 셋이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해도

 창작을 해내지.

 마음이 분열되고 몸이 찢겨 나가도

 창작할 사람은 창작을 하지.

 눈이 멀고

 불구가 되고

 정신이 온전치 않아도

 창작을 해내지.


 -<공기, 빛, 시간, 공간>에서, 찰스 부코스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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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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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9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本のエンドロ-ル
安藤 祐介 / 講談社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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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엔딩 크레딧

안도 유스케



 




 아직 난 못 봤지만 이제는 전자책을 보는 사람이 늘었다. 지구를 생각하면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부자만 종이책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이라는 게 나왔을 때도 가난한 사람은 못 봤는데. 인쇄술이 발명되고 누구나 쉽게 책을 보게 됐다. 인쇄술뿐 아니라 종이 발명도 있구나. 이 종이는 나무로 만드는 거고, 책을 찍으려고 나무를 베면 지구가 안 좋아지고. 슬프구나. 난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바란다고 될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종이책으로 볼 때 더 잘 기억한다고 하던데. 전자책도 갈수록 좋아지고 종이책 느낌이 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책 두께나 무게 감촉 냄새가 없겠다.


 책을 생각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 난 작가다. 작가가 글을 써야 책이 나올 거 아닌가. 작가만 있다고 책이 될까. 글이 저절로 책이 되지는 않는다. 출판사 편집자가 있어야 작가가 쓴 글을 보고 그게 책이 될지 안 될지 알겠다. 책 디자이너도 있어야 하는구나. 그런 게 정해지면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 인쇄다. 난 책뿐 아니라 어떤 것도 인쇄되는 거 본 적 없다. 인쇄소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거구나. 내가 늘 쓰는 물건 만드는 곳은 다. 그런 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문구점에서 사는구나. 책도 다르지 않다. 이 책 《책의 엔딩 크레딧(엔드 롤)》은 안도 유스케가 자기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다 쓰게 됐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가가 써야겠지. 인쇄소에 가 본 작가는 얼마나 될까. 아주 없지 않겠지만 많지는 않을 거다.


 한국에서는 책 제목을 《책의 엔딩 크레딧》이라 했다. 본래 제목은 ‘책의 엔드 롤’이다. 이 책에는 많은 사람 이름이 담겼다. 인쇄회사 사람 이름이다. 책을 다 본 다음에 마지막을 보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나온 책에는 인쇄 제본 회사가 쓰인 것도 있고 쓰이지 않은 것도 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은 이 책과 다른 책을 보니 쓰여 있다. 이 책을 보고 책이 되려면 인쇄뿐 아니라 제본도 해야 한다는 거 알았다. 이 책은 인쇄와 제본 회사가 달랐다. 카도카와 출판사는 카도카와 제본, 인쇄 주식회사라 쓰여 있다. 큰 출판사는 인쇄 제본 회사도 있는가 보다. 인쇄하는 기계에는 제본까지 하는 것도 있다. 그런 거 보고 신기했다. 미국에서 그 기계로 페이퍼백을 많이 만든다고 한다. 만화책 인쇄도 그게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어떨지.


 책을 만드는 사람에서 인쇄나 제본하는 사람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도요스미 인쇄주식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우라모토 마나부가 출판사 편집자와 인쇄 기술자 사이를 이어주고 책을 만드는 거다. 인쇄회사 영업부에서는 무슨 일을 할까. 책 인쇄 일은 주문 받아야 인쇄기가 돌아가는구나. 자주 거래한다고 해서 또 같은 인쇄회사에 인쇄를 맡기지는 않겠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다. 싸게 빨리 해준다면 다른 데서 하겠다. 우라모토가 일하는 도요스미 인쇄회사에는 특정한 색을 잘 보고 만드는 사람도 있다. 거의 장인이었다. 그런 건 기계가 나타내기 어렵단다. 도요스미 인쇄회사 라이벌은 월드 인쇄회사구나. 거기는 거의 기계가 하고 빨리 하고 돈도 적게 받는단다. 그런데 도요스미 인쇄회사에서 월드 인쇄회사로 스카우트 하려고도 하다니.


 인쇄가 이제는 저무는 일이구나. 몰랐다. 책이 아니어도 다른 거 인쇄하면 안 될까. 책을 많은 사람이 읽지 않는 지금은 출판사뿐 아니라 인쇄소도 일이 없어지다니. 어쩐지 슬프구나. 우라모토는 인쇄회사는 책을 만드는 곳이다 여겼다. 우라모토는 책을 만들고 싶어서 먼저 다니던 월드 인쇄를 그만두고 도요스미 인쇄로 옮겼다. 다른 사람은 처음에는 우라모토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쇄회사는 작가가 쓴 글을 편집자가 말하는대로 인쇄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다. 인쇄회사가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여겨도 괜찮을 텐데.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인쇄회사 사람이나 우라모토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인쇄 제본도 중요하지만 종이도 중요하다. 사전 만드는 소설에서는 그 사전에 맞는 종이를 개발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어디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책 보는 사람이 줄었으려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볼 거다. 작가와 편집자뿐 아니라 책을 손에 들게 해주는 인쇄 제본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책이 나온다면 인쇄 제본 일도 아주 사라지지 않겠지. 기계가 더 많은 일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걸 기계가 한다 해도 사람이 해야 하는 일도 있다. 있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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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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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10-31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는 사람이 줄었는데도 매일 쏟아지는 신간은 또 엄청나더라고요.
새로운 기술로 인쇄업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어느 것이 질적으로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자책을 읽다보면 편리한 것도 많지만 전체의 내용을 파악할 땐 종이책이 확실히 좋아요~~

희선 2023-11-01 02:35   좋아요 2 | URL
정말 책을 보는 사람이 줄어도 책은 여전히 나와서 신기하기도 합니다 책 찍는 건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쇄도 사람 기술보다 기계가 더 할 것 같군요 사람이 해야 하는 것도 있을 텐데... 그런 게 아주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자책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뭐 찾을 때는 종이책이 편할 것 같아요 책은 바로 넘기면 되잖아요 전자책은 찾으려면 시간 많이 걸릴 듯합니다


희선

stella.K 2023-10-3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원어로 읽었군요. 근데 원제는 엔드롤이었군요.
우리나라에선 롤 보다는 크레딧이 그나마 많이 알려진 용어라
그러지 않았나 싶네요.
저는 기대하고 봤는데 생각 보다 좀 지루했습니다. ㅋ

희선 2023-11-01 02:39   좋아요 2 | URL
이 책에는 뒤에 인쇄한 사람들 이름도 다 실렸어요 이야기가 인쇄 제본을 말해서 그랬을 듯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책은 인쇄소 안 쓰인 책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별로 생각도 못했군요 저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책뿐 아니라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기도 하네요


희선

감은빛 2023-10-3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 원서도 읽으시는군요!!

제가 출판사에 다닐 때, 편집(주로 교정교열), 영업, 마케팅 등의 업무를 해봤는데,
거의 유일하게 잘 모르는 일이 제작 쪽 일입니다.
물론 편집자로서 인쇄 감리를 보러 간 일은 몇 번 있습니다.
영업자로서 파본 관리나 스티커 작업 등을 위해 간 적도 있구요.

우리나라도 인쇄 업계가 많이 어려운데, 일본도 마찬가지군요.
그래도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자책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거든요.
종이를 직접 만지며 책장을 넘겨야 가능한 일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희선 2023-11-01 02:44   좋아요 1 | URL
감은빛 님은 책이 만들어지는 거 조금 아시는군요 인쇄 제본은 잘 모르신다 해도... 책이 나오려면 작가만 있으면 안 되죠 여러 사람이 있어야 책이 만들어지고 그걸 팔겠습니다 영업이나 마케팅도 하셨다니 그런 경험해 본 것도 좋은 일이죠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어느 나라나 책 보는 사람 줄었을 겁니다 일본은 사람이 많고 여러 계층이 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종이책 사라지면 아쉬울 것 같은데, 아직은 그런 일 없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종이책을 보는 건 내용만이 아니고 손으로 만지는 느낌도 중요하죠 냄새도...


희선
 
本のエンドロ-ル
安藤 祐介 / 講談社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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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책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시대에 책을 만드는 이야기를 한다. 책 내용은 영혼이고 인쇄 제본은 몸이구나. 책에서 인쇄 제본은 중요한데 그걸 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책을 보면 인쇄 어디에서 했나 볼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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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2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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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비가 많이 내려 물난리가 나기도 하고, 반대로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말라버리기도 한다. 먹고 살기 어려운 때 가뭄까지 들면 더 힘들겠다. 먹을 게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겠지만, 먹을 게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혼불》 2권에는 가뭄이 든 모습이 나온다. 청암부인이 농사를 지으려고 판 저수지도 말라버렸다. 조개바위가 있는 신령한 곳으로 물이 마르지 않을 것 같았는데 조개바위가 드러나고 저수지 바닥도 드러났다. 사람들은 깨끗한 물도 마시지 못했다. 흙이 섞여도 그 물이라도 길어다 두었다.


 여기에도 소작농이 있다. 거멍굴에 사는 사람인 듯한데, 그건 처음에 제대로 못 썼구나. 양반, 이씨 집안 사람이 모여 사는 곳과 소작농이 사는 거멍굴이 있는 거겠지. 거기 사는 사람은 가뭄에 굶주렸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자 물고기가 보였다. 가물치, 붕어. 누군가는 그거라도 가지고 와서 먹으려 하고 누군가는 그건 청암부인 거니 마음대로 잡아 먹으면 안 된다 여겼다. 가뭄이 길어지자 이른 아침에 사람들은 저수지로 간다. 처음엔 눈치를 봤지만 곧 그러지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사람들이 양반 몰래 저수지 물고기를 잡아가기 전에 양반이 먼저 사람들한테 물고기를 잡아 가도 된다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청암부인 몸이 괜찮았다면 소작농을 생각했을 텐데. 청암부인은 창씨개명을 하고 마음이 약해지고 쓰러졌다. 집안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듯했다. 저수지 물이 마르는 걸 보고 청암부인한테 큰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양반이다 해도 이때는 벼슬을 하지 못하기도 하는구나. 그런 사람은 무엇으로 돈을 벌었으려나. 땅인가. 청암부인이 쓰러지고 양아들인 기채가 집안 재산을 관리하게 되는데, 모자라다 여기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며느리 효원 집안에서 땅을 주지 않다니 했다. 시집 올 때는 재산을 가지고 와야 하나. 부자라면 보내줄지 몰라도.


 효원은 친정에 한번도 가지 못했다. 그때는 시집 오고 세 해 안에 친정에 가야 좋았나 보다. 아버지가 찾아와도 효원은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효원이 동생이 아파서 수술을 했던가 보다. 효원이 친정에 가고 싶지 않아서 못 간 건 아니다. 강모는 그런 일에 관심도 없었다. 강모는 효원과 처가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겠다. 시부모도 효원을 별로 안 좋아하다니. 효원이 일하는 사람한테 내갈 밥을 많이 했더니 시어머니가 안 좋아했다. 효원은 자기 집 일을 하는 사람은 남이 아니다 여겼다. 잘해주면 거기에 맞게 일한다고. 이건 맞는 말 아닌가. 일하는 사람한테 아끼면 안 될 텐데. 1권에서 일하는 사람이 새참 적다고 했는데.


 이번 2권에서 강모는 일을 저지른다. 이씨 집안 사람인 강수는 친척을 좋아하고 상사병으로 죽었던가 보다. 여러 해가 지나고 강수 영혼 결혼식을 치렀다. 그날 강모는 강실이를 범하고 바로 왜 그랬지 한다. 멀리서 좋아하던 게 나았다는 걸 깨달았다. 강모는 강실이를 내버려두고 효원이한테 뭔지 모를 자기 마음을 푼다. 효원은 강모가 자신을 겁간했다 느꼈다. 그 일로 아이가 생기고 효원은 아들을 낳는다. 집안 어른 청암부인은 그걸 기뻐했지만, 효원은 어떨까. 자식이니 예쁘기는 할까. 강모는 학교를 마치고 작은아버지 도움으로 부청에서 일하게 된다. 거기에서 공금을 횡령한다. 강모는 자신이 한 일을 공금횡령이다 여기지 않았구나. 돈 쓸 일이 있어서 가까이에 있는 돈을 쓴 것뿐이다. 강모는 언젠가는 갚을 거다 생각했다. 그 돈은 기생 오유키를 기생에서 빼내는 데 썼다. 기가 막히는구나.


 어두운 밤에 일어난 일을 누가 볼까 했는데, 강실이와 강모를 본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 소문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거멍굴에 퍼졌다. 옹구네는 죽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른 사람한테 말했다. 그러고 싶을까. 아직 강실이 부모는 모르지만 곧 알지 않을까. 강실이 안됐구나. 지금이라면 강간 당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아니 지금도 어려울 것 같다. 사촌 오빠한테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쉬쉬하겠지. 《혼불》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희선





☆―


 “어머님. 놉이 누군가요? 놉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농사를 지어 주는 우리 손이요, 우리 발이 아닌가요? 놉을 남이다 생각하면 놉도 우리를 남이다 생각합니다. 남 일에 제 몸을 부릴 때 누가 성심을 다 허겠어요. 눈치보고 꾀부리고 한눈파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가 놉한테 주는 밥그릇을 애끼면, 놉도 우리한테 주는 힘을 애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닌가요? 아무리 종이라도 신분이 낮아 천한 대접을 받을 뿐, 사지에 오장육부는 똑같이 타고 났고, 그 속에 마음이 있는 것은 양반이나 무에 다르겠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야 몸이 움직여지는 법인데, 배를 곯리고 마음을 상하게 한 뒤에 무슨 정성을 바랄 수 있을까요? 많이 먹고 즐거워서 힘이 나면 결국은 내 집 일을 그만큼 흥겹게 할 터이니, 한 그릇 밥을 더 주고 한 섬지기 쌀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낄 것이 따로 있지 밥심으로 일하는 일꾼들한테다 몇 숟가락 밥을 아낀다고, 그것이 쌓여 노적가리가 되어 주겠습니까…….”  (76쪽)



: 그날그날 품삯과 음식을 받고 일을 하는 품팔이꾼.

노적가리 : 한데에 수북이 쌓아 둔 곡식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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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0-27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지 완독하고 이제 혼불 시작하시는 거예요? 이 책도 좋지만 지루한 부분이 있고 읽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희선 2023-10-28 01:40   좋아요 1 | URL
토지를 봐서 이것도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불은 작가와 책 제목밖에 몰랐어요 열권인데 끝나지도 않았더군요 아쉽지만 거기까지만 봐야죠 작가가 아프지 않았다면 끝까지 썼겠지요 다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작가가 많이 아쉽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다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10권까지 봐야죠


희선
 
반둘라 - 용기와 공감을 가르쳐 준 코끼리
윌리엄 그릴 지음, 이정희 옮김, 심아정 해설 / 찰리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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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육천오백만년 전이던가, 이제 백년 더해서 육천육백만년 전이던가. 그때 공룡은 사라졌다.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구나. 공룡은 커다란 몸집이니 작은 동물이 당해내기 어려웠겠다. 그때 작은 동물 있었던가.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 지금 지구에서 가장 커다란 동물은 코끼리겠다. 더 오래전엔 코끼리와 비슷하지만 더 큰 맘모스가 있었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젠 하나도 없구나. 코끼리는 백년 전만 해도 1000만 마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50만 마리가 남았다. 거기에서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더 적단다. 백년 사이에 엄청나게 죽어들다니. 그건 다 사람 때문이겠다. 나무를 베어서 코끼리가 살 곳이 없을 테니 말이다. 코끼리만 사라진 게 아니고 다른 동물이나 곤충도 많이 사라졌겠다.


 이 책 《반둘라》는 미얀마 정글에서 일하던 코끼리 이야기다. 미얀마에는 135개 민족이 함께 살고 1824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 지배를 받았다. 영국은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구나. 그런 곳에서 사람뿐 아니라 이런저런 자원을 팔고 많은 돈을 벌었다. 미얀마에서도 그랬다. 석유 천연가스 옥 루비 주석 그리고 나무. 영국은 미얀마에서 밤색 하드우드티크를 아주아주 많이 베고 다른 나라에 수출했다. 커다란 나무는 누가 옮겼을까. 그건 코끼리가 했다. 사람은 동물한테 일을 시켰다. 코끼리는 1000년 전부터 일을 하게 했단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거 잘 몰랐다. 어느 나라에선가는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데. 그리고 서커스단에서도 코끼리한테 일을 시켰구나.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다. 코끼리는 더 그런 듯하다. 코끼리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예전에 그런 이야기 봤는데. 그 코끼리는 서커스단에 있었다. 반둘라는 미얀마에서 티크 목재 사업을 하는 봄베이 무역 회사에서 일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했구나. 사람은 어린 코끼리를 잡아다 우리에 가두고 오래 굶긴 다음에 사람 말을 듣게 한단다. 이제는 그런 걸 못하게 한다는데 아주 사라지지 않았다. 반둘라는 코끼리를 훈련시키는 일을 하는 우지 포 토케와 어릴 때 만나고 친하게 지냈다. 봄베이 무역 회사에서 티크 나무를 베고 나르는 감독으로 코끼리도 관리하는 제임스 하워드 윌리엄스는 반둘라를 보고 코끼리를 생각했다. 윌리엄은 포 토케와 코끼리를 훈련하는 학교와 코끼리 병원을 만들었다.


 전쟁이 또 일어났다. 제2차 세계전쟁이다. 전쟁 때 윌리엄은 코끼리 부대를 만들고 영국군을 돕는다. 일본군이 미얀마에 쳐들어오자 영국군은 그곳을 떠나야 했다. 윌리엄은 자신들이 떠나면 함께 있던 사람과 코끼리가 위험해진다는 걸 알고 함께 떠나기로 한다. 그 길은 쉽지 않았지만, 반둘라가 맨 앞에서 코끼리들을 이끌었다. 윌리엄과 코끼리 그리고 사람들은 3주 뒤에 목적지에 닿았다. 윌리엄은 코끼리가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는데, 코끼리는 다시 전쟁에 나가게 된다. 전쟁 때 코끼리는 물자를 옮기거나 다리를 짓는 일을 했다. 사람 싸움에 코끼리가 그런 일을 했다니. 코끼리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전쟁 때 힘들었겠다. 말이나 소도 농사일을 했구나.


 반둘라는 엄니가 커다란 수컷 인도코끼리다. 윌리엄이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반둘라는 윌리엄을 살리려고 먼 길을 가기도 했다. 그런 반둘라는 밀렵꾼한테 죽임 당했다. 그동안 일한 것도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죽다니. 지금도 코끼리를 잡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건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 같은데. 코끼리가 사라진 건 상아 때문이기도 하다. 코끼리를 살리려고 플라스틱을 만들었다고도 하는데. 플라스틱은 지구를 죽이는 게 됐구나. 미얀마 정글은 많이 사라졌단다. 어디 거기뿐이겠나. 아프리카 아마존 여기저기 숲이 많이 사라졌다. 사람은 언제쯤 멈출까. 숲과 다른 생물이 사라지면 사람도 살기 어렵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지구에 사는 생물은 다 중요하다. 함께 살아야 한다.




희선





☆―


 언젠가 윌리엄은 미얀마에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며 말했어요. “저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아닌 걸 알아요. 사람은 그저 다른 생명체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그걸 깨달으면서 저는 행복해졌습니다. 모든 동물과 식물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단지 사람이 그걸 알려고 애쓰지 않는 것뿐이죠.”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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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25 0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본디 지구의 주인은 먼저 시작한 생명체일텐데, 포악한 인간은 나중에 태어났음에도 자신들이 마치 주인인 양 다른 생물체(동식물 모두)를 가벼이 여기고 쉽게 죽이지요. 함께 살아가는 고귀한 생명임을 하루빨리 자각해야 합니다. 희선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희선 2023-10-26 02:32   좋아요 0 | URL
다른 생명체가 있어서 인류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람만 대단하다 여기면 안 될 텐데, 사람은 지구 주인이 자신이다 여기는군요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야 하는 지구죠 식물 동물 마음대로 죽이다니... 죽이는 것뿐 아니라 살 곳을 빼앗기도 하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