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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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국 SF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소설' 이라고 해서 기대도 되고 생각해보니 중국 SF는 처음인 듯 해서 더 긴장하며 읽게 된 듯 하다. 내가 요즘 찾았던 [삼체] 는 부추와 비슷한 채소로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것이라 그런 것일지도? 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삼체' 는 '태양이 세 개가 존재하는' 그런 세계를 '삼체 세계'라 하고 '삼체 문제는 질량이 같거나 비슷한 물제 세 개가 상호 인력의 작용 아래 어떤 운동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전 물리학의 중요 문제이고,천체 운동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어 16세기 이후 계속 관심을 받았다. 오일러,라그랑주 및 근대 이후 학자들이 삼체 문제에 관한 특수해를 찾아냈다.' 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삼체 문제' 각주를 옮겨 보았는데 이 소설은 과학이 등장하여 과학자와 이론도 많이 등장을 한다.

 

소설에서 '삼체' 는 '삼체 세계'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삼체'라는 컴퓨터 게임에 들어가 중국역사와 과학이 접목이 된 게임 속에서 희귀한 체험을 하며 레벨업을 해 나가는 상황이 펼쳐진다. 왕먀오 박사가 '삼체'라는 게임에 로그인을 하게 된 것은 '과학 경계' 회원들이 자살이나 그외 계속적으로 죽음으로 치닫는 일들이 발생하고 얼마전 그도 보았던 '양둥'이라는 과학자가 자살을 하게 되면서 그도 이 사건에 어쩔 수 없이 끼어 들게 되고 양둥과 함께 어울렸던 인물을 만났다가 그 자리에서 '삼체'라는 게임을 알게 되고 자신도 그 게임을 체험하며 중국과거역사와 과학이 접목된 희한한 세계에 빠져 들게 되면서 고난도에서 살아 남아 과학 경계 회원들,삼체 회원들과 만나게 된다. 한편 양둥의 남편은 양둥의 엄마 예원제를 만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녀는 중국 문화 대혁명 당시에 자신의 눈 앞에서 잔인하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편에 어머니도 앞장섰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은 그녀가 '홍안' 이라는 기지에서 일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사이에 양둥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홍안이라 곳은 무엇을 했던 기지일까?

 

"우선, 삼체인의 탈수 기능은 진짜입니다.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은 언제든 자기 몸 체내의 수분을 완전히 배출해 마른 상태로 변함으로써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열악한 기후를 피합니다."

 

우리의 역사에도 해가 두 개가 나타나 역사가 바뀌는 이야기를 들었다.개기일식인가를 놓고 두 개의 해로 보았던 조상들은 그것을 '불운'으로 풀이를 했다. 좋은 일보다 나라안팍으로 나쁜 일들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왕이 곧 해, 나라에 해는 하나여야 했는데 두 개가 되니 불운일 수 밖에.그렇다면 태양이 세 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삼체라는 게임에서는 항세기와 난세기 항세기가 이어진다고 보았다. ' 태양 운행이 불규칙한 것은 우리의 세계에 태양이 세 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호 인력 작용 아래 예측할 수 없는 삼체 운동을 합니다. 우리의 행성이 그중 한개의 태양을 따라 안정적으로 운행할 때가 바로 항세기입니다. 다른 한 개 또는 두개의 태양이 일정한 거리로 들어오면 그 인력 때문에 행성은 기존 운행에서 벗어나 세개 태양의 인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불안정하게 움직입니다. 이때가 난세입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의 행성은 다시 한 개의 태양에 잡혀 잠시 안정적인 궤도를 돕니다. 다시 항세기가 오는 것이죠.' 게임 '삼체' 속에서 항세기와 난세기는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사람들은 그외 맞게 '탈수'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잘못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예원제와 추종자들은 왜 삼체 세계를 접하려 할까?

 

"지금 여루분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게임 삼체는 인류를 배경으로 삼체 세계의 발전사를 시물레이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플레이어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짜 삼체 세게와 게임은 차이가 큽니다. 하지만 세 개의 태양은 진짜입니다. 이것이 삼체 세계의 기본 자연 구조입니다.

 

이것은 예원제의 복수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홍안기지에서 나라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이세상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우주의 생명체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홍안기지에서 우주 생명체에게 그녀의 메세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돌아 온 답은 “경고한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는 순간 그곳의 위치가 파악되어 당신들의 세계는 점령당할 것이다.” 홍안기지가 비밀기지였던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곳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줄 알았는데 그녀의 복수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이어졌던 것이다. 과거 문화 대혁명시대에 있었던 일을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계속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무언가 더 큰 힘을 얻으려고 했던 예원제,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을 잃듯 그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듯 한다.소설에서 '삼체'라는 게임이 보여 주었던 가상의 세계가 더욱 매력적으로 작용을 한 듯 하다. 그 속에서 작가가 표현하려는 SF를 표현해 낸 듯 하다. 그것이 과거역사와 과학이 접목되어 더욱 매력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예원제 그녀의 복수가 더 설득력 있게 표현된 듯 하다.

 

내가 약한 부분은 다른 것도 많지만 '과학'이라 읽기에 힘들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밌게 읽었다. 가상 게임세계인 '삼체'가 재밌게 다가왔다. '탈수' 하면 바닥에 누워 자신의 몸에서 수분을 모두 뽑아내 스펀지와 같은 몸이 되어 돌돌 말아 둘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런 탈수된 자들이 다시금 '입수' 하면 입수하여 다시 몸에 수분을 공급받아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 오는 시대로 가려면 과학이 얼마나 발전해야 할까? 예원제의 복수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그들이 '삼체 세계'를 원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그녀의 복수이기 때문에 중국 문화 대혁명도 등장하고 역사와 과학이 교묘하게 씨실과 날실로 엮이면서 한벌의 옷을 만들어 냈따. 결말은 조금 섭섭하게 마무리 된 듯 해서 아쉬웠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거기에 중국 SF를 맛보았다는 것에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역시나 그들의 역사는 이렇게 맞물려도 재밌다. 공자 맹자 갈릴레이 뉴턴이 함께 등장하는 게임도 재밌을 듯 하다. 처음 맛 본 중국 SF 재밌게 읽었다. 조금 두꺼웠지만 약간은 추리적인 것도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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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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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기야마라는 간수이며 검열관이 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폭력간수로 알려진 그가 누구에 의해서 처참하게 살해 되었는가를 어린간수병인 유이치가 조선인 죄수중에 최치수라는 인물을 지목하면서 일단락 되는 듯 하였다가 스기야마의 기록을 살펴보던 유이치는 그가 확실히 아니라는 무언가 스기야마의 죽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전쟁중이고 이곳은 후쿠오카 형무소며 그는 일개 간수병이다.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말단이기에 '먹잇감'에 불과한 위치이다. 그래도 이 사건에 자꾸만 호기심이 생기는 유이치,정말 스기야마는 소문처럼 폭력간수였을까?

 

모든 활자는 영혼을 가지고 있고 그 영혼은 바이러스처럼 읽는 사람을 감염시킨다. 독서는 치명적인 중독이고 문장의 세례를 받은 자는 평생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책과 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중독자이고 의존자다. 읽지 않을 책을 끼고 다니고, 책을 잡지 않은 손을 공허해하며 오래전에 읽은 구절을 되새김질하듯 중얼거린다. 나는 그런 병증을 겪었고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독은 아마도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죄수들에게 폭력을 늘상 휘두른다고 알고 있던 간수이며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의 행적을 좇다보니 그는 활자중독증에 간서치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한방중에 별을 보며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정말 폭력을 휘둘르고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을까? 소설은 글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 영향에 대하여 전쟁,형무소,죄수 들의 이야기를 통해 펼쳐 나간다.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살아야 했던 스기야마는 배우지를 못했지만 누구보다 글에 대한 냉철함과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어 '검열관'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윤동주라는 감성이 풍부한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시의 마력에 훔뻑 빠져 들기도 하고 윤동주라는 인물을 통해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섭렵하면서 자책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동주를 보호하고 감시하게 된다.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무언가 정말 철저히 잘못되었다.그는 감성 풍부한 시인인데 왜 그가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밖에 나가 그의 울림 가득한 시가 시집으로 나와야 하고 많은 이들이 읽기를 바라지만 그는 갇혀 있어 시작도 맘대로 못하지만 그나마 그의 처녀시는 형무소 담장 밖으로 나가질 못한다. 그저 불쏘시개로 쓰일 뿐이다. 그런 그가 그의 시를 형무소 담장 밖으로 보내기 위한 묘안을 생각해 낸다.연날리기. 교묘하게 연에 그의 시를 써서 담장 밖으로 날려 보내고 그의 연을 소녀에게 꼭 보관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가 하면 간호사 미도리는 스기야마가 조율해준 피아노를 연주하여 죄수들과 합창을 무대를 준비하는데 합창곡은 베르디의 <나부코> 중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곡>이다. 피아노를 누구보다 섬세하게 조율하고 감성 풍부한 시와 문학작품을 몰래 몰래 읽으며 책을 사랑하는 스기야마가 정말 밖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폭력간수일까? 그가 왜 폭력간수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은 풀린다. 소장은 제3수용동 조선인을 생체실험을 한 것이다. 전쟁중이라도 그렇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다니.하지만 그런 인간도 있고 스기야마처럼 휴머니티가 흐르는 간수도 있다. 그가 죄수를 폭력적으로 다룬 것은 생체실험에서 그들을 살려내기 위한 살아남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그렇다면 그를 도대체 누가 죽였단 말인가. 범인으로 지목된 최치수마져 교수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유이치는 자신이 지목한 최치수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범인은 색출하지 못했지만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럼으로 인해 스기야마처럼 윤동주라는 인물을 잘 보호해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자신의 말로도 스기야마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건 살아 있는 거야. 더럽고,참혹하고, 지옥 같은 이세상에 살아남는 거지. 천사처럼 순수하고, 영웅처럼 용감하게 죽기보다는 악마처럼 악하고 야수처럼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해. 악마처럼 간악하게 살아남아야 천사처럼 착하게 죽을 수 있으니까. 살아남아야 더러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안받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1편에서 밝혀졌던 이야기를 2권에서는 왜 그랬는지 반전과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그야말로 스기야마나 유이치와 같은 휴머니티가 그려진다. 전쟁이란 것이 누가 일으키고 누가 피해자인지 그들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살아남는 자로 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간수건 죄수건 모두가 살아 남기 위하여 이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형무소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동주 또한 날마다 출소할 날만을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나가지만 그의 몸속에 침투하기 시작한 식염수는 그를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그가 기억했던 아름다운 문장들을 지워 나간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하늘 별 바람 시' . 아니 잊지 않고 그의 뇌가 마지막까지 간직하는 단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쟁은 그의 청춘과 시를 앗아가고 만다. 스기야마와 동주는 어느 별에서 만나 시를 논하고 있을까. 동주에게서 희망을 얻었던 이들도 동주의 기력이 쇠하면서 형무소는 그야말로 암흑처럼 변해가고 유이치는 후쿠오카 형무소의 잔혹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스기야마부터 윤동주까지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한다.

 

살아 남는자가 아름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남아 남았다는 부끄럽다.

스기야마를 폭력간수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겉모습일뿐 그는 그야말로 속은 부드럽고 누구보다 글을 사랑하고 활자를 사랑한 사람이며 휴머니스트였다. 너무 강직한 휴머니스트였기에 그의 생은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토록 자신의 생을 다하여 지켜주고 싶었던 동주마져 싸늘한 죽음으로 형무소를 나가게 되고 그들이 건설했던 지하 도서관은 곰팡내가 나지만 아름다운 공간이었는데 돈과 욕망에 불타는 이들에 의해 짓밟히고 만다.글고 서로를 조율했던 스기야마와 동주, 소설은 동주보다는 '스기야마'라는 인물을 통해 글이 가진 위대함에 대하여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의 원천이 된 것이 천재적인 시인 동주가 있는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참회록이며 그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자화상이다. 이야기 중간 중간 나오는 윤동주의 시와 그외 시는 좀더 교묘하게 이야기에 빠져 들수 있는 안전장치처럼 쓰여 더욱 재미를 더했는가 하면 소설을 읽으며 시집을 읽는 느낌도 주었다.'시는 글의 사원이다'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참회록> <자화상> 등등 윤동주에 시가 더욱 느낌을 업 시켜주었다.시를 사랑하고 글을 사랑했던 활자중독자였던 살아 남으려 했던 이들은 갔지만 유이치는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부끄럽다. 글로서 저장된 기록에서 그들의 시간을 읽었던 자신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 부끄럽다.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문장들이,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도 많다. 몇 번을 곱씹으며 읽어도 좋을 듯한 문장에 취하고 책벌레이며 활자중독자이며 시인인 그들이 나누었던 인간적인 나눔이 윤동주의 시가 겹쳐지며 더 아름답게 조율이 되었다. 거기에 형무소에서 펼친 합창에서 조선인 죄수들이 부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곡' 과 어우러져 더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그 내면에 인간의 더럽고 추한 욕망이 밑바탕에 깔리며 더욱 전쟁의 잔혹함을 그려낸 듯 하다. 겉모습은 나약하고 비쩍 말라 눈길을 끌지 못하는 동주지만 형무소에서 그가 일으킨 파장은 크고 멀리 갔다. 그를 내세우기 보다는 폭력간수 스기야마를 내세웠기에 그가 더 영롱하게 그려진 듯 하다. 윤동주 뿐만이 아니라 '별'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 하고 어머니를 생각한 이들은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 장의 엽서는 '희망'이고 기대고 비빌 수 있는 언덕이었다. 전쟁도 아름다운 문장 앞에서는 나약한 문장의 힘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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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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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작가는 <바람의 화원>을 읽고 빠져 들어 그의 다른 작품인<뿌리 깊은 나무> <천년 후에> <해바라기> <악의 추억> 그리고 <천국의 소년>에 이어 이 작품은 사 놓고 읽지 않고 있다가 더 기다릴 수 없어 갑작스럽게 읽게 되었다.가을에는 다른 계절보다 詩가 더 와 닿고 시 한편이라도 외우던가 쓰고 싶은 계절이라 그런가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를 정말 좋아해서 여고 때에는 윤동주의 '서시 ' 뿐만이 아니라 참 많은 시를 외우고 또 늘 시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한 듯 한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시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그러다 우연하게 詩를 쓰고 싶어 되지도 않는 시를 마구마구 쓰던 몇 년의 시간이 있었다. 감성이란 소녀적 감성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시들지 않고 샘물처럼 솟아는 감성이 갑자기 막 자신도 모르게 솟아 날 때가 있다. 그때가 잠깐이라도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그런가하면 가을이라 시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류근의 <성처적 체질>을 구매했는데 얼른 읽고 싶다.

 

작가는 소설에 '추리기법' 을 많이 쓰기 때문에 더 재밌고 빠져들며 읽을 수 있다.<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이 혹시 여자가 아닐까? 라는 의문으로 접근을 하며 풀어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소설은 소설일뿐인데 실제 역사인줄 알고 참 많이 회자되었던 소설이고 이슈였던 듯 싶다. 그렇게 하여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고 드라마 또한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뿌리 깊은 나무> 또한 추리기법으로 쓰여져서 재밌게 풀어가며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어서 더욱 작가에게 빠져 들었는데 <악의 추억>은 조금 그의 맛에서 벗어났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만났던 <천국의 소년>은 탈북 소년의 삶을 통해 정권이 바뀐 북한을 어느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작품을 먼저 읽어 보려 하다가 <천국의 소년>을 먼저 읽었고 바로 읽으려 하다가 기회를 놓쳤는데 가을에 읽으니 시와 함께 더 분위기가 있어 좋다.

 

소설은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병인 유이치의 시선으로 그의 선임이었던 스기야마 도잔 간수병과 죄수였던 시인 윤동주가 시를 통해 나누었던 시간들이 그려진다. 스기야마는 그야말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물로 문맹이었던 그가 검열관이 될 수 없었지만 그만의 특징인 글과 문장을 보는 날카로움과 냉철함으로 검열관을 맡게 된다. 젊고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힌 일년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소설은 간수병이며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 도잔이 처참하게 살해를 당한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정말 인상깊다. ' 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스기야마 도잔은 분명 '타살' 을 당했다. 그의 죽음은 살아 남은 자들에게 왜 누가 죽였는지 말해 주어야 하는데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니 감옥 밖으로 소식이 전해진다면 크게 번질 우려가 있다. 소장은 애송이 간수병 '유이치'에게 그 대신에 검열관을 맡으라 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라고 한다.과연 누가 왜 죽였을까? 그토록 무섭고 폭력적인 스기야마를.

 

"마음은 가들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거예요."

 

답장을 받아 쥐고 죄수복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자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의 겉모습이나 그가 하는 행동을 봐서는 '詩'를 전혀 좋아하지 않을 듯 한데 그의 안주머니에서 누군가의 시가 적힌 종이가 발견된다.왜 그가 시를 안주머니에 품고 있었을까? 스기야마는 그야말로 어린 나이부터 밖에서 굴러 다니며 성장을 하였기에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했다.그렇기에 그는 먹물들을 싫어했다. 그러니 그 속에 윤동주,시를 쓰며 감성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를 그가 좋아할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지음' 을 하듯 시를 통해서 서로를 읽고 마음을 나눈다.시로 교화가 되듯 서서히 도주가 쓰는 엽서에 길들여지듯 스기야마는 도주의 글을 읽으며 문학과 글과 시와 윤동주에게 빠져든다. 스기야마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피아노 조율도 누구보다 섬세하게 하는 인물이며 문맹이었지만 늦게 글을 배워 무서운 속도로 문학에 빠져 들었다. 욕을 달고 사는 인물이었지만 윤동주는 그야말로 그는 온 몸으로 시를 내뱉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욕도 시가 된다고? 이해할 수 없는 스기야마이지만 윤동주의 글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들며 감옥의 분위기 또한 젊은 청년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죄수와 간수병이다.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시詩는 말의 사원이지요.".......

 

"시는 영혼을 비추는 우물이에요. 우리는 어두운 영혼의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진실을 길어 올리죠. 그리고 시로부터 위로받고, 시로부터 배우며, 시를 통해 구원받아요." 

 

일본이 패하기 바로 전,그러니까 해방이 되기 전 해이니 감정이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해 있던 때라 간수병들이 조선인을 대하는 것은 처참했다.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처참하고 죽어 나가는 일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속에서 독방에서도 살아 남아 절뚝 거리며 걸어 나오는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아름다운 시와 함께 간수병과 죄수는 서로를 이해하며 글로 마음을 나누듯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한다. 하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죄수와 간수병이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대치 상태에서 서로에게 선을 긋고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스기야마의 죽음은 유이치에게 모든 것이 전임되며 그가 덮고 있던 것을 파헤쳐 나가는 형상이 된다. 윤동주의 시집을 불태워야만 했던 스기야마,그로인해 자책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라도 윤동주의 시를 외워 길이 남겨 주고 싶었다. 그만큼 그의 시는 울림을 주었다.그에게 울림을 주었으니 분명히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울림을 줄것이라 생각하는 정말 폭력적인 사람인 스기야마의 삶을 1권에서는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정명의 소설은 팩션이지만 진짜 이야기처럼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사실과 같은 이야기들이 휘감아 돌며 자꾸만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윤동주가 화자가 아닌 삼자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시인'을 그리고 있다. 그라는 인물은 형무소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는 스기야마의 생각처럼 그는 형무소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글을 정말 쓰고 싶어하는 젊은이에 불과하다. 그가 쓰는 글은 긴 글이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시킨다. 글의 힘은 대단하다. 폭력성이 강한 악마 스기야마를 변화 시킨것을 보면 그에게 정말 큰 힘이 있는 시인임에 분명하다. 비록 스기야마에 의해 불쏘시개처럼 한 줌 재로 변해버린 詩이지만 그의 시는 모두를 밝혀주는 불쏘시개나 마찬가지다. 2권으로 빨리 달려가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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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딸들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안성 서운산 청룡사

 

 

 

 

 

명절연휴를 맞아 딸들과 간만에 조조로 <관상>을 보러 갔다가 잠깐 바람을 쐬러 가다가 보니 안성

청룡사로 가게 되었다. 녀석들 어릴 때 자주 갔던 곳인데 이곳은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더니 요즘은

주차장이 많이 바뀌었다. 절 앞의 주차장은 좁아지기도 했지만 절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큰 공용

주차장은 8월부터 유료가 되었다. 서운산이 있어 주말마다 등산객이 많은데 유로화를 한 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절로 향하는 입구에 있는 청룡저수지부터 길가에 주차해 놓은 차들이 즐비

하다. 산행객들로 인해 마을이 더 부수적으로 얻는 것이 많은 터인데 주차장 유료화는 문제가 있지

않나본다.

 

석탄일마다 이곳에 와서 녀석들을 위해 등도 달도 석탄일마다 찾는 절이 이곳이기도 하지만 서운산에

산행도 가끔 오는 곳이며 이곳에 오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참 좋은데 조금씩 절이 변화를 겪는 것이

오랜시간을 두고 지켜 본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 본래의 모습보다 왜 세속의 냄새가 나는 듯 보이는지.

그래도 아직은 그리 크게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아서 좋다. 석탄일에 오니 경비실을 짓고 있더니

담장공사와 더불어 다 완성이 된 듯 하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도 새로 고쳤는데 너무 현대적인

냄새가 강해 먼저 있던 돌계단이 그립다.개보수를 할 때 너무 현대적인 것으로 해 놓으면 이질감이

느껴진다.

 

 

 

 

 

청명한 가을날이다. 하늘은 정말 푸르고 바람 한 점 없이 덥다. 긴팔을 입고 나온 우리는 덥다 덥다

하며 그늘을 찾기 바빴다. 땡볕과 같은 곳에서 녀석들 사진좀 찍자고 하면 찡그리며 한마디씩 한다.

덥고 땀난다고... 그래도 이 가을날을 추억하기에 얼마나 좋으가.잠시 나온 것인데 축복처럼 이런

가을날을 선물 받았으니 정말 좋다. 잠깐 머물며 막내는 잠자리도 잡고 재밌는 사진도 찍고 두녀석은

신이났다. 어릴적 왔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 하다보니 더 재밌다. 거기에 알밤도 몇 개 주워

가을밤맛도 느껴보기도 했다.

 

 

 

 

 

 

 

 

잠깐의 나들이였지만 딸들과 정말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날이 뜨거웠지만 산행을 다녀 온 산행

객들이 절 구경을 하러 많이들 들어 오기도 하고 명절끝에 오는 여행객도 있고 우리도 그 속에서

절을 한바퀴 돌며 자연도 구경하고 추억도 쌓고 언제 또 이런 시간을 만들어볼지. 즐건 가을날의

잠깐의 여행이었지만 긴 명절연휴의 스트레스를 날리기엔 충분했다.

 

20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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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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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란 부제의 이 책은 '사사키 아타루' 라는 작가의 강연이나 대담을 담아 놓은 책이다. 먼저 사사키 아타루라는 작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읽고 있어도 계속 수박 겉만 핥고 있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다. 그의 전작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 아무리 느낌이 좋은 책이라도 읽지를 않았고 모르는 작가이기에 그저 먼 곳에서 들려 오는 북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종교사학자이면서 힙합 작사가이기도 하고 소설까지 몇 편 쓴 작가인 사사키 아타루가 급부상 하고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하여 아무런 것을 읽어보지 못하고 마주하는 책은 '낯설음'이다. 거기에 철학 하면 정말 어렵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아무리 읽어도 '철학'이란 그 단어부터 어렵게 다가온다.

 

얼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아니 그의 작품을 조금 어려워하고 있어 잡문집을 읽고나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하여 신간인 <색채가 없는 다카키 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좀더 편하게 읽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사사키 아타루를 알게 된 작품이니 그의 다른 소설들을 좀더 편하게 만날 수 있을까? 그의 작품 한 편이라도 읽었다면 계속적으로 겉돌기는 하지 않았을텐데 대담을 읽는 시간내내 '이건 뭐지' 하는 느낌으로 어쩌면 그런면이 더 '생각'이라는 터널을 넓혀가는 시간이 되어서 모험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글에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들이 낯선 것들 뿐이라 한계가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그렇다고 철학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가 처음부터 작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고 논문이나 그외 다른 일들을 하다가 소설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는,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그는 이미 소설을 반 정도 완성해 놓은 상태라 더 이상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몇 편의 소설을 내게 되었고 그를 작가의 반열에 확실하게 올려 놓게 되었나 보다. '말 혹은 언어'라는 것은 '글'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무력합니다. 하지만 문학은 승리합니다.단순한 진리입니다.' 라는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힘이 없는듯 보여지면서도 그 속에 힘이 들었다고 본다. 펜의 힘은 강하다고 했다. 한정된 사람들이 보는 글보다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나 그외 글이 주는 힘은 '치열한 노력의 힘은?' 이라고 생각을 하며 읽어 보게 되었다. 그렇게 그 또한 수면위로 올라와 독자를 만나고 있으니 치열한 무력의 힘은 대단하다고 본다.

 

그의 글 중에서 다른 글보다도 '독서' 에 대한 글을 좀더 유심히 읽게 되고 기억에 남는다. 난 한번 읽은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고 한번 쓴 글도 다시 읽지를 않는다. 글쓰기를 배설처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한번 읽은 책을 여러번 다시 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다음에 또 읽어야지' 하는 책들이 분명 있는데 다시 접할 기회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읽을 수 없다면 쓸 수도 없습니다. 이때의 읽기는 필연적으로 ' 다르게 읽기'를 의미하죠.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똑같은 행위가 아니거든요. 쉬운 예로 제2장까지 읽고 졸려서 일주일 정도 내버려뒀다가 다시 다음 장부터 읽는 것과, 하룻밤 사이에 책을 다 읽는 것은 인상이 전혀 다릅니다. 시가에 따라 '읽기' 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마는 거죠. 당연히 개개인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물론 최저한의 수준은 존재합니다만.' 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는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을 읽은 후에 다시 읽어봐야할 책이다.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하는 단어들은 그 단어자체로 참 난해하고 어렵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느낌도 '난해,낯설음' 이었는데 이렇게 '사사키 아타루'라는 인문학자이면서 힙합 작사가라는 그를 알게 되었으니 그의 작품들과 대면할 때는 '낯설음'은 아마도 '설레임'과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치카와의 말에서 ' 제가 사사키 씨의 백미는 첫째로 <야전과 영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잘 나타나 있는 '사람을 발정케 하는 문체의 힘' 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에 무방비하게 발정하거나 공감하는 사람들은 의심스럽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쓰면 일종의 미심쩍음과 함께 사람을 발정케 하는,매우 선정적인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라는 말처럼 '사람을 발정케 하는 문체의 힘'을 가진 작가의 작품들을 한번 만나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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