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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ㅣ 문학동네 시인선 209
박연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시인은 자기 이야기를 시로 쓸 때가 많겠지. 자기 이야기가 아닌 시는 쓰지 않을까. 그건 아닐 거다. 살다가 만난 걸 쓰기도 하고 뭔가 떠올라서 쓰기도 하겠지. 난 내 이야기는 잘 안 쓰지만, 아주 안 쓰는 건 아니구나. 쓰려고 해도 쓸 게 없어서 못 쓴다. 개인의 일이 모두의 일인 거 많기는 하다. 그런 걸 잘 보고 놓치지 않으면 좋겠지만, 난 그런 거 잘 못한다. 책을 읽고 쓰는 것도 다르지 않다. 책을 보면 자기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이런저런 일 많은 사람 부럽구나. 난 쓰지 못하고 쓰고 싶지 않은 일만 일어나는데.
박연준 시인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만났다. 앞에서 시인한테 일어난 일을 시로 쓰겠지 했는데, 이 시집을 봐도 여기 담긴 게 박연준 시인한테 일어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아주 조금만 알겠다. 언젠가 박연준 시인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자신은 있는 그대로 시를 쓴다고 했는데. 있는 그대로여도 시 말로 쓰는 거겠다. 내가 그렇게 쓰지 않아서 시집을 봐도 잘 모르겠다. 잘 몰라도 시집을 만나기는 한다. 시를 안 보는 것보다 보는 게 낫겠지 하면서. 글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낫겠지 하고 쓰는구나.
이제 누구도 혼자 있는 법을 알지 못한다
혼자와 숟가락,
혼자와 클릭,
혼자와 드래그,
혼자와 사이버,
혼자와 디지털,
혼자와 세계는 결혼한다
혼자는 글로벌이다
혼자는 배고프지 않고
배부른 세계를 본다
혼자는 울지 않고
우는 세계를 본다
혼자는 잠들지 않고
잠든 세계를 본다
혼자는 세계를 지향하고 세계는 혼자를 지양한다
혼자는
누구도 낳지 않는다
혼자는
-<혼자와 세계>, 64쪽
앞에 옮겨쓴 시 <혼자와 세계>는 지금 세상을 잘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혼자면서 세계와 이어져 있기도 하구나. 그러면서 난 좀 다른데 하기도 한다. 난 정말 혼자인데 하는. 나도 컴퓨터를 쓰니 많은 사람과 다르지 않겠다. 그저 휴대전화기가 없는 것뿐이구나. 언젠가는 나도 써야 할지. 안 쓰면 안 될까. 안 써도 된다면 쓰고 싶지 않다. 어차피 연락할 사람도 없다.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죽는 법을 자꾸 잊는다
무덤 속에서도 자꾸 살아난다
사는 일이 큰 이득이란 듯,
살고
살아나면
살아버린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
산문이 있었다
그걸 쓰느라 죽을 시간이 없었다!
-<시인하다>, 125쪽
시 제목 ‘시인하다’는 뭔가 한 걸 인정한다는 뜻일지, 시를 쓰는 사람을 나타내는 시인을 한다일지. 두 가지 다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말 뜻을 하나만 생각하지 않겠다. 시인만 그런 건 아닌가. ‘죽었다’는 말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까. 서른에서 마흔 사이에는 산문을 쓰느라 그런 생각을 못하게 됐다는 거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마흔 살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니 부럽구나. 무언가 바쁘게 하는 게 있는 건 괜찮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쉴 때는 잘 쉬어야 한다.
산문 쓰고 싶다. 산문뿐 아니라 이야기도. 이런 말을 쓰다니. 그런 말에 ‘쓰고 싶으면 써’ 할지도. 박연준은 시인이다. 시를 쓰고 산문도 쓰고 소설도 썼다. 산문과 소설은 못 봤지만, 썼다는 건 아는구나. 박연준 시인 시집 이번에 처음 만났다. 시집은 처음이지만 산문은 본 적 있다. 시간이 흐르고 다른 글이나 다른 시집 만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언제일지. 여기에는 그림을 보고 쓴 시도 담겼다.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은 건가. 그림을 찾아봐도 괜찮았겠지만, 게을러서 안 찾아봤다. 프리다 칼로 그림은 조금 본 적 있어서 그랬을지도.
사랑이 잠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해도, 사랑은 죽지 않을 거다. 세상이 있는 한.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