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주목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스페셜 컬렉션 중에 <봄에 나는 없었다>와 <딸은 딸이다>를 읽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자신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심리소설들은 추리소설만큼이나 그녀의 대단한 필력을 엿볼 수 있어 한 권을 잡으면 다음권으로 이어 내달리게 한다.

 

이 작품의 표지 또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이다.남자의 상체와 함께 손에 들려 쥔 붉은 장미 한 송이,건장한 남자의 상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의미는.남자의 건장함과 여자의 매력의 생은 너무 짧았다고 볼 수 있다.작품에서 말이다. 휴 노리스,우연하게 만났던 여인에게 빠져 그녀와의 봄날을 만들기 위해 만나러 가던 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하반신 장애를 입게 되어 휠체어에서의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건강한 몸이었을 때에는 운동이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즐겼다면 이젠 휠체어에 앉아서 타인의 시중을 받아가며 남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한번씩 다가와서 푸념처럼 하는 이야기나 그외 행동으로 상대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으며 인생이란 길고 짧은 것에 의미가 있을까.

 

교통사고 이후에 화가인 형과 형수와 함께 살게 된 노리스,그곳에서 그는 이사벨라라는 아가씨를 알게 되고 선거에 나선 존 게이브리얼을 만나게 된다. 노리스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이사벨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그리고 이사벨라의 마음을 받아 들일 수도 있었을텐데 그저 그녀가 이야기 상대로만 만족할 수 있는 노리스는 이사벨라에게 가는 마음을 자신안에 가두게 되는데 게이브리얼은 이사벨라라는 그녀가 가진 귀족이며 모든 것에 대하여 혐오를 하듯 둘은 노리스가 보기엔 무척이나 관계가 좋지 못한 듯 한데 그들은 모두의 생각을 뒤엎고 둘만의 탈출을 시도하여 모두에게서 사라져 버린다.안정적이며 지역에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성의 주인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이사벨라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노리스 또한 무척이나 놀라지만 그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가 그의 몸이 목발을 짚고 절뚝절뚝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의술의 영향을 받게 된 어느 날 우연하게 게이브리얼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그녀 이사벨라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그들은 결혼을 하여 평범한 가정을 이룬 것도 아니고 그가 생각했던 그런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그런 중에 이사벨라는 게이브리얼을 구하고 자신이 총에 맞아 죽게 된다.너무도 짧게만 느껴지는 그녀의 삶,과연 기회주의자에 바람둥이에 평판도 좋지 않은 게이브리얼을 택한 이사벨라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게이브리얼의 죽음과 대면하며 만나는 지난 날의 삼각관계,죽어가는 게이브리얼은 '수척한 그의 얼굴은 성자의 얼굴이었으니까.그 얼굴에는 번민과 고뇌의 흔적이 있었다...... 고행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혼의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노리스가 기억하고 있는 젊은 날의 게이브리얼은 바람둥이에 선거에 당선되기 위하여 그에게 이득이 될만한 일에는 모두 끼어 들어 이슈를 만드는 남자였고 출세를 위해서는 모든지 할 남자로 보였다.그런 그가 무척이나 싫어하던 귀족녀 이사벨라와의 바닥과 같은 삶은 도통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런 그를 위해 이사벨라가 죽음을 맞이했다니그리고 게이브리얼 또한 죽음 앞에 있다.그는 지난 날을 신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노리스 앞에서 그녀와의 삶과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죽음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다는 말처럼 그는 삶의 승리자일까.동화같은 삶을 꿈 꾸었던 이사벨라라 어떻게 게이브리얼과 누추한 다락방에서 누더기 같은 삶을 살다 갔는지.노리스에겐 그러니 자신의 이사벨라를 빼앗아 간 게이브리얼에게 화가 무척이나 나 있었을 듯 하다. 휠체어에서 목발을 짚는 삶으로 인생전환이 되었으니 이사벨라를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던 문제인데.

 

소설에서 노리스의 형수인 테리사는 다른 누구보다도 타인에 대한 평가를 적확하게 해낸다.그녀를 어떻게 보면 저자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해 냈는지 모른다.알 수 없는 건 여자의 마음이고 사랑이라고 했던가 이사벨라와의 꿈 같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노리스 자신은 자살의 충동을 이겨내고 그 긴 고통의 시간을 인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런 자신의 질곡의 젊은 날을 지나 왔기에 게이브리얼에 더 화살이 꽂히게 되지 않았을까.하지만 그 또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지나고보니 젊은 날의 사춘기와 같던 시간들이 다 무의미하게 퇴색해 버리고 말았다. 그 길고 짧음이 다 무엇이랴.게이브리얼과 이사벨라의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그리고 나 자신에 대하여는 또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끝은 시작을 의미하듯 뫼비우스의 띠처럼 알고 있다는 그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타인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인생,사랑 그 모든 것에 대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