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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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느낌이다. <고백><왕복서간> <모성> 등을 읽어 보았는데 그녀만의 색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여 그녀의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이 책은 묵혀 두었다가 읽게 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보이는 대로 가족이나 사람 등을 평가를 하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이 발달하고 더 보여지는 대로 타인을 평가하며 자신의 잣대로 움직이려 하는 경향이 큰 듯 하다.집의 평수가 혹은 타고 다니는 차의 크기로 입고 있는 교복이나 다니고 있는 학교로 사람을 평가하는,진정한 소통이 아니라 겉모습으로 소통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도 하고 겉모습으로 판단하다 오류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여기 길을 사이에 두고 집의 외양부터 확연하게 다른 두 집이 있다.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겉모습도 집크기처럼 서로 판인하게 다르다. 크고 좋은 집에는 의사인 아버지와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의과 대학에 다니는 큰아들과 사립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를 닮아 외모가 현재 유명한 아이돌가수를 닮은 공부 잘하는 막내 아들이 살고 있는 다카하시 가족이 있는가 하면 반대편에는 집은 누구네집 주차장만하고 아버지의 직업도 인테리어업이라 하지만 그리 좋은 편이라 할 수 없으며 아내는 늘 딸의 히스테리를 참아 가며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길 하나 사이로 두 집은 달라도 너무 다른 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곳은 언덕위 부자동네라고 하는 '히바리가오카' 라는 곳이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남다른 긍지를 가지고 있고 부자동네로 명성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어느 날 겉모습이 모범적인 다카하시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누가 왜 의사인 아버지를 때려 죽인 것일까? 겉모습을 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집은 반대편에 위치한 남의 집 주차장만한 엔도네에서 일어날 듯 했는데 생각과는 반대로 다카하시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왜???

 

히바리가오카 개개인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개개인 모두 위태위태하다. 엔도네 딸은 앞집과 비교되어 늘 히스테리로 엄마와 자신을 힘들게 하며 그런 가족에게서 도망치려는 아버지,그런 모습을 이웃 할머니인 사토코는 늘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끼어 들어 참견을 한다.그야말로 이 동네의 탄생을 함께 한 사토코는 동네의 명성에 맞지 않는 가족은 받아 들일 수가 없다는,다음에 아들네가 들어와 살려면 동네의 명성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란다.아니 동네의 명성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새로 들어오는 이들은 그런 긍지가 없는 듯 보여져서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며 참견을 일삼는다.가족이란 무엇일까? 타인의 잣대와 참견으로 가족이 변화할 수 있을까? 겉모습으로 보았을 때에는 다카하시 가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아내는 재혼한 사람이고 큰아들은 전처의 자식이며 막내아들은 늘 엄마의 욕심에 짜맞추려는 것이 싫어 엄마와 알게모르게 마찰을 빚고 있다.겉으로 보기엔 엔도네 가족만 늘 삐그덕거리고 시끄러운 듯이 보였지만 실체를 파고 들어가보면 그렇지 않은 집이 어디있는가.하지만 가족의 문제는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모이면 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히바리가오카의 야행관람차와 같은 동네의 모습은 겉으로 보여지기엔 화려하고 부자동네이고 아무 문제없이 모두가 행복할 듯 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개개인 마찰도 있고 가족간의 문제가 하나 둘 잔재하고 있음을,그것을 외면하면 다카하시 가족처럼 살인사건으로도 번져갈 수 있지만 엔도네처럼 합심하면 다시금 가족도 재건할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발밑이 무너지고 세상이 산산이 부서졌어.완벽한 곳에서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 안간힘을 쓰며 버틸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은 의외로 쉽게 찾아오는 법이거든.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폰에 올리는 이미지를 보고 그 사람의 겉모습만 판단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나와 비교를 하여 나보다 낫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격이 없던 사이에 격이 생기고 벽이 생기게 된다. 스마트폰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음증을 증폭시키듯 더 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현상을 가져 오기도 하고 어찌보면 아날로그 때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더 큰 장애물을 남겨 놓은 듯 하기도 하여 씁쓸할 때가 있다. 히바리가오카는 스마트폰과 비슷한 동네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부자동네라는 허울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하여 그곳에 첫 발을 디딘 사람들은 비스듬한 땅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을 해야하는지,아아캬의 말처럼 '언덕 병' 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모두에게서 볼 수 있다.그렇다고 가족의 문제를 타인이 판결을 해서도 안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 스스로가 푸는 것이다. 소설에서 엄마인 준코가 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풀지 않은 것이 좀 찝찌름하지만 그보다 저자는 밖으로 보여지는 더 큰 문제를 다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히바리가오카에 사는 개개인의 아야카의 말처럼 언덕병인 자신들의 문제를 이젠 스스로 쳐다보는 것만으로 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려고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야행관람차를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타고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볼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는 것이다.개인의 문제든 가족의 문제든 회피하기 보다는 부딪혀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비록 다카하시 가족은 위기를 맞았지만 서로 진실된 눈으로 보고 보듬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 다행이다.더불어 가족의 소중함을 한번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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