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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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한번 오르면 산에 빠져든다고 한다. 제대로 해야 그렇겠지. 내가 산에 오른 건 학교에서 수학여행 갔을 때와 교회에서 소풍 갔을 때다(예전에 잠깐 교회에 다녔다). 산에 오르려고 준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가서 올랐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어서 그럴 수 있었구나. 그래도 힘들었다. 평소에 걸어서 다른 준비하지 않아도 산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평평한 땅을 걷는 것과 오르막을 걷는 건 다르지만. 산에 오른다 해도 오르막길만 이어지지는 않겠지. 그러려면 크거나 높은 산이어야 할까. 내가 오른 산 하나는 모르겠다. 거기는 좀 높았던 것 같은데. 모악산을 넘으면 김제 금산사가 나온다. 산을 오르는 쪽은 전주고 내려가면 김제였던가. 그걸 반대로 할 수도 있는지.

 

 수학여행은 설악산으로 가서 설악산을 올랐다. 오래전이어서 거기는 어딘지 잘 모르겠다. 지리산에도 갔다. 여기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었다. 혼자가 아니고 산에 오르고 싶어서 오른 게 아니어서 그때 어땠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체로 갔다 해도 산에 오를 때는 혼자였다. 함께 걸을 친구가 없어서. 이런 거나 생각나다니. 어쩌면 처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걸었을지도. 걷다가 떨어졌겠지. 힘들다 해도 난 잘 걷는다. 다른 사람은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않고 난 갔다. 아주 높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사람도 많았다. 지금도 그런 곳에 가는 사람 많을 듯하다. 난 가지 않지만. 한국에도 여러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사람 있겠지. 산 많으니까. 산에 가면 쓰레기 버리지 않고 다 그대로 가져오기를 바란다. 산에 사람이 많이 가도 안 좋을 거다. 꽃과 나무는 보기만 하고 꺾지 않기를. 지금은 산에서 음식 못 해 먹겠지. 잘못하면 산불 날 수도 있을 거다. 조심해야 한다. 이런 걸 생각하다니. 내가 좀 우습구나. 이 책에서 그런 걸 강조하지는 않지만 조심해야 한다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 산에 오를 때는 신발에 흙이 묻어 있으면 안 된다. 흙속에 다른 나라 식물 씨앗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조심해도 다른 나라 식물 씨앗이 오기도 할 거다.

 

 내가 하는 운동이라고 해봤자 걷기뿐이다. 그것도 날마다 하지 않고 어쩌다 한번이다. 그건 운동이 아니고 그냥 밖에 나가는 건가. 산이 좋아서 오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끔 생각하려고 산에 오르기도 하겠지. 산에 자주 올라야 그런 생각도 할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사고 처음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산에 오르면 이것저것 생각을 안 하게 되기도 한다던데. 둘레 풍경이 좋아서. 에토 리쓰코는 결혼해야 할까 그만둘까 했는데 산꼭대기에 오르고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겼다. 그리고 불륜해서 조금 싫어하는 일터 동료를 다시 보게 되고 친해진다. 나중에 그날 함께 가지 못한 한사람은 두 사람 사이가 달라진 걸 보고 조금 아쉽게 여긴다. 자신만 따돌림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겠지. 세 사람은 그런 게 있다. 어쩐지 난 늘 혼자였던 것 같다. 지금도 다르지 않구나.

 

 지나간 시대를 붙잡고 있는 것도 안 좋아 보이겠지. 미쓰코는 여전히 거품시대를 살았다. 겉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난 이런 생각도 든다. 다시 사기 싫어서 예전에 산 비싼 걸 그대로 쓰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게 아주 없지 않았겠지만, 미쓰코는 남한테 보여주고 싶기도 했나 보다.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면 안 좋을 텐데. 그래도 미쓰코는 맞선 본 상대와 산에 오르고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예전 자신을 다시 만난다. 이제 미쓰코는 조금 솔직해지겠지. 혼자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마키노 시노부는 두번이나 끝까지 가지 못한 야리가타케에 세번째로 간다. 처음에는 대학 산악 동아리 선배가 아파서 모두가 가지 않았고 두번째에는 아버지와 올랐는데 아버지 무릎이 아파서 그만둬야 했다. 세번째에는 혼자 오르리라 했는데 산에서 만난 두 사람이 함께 가자고 한다. 시노부는 내키지 않았지만 함께 간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혼자 산에 오르게 된 게 아니었다는 걸. 시노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산에 올랐다. 아버지가 시노부한테 산에 오르는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다음에는 어머니도 함께 산에 오를지도.

 

 여러 산에 오르는 여러 사람은 혼자면서 이어져 있기도 하다. ‘여자들의 등산일기’로. 거기는 산에 오르려는 사람이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사이트다. 사이는 아주 좋지 않아도 편하게 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식구일까. 언니는 생각할 게 있어서 동생한테 함께 산에 오르자고 한다. 다음에는 조카도 함께 오른다. 그다음에는 언니네 식구가 다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를 때 누군가 함께 있으면 기댈 수도 있어야겠지. 언니네 식구는 그걸 하게 된 걸지도. 늘 기대는 건 안 좋겠지만 가끔은 가까운 사람한테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 세상에 걱정거리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다들 무언가를 짊어지고 산다. 여기 나오는 사람은 산에 오르고 자신을 마주하고 앞으로 살 힘을 얻는다. 나한테는 그게 책일까. 책을 봐도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산에 오르는 것이든 다른 것이든 자기 마음을 좀 괜찮게 해주는 게 있으면 사는 게 많이 힘들지 않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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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눈의 고양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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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는 흑백방이 있다. 본래 그곳은 미시마야 주인 이헤에가 바둑을 두는 곳이었다. 어느 날 이헤에와 바둑을 두려고 온 손님을 미시마야에 온 조카 오치카가 이헤에 대신 상대했다. 바둑 상대는 아니고 이야기를 들었다. 첫번째 책 《흑백》은 그렇게 시작했다. 몇해 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는데 편집후기에 그런 말이 있어서 그랬지 했다. 오치카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 힘들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소설을 봐도 그런데. 흑백방에서 하는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사람이 아닌 것이 힘을 쓰기도 한다. 에도 시대니까. 에도 시대에는 요괴가 있었다.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겠지. 음양사도 생각난다. 세이메이. 이름 아는 음양사는 세이메이밖에 없구나. 일본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 잘 지어낸다. 그런 일 한국에도 있구나. 어느 나라에나 있겠다.

 

 별로 좋지 않은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르겠다. 안 좋은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이야기 앞에 나왔던가. 《피리술사》 《삼귀》, 미시마야 변조괴담이 아닌 책에도. 에도 시대 이야기가 아닌 소설에도 그런 거 나왔던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이 안 좋은 말이나 생각을 하면 그게 어딘가에 남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 그런 게 보이면 싫겠지. 보이면 밖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도. 자기 것을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남의 것도 보기 싫을 테니 말이다. 이상한 일을 겪으면 누군가한테 이야기하고 싶을까.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그 일을 다시 보고 진짜 있었던 일이구나 할지도. 아쉽게도 난 그런 일 없다. 죽기 전에 누군가한테 말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 그냥 아무 일도 없을지. 별 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번에 미시마야에는 둘째 아들 도미지로가 돌아오고 오치카와 함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도미지로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지키는 오카쓰와 함께 옆방에서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흑백방에서 오치카와 함께 이야기를 듣는다. <열어서는 안 되는 방> 이야기를 하러 온 사람은 도미지로가 함께 있어도 괜찮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무섭기도 슬프기도 따듯하기도 한데 첫번째는 조금 무서웠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살아남고 집안 사람은 모두 죽었다. 행봉신이라는 건 정말 있을까. 바람을 들어주는 대신 다른 걸 받아가는. 좋지 않은 게 마음에 빈 틈이 생긴 사람한테 다가온 것일지도. 바람이 이뤄졌으면 하고 소금 간을 끊은 사람이 어느 날 무언가를 집으로 끌어들여서 그 집 사람은 다 이상해진다. 아니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이상해지고, 식구가 하나씩 죽자 어머니는 행봉신한테 이 집을 나가 달라고 하고 자기 목숨을 바친다. 행봉신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닌 듯도 보였다. 그게 조금 오싹했다.

 

 오치카 혼자 이야기를 듣다가 도미지로가 함께 듣고 조금 바뀌었다. 도미지로는 이야기를 다 듣고 그걸 그렸다. 오치카는 도미지로가 그린 그림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소금은 사람한테 무척 중요하다.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아주 안 먹어도 안 좋다. 소금은 마를 물리치기도 한단다. 몸이 안 좋으면 판단을 잘못하기도 할 거다. 에도 시대에는 정말 소금 간을 끊은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자신이 바라는 일은 자신이 애써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누군가와 이야기해야 자신이 하려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알겠지. 행봉신을 집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눈치채지 못했구나.

 

 자신이 받아들인 일이라 해도 한이 남아서 혼이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기도 할까. 자신 때문에 산 사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미안하겠지.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잇코쿠는 후계자 다툼에 희생됐다고 해야 할 듯하다. 외할아버지는 자신이 섬기는 주인을 위해 외손자를 죽였다. 잇코쿠는 자신이 외할아버지한테 죽임 당한 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 몬모 목소리를 가진 오세이가 온다. 몬모 목소리는 요괴를 불러들인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오세이는 혼과도 이야기를 했다. 오세이는 잇코쿠가 성에서 나갈 수 있게 돕는다. 죽으면 자유로울 것 같은데 잘못하면 한 곳에 매일 수도 있겠구나. 잇코쿠가 성에서 나가자 거기 살던 가요히메 목소리가 나왔다. <벙어리 아씨>는 대충 이런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몬모 목소리를 가진 오세이가 마을을 떠나 말이 아닌 손짓 몸짓으로 말하는 부부를 만나고 그 뒤에는 성에서 일하고 겪은 일을 말하는 거다. 잇코쿠는 저세상으로 아주 떠나지 않았다. 연극을 하는 커다란 거미에 들어간다. 자신이 나쁜 것의 원한과 슬픔을 먹고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잇코쿠는 지금도 그럴까.

 

 나쁜 게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막는 일을 하는 집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한 오타네한테는 무서운 일이지만 세상 사람한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도미지로는 그런 가면을 지키는 곳이 한 곳이 아닐 거다 한다. <기이한 이야기책>은 도미지로가 그린 그림을 넣어두는 오동나무 상자 이름인데, 효탄코도 아들인 간이치가 어릴 때 겪은 일을 말하는 거기도 하다. 베끼면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있는 책. 간이치도 그걸 했을지도. 그 뒤 오치카는 흑백방에서 여섯 번 혼인한 사람 이야기를 듣는다. 혼인한 남편 얼굴이 다 닮았다고 한다. 그건 혼인한 사람만 그렇게 본 듯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오치카는 마음을 먹고 효탄코도 아들 간이치를 찾아간다. 오치카는 간이치한테 간이치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으니 자신을 아내로 맞아달라고 한다. 오치카가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오치카는 미시마야를 떠나면 이제 나오지 않을까. 도미지로는 자신이 오치카를 이어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도미지로는 자신한테는 그림이 있어서 큰일은 없으리라고 여긴다. 일본은 첫째가 집안 일을 잇는다. 첫째가 아닌 사람은 어딘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좀 낫지만 일 찾기 어려운 듯하다. 도미지로는 둘째다. 흑백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 길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가는 생각 없는 걸까. 그림 잘 그린다는데. 도미지로 형인 이이치로는 어렸을 때 본 금빛눈을 가진 흰색 고양이가 사람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전에는 미시마야 아들 이야기가 거의 없었는데 《삼귀》와 이번 《금빛눈 고양이》에서는 자세하게 나왔다. 흑백방에서 오치카 다음으로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듣게 해서겠다. 앞으로도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러 손님이 미시마야에 오겠구나.

 

 

 

희선

 

 

 

 

☆―

 

 사람이 마음에 품은 간절한 바람.

 

 생이별한 아이를 만나고 싶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돌아보게 하고 싶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 끊이지 않는 불행을 끝내고 싶다.

 

 사람은 약하기에, 욕심을 부리기에 끝없이 바란다. 그 약함에 파고드는 행봉신은 잡아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울 일은 없다.  (<열어서는 안 되는 방>에서,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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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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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한모퉁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서 주인 조카인 오치카가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들은 지 두해가 흘렀구나. 책은 네권째인가. 오치카가 듣는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이상한 이야기다.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슬프기도 하다. 책이 나온 건 두해가 넘은 듯한데 책속 사람은 두해밖에 흐르지 않았다니. 오치카가 몇살인지 잘 모르겠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오치카가 나이 드는 모습을 쓰겠다고 했단다. 이 말 전에 본 것 같구나. 오치카한테 일어난 일도 나왔을 텐데,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다시 짧게 나왔다. 오치카와 가까운 두 사람이 죽었다. 그저 사고나 병으로 죽었다면 오치카 마음이 덜 슬프고 덜 괴로웠을 텐데,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오치카 약혼자)을 죽였다. 남은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예전에 써둔 거 한번 찾아볼걸 그랬다. 그냥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오치카는 여관을 하는 집을 떠나 에도에서 주머니 가게를 하는 친척집 미시마야에 오고 흑백방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마음이 나아질지도.

 

 흑백방에서는 듣고 버리고 말하고 버리는 규칙밖에 없다. 오치카는 흑백방에 온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하지 않는다. 오치카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는 힘들고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저저런 사람이 흑백방에 와서 이야기 하는 건 소설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에도 누군가 알기를 바라는 이야기가 담겼으니 말이다. 소설에는 잘된 사람보다 잘되지 않은 사람 이야기가 더 많다. 소설에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보고 사람은 힘을 얻겠다. 미시마야 변조괴담도 다르지 않구나. 오치카와 오카쓰 그리고 이헤에가 이야기를 듣는 걸로 되어 있지만, 그걸 바깥에서 듣는 사람은 많다. 이 책을 보는 사람 말이다. 책을 보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보다 이야기를 듣는 오치카 처지일 때가 많겠다.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다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사람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니. 듣고 버리고 말하고 버리는 흑백방 괜찮구나.

 

 세상에는 죽은 사람을 되살려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런 이야기도 많지 않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프랑켄슈타인》이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도 생각난다. 어떤 이야기에서든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다고 한다. 여기 실린 <미망의 여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혼이 돌아오기는 해도 살았을 때와는 달랐다. 죽음이 슬프고 마음 아픈 것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 해도 그 사람은 예전과 다른 거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면 되살리기보다 자기 마음에 살게 하는 게 낫다. 그것 또한 살았을 때와는 다르겠지만, 죽었다 되살아난 사람은 자신을 왜 이 세상에 돌아오게 했느냐고 원망하기도 한다. 그것도 산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일지라도 아주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잠든 사람을 다시 깨운 것일 테니 말이다. 아니면 저세상에서 나름대로 살았는데 억지로 이 세상에 돌아와야 해서일지도.

 

 두번째 이야기 <식객 히다루가미>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쓸쓸하다. 오랫동안 함께 한 요괴 같은 게 자신을 떠나면 쓸쓸하겠지. 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했다. 히다루가미는 산길 들길에서 쓰러져 죽은 영혼이나 요괴를 말한다. 히다루가미가 산을 넘어가는 사람한테 씌이면 음식을 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도시락집 다루마야는 음식이 맛있는데 여름에는 쉬었다. 장사가 잘된다고 일을 많이 해도 안 좋을 듯하다. 지금 다루마야가 된 건 다루마야 주인인 후사고로가 고향에 다녀오다 히다루가미한테 씌이고 히다루가미를 먹이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 가게를 하게 돼서다. 장사가 잘된 건 히다루가미 덕분이구나. 히다루가미는 후사고로한테 오래 붙어 살았다. 히다루가미를 잘 먹게 해서 살이 쪄서 후사고로는 여름에는 장사를 쉬기로 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재미있다. 난 장사가 잘된다고 가게를 늘리고 여기저기에 분점 내는 것보다 쉬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사람한테는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장사하는 사람도 사람이다. 한국에도 아주 없지 않겠지만 일본에는 한정된 시간에만 장사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하면 음식이 남지 않아서 좋겠다.

 

 마지막 이야기 <오쿠라 님>에는 새로운 사람이 나온다. 미시마야 둘째 아들 도미지로가 다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오카쓰는 세책 장수 효탄코도 아들(작은 나리) 간이치를 보고 오치카와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걸 복선이라 하겠지. 오치카가 조금 마음에 들어한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 자리를 물려받고 친구 아내와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게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도미지로는 몸이 아프다면서 자신도 오카쓰와 같은 곳에서 흑백방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이건 앞으로 일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할까. 오쿠라 님은 향가게 비센야에서 모시는 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센야가 없다. 오치카 앞에 나타나 오쿠라 님 이야기를 한 오우메는 실제 있는 사람인지 오치카와 도미지로 그리고 간이치가 찾으려 한다. 오우메를 본 건 오치카뿐이었다. 집안을 지켜준다고 해서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쿠라 님은 심술을 부린 신일지도. 처음 오쿠라 님이 된 사람은 비센야 주인이 거둬준 오갈 데 없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비센야 예쁜 딸과 비교 당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닌데. 그 뒤로 오쿠라 님은 비센야 딸이 물려받아야 했다. 이건 저주에 가까운 게 아닌가. 일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오치카는 곳간에 갇힌 오쿠라 님이나 언니가 오쿠라 님이 되고 나이를 먹지 않기로 한 오우메와 다르게 살겠다고 한다. 오우메가 오치카를 만나러 와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지도. 사람은 마음 아프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고 거기에 붙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자신을 가두지 않고. 오쿠라 님이나 오우메는 자신이 자신을 가둔 것이기도 했다. 오치카는 흑백방을 나갈지도. 그렇다고 흑백방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있으니.

 

 

 

희선

 

 

 

 

☆―

 

 사람은 이야기한다. 이야기할 수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즐거운 일도. 옳은 일도 잘못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한테 들려준 일은, 한사람 한사람의 덧없는 목숨을 넘어 이 세상에 남는다.  (<오쿠라 님>에서, 636쪽~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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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4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도 일종의 말하기일 겁니다.
무슨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남에게 알리고 싶은 충동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거의 본능 같아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에 간 적 있는데 브레이크 타임, 이라고 해서 영업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종업원들을 봤어요. 좋은 현상 같아요.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손님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지만 감수해야죠. 이 사회가 점점 나아지는 모습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좋지 않습니까.

긴 글, 잘 보고 갑니다.

희선 2019-11-16 02:12   좋아요 0 | URL
저는 말은 잘 못하지만 이렇게 쓰기는 합니다 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글로라도 말하려는 건 저도 말이 하고 싶은거겠지요 쓰는 건 더 잘하고 싶기도 하니 이런 생각은 그렇게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별거 아닌 말이면 어떤가 싶기도 한데...

한국에도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중간에 쉬기도 하는군요 잠시 쉬었다 일하면 더 일을 잘하지 않을까 싶어요 차례로 쉬기보다 모두 한꺼번에 쉬었다 일하는 게 더 좋죠 손님은 그런 걸 안 좋게 여기겠지만, 일하는 사람 기분이 좋으면 손님 기분도 좋을 듯합니다

어느새 주말입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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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에서 만든 젊은작가상이 벌써 열번째를 맞았어. 난 여섯번째부터 봤는데 다섯번째에 상 받은 소설을 보니 한편 빼고 다 봤더군. 그렇다는 건 내가 그동안 한국소설을 조금 봤다는 게 되겠지. 시와 마찬가지로 한국소설 한동안 안 보다가 다시 보게 됐는데(이 말 전에도 했군), 여전히 잘 모르겠어. 시도 잘 모르겠고. 잘 모르겠다는 말 안 써야지 했는데 또 썼군. 실험하는 소설을 빼고는 어떤 이야긴지 대충 알기는 해.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는 건 소설가가 하려는 말이야. 소설가가 하려는 말을 잘 짚어내면 좋겠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괜찮을 거야. 소설을 볼 때는 ‘뭐지’ 해도 이렇게 쓰면서 소설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기도 해. 읽으면서 조금 생각하고 쓰면서 조금 생각하는 거 괜찮겠지. 잘 하지 못해도 내가 책을 읽고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낫다고 믿고 싶은가 봐.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조금 바뀌면 소설도 달라지겠지. 바뀌지 않는 건 ‘사랑’일까. 사랑은 언제나 사람한테 중요한 주제지.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여기 실린 소설을 보다보니 끝나버린 사랑을 말하는구나 싶기도 했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러 편이 그랬어. 여자와 남자 사이뿐 아니라 남자와 남자, 친구, 두 사람과 한 사람, 부모와 자식. 예전과 다르게 이젠 소설에 동성애가 나오기도 해. 아니 예전에도 있었을까. 예전에는 바로 드러내지 않았을 것 같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니 동성을 좋아한다고 그걸 잘못이라 말할 수는 없지. 자신이 그렇다는 걸 안 사람도 자신한테 문제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할 거야.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니 말이야.

 

 이번에 대상을 받은 박상영 소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는 동성애를 다뤘어. 김봉곤 소설 <데이 포 나이트>에서도. 이런 것을 먼저 말하다니. 꼭 그것만 말한 건 아닌데. 박상영 소설에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쳤다고 여긴 엄마도 나와. 이건 ‘나’가 고등학생일 때 그랬어. ‘나’는 자신보다 열두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게 됐는데, 그 사람은 운동권 마지막 세대로 자기 자신이 동생애자인 데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어. 내가 볼 때는 그랬는데. ‘나’와 형은 서로가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를 그저 선배와 후배로 소개해. 남한테 그렇게 말한다 해도 두 사람 마음이 괜찮다면 낫겠지만 형은 좀 달랐어. 그리고 둘은 헤어져. 첫번째 소설을 보면서 소설을 쓰는 건 상처받았다고 여기는 쪽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어. 이 소설만 그런 건 아니기도 해.

 

 동성애가 나오기는 해도 김봉곤 소설은 또 달라.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일이었어. 사랑이 아닌데 사랑이다 믿었다고 할까. 이런 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낮을 밤으로 바꾸는 영화 기법 ‘데이 포 나이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 밝은 곳에서 보면 폭력인데 어두운 곳에서 보면 사랑 같은. 어둠은 모든 걸 제대로 못 보게 하기도 하지. 다행한 일은 그건 지나간 일이라는 거야. 그렇다 해도 어느 날 그걸 생각할 수도 있겠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나’는 엄마나 자신이 좋아한 형한테 사과받고 싶다고 해. 어쩐지 그건 어려울 듯해. 엄마한테 남은 삶이 얼마 안 된다 해도. 기독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기도 해. 정말 종교에서는 동성애를 죄라고 여길까. 모든 종교가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군. 오래전 고대 그리스에도 동성애가 있었다던데. 동성애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고 본래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

 

 두번째 소설 <공의 기원>(김희선)은 역사와 거짓을 섞은 듯해. 한때는 아이한테도 일을 시키기도 했는데 이제는 값싼 일손이 아닌 기계가 일을 대신하는 모습이 보여. 공 이야기도 나와. 공을 만드는 이야기랄까. 영국 사람과 조선 사람. 얼마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소설 보다 : 겨울 2018》을 보다가 여기 실린 소설 다른 데는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젊은작가상 받은 소설에 백수린이 쓴 <시간의 궤적>이 있지 뭐야. 예전에는 젊은작가상에서 본 소설을 한 작가 소설집에서 만났는데. 언젠가 이 소설이 들어간 백수린 소설집을 만나게 될지. 서른이 넘고 서른 중반이었던 ‘나’와 언니는 새로운 삶을 찾아 프랑스로 갔어. 같은 어학원에서 두 사람은 만나고 친해졌는데, ‘나’는 프랑스 사람과 결혼하고 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이가 멀어져. 친했는데 그렇게 멀어지기도 하는군. 한 사람은 프랑스에 남고 한 사람은 한국으로 떠난다 해도 사이를 이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자신이 실패했다 여긴 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이주란 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에서 ‘나’가 말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건 어떤 건지. 바쁘게 일만 하고 살았는데 그러지 않겠다는 건가. ‘나’는 서울에 살다가 고향 엄마 집으로 돌아와. ‘나’는 뭐든 천천히 열심히 한다고 해. 난 이 말 보면서 천천히 하는 건 괜찮지만 ‘열심히’는 빼도 되지 않을까 했어. ‘나’가 예전에는 바쁘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 ‘나’가 말하는 천천히 열심히는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별거 아닌 일도 집중하겠다는 것일지도. 정영수 소설 <우리들>은 제목처럼 우리들 이야기야. 한 사람이 한번에 두 사람을 좋아하는. 그러면서 ‘나’는 예전에 헤어진 연경 이야기를 쓰려고 해. 헤어졌다기보다 ‘나’가 그렇게 만들었군. 연경한테는 ‘나’가 잘못한 듯한 느낌이 드는데, 서로 가정이 있는 두 사람 정은과 현수는 ‘나’를 떠난 듯해. ‘나’만 남은 건가. 정은과 현수 사이는 언젠가 그렇게 됐겠지. ‘나’가 두 사람 사이를 받아들인다 해도.

 

 앞에서 동성애자인 아들을 엄마가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했잖아. 이미상 소설 <하긴>에서도 부모(아빠가 더)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김보미나래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보미나래가 어떤 아이인지 잘 모르겠어. 아빠인 ‘나’는 보미나래가 공부를 잘 못하고 지능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지능이 높으면 공부를 잘하기는 하겠지만, 지능과 공부가 비례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난 ‘나’가 보미나래가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닌 다른 걸 본다면 좋을 텐데 했어. ‘나’는 다른 사람 아이를 부러워 해. 공부 잘하고 부모한테 반항하는. ‘나’는 아이를 자기 뜻대로 기르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면서 보미나래를 대학에 넣으려고 미국에 보내기도 해. 부모가 되면 그렇게 자식한테 기대할까. 자식은 늘 부모 뜻대로 되지 않아. 보미나래도 그랬어. 보미나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기도 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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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올 이를 그리워하는 밤의 달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미치오 슈스케 지음, 손지상 옮김 / 들녘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어쩌다 지금 여기 있게 됐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런저런 일이 얽히고 설켜서 그렇게 됐을 거다. 거기에 좋은 일만 있었을지 안 좋은 일도 있었을지. 사람은 아주 작은 일 때문에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누군가는 살기도 누군가는 죽기도.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게 꼭 정해졌던 건 아니겠지만. 어떤 일 때문에 좋으면 그걸 좋게 여길 수도 있고 안 좋으면 안 좋게 여길 수도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 뿌리를 찾으려면 끝이 없을 거다. 그건 우주가 생기고 빅뱅이 일어나고 지구가 생기고 지구에 생물이 생겨서다. 이런 생각 좀 심한가. 우주가 지구가 없었다면 인류도 없었을 거다. 그건 아무것도 없는 거겠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평생 알 수 없겠다.

 

 몇해 전에는 미치오 슈스케 소설이 자주 나온 것도 같은데 몇해 동안 나오지 않았다. 한국말로. 미치오 슈스케는 여전히 소설을 썼겠지. 왜 한국에 나오지 않았는지 사정은 모르겠지만, 비슷한 때 미치오 슈스케 소설이 여러 권 나왔다. 이건 그것 가운데 한권이다. 본래 제목은 ‘후진노테風神の手’로 한국말로 하면 바람신의 손이다. 한국에서는 맨 마지막 남은 이야기 제목을 책 제목으로 썼다. 미치오 슈스케는 바람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그 바람이 왜 일어났는지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좀 어렵겠지. 바람은 막을 수 없다. 자연재해처럼.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도 우주가 있고 지구가 돌아서겠지. 지구는 살아 있다. 세상에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난다. 먼저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을 때가 더 많지 않나 싶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 말이다.

 

 안 좋은 일이 모두한테 안 좋은 일이 아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시골마을 가미아게초와 시모아게초에 흐르는 니시토리강에서 사고가 일어나 기슭막 공사를 하게 되고 건설회사는 좋았다. 처음 공사를 하던 나카에마 건설은 다른 안 좋은 일 때문에 망하지만. 망해서 안 좋은 듯해도 나카에마 식구는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일을 하고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 그곳을 떠나 아유미가 태어났다. 아유미는 외할아버지와 엄마가 고향을 떠나서 자신이 태어났다고 여긴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아유미가 세상에 왔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유미 엄마가 죽 고향에 있었다면 아유미 아빠가 왔을지도 모른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했구나.

 

 이 책을 보니 사람은 알게 모르게 이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한 일이 누군가한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 그게 좋은 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안 좋은 일로 이어지기도 하겠지. 자신이 겪은 일과 안 좋은 일을 한 사람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갑자기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이런저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거짓말을 생각하게도 한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그 거짓말이 들키지 않게 하려고 한 나쁜 짓. 그것과 다른 일이 맞물렸구나. 그 일 때문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을 이어준 곳도 있다. 영정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관이다. 거기 주인 사사키하라도 어렸을 때 별난 일을 겪었구나. 그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 사진관 안 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한사람은 본래 가진 꿈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지금 아쉽게 여기지는 않았다. 다른 걸 얻었으니 말이다. 한사람은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렸다. 죽기 전에 옛날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를 사람한테.

 

 여기에는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 지금을 있게 한 이야기가 담겼다. 이야기여서 꿰어맞춘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쿠이 도쿠로는 《난반사》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거나 자신만 생각한 일이 한 아이를 죽게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 죽고 일어난 일이니. 이 이야기는 희망을 준다. 오염이 심해지던 강을 살리기도 하고 예전에 나쁜 짓하던 사람이 마을을 살리려고도 하고 자신이 태어난 걸 기쁘게 여기기도 한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생각도 하게 하는구나. 자신이 한 일이 어떻게 퍼져나갈지 알 수 없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하는 말

 

 책을 읽다가 어쩌다 틀린 글자가 나오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여기에는 좀 많이 나왔다. 책을 내기 전에 제대로 읽지도 않았나 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나카에마 건설은 처음 몇번만 이렇게 쓰고 다음부터는 다 나카마에라 했다. 한번은 나카야마로 나온다. 미치오 슈스케가 어떻게 썼는지 알아보려고 일본 아마존이나 일본 사람 블로그를 찾아봤다. 나카마에가 아닌 나카에마(中江前)가 맞았다. 그나마 이걸 쓴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거의 성은 빼고 나쓰미라고 이름만 써서 찾는 데 시간 걸렸다. ‘는’을 써야 하는데 ‘은’을 쓴 데도 많다. 어떤 이름(성)이 맞는지 생각하느라 집중 못했는데 잘못 쓰인 글자도 많아서 읽기에 안 좋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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