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1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시간은 잘 간다. 봄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갔다. 이건 ‘소설 보다’ 이야기와도 같구나. 2021년에 나온 소설 보다에서 봄 여름 가을까지 만났다. 다음 겨울을 만나면 사철을 다 만나는구나. 그때도 겨울이 다 가고 볼지도 모르겠지만. 2021년 가을에 나온 이 책 《소설 보다 가을 2021》도 가을 다 가고 만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말이 있다 해도 꼭 그때 안 봐도 괜찮다. 소설 속 철과 현실 철이 같아도 괜찮지만 거의 다르다. 여름에 겨울이 배경인 소설을 본다거나 겨울에 여름이 배경인 소설을 보기도 하잖는가. 잊어버렸는데 소설 보다가 처음 나왔을 때는 소설이 네편 담겼다. 한해쯤 지나고 세편이 됐던가. 단편소설 세편 적지만 적지 않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사흘씩이나 봤으니 말이다. 내가 게을러서 그랬구나.

 

 언제부턴가 사고 싶은 게 있었다. 그게 뭐냐 하면 영어사전이다. 내가 처음으로 산 영어사전은 이제 없어서. 영어 공부도 안 할 거면서 그걸 갖고 싶어했다. 큰마음먹고 2021년에 영어사전 샀다. 사기만 하고 안 봤다. 영어사전 샀으니 모르는 건 찾아봐야 하는데 게을러서 안 찾아봤다. 이 책 ‘소설 보다 가을 2021’을 보고 영어사전에서 낱말을 찾아봤다. 첫번째 소설 <시트론 호러>(구소현)에서 시트론(citron)이다. 그런 것도 모르나 할지도. 시트론은 레몬 같은 것, 담황색이었다. 소설 안에도 ‘시트론 커스터드크림 필링’이라는 말이 나온다. 왜 제목을 시트론 호러라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첫번째 소설에는 유령이 나온다. 그것도 지금 죽은 사람이 아니고 한 열해쯤 전 죽은 사람이다. 공선은 죽고 열해차 유령이었다. 공선이 하는 건 다른 사람이 책을 보면 그걸 같이 봤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책 보고 싶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공선은 살았을 때는 책을 안 봤다. 유령이 되고 시간이 많아서 책을 보게 됐다. 공선은 굶어 죽었나 보다. 어쩌다가 그랬을지. 이야기만으로 나오는 효주도 가난했다. 효주는 공선이 두번째로 책을 함께 본 사람이다. 효주는 빈곤층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원금을 받았는데, 잘못돼서 지원금을 정부에 돌려주어야 했다. 이런 학생 실제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돈을 빌려주어서 효주는 지원금을 돌려주었지만, 다른 빚이 생겼다. 그런 것 때문에 효주는 학교에 오지 않았을지. 공선은 유령이어서 다른 사람한테 안 보이고 손이 닿지 않지만 가끔 닿고 싶어한다. 효주는 보이고 살았지만 유령과 비슷했을지.

 

 권혜영이 쓴 소설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를 보니 막막한 느낌과 이제 힘들게 살지 않아도 돼서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에 화재 경보 소리가 나서 깨어났다. 아파트에 불이 난 것 같지 않았지만 ‘나’는 집 밖으로 나간다. 이때 ‘나’는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난 이상했는데. ‘나’가 비상계단으로 나가자 문이 닫혔다. ‘나’는 거기에서 계단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나’가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도 1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하고 잠을 잔다. 그동안 ‘나’는 잠을 잘 못 잤다. ‘나’는 자신이 누군가의 꿈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기도 했다. 소설 제목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는 ‘나’가 신용 카드로 적은 글귀다. 비상계단으로 나왔더니 이상한 곳에 갇히다니.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서 좋겠지만, 하고 싶은 것도 못해서 안 좋겠다. ‘나’는 일을 해도 빚이 쌓이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 소설 <위해>는 이주란 소설이다. ‘위해’가 누군가를 위한다는 뜻도 있지만, 해를 끼친다는 뜻도 생각하고 썼나 보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은 널 해치려고 하는 말과 같기도 하구나. 수현은 할머니한테 넌 조용히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 할머니는 수현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일은 뚜렷하게 나오지 않지만, 수현 부모 때문이 아닐까 짐작만 했다. 지금 생각하니 나도 조용히 살아야지 생각했구나. 내가 뭔가를 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누군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생각한 거여서 다행일지도. 수현은 자신과 비슷한 아이 유리를 만나고 유리한테 마음을 쓴다. 유리한테는 수현이 있어서 좀 낫겠지. 두 사람이 오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해도. 수현은 수현 나름대로 괜찮았다. 나도 나 나름대로 괜찮다. 난 행복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별 일 없이 조용히 살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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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14 06: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의 제목인 가을과는 다르게 단편들이 다 으스스한 내용이네요. <당신이 기대한건 여기에 없다> 가 재미있을거 같아요~!!

희선 2022-06-16 02:39   좋아요 3 | URL
으스스해서 가을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군요 겨울이 가까워지는 늦가을... 2022년 봄 나왔어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14 07: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종이로 된 영어사전 저도 사놓고 들춰보지를 않네요^^; 요즘 워낙 온라인 영어사전이 잘 되어있어서 말이죠. 여름에 읽는 가을 소설들이라~ 내용들이 현실적이어서 더 서늘한 느낌입니다.

희선 2022-06-16 02:42   좋아요 3 | URL
보기 편한 걸 샀으면 나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전이 좀 커요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색깔로 사전을 사다니... 지금까지는 잘 안 봤지만 앞으로 가끔 봐야겠어요 현실은 서늘하네요 그래도 살아야겠지요


희선

yamoo 2022-06-14 07: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어사전...없어진지 오래고, 도대체 어디 쳐박혀 있는지 알수도 없어요. 저도 영서 사전은 종류별로 몇 권 있었는데 편리한 전자사전과 스마트폰에 내장된 사전으로 두꺼운 사전을 볼 필요가 없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고, 사전이 언제부터 시야에 사라졌는지도 모릅니다. 희선님 덕분에 사전이 어디 있는지 좀 찾아봐야 겠어요.

그나저나 책 표지가 미니멀합니다. 단순하면서도 심미적이네요~

희선 2022-06-16 02:44   좋아요 2 | URL
종류별로 사전이 있으시군요 지금은 종이 사전보다 전자사전이나 인터넷 사전을 보기도 하네요 저는 컴퓨터 쓸 때 봅니다 자주 찾지도 않지만... 어디선가 보니 종이 사전을 잘 만들어야 인터넷 사전도 좋아진다고 하던데... 사전 새로 만드는 출판사 있을지 모르겠군요 사전 만들기는 좀 오랜 시간이 걸리더군요 갑자기 사전 만들기를 말하다니...

책도 작아요 단편 소설 세편 담겨서... 가벼워서 좋다고 하지만 내용은 별로 가볍지 않네요


희선

mini74 2022-06-14 2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상계단 이야기 넘 무서워요. 저는 롱맨 사전 아직 갖고있습니다 *^^*

희선 2022-06-16 02:47   좋아요 2 | URL
비상계단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집이 아주 다른 곳은 아니었을지... 비상계단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그 안에서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자기 목소리를 다시 듣기도 하는 것 같더군요 처음 산 사전 갖고 있으시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2-06-14 2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왠지 다들 좀 쓸쓸하고 으스스하고.... 가을이라서 그런걸까요? 햇빛좋은 가을도 있는데 왜 스산한 늦가을 얘기들만 담았을까하고 궁금해해봅니다. ㅎㅎ 새로 나오는 한국문학을 꾸준히 보는 희선님덕분에 한국문학이 발전합니다. 저도 배워야 하는데 참 잘 안되네요. ㅠ.ㅠ

희선 2022-06-16 02:49   좋아요 2 | URL
마지막 소설은 그래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니 좀 나아요 잘 모르면서 보기도 합니다 여전히 한국 단편소설은 어렵기도 합니다 자꾸 보면 좀 알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봅니다 이 책은 비싸지 않기도 하네요


희선

파이버 2022-06-15 1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트론 호러] 제목에 왜 시트론이 들어가는지 이해를 못했었던 기억이 있네요ㅎㅎ 이 책 소설 셋 다 현실이 너무 팍팍하게 묘사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희선 2022-06-16 02:52   좋아요 2 | URL
우울하고 팍팍한 현실이어도 모르는 척하지 않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사람이라도 잘 살면 좋을 텐데... 어두워 보여도 아주 안 좋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이런 말을 하다니...


희선

서니데이 2022-06-16 0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집에 여러가지 사전이 있었지만, 전자사전을 쓰면서 정리했던 것 같아요.
버리긴 아쉬웠는데, 그래도 그렇게 쓸 일 없다고 해서요.
요즘엔 전자사전도 쓰지 않고, 인터넷 검색을 하지만,
그래도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편한 것들도 있을거예요.
실물 사전을 쓰는 것이 편한 직업도 있을 것 같고요.
희선님, 좋은 밤 되세요.^^

희선 2022-06-16 02:56   좋아요 3 | URL
국어사전은 어쩌다 보지만 처음 샀던 거 아직 갖고 있어요 영어사전은 없어서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네요 사전을 가끔 본다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그러지 않는군요 앞으로는 봐야지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하지 않고 정말 그래야 할 텐데... 어쩐지 사전은 버리고 싶지 않기도 한 거군요 책도 잘 버리지 않지만... 오래 안 보는 건 버리기도 해야 할 텐데...

서니데이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6-16 2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행복한 순간이 많으시길요!~♡

희선 2022-06-16 23:47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 님 고맙습니다 그런 때는 자신이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mini74 2022-07-08 17: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 축하드려요 *^^*

희선 2022-07-09 01:39   좋아요 3 | URL
미니 님 고맙습니다 미니 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08 17: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이달의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희선 2022-07-09 01:40   좋아요 3 | URL
거리의화가 님 고맙습니다 어느새 주말입니다 주말에 덥다고 하니 더위 조심하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7-08 18: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축하드려요~~~

희선 2022-07-09 01:40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 님 고맙습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2-07-08 18: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당선 경축드립니다~!!

희선 2022-07-09 01:41   좋아요 4 | URL
새파랑 님 고맙습니다 이번주 빨리도 가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2-07-11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나온 한국 소설집이네요.
다가오는 우리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요.
희선님, 축하드려요**

희선 2022-07-11 23:09   좋아요 1 | URL
지난해에 나온 건데, 늦게 봤네요 2022년에도 늦게 보겠습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이어도 가을이 온다는 걸 알아서 견디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름 아주 싫어하지는 않지만, 습기는 좀... 페넬로페 님 고맙습니다


희선

scott 2022-07-11 0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이달의 당선 축하 합니다
역쉬! 소설 보다
희선님 리뷰 ^ㅅ^

희선 2022-07-11 23:10   좋아요 1 | URL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참 부끄럽네요 이게, 하는 생각을 잠깐 해서... scott 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희선

thkang1001 2022-07-11 0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세요!

희선 2022-07-11 23:11   좋아요 1 | URL
thkang1001 님 고맙습니다 칠월 삼분의 일이 넘게 가는군요 남은 칠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thkang1001 2022-07-12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