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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ㅣ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614/pimg_7987151333445496.png)
시간은 잘 간다. 봄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갔다. 이건 ‘소설 보다’ 이야기와도 같구나. 2021년에 나온 소설 보다에서 봄 여름 가을까지 만났다. 다음 겨울을 만나면 사철을 다 만나는구나. 그때도 겨울이 다 가고 볼지도 모르겠지만. 2021년 가을에 나온 이 책 《소설 보다 가을 2021》도 가을 다 가고 만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말이 있다 해도 꼭 그때 안 봐도 괜찮다. 소설 속 철과 현실 철이 같아도 괜찮지만 거의 다르다. 여름에 겨울이 배경인 소설을 본다거나 겨울에 여름이 배경인 소설을 보기도 하잖는가. 잊어버렸는데 소설 보다가 처음 나왔을 때는 소설이 네편 담겼다. 한해쯤 지나고 세편이 됐던가. 단편소설 세편 적지만 적지 않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사흘씩이나 봤으니 말이다. 내가 게을러서 그랬구나.
언제부턴가 사고 싶은 게 있었다. 그게 뭐냐 하면 영어사전이다. 내가 처음으로 산 영어사전은 이제 없어서. 영어 공부도 안 할 거면서 그걸 갖고 싶어했다. 큰마음먹고 2021년에 영어사전 샀다. 사기만 하고 안 봤다. 영어사전 샀으니 모르는 건 찾아봐야 하는데 게을러서 안 찾아봤다. 이 책 ‘소설 보다 가을 2021’을 보고 영어사전에서 낱말을 찾아봤다. 첫번째 소설 <시트론 호러>(구소현)에서 시트론(citron)이다. 그런 것도 모르나 할지도. 시트론은 레몬 같은 것, 담황색이었다. 소설 안에도 ‘시트론 커스터드크림 필링’이라는 말이 나온다. 왜 제목을 시트론 호러라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첫번째 소설에는 유령이 나온다. 그것도 지금 죽은 사람이 아니고 한 열해쯤 전 죽은 사람이다. 공선은 죽고 열해차 유령이었다. 공선이 하는 건 다른 사람이 책을 보면 그걸 같이 봤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책 보고 싶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공선은 살았을 때는 책을 안 봤다. 유령이 되고 시간이 많아서 책을 보게 됐다. 공선은 굶어 죽었나 보다. 어쩌다가 그랬을지. 이야기만으로 나오는 효주도 가난했다. 효주는 공선이 두번째로 책을 함께 본 사람이다. 효주는 빈곤층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원금을 받았는데, 잘못돼서 지원금을 정부에 돌려주어야 했다. 이런 학생 실제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돈을 빌려주어서 효주는 지원금을 돌려주었지만, 다른 빚이 생겼다. 그런 것 때문에 효주는 학교에 오지 않았을지. 공선은 유령이어서 다른 사람한테 안 보이고 손이 닿지 않지만 가끔 닿고 싶어한다. 효주는 보이고 살았지만 유령과 비슷했을지.
권혜영이 쓴 소설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를 보니 막막한 느낌과 이제 힘들게 살지 않아도 돼서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에 화재 경보 소리가 나서 깨어났다. 아파트에 불이 난 것 같지 않았지만 ‘나’는 집 밖으로 나간다. 이때 ‘나’는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난 이상했는데. ‘나’가 비상계단으로 나가자 문이 닫혔다. ‘나’는 거기에서 계단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나’가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도 1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하고 잠을 잔다. 그동안 ‘나’는 잠을 잘 못 잤다. ‘나’는 자신이 누군가의 꿈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기도 했다. 소설 제목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는 ‘나’가 신용 카드로 적은 글귀다. 비상계단으로 나왔더니 이상한 곳에 갇히다니.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서 좋겠지만, 하고 싶은 것도 못해서 안 좋겠다. ‘나’는 일을 해도 빚이 쌓이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 소설 <위해>는 이주란 소설이다. ‘위해’가 누군가를 위한다는 뜻도 있지만, 해를 끼친다는 뜻도 생각하고 썼나 보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은 널 해치려고 하는 말과 같기도 하구나. 수현은 할머니한테 넌 조용히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 할머니는 수현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일은 뚜렷하게 나오지 않지만, 수현 부모 때문이 아닐까 짐작만 했다. 지금 생각하니 나도 조용히 살아야지 생각했구나. 내가 뭔가를 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누군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생각한 거여서 다행일지도. 수현은 자신과 비슷한 아이 유리를 만나고 유리한테 마음을 쓴다. 유리한테는 수현이 있어서 좀 낫겠지. 두 사람이 오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해도. 수현은 수현 나름대로 괜찮았다. 나도 나 나름대로 괜찮다. 난 행복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별 일 없이 조용히 살고 싶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